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41
141. 무쌍 조선. (1).
“컷! 좋습니다. 한 번만 더 찍겠습니다.”
박세용의 말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촬영을 준비했다.
그렇게 5번의 재촬영 끝에 박세용은 만족했는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자고 이야기했다.
계속해서 정필규를 중심으로 촬영은 빠르게 이어져갔다.
그 와중에 정필규도 촬영이 익숙해져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연기가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필규 씨. 좋은데?”
“가…감사합니다.”
정필규는 박세용의 말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사람들은 한쪽에 미리 도착해 있는 밥차와 커피차를 보고서 박수를 쳤다.
정필규를 부르면서 말이다.
-필규 씨 잘 먹을게.
-정필규 배우님. 잘 먹겠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며 감사 인사를 전하자 아리송한 정필규가 두리번거리다 밥차와 커피차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고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냉차 도착이요~‘무쌍 조선’의 안전 촬영을 기원하며. 정필규가 쏩니다.] [밥차 도착이요~‘무쌍 조선’의 안전 촬영을 기원하며. 정필규가 쏩니다.]그 문구를 본 정필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간 생각나는 건 이 영화에 적극 추천했던 최승용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모르는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정필규는 서둘러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자기, 점심시간이야? 촬영은 잘했어?
“어? 어…그렇지. 그런데 자기야 혹시 촬영장에 밥차 보냈어?”
-어? 아니…왜? 사람들이 눈치 줘? 하나 보낼까?
“아…아니야. 알겠어. 점심 맛있게 먹어.”
-응. 자기도 촬영 잘해.
아내와 통화를 마친 정필규는 도대체 자신의 이름으로 밥차와 커피차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 한 명이 남아 있었다.
자신을 챙겨주던 사람이….
정필규는 서둘러 김시우에게 달려갔고, 그곳엔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 김시우가 있었다.
“후욱…후욱…작가님.”
“네?”
김시우를 찾기 위해 달려 온 정필규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를 불렀다.
“저기…밥차랑 커피차 혹시 작가님이 보내 주신 건가요?”
“아…하하. 네.”
정필규의 질문에 김시우가 멋쩍은 듯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정필규가 멍한 얼굴을 하자 김시우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혹시 부담스러우셨나요…? 제가 상의도 없이 보내서…그랬다면 죄송합니다.”
김시우가 사과를 하자 정필규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걸 처음 받아봐서…감사합니다.”
정필규가 극단에서 생활할 때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이었다.
그는 매번 자신을 챙겨주는 김시우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갑자기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정말…감사합니다.”
정필규는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김시우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눈물과 함께.
고개를 숙인 정필규의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김시우는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정필규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들이 보면 놀립니다. 얼른 닦으세요.”
김시우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담을 했고, 정필규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김시우에 대한 호감이 올라갔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정필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얼른 밥 드셔야죠.”
“아…네.”
“얘들아, 고기 반찬 좀 더 가져올게 얌전히 기다려.”
아이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말한 뒤 김시우는 정필규와 함께 밥차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한쪽에서 보고 있던 배우들이 있었으니, 바로 김지현과 심지영을 비롯한 김시우와 친한 배우들이었다.
“쳇…첫 밥차는 나한테 해줄 줄 알았는데.”
“네? 무슨. 선배가 아니라 저 아닐까요?”
“뭐? 솔직히 너보단 내가 더 친하지.”
“에이, 그래도 저는 아직 한번도 못 받아봤으니까. 저 먼저 해줄 걸요?”
“제가 먼저 받아 가도 될까요?”
두 여자의 싸움에 박준호가 끼어들었다.
“뭐?”
“뭐라구요?”
“아…아니에요.”
물론 순식간에 항복을 선언하는 박준호였다.
이후 그들은 정필규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솔직히 연기도 연기인데 뭐라고 해야 하지…진짜 대장장이 같다고 해야 하나?”
“캐스팅되고 나서 맨날 대장간에 갔다잖아요.”
“진짜…어떻게 보면 괴물이긴 하네….”
아마 대장장이가 아닌 더욱 힘든 배역이 걸렸어도 정필규라면 왠지 그 배역에 몰두하기 위해 몸을 던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그보다 정필규 배우님 먼저 촬영하는 이유는 알고 있어요?”
“글쎄…시우가 부탁하길래 그냥 무슨 일이 있나 생각했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뒤에서 최승용이 입을 열었다.
“아마…아내 때문일 겁니다. 필규 아내 분이 지금 임신 중이거든요.”
“네?”
“그리고 만삭이라 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김시우 작가가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던 거구요.”
“아….”
김시우의 속내를 알게 된 배우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그러게….”
김시우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심지영과 김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모습을 본 둘은 다시 신경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심지영이 먼저 김지현의 귓가에 남들은 들리지 않는 크기로 이야기했다.
“야, 그만 신경 끄시지? 너 아직 어리잖아. 너 앞으로도 배우 해야지.”
“연애하고 결혼해도 배우 활동 잘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익….”
김지현의 말대로 결혼 후에도 활동을 잘하는 배우들이 있기에 심지영은 말을 돌렸다.
“그래도 너무 젊지 않니?”
“언니야말로 너무 도둑놈 심보 아니에요? 작가님이 몇 살 연하인데….”
“나 엄청 동안이라 괜찮아.”
심지영의 말대로 그녀의 외모는 젊을 적 관리를 꾸준히 해온 탓인지…아니면 타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엄청난 미녀에 동안이었다는 것이었다.
“뭐, 선택은 시우가 하는 거니까 두고 보자고.”
“제가 할 소리예요.”
그렇게 두 사람의 싸움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정필규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어때? 잘 나왔지?”
“그러게…그보다 이 밥차랑 커피차를 김시우 작가님이 해주셨다고?”
“응.”
“우리 울보 남편 또 울었겠네.”
“어? 어…어떻게 알았어?”
아내의 말에 당황하는 정필규였다.
“안 봐도 척이지…나한테 고백할 때도 울었으면서. 아이고, 이렇게 울보여서 그 힘든 배우생활은 어떻게 하는 거야.”
“연기는 안 힘들어.”
“알았어. 그보다 나중에 꼭 김시우 작가님 집에 데려와. 알겠지?”
“알겠어. 영화 촬영 끝나면 한번 여쭈어볼게. 그때쯤이면 우리 아이도 같이 있겠지?”
“아빠 닮아서 분명 엄청 울보일 거야.”
“엄마 닮아서 엄청 예쁘겠지.”
부부의 따뜻한 분위기가 집안을 조용하게 감쌌다.
한편, 김시우의 집은 시끌벅적했다.
“으아아아아!”
“우오오오오!”
김시우의 집엔 김시우를 제외하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김다온과 홍수혁.
김다온은 보육원 원장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뒤 데리고 왔고, 홍수혁은 홍수연과 그녀의 할머니에게 며칠 데리고 있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고양이다 고양이!”
“고양이~.”
“오빠.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단비.”
“단비~예쁘다. 단비야~이리와.”
하지만 고양이는 아이들이 귀찮은지 캣타워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히잉…오빠. 고양이가 안 내려와요.”
“그러게.”
김시우는 단비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굳이 단비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그들을 식탁으로 불렀다.
“자, 둘 다 모여봐.”
김시우의 말에 두 초등학생이 식탁에 앉았다.
“오늘 촬영 힘들지 않았어?”
“네!”
“저도 재미있었어요.”
“앞으로도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인사 잘해야 한다.”
아이들의 대답에 김시우가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초밥이요!”
홍수혁이 먼저 초밥이라고 외쳤고, 김다온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온이는?”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래, 그럼 초밥으로 먹자.”
김시우는 초밥을 주문한 뒤 홍수혁과 김다온에게 초밥 오기 전에 샤워를 하고 오라고 했다.
“수혁이는 1층 샤워실, 다온이는 2층 샤워실 가서 얼른 샤워 해.”
“네~.”
두 초등학생이 샤워하러 사라지자 캣타워 맨 위에 앉아있던 단비가 내려와 김시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귀찮지? 잘 피해 다녀라.”
“냥!”
김시우는 단비에게 간식을 주며 캣타워 맨 위에도 간식을 여러 개 두었다.
***
이후 빠르게 일주일이 지났지만, 촬영은 크게 걸리는 것 없이 진행되었다.
아이들도 크게 실수하는 부분이 없었고, 정필규도 흐름이 왔는지 매서운 실력을 보이며 촬영장에서 종종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확실히 재능은 있단 말이지…조폭 형사 시즌 2 주인공으로도 괜찮을 거 같은데.”
김시우는 정필규를 보며 다음 영화 주인공을 캐스팅할지 고민하는 사이 오늘의 밥차가 도착했다.
“오늘도 작가님 밥차네요….”
“그러게.”
벌써 4번째 김시우가 쏘는 밥차와 커피차였다.
친한 배우들이 있으니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건 애매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메뉴는 다르니 얼마나 다행이야.”
김시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밥차에 다가가는 사이 갑자기 촬영장에서 큰소리가 났다.
“도…도와주세요.”
촬영이 끝나기 전 정필규가 그리고 김시우가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정필규의 아내가 진통을 시작한 것이었다.
“누…누가 차 좀 빌려주세요.”
아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전화를 받은 정필규는 혼란에 빠져 횡설수설하며 감독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잠깐 진정하세요. 무슨 일 있으신 건가요?”
“아…아내가 진통을 하고 있다고. 곧 아기가 나온다고 해요.”
김시우는 불안해하는 정필규만 따로 보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자신이 같이 가기로 결정을 내린 뒤 박세용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허락을 받았다.
“감독님.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만약 김시우가 없었다면, 아마도 정필규는 영화판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이번 일은 본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이 엮여 있는 일이었다.
정필규의 사정 때문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이었다.
물론 몇 사람은 그의 상황을 이해해주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상황에 관심이 없고 자신이 피해 본 것만 기억할 것이었다.
그는 유명 배우가 아닌 무명의 배우이니깐 말이다.
“갑시다.”
“가…감사합니다.”
차에 탄 정필규는 병원으로 가는 내내 불안한 듯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 뜯었다.
“별일 없을 거예요. 보통 이렇게 크게 걱정하면 다행히 아무 일 없더라구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
“그보다 딸인가요? 아들인가요?”
“저도 잘 모릅니다. 아내가 성별은 태어나면서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김시우는 정필규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말을 걸며 더욱 빠르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1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병원에는 이미 정필규의 아내가 출산 중에 있었다.
병원엔 정필규를 제외하고도 정필규의 부모와 장인, 장모가 출산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 서방!”
이내, 정필규를 발견한 장모가 정필규를 불렀다.
“장모님. 수민이는요?”
정필규는 출산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아내에 대해 물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구만….”
“아….”
출산실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모든 모습을 지켜본 김시우는 뿌듯함과 뭉클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