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28
28. 날아오를 준비. (5).
두려움은 생각보다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원래라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사실 심지영은 수영을 할 줄 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물에 빠지자 두려움이 생겨 사고는 정지되고 몸은 살기 위해 저절로 발버둥을 친다.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질수록 발버둥은 거세지지만, 몸이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두려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김시우는 현재 옆에 울고 있는 심지영이 두려웠다.
왜 눈을 저렇게 뜨는 걸까?
***
3시간 전.
병원에서 괜찮다는 검사를 받고 나온 일행은 곤란한 상황에 마주했다.
“이거···. 섬에는 내일 들어가야겠는데?”
어느덧 해가 지는 바람에 배를 띄우기가 곤란해졌다.
결국,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기로 한 뒤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이후 식사는 감독 박웅덕이 아닌 미식가 박웅덕이 제안했다.
“좋아, 저쪽에 연락은 내가 할 테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고. 다들 배고프지?”
“네.”
박웅덕의 말에 김시우가 바로 대답했다.
그렇게 미식가 박웅덕을 따라 다들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구석진 곳의 노포집.
바닷가라 화려하고 유명한 식당도 많았지만, 박웅덕은 그곳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모. 모둠회 10인분이요. 매운탕도 주세요.”
“네! 자리는 편한데 앉으세요.”
박웅덕의 주문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식당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았다.
“자, 오늘 고생들 했어. 다들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고.”
박웅덕의 격려에도 분위기는 크게 밝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웅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속에 빠져 죽다 살아났는데 몇 시간 만에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이상한 것임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쳐진 분위기 속 회가 잔뜩 담겨있는 엄청난 크기의 접시가 여러 개 들어왔다.
“술도 드릴까요?”
식당 아주머니의 제안에 박웅덕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시원한 걸로 소주, 맥주 섞어서 주세요.”
“네~”
박웅덕은 이내 회를 한 움큼 집어 먹더니 두리번거렸다.
마치 먹잇감을 찾는 야생동물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의 눈엔 병든 닭처럼 피곤해 보이는 김시우가 포착되었다.
“오늘 음향감독하고 조명감독하고 한잔하려고 했는데, 흐음···. 그럼 오늘 우리 김 작가가 같이 마셔주는 건가?”
“…”
저번에 박웅덕이 어느 정도의 주량을 가진 사람인지 알고 있는 김시우는 벌써 속이 쓰려왔다.
“감독님. 제가 오늘 바닷물을 마셨는지 속이 안 좋아서···.”
“그럼 술로 소독해야겠네. 사실 바닷물을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아.”
“그게 무슨···.”
“에이, 김 작가 왜 이래? 내가 사는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마.”
“…”
분명 술로 나를 죽일 셈이야.
왜 하필 나야!
내가 만만해?
내가 동네북이야?
“김 작가 방금 내 욕했지?”
“네?”
속으로 박웅덕에게 불만을 표출하던 김시우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속마음을 읽은 것 같은 박웅덕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하하···. 제가 무슨 욕을 해요. 한 잔 받으시죠.”
김시우가 서둘러 소주를 들려고 하는 그때 심지영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감독님. 시우 좀 그만 괴롭히세요.”
“오, 심 배우 지금 젊은 남자라고 지켜주는 거야? 이거 늙은 감독은 서러워서 살겠나.”
“이익!”
박웅덕이 놀리는 듯이 말하자 심지영이 얼굴을 붉히며 옆에 있는 소주 뚜껑을 거칠게 열었다.
“어디 오늘 마셔보자고요. 한잔 받으세요.”
“좋지.”
심지영은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물론 박웅덕은 오히려 가득 채워진 술잔이 마음에 드는 듯 단번에 들이켰다.
“자, 이제 심 배우도 한잔 받아.”
이번엔 박웅덕이 심지영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심지영은 지지 않겠다는 듯 박웅덕과 마찬가지로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하아···. 이게 뭐람.”
김시우가 둘을 보면서 고개를 젓자 옆에서 누군가 김시우의 소매를 당겼다.
그 사람은 심지영의 매니저였다.
“매니저님?”
“아까는 감사했어요. 저는 지영 언니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요.”
“에이, 괜찮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도 아니고 구하는 게 당연하죠.”
“그래도···.”
심지영의 매니저도 많이 놀랐던 마음이 이제야 진정이 되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어어···. 울면 안 됩니다. 얼른 회 드세요.”
김시우가 서둘러 회를 심지영 매니저의 입에 넣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심지영의 매니저는 입에 회를 오물오물 씹으며 연신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박웅덕과 심지영, 심지영의 매니저와 자신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술과 음식을 먹자 점차 분위기도 풀어지기 시작했다.
물에 빠졌던 당사자들이 음식을 먹으며 입을 열자, 주변 사람들도 같이 어울려 주었다.
이제야 분위기가 좀 괜찮아졌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김시우. 너 아까는 좀 멋있더라?”
“네?”
혀가 반쯤 꼬부라진 심지영은 얼굴이 홍당무 같았다.
“저기요. 매니저님!”
서둘러 그녀의 매니저를 불렀지만, 그녀도 이미 취했는지 혀가 두 바퀴는 감긴 말투로 다가왔다.
“네! 김시우 작가뉨! 부르쎠쎠요?”
“아···.”
“작가뉨!”
“김시우!”
“작가뉨!”
“김시우!”
양쪽에서 김시우를 붙잡은 뒤 번갈아 부르는 심지영과 그녀의 매니저였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네? 집에 간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실수로 속에 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김시우가 크게 당황했다.
“김시우 아직 촬영 남았는데 어딜 가!”
“하아···.”
정말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니에요. 술이나 마시죠.”
답답한 김시우가 술잔에 술을 따라 들이키자 옆에서 두 취객은 손뼉을 치며 호응해주었다.
“머찌다! 작가님.”
“멋있다. 김시우.”
그 모습을 본 박웅덕이 미소를 지으며 곤란한 김시우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보다 김 작가는 여자친구 없나?”
“네?”
여자친구 이야기에 혹시 박웅덕에게 잡혀 술에 절여질까 눈길 한번 안 주던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러게요. 작가님 여자친구 있으세요?”
건너편의 스태프도 김시우에게 물음표를 던졌고, 그 여파는 점점 커져 심지영과 그녀의 매니저에게도 퍼졌다.
“김시우! 너 여자친구 있어?”
“작가뉨! 여자친구 있으쎄여?”
“없습니다.”
“왜요?”
여자친구가 없다는 대답에 심지영의 매니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가깝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잠시만 너무 가까운데.”
“흐잉···. 저 싫어하세여?”
“아니, 그런 게 아니라…하아···.”
“내 매니저 괴롭히지 마!”
퍼억.
심지영이 갑자기 김시우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렸다.
“아니, 이 사람들 뭐 하는 거야···. 감독님 일단 술 취한 사람들은 데려다주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그럼. 김 작가가 책임지고 데려다줘.”
“보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아! 데려다주고 나도 데리러 와. 알겠지?”
“하아···. 네, 알겠습니다.”
노포집에서 나온 김시우는 오른팔엔 심지영과 왼팔엔 심지영의 매니저와 팔짱을 낀 채 힘들게 숙소에 도착했다.
방문을 열고 매니저와 심지영을 차례대로 눕혔다.
매니저는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심지영은 어딘가 이상한 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누나 왜 그렇게 봐요?”
“아쉬워서.”
“네?”
“내가 한 10살 아니, 5살만 어렸어도 김시우 정도는 눈감고도 꼬실 수 있는데···. 지금은 너무 늙었어.”
심지영의 말을 들은 김시우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구해줘서 반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얼른 잠이나 자요. 내일 이불킥 하지 말고.”
“쳇, 너무하네.”
심지영이 이내 몸을 돌려 잠을 자려고 하는 모습에 김시우는 최종 보스 박웅덕을 데리러 다시 노포집으로 걸어갔다.
“나···. 내일 살아 있을 수 있겠지?”
***
바닷가에서 김시우가 박웅덕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또 다른 배우는 스마트폰에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아···. 어떻게 하지? 사과 문자를 보낼까? 아니야···. 그렇게 안 좋게 헤어졌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먼저 연락해···.”
매일 밤 김시우에게 보낼 사과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하는 고민에 빠진 배우는 바로 김지현이었다.
김시우와의 일이 있고 난 뒤 며칠 동안 그의 조언이 피부에 와닿았다.
회사대표에 매니저를 바꿔 달라고 말 한 다음 날 새로운 매니저가 한 명 더 붙었다.
새로운 매니저는 이전의 매니저와 다르게 따뜻한 물부터 커피, 담요, 컨디션 체크까지 세세하게 챙겨 주는 것을 보고 그동안 자신은 매니저 없이 활동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전의 매니저가 자신을 자르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자신을 대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촬영 전까지 패션 코디네이터는 구해지지 않아 결국 새로 온 매니저와 함께 촬영 때 입을 옷을 구하러 이동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패션 쪽엔 문외한이라···.”
“괜찮아요. 그냥 보시고 느낌만 알려주세요.”
“아···. 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백화점에서 몇 벌의 옷을 고른 뒤 촬영에 들어간 김지현이었다.
그러나 코디네이터가 아닌 매니저와 고른 옷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더욱더 배역의 이미지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아···.”
촬영을 하면 할수록 점점 악플과 악의적인 기사는 늘어갔다.
연기 지적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과 혼자 겉돈다 등의 말은 더욱 많이 나왔다.
“얼른 코디가 구해져야 할 텐데···.”
김지현은 수시로 핸드폰과 집의 컴퓨터로 자신의 캐릭터와 어울릴만한 옷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늘 입던 종류의 옷이 아니라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고, 김지현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그녀가 핸드폰으로 들어간 곳은 바로 패션 코디네이터 구인·구직 사이트였다.
[안녕하세요. 패션 코디네이터 구합니다. 페이는···.]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글을 쓴 김지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지듯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어···. 너무 많은데···?”
너무 많은 메시지에 김지현은 또 그 사이에서 사람들을 가려내야 했는데, 전부 일일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을 확인해야 했다.
다음 날까지 밤새 확인하느라 잠을 자지 못한 김지현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다.
“지현 배우님. 어제 무슨일 있으셨나요? 눈이 많이 충혈되었는데요?”
“어제 할 일이 좀 있어서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회사 일정엔 아무것도 없던데요. 그리고 왜 저만 따로 부르신 건지···.”
“그게···.”
김지현은 매니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최근 기사와 악플들에 대한 고민과 코디네이터의 필요성, 이전 매니저의 불편함까지 전부 이야기하자 매니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코디네이터 면접을 좀 보려고요.”
“네?”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 매니저는 회사에서 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 않냐고 물었다.
“그때는 너무 늦어서요. 저는 지금 당장 필요해서···. 대표님껜 제가 따로 말씀드릴게요.”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김지현은 몰랐다.
이 일이 얼마나 큰 여파를 몰고 오게 될지.
자신이 얼마나 더 바닥으로 내려가게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