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27
27. 날아오를 준비. (4).
김시우가 돌아간 뒤 김지현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스스로를 돌아봤다.
내가 술집에서 배역을 달라고 했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광고로 억을 넘게 벌었을 때?
SNS 팔로워가 100만이 넘었을 때?
카메오를 거절했을 때?
술 먹고 전화해서 주정 부렸을 때?
오늘 쌀쌀맞게 대해서?
아니면 전부 다?
나도 친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이미 돌아간 김시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분위기.
낯선 김시우의 모습에 놀라 눈물이 차올라 몸이 굳어버려 그에게 조심히 가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일단은 김시우가 해주었던 조언을 먼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김지현은 촬영이 끝나고 회사로 찾아가 대표를 만났다.
“대표님···.”
“어! 지현아, 무슨 일이야.”
“혹시 매니저 좀 바꾸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코디도···.”
“무슨 일 있었어?”
김지현의 소속사 대표는 김지현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길래 갑자기 매니저를 바꿔 달라는 거니? 혹시 매니저가 딴짓이라고 했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저랑 스타일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서요.”
김지현은 차마 매니저가 운전 외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하지 못했다.
김시우의 말을 듣고 촬영장의 다른 배우 매니저를 확인하자 자기보다 훨씬 덜 유명한 배우들도 매니저가 수시로 컨디션 체크부터 피드백, 대본 합까지 맞추어주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써준다는 것이 느껴졌다.
반면, 자신의 매니저는 그저 촬영장에서 자신의 셀카를 찍거나 다른 배우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아직 같이 다닌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럴 거야. 매니저는 내가 주의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 3달만 같이 일해보고 그때도 별로면 다시 이야기해보자.”
“아···. 네.”
“코디는 금방 구해서 붙여줄게.”
김지현은 며칠 뒤에 또 드라마 촬영이 있었기에 지금 당장 코디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김지현은 대표도 김시우처럼 자신에게 등을 돌릴까 갑자기 겁이 나 당장 필요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알겠어요. 그럼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그래, 아주 좋은 사람으로 맞춰줄게.”
김지현이 방에서 나가자 대표는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바로 김지현이 바꾸어 달라는 매니저가 자신의 조카였기 때문이었다.
“조카만 아니었으면 당장 잘랐을 텐데.”
사실 ‘리벤져’에 캐스팅된 이후로도 김지현에겐 상당 기간 매니저가 존재하지 않았다.
잘 나가지 못하는 연예인에겐 매니저를 붙여주지 못하는 기획사.
그것이 바로 중소 기획사의 현실이었다.
이후 김지현이 대박을 터트리며 스케줄이 늘어나자 매니저를 붙여주려고 한 기획사 대표는 마침 동생으로부터 집에서 놀고 있는 자기 아들 좀 취직시켜주면 안 되냐는 부탁을 받게 되었고, 그에 맞물려 조카는 예쁘고 유명한 김지현의 매니저를 자청한 것이었다.
“설마, 이 일로 재계약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경력 좀 있는 매니저를 붙여줄걸. 지현이가 순하다고 그냥 붙여주는 게 아니었어···.”
막상 저질러 놓고 머리가 복잡해진 대표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 새끼야! 너 어디야! 당장 회사로 튀어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은 대표의 조카이자 김지현의 매니저는 친구들과 클럽에 갈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서둘러 대표실로 달려왔다.
계단으로 달려왔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는 김지현의 매니저는 자신의 삼촌이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지 모른 채 쓴소리를 들었다.
“너 내가 잘하라고 했지? 다른 매니저 따라다니면서 경험 좀 쌓으라고 했는데. 네가 잘 할 수 있다고 지현이 매니저 시켜 달라고 그렇게 떼를 써놓고 이게 뭐야! 배우 한 명 신경 써주는 게 어려워?”
“뭐? 삼촌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지현이가 매니저 바꿔 달란다. 너 일 제대로 하는 거 맞아?”
“다···. 당연하지.”
매니저의 매 짜도 모르는 김지현의 매니저였지만,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일부터 지현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줘. 아니다. 그냥 내일부터 다른 매니저 붙일 테니까 같이 배워. 너는 일단 로드 매니저부터 해.”
“뭐? 로드 매니저? 그거 그냥 운전만 하는 거 아니야?”
“하아···. 너 그냥 집에 갈래? 이 새끼 동생이 부탁해서 취업도 못 하는 놈 취업시켜주었더니.”
“아니, 삼촌.”
“아! 듣기 싫어. 그런 줄 알고 돌아가.”
밖으로 나온 김지현의 매니저는 고개를 숙인 채 이를 꽉 깨물었다.
***
김시우는 현재 배 위에 있었다.
정말 섬에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얼른 집에 가고 싶다.
박웅덕이 꼭 참가하라고 한 촬영 장소가 하필 섬이었다.
`이 사람은 또 언제 이런 장소를 섭외했대?`
“이 사람은 또 언제 이런 장소를 섭외했대? 라고 생각하는 표정인데?”
“아악! 깜짝이야!”
옆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박웅덕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김시우였다.
“대본 읽으면서 섭외했지. 한지는 좀 되었을걸?”
“그렇군요.”
“액션씬은 처음 보는 건가?”
“네···. 뭐.”
김시우의 무성의한 대답에 박웅덕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들 두드렸다.
“자네를 보면 참 한결같아서 좋아.”
“네?”
“뭐든지 귀찮다는 그 말투. 마음에 들어.”
누가 보면 싹수가 노랗다고 이야기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솔직하게 대하는 김시우가 마음에 든 듯 한 박웅덕이었다.
전라남도의 어느 섬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차에서 짐을 내리며 바쁘게 움직였다.
“감독님이 오늘 특식이랍니다. 빨리 옮기고 밥 먹으러 갑시다.”
스태프들이 특식이란 말에 바쁘게 움직이던 몸을 더욱 빨리 움직였다.
“특식? 회라도 먹는 건가?”
영문을 모르는 김시우와 몇몇 배우들은 이 현상을 신기해했다.
그리고 이 이유를 하는 심지영은 김시우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감독님 입맛이 엄청 까다로운 걸로 유명하거든. 저번 소고깃집 기억 안 나?”
“아···. 거기 엄청 맛있긴 했었죠.”
“영화판에 좀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알걸? 박웅덕 감독님이 미식가라는 거.”
이제야 다들 왜 저렇게 바쁘게 움직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은 생각보다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촬영장 세팅이 전부 끝이 났고, 사람들은 박웅덕 감독이 준비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모님. 저 왔습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식당에는 한창 음식이 준비 중이었다.
박웅덕 감독이 준비한 특식은 바로 생선구이 정식이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각종 생선과 새콤하게 무쳐진 물회는 침샘에서 침이 절로 나오게 했다.
“오늘 촬영 끝나면 해물찜, 매운탕, 회 먹기로 했으니까. 다들 힘내자고.”
-네!!!
저녁 메뉴를 들은 사람들은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이 끝나면 분명 그 맛있는 음식에 소주를 한잔할게 분명했다.
“꿀꺽.”
애주가인 음향감독과 조명감독은 얼른 술을 마시고 싶었다.
“야! 얼른얼른 준비해라. 아니다. 나와 내가 하게.”
오죽하면 평소에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떼지 않던 사람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했다.
“박 감독. 조명 준비 끝.”
“음향도 끝.”
“아니, 이 양반들 아주 술 마시고 싶어서 서두르는 거 봐. 뭐···. 그럴 수 있지. 기대하라고 내가 특별히 공수해 온 재료들이라 실망하진 않을 거야.”
박웅덕은 그들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 배우님들도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섬에서 촬영하는 부분은 한예리(심지영)가 이곳에서 복수를 준비하는 부분과 딸을 죽게 만든 범인들을 데려와 복수를 하는 곳이었다.
심지영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채 차에서 내렸다.
“후우···.”
그녀도 액션씬은 좀 걱정되는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사람들은 대역을 쓰자고 했지만, 심지영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물론 배우가 직접 액션 연기를 하면 감독으로선 훨씬 편했다.
그만큼 배우가 액션 연기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도 격한 액션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심 배우. 너무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박웅덕의 격려에 이내 심지영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섬 안에 이곳저곳 함정을 설치하는 장면.
짐을 나르는 장면.
혼자서 몸을 단련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총을 쏘는 장면까지.
탕탕탕.
세 발의 총성을 마지막으로 육지에서의 촬영은 전부 끝이 났다.
“좋았어. 심 배우.”
“감사합니다.”
심지영은 힘이 드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여린 여배우의 몸으로 무거운 짐을 옮기고 격한 운동을 연달아서 하면 아무리 운동을 하는 여배우라고 해도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총을 쏠 때는 긴장까지 더해지니 몰려오는 피로는 배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장점은 있었다.
오히려 그 힘든 모습이 연기가 아닌 정말로 힘들어서 그런지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훨씬 잘 나왔다.
체력이 소진된 심 배우도 촬영을 한 박웅덕도 주변의 스태프들도 전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마지막 씬 남았다. 얼른 바다로 가자고.”
오늘의 마지막 장면.
바로 배 위에서 찍는 수상 촬영이었다.
수상 촬영을 위해 통통배에서 내려 더욱 작은 배로 옮겨 탔다.
확실히 작은 배 위에서 촬영을 하려니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흔들림이 심했다.
“그런데 저는 왜···.”
그 와중에 김시우는 왜 자신이 작은 배 위에서 촬영하는 것까지 따라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너 하는 거 없잖아. 그럼 이런 거라도 따라와야지. 안 그래?”
“아니···. 애초에 안 부르셨으면···.”
“어허! 조용. 촬영 시작합시다.”
박웅덕은 김시우를 조용히 시키며 카메라를 직접 들었다.
그렇게 박웅덕이 촬영을 하자고 입을 열려는 순간 큰 파도가 일렁였고, 배 안으로 물이 잔뜩 들어왔다.
“아오···. 다 젖었네.”
“휴우···. 하마터면 카메라 젖을 뻔했네.”
하반신이 젖은 김시우는 투덜거렸고 카메라를 높게 든 박웅덕은 안도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시 촬영을 진행하려는 찰나 눈앞에 촬영해야 할 배우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엔 심지영과 상대 배우, 음향 스태프가 타고 있는 보트가 뒤집혀 있었고, 물에 빠진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사···. 살려!”
그 순간 심지영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김시우가 반사적으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닷물 한번 더럽게 차갑네.”
순식간에 뒤집힌 배 근처에 도착한 김시우는 허우적거리는 심지영을 붙잡았다.
“누나. 가만히 좀···. 뜨헉.”
심지영은 김시우가 손에 잡히자 그를 끌어내리며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강제로 물속으로 들어간 김시우는 심지영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를 최대한 위로 올려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었다.
제발···. 빨리 좀 정신 차려라.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네.
잠시 후 숨이 모자라질 때쯤 심지영의 발버둥이 멈추었다.
“푸하! 숨 막혀 죽을 뻔했네.”
“괘···. 괜찮아?”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아···. 응. 고마워.”
곧바로 통통배에 타고 있던 수상 안전요원들이 도착했고, 그들은 음향 스태프와 심지영의 상대 배우도 무사히 구조했다.
통통배에 흠뻑 젖은 채로 오른 김시우는 처음으로 자기 대본에 불만이 생겼다.
“내가 왜 이 장면을 넣었을까···.”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물에 빠진 사람들과 박웅덕은 섬에서 빠져나와 섬 밖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안정만 취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옆에는 술에 잔뜩 취한 심지영이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야! 김시우···. 흐잉···. 흐어어엉.”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요즘 술 먹고 주정 부리는 게 유행인가?
이게 다 박웅덕 감독. 저 자식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