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할리우드 강제 진출 (4)
* * *
사람들이 얼마 없는 한적한 공원.
벤치에 금발의 여자와 그녀의 아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아이는 엄마의 치마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 엄마! 나 앞으로 되고 싶은 거 정했어!”
“응?”
“나,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 거야.”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앤디가 데보라를 꼭 끌어안았다.
“멋진 영화를 만들어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 줄 거야!”
“말만 들어도 좋다, 우리 아가.”
“엄마, 기대해! 내가 유명한 영화감독 꼭 될 테니까!”
품 안의 아들이 신이 난 듯 말하는 목소리에 데보라는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하나뿐인 아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게 그녀의 신념이었다.
그녀도 한때는 꿈이 많았었다.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톱배우, 코미디의 여왕,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등등.
그러나 눈앞의 아들이 있는 지금,그녀의 꿈은 단 하나뿐이다.
아들 앤디의 행복.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할 게 없었다.
그녀의 자존심과 명예는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와 아들을 버리고 떠난 피셔 감독을 찾아가 양육비를 요구했었지만, 한번 받고는 끝이었다.
약혼녀가 있는 걸 숨기고 자신을 만난 피셔 감독이 결혼했다고 자신과 아들을 헌신짝처럼 버린 게 괘씸했다.
할리우드의 가십 잡지와 인터뷰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앤디를 생각해서 접었다.
아들이 더러운 할리우드 가십에 휘말리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성장하게 두고 싶었기 때문.
혈혈단신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픈 몸을 이끌고 청소부로 돈을 버는 것, 힘든 환경 속에서도 앤디에게 온 사랑을 주는 것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 지나가는 간식 트럭이 보였다.
“맛있는 솜사탕 팔아요!”
길거리를 천천히 지나는 트럭을 따라 앤디의 눈길이 향한다.
침이 고이는 입술을 애써 다물고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어린아이.
데보라는 그런 아들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았다.
“솜사탕 먹고 싶지?”
“응! 아니…….”
엄마의 눈치를 보던 앤디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엄마 돈 없잖아, 나 참을 수 있어!”
“아니야, 엄마가 우리 앤디 솜사탕 사줄 돈은 있어.”
동전 지갑을 탈탈 턴 데보라는 벌떡 일어나 트럭으로 달려갔다.
“잠깐만요, 저 솜사탕 살게요!”
그 뒤를 앤디가 신이 난 듯 뛰어왔다.
아저씨에게서 커다란 솜사탕을 받아든 데보라가 앤디에게 돌아섰다.
“자, 선물이야.”
“역시 엄마가 최고야!”
솜사탕에 파묻힌 앤디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영화 주인공처럼, 매우 행복한 그런 미소를.
* * *
그날 밤.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앤디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를 불러서 간다는 걸, 앤디가 굳이 자기가 데려다준다고 했다.
조금 전 태주와 이야기하며, 그동안 응어리진 부분이 풀린 것 같아 고맙다면서 말이다.
말문이 트인 그는 그동안 숨겼던 가정사를 조심스레 태주와 차용석에게 얘기했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어요. 어렸었는데도 기억나요. 남의 집 청소해주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다음 날에도 돈 벌어야 한다고 기어이 나간 거.”
“그렇게 힘들었는데, 아버지 도움을 받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태주가 조심스레 물었고.
“솔직히 피셔 감독이 그쪽 생부니까, 법적으로 양육비를 주어야 할 의무가 있잖아요.”
차용석도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저는 피셔 감독이 제 생부인지 중학생 때까지 몰랐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말해주지 않으셨거든요. 그 후에 이모 집에서 정말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럼, 피셔 감독을 찾아가셨나요?”
“네, 그랬죠.”
앤디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학교 등록금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갔었어요. 돈이 없어서 휴학해야 할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만남이 잘 안 풀렸나 보군요.”
태주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날 반기기는커녕, 모르는 사람 취급하더군요. 나한테 줄 돈은 1달러도 없으니 썩 꺼지라고 협박까지 하면서요. 그때 깨달았죠, 이 사람은 날 아들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요. 그래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감독으로 승부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인드가 멋지네요. 성공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부모 후광 덕을 보려는 금수저들도 많은데.”
태주와 차용석은 앤디의 올곧은 생각에 감탄하는 사이, 그들은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차용석이 앤디와 굳은 악수를 하였다.
“좋은 영화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봅시다.”
앤디가 눈을 찡긋했다.
“네, 꼭 좋은 소식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선플라워 프로덕션에 단편영화 가편집본을 보냈는데,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 말에 태주가 씩 웃었다.
“촬영장에서 뵙겠습니다, 감독님!”
* * *
비행기를 타기 직전.
짐을 부치고 온 차용석이 태주의 옆에 흥분된 얼굴로 앉았다.
“야, 태주야.”
차용석이 벌건 얼굴로 핸드폰을 흔들었다.
“홍 기자랑 인터뷰 좀 하자.”
“인터뷰요?”
“그래, 지금 아웃패치 조삼식 때문에 네가 런던에서 웬 여자랑 데이트한다는 헛소문이 쫙 퍼져서 말야. 그거 정정해야겠어.”
그 말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그럼 앤디가 나 공항까지 바래다준 것도 찍혔겠네요?”
“아마 그럴 거야.이제 곧 인터넷에 올라오겠지.”
“아니요, 인터뷰는 필요 없을 거 같아요. 가서 직접 해명해요.”
“일부러 열애설을 방조하겠다고?”
“네.”
태주가 씩 웃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제가 런던에서 뭘 했는지에 배로 관심을 가지지 않겠어요?”
* * *
출근길의 사람들이 다들 들여다보고 있는 기사 하나.
연예란 1위를 차지한 한태주의 기사였다.
놀란 눈으로 기사를 훑는 사람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전직 스타 아역 배우, 현재는 부동의 20대 원탑 배우인 한태주 씨가 런던에서 외국인 여성과 비밀 데이트를 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약 일주일 전, 영화 ‘탈출(양군보 감독)’ 촬영으로 런던으로 출국했던 한태주가 홀로 2일 연장 체류를 신청한 바 있다.
소속사 측에서는 개인적 사정이라 둘러댔지만, 사실 한태주가 비밀 데이트하는 걸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데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편, 한태주와 하이드 파크부터 런던 거리, 그리고 공항까지 함께한 이 묘령의 여인은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 2일 동안 한태주 씨와 동행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매우 친밀한, 혹은 그 이상의 사이로 추측된다.
-아웃패치, 조삼식 기자-
사람들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이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한태주 옆에 있는 이 사람…….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왔는데?”
* * *
한편, 패션 잡지사 ‘노블’에 출근한 한유경은 엄청난 질문 폭탄을 맞고 있다.
“유경 씨,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한태주 씨 정말 런던에서 데이트한 거야?”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닌데 왜 이 여자하고 솜사탕을 같이 먹고 있냐고.”
이제는 한유경보다 더한 열성 팬이 된 편집장이 그녀에게 기사의 사진을 내밀었다.
“이 검은 머리 여자, 도대체 누구야? 혹시… 윤수안? 아니면 설채빈?”
“편집장님!”
결국 한유경이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태주의 열애설에 흥분한 사람들 뿐이었다.
다들 한태주의 팬이라는데 감사하면서도, 흥분을 우선 잠재워야 할 것 같았다.
사실 한유경은 태주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가 무명 신인 감독을 만나 단편영화를 한편 찍었다고.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할 영화이며 잘 되면 장편으로도 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 제작사, 선플라워 프로덕션이 붙어서 말이다.
한유경은 입이 근질거렸지만, 우선 급한 불만 끄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까지는 일단 오프 더 레코드로 해 달라고, 태주가 부탁했었기에.
한유경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여러분. 우리 태주를 그렇게 모르시나요? 런던에 2일을 추가 체류하면서 데이트나 즐기는 그런 애인 줄 아시냐고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 검은 머리 여자는 도대체 뭐야, 그럼?”
잔뜩 흥분한 편집장이 기사 속 사진을 흔들어 보였다.
“여기 봐봐, 몸매도 여리여리해서. 공항에까지 바래다준 걸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닌 듯한데?”
“편집장님, 편견에 사로잡혀 계시는 줄 몰랐어요.”
“뭐?”
“왜 꼭 그 사람이 여자인 걸로 생각하시는 거죠?”
한유경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남자일 수도 있잖아요, 남자.”
* * *
동시각, 아웃 패치 본사.
밤을 새워서 한태주 열애설 기사를 올린 조삼식은 위풍당당하게 기자국에 입성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수많은 후배가 그의 옆을 에워쌌다.
“선배 이번에도 또 한태주 건수 잡은 거예요?”
“그래.”
조삼식은 SNS를 죄다 뒤졌던 지난 2일간의 밤샘을 기억하며 말했다.
“내가 그거 쓰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네는 모를 거다.”
한 후배가 입을 비죽이며 끼어들었다.
“그거, 이번에도 틀리면 어떡하려고요. 저번에도 선배, 설채빈하고 한태주 열애설 헛발 짚었다가 드림 액터스하고 원스타 엔터에서 소송 걸렸잖아요?”
“야!”
폭발한 조삼식이 그들에게 야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내가 한태주 한길만 판 사람이야. 나보다 한태주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너희가 뭘 안다고, 그래!”
그가 씩씩거리자 옆에서 후배가 즉각 반론했다.
“그런데 스타뉴스의 홍은지 기자는 왜 아무런 말이 없죠? 솔직히 한태주 초기부터 홍 기자가 전담하다시피 해서 마크한 거, 다들 알잖아요.”
“한태주가 전담 기자한테 이런 것까지 다 까겠어? 자기 연애는 지가 알아서 하고 싶었겠지. 그런데 나한테 딱 걸린 거지, 하하.”
조삼식이 껄껄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제보받은 몇 장의 사진들이 떠 있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호리호리한 여성이 한태주의 옆에서 솜사탕을 먹는 장면.
공항에서 한태주를 내려주며 포옹하는 장면 등등.
이제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한태주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여성과 가까이 밀착한 채 데이트하는 장면 말이다.
조삼식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킬킬거렸다.
“흐흐. 한태주가 런던에 2일 동안 추가 체류한 이유가 있다니까. 개인적인 일정이다, 이런 데는 다 여자가 끼어있기 마련이지.”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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