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네가 숨기고 있는 것 (5)
* * *
한편, 동시각.
XX건설 사무실에는 불안한 분위기가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일찍 출근한 직원들은 제각기 핸드폰으로 기사들을 보고, 또 봤다.
“이 기사 진짜예요? 기자가 그냥 자기 뇌피셜로 쓴 거 아닐까요?”
“아무튼 느낌이 이상해. 우리 대표님이 이중협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니……. 으으, 싫다!”
“우리 대표님 같은 애처가에, 가족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 이런 일에 연루되어 있을 줄이야. 누가 우리 대표님 괜히 모함하는 건 아닐까요?”
“너무 무서워요.”
훌쩍이던 한 여직원이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분명 이중협 배우님, 촬영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거잖아요, 지금.”
“나도 그때 기사 난 것들 기억해.”
옆에서 그녀를 토닥이던 여자가 눈을 반짝였다.
“그때 이중협이 드라마인가? 무슨 작품 찍고 있었는데, 밤에 촬영하다가 신호 미스로 사고가 일어났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맞아, 나도 기억나. 그때 연예계 뉴스에서 한창 그걸로 들썩였었잖아.”
“그런데 분명 이중협은 촬영장 사고로 죽었다는 게 기정사실이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살인사건으로…….”
말을 잇지 못하던 직원은 역시나 혼란스러운 직원들과 눈을 맞추었다.
“우리 대표님은 또 왜 연관이 된 거고?”
의심이 가득 찬 직원들의 눈이, 텅 빈 대표의 사무실로 일제히 향했다.
* * *
“대표님과는 연락이 안 된다, 이 말씀이시죠.”
“네, 변호사님.”
발을 동동거리는 우창균의 비서가 말을 이었다.
“사모님께도 연락을 드려 봤는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하……. 내가 걸어 볼게요. 걱정하지 말고 일 봐요, 김 비서.”
비서를 돌려보낸 우창섭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형이 연락을 끊고 잠적한 건 분명 오늘 뜬 그 기사 때문이리라.
오전도 아닌 새벽에 갑자기 올라온 초특급 기사.
연예계는 물론 정치권도 발칵 뒤집힌 지 오래다.
톱배우는 아니었지만, 이선우의 친구이자 훌륭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이중협은 일찍이 아는 사람은 아는 배우였고.
부형윤 검사장과 긴밀한 연이 닿아있는 건 물론, 여기저기 선을 댄 우창균은 정치권의 마당발이라고 불릴 만큼 세간에 알려져 있었으니까.
물론, 전혀 엮이지 않을 것 같은 이중협과 우창균, 이 두 사람이 한데 묶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기사를 보던 우창섭의 얼굴은 점점 상기되어 붉어졌다.
“USB라니,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누가 보낸 거길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모르는 번호였지만 우창섭은 급히 받았다.
“누구십니까?”
-나다, 창섭아. 혹시 나중에 핸드폰 기록 조사할까 봐, 대포폰으로 연락하는 거야.
상대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우창섭의 눈이 반짝였다.
“형님, 지금 어디십니까? 연락은 왜 안 되고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인포트리 이 기자한테 연락해서 일전에 써 놓은 그 기사, 터뜨리라고 해.
“인포트리의 이 기자라면……. 이지택 기자요?”
말을 잇던 우창섭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형님, 정치권 기사를 연예계 기사로 덮을 수 있다는 건 옛날 말 아닙니까?”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할 거 아냐! 창섭아, 정신 차리고 형이 시키는 대로 해!
수화기 너머에서 상당히 다급한 우창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열애설, 지금 당장 터뜨리라고 빨리 연락해.
* * *
출근한 직원들로 한층 활기가 넘치는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기분 좋은 분위기는 이내 인터넷을 장악한 한 기사로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한태주 씨가 외국인 여자랑 연애한다고?”
그리고 여기, 아침 이른 시각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홍보실.
홍보실 직원들은 다들 전화기를 붙들고 응대하는 중이다.
“저희 쪽에서 확인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정확하게 입장 정리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태주 씨의 사생활은 저희도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서요. 확인 중에 있습니다.”
“윤수안 씨의 입장이라뇨. 그건 한태주 씨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분이잖습니까.”
긴박하게 돌아가는 홍보실에 방문한 배우 1팀장, 김진수.
그는 곧장 박연수 팀장에게 향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박연수 팀장이 김진수 팀장에게 눈을 찡그렸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지금 이게 무슨 일이에요? 태주 씨 지금 연애 안 하잖아요. 아니면, 우리 몰래 하는 건가요?”
“아뇨, 태주 씨는 지금 일하느라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열애설이 터지냐고요. 잡힐 건덕지를 준 건 확실한데,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군지……. 혹시 아는 거 없어요?”
김진수는 눈을 찡그리며 다시 한번 기사를 정독했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걸린 단어 하나.
“인포트리? 역시, 그런 거였나?”
김진수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기사, 분명히 노리고 터뜨린 게 분명합니다.”
“무슨 소리예요, 알아듣게 이야기 좀 해 봐요.”
“정치권으로 쏠리는 관심을 덮으려고 일부러 그쪽에서 사주해서 터뜨린 기사라고요.”
“정치권?”
“왜요, 이번에 이중협 배우님 관련해서 정치권이 시끌시끌하잖아요.”
그 말에 떠오르는 게 있는 듯 박연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설마, 그럼 이중협 배우 기사를 덮기 위해서 우창균 쪽에서 터뜨린 거라는 뜻인가요?”
“없던 스캔들도 만들어서 쓰려고 했겠죠. 그런데 태주 씨한테 이런 일이 터지니까 옳거니, 하고 일을 키운 거고요.”
얼굴이 점점 붉어지던 박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태주 씨, 어딨어요?”
“벌써 방송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마스크 스타 리허설에 저녁 늦게까지 녹화 있잖아요.”
“아니, 오늘 이런 기사 난 마당에 태주 씨, 녹화는커녕 노래는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아마 괜찮을 겁니다.”
김진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 씨가 오늘 종일 인터넷은 안 보겠다고 했거든요, 무대를 위해서 마음의 평정심을 다스려야 한다고.”
* * *
한편, 동시각.
긴장감으로 휩싸인 넥스트 엔터와는 달리 ABS 예능국은 흥분 상태였다.
“이야, 박 피디. 오늘 땡잡았네. 한태주 열애설까지 난 마당에 MC한테 부탁 좀 해봐. 그거 사실인지 물어봐 달라고.”
“하여튼 박 피디는 운이 늘 따른다니까.”
“한쪽엔 한태주, 한쪽엔 미스터 버터플라이. 박 피디 오늘 녹화 대박나라!”
지나가는 선배들이 던지는 덕담에 박 피디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이때.
옆에 있던 조연출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피디님, 오늘 한태주 씨에 대한 이슈가 많지만 그래도 질문거리를 너무 그쪽으로 치중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오늘 스페셜 게스트로 브리짓 드하트도 오잖아요. 그분을 모셔두고 괜한 가십거리로 쇼의 일부분을 소비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귀한 손님 모셔두고 괜히 무례를 범할 생각은 없어.”
박 피디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인데, 괜히 출연자의 연애 이슈까지 끌어들이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보다, 오늘 브리짓한테 연락 왔어? 오후 7시 녹화라고 말했지?”
“네. 오후 6시 즈음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케이. 그럼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20분 전쯤에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대기실에서 목을 풀고 있다고 합니다.”
“오호라, 역시 지기는 싫다 이건가. 리허설 때부터 아주 힘을 팍팍 주는데.”
박진주 피디가 신이 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미스터 버터플라이부터 확인하러 가 볼까?”
* * *
커다란 대기실에 들어차 있는 태주의 일행들.
정확히 말하면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일행들이다.
태주가 ‘미스터 버터플라이’로서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하는 만큼, 스태프들도 변장했다.
다들 이곳 방송국 스태프들과는 인사를 안 하는 등, 정말 조심하는 차였다.
물론 그중에서는 태주가 제일 조심하고 있었지만.
그는 일찍부터 ‘미스터 버터플라이’ 의상을 입고 탈을 쓴 채,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태주가 쓴 나비 탈의 보석 장식을 다듬던 스태프가 입을 쑥 내밀었다.
“아까 ‘마스크 스타’ 무대 스태프들이 하는 말 들었는데, 저희 진짜 싸가지 없대요.”
“싸가지 없다고요?”
“대기실로 오면서 스태프들 마주쳤는데, 저희가 일부러 들키지 않으려고 인사도 안 했잖아요. 눈도 안 마주치고. 그거 때문에 뒤에서 무지 씹더라고요.”
“괜찮아요, 수영 씨. 나는 더 재수 없다고 하던걸요.”
“아…….”
태주가 유쾌하게 덧붙였다.
“천하의 역적은 내가 맡을 테니까, 우리 식구들은 내 뒤에 잘 숨어 있어요.”
그 말에 옆에 있던 박인우가 구시렁거렸다.
“지금 누구보다 힘든 건 태주거든요. 그러니까 다들 힘든 티 내지 말고 힘냅시다, 네?”
“아니야, 형. 나 진짜 괜찮아.”
“뭐가 괜찮냐, 오늘 버터플라이 이외에도 태양왕으로 리허설, 무대 두 탕이나 뛰어야 하고. 기사 문제도…….”
박인우는 입을 서둘러 닫았다.
하마터면 금기의 단어를 말할 뻔했다.
그때, 밖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박진주 피디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갑자기 들이닥친 목소리에 대기실 안은 순식간에 혼비백산이 되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그들이 나누는 한국말을 들었을까, 의심하는 이때.
태주는 재빨리 목소리를 큼큼, 낮춰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 피디와 조연출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태주와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일찍 리허설 하시느라 피곤하진 않으세요?”
“글쎄요. 오늘 아침부터 입국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태주는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인격을 덮어쓴 채 태연하게 대답했다.
박 피디는 그런 태주를 보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오늘 무대,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미국 마스크 스타의 가왕께서 오늘 한국 가왕에 맞서 어떤 무대를 보여 줄지 기대되네요.”
“아, 네.”
이만하면 박 피디가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는 할 말이 남은 듯 뭉그적댔다.
“그런데,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 그거 아세요? 오늘 태양왕 씨와의 대결, 생각보다 쉽게 이길지도 몰라요.”
변장한 채 태주 옆에 있던 박인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순간.
태주는 무슨 소리냐는 듯 박 피디를 응시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 한국 기사 못 보셨구나. 태양왕 말이에요, 한태주 씨. 그분이 외국인 여자하고 열애설이 났거든요. 아마 그분, 지금 많이 당황스러우실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거죠.”
옆에 있던 박인우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박진주 피디를 바라보았다.
오늘 태주가 완벽한 무대를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거늘.
그런데 그걸 박 피디가 완전히 깨뜨려 버리다니!
하지만 태주는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것, 참 재밌는 이야기네요. 그런데 제 생각에 한태주 씨는 그런 거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끄덕.
태주가 의미심장한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래야 제 라이벌이죠.”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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