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
아카데미로 향한 여정 (3)
배우를 하기 전에 발레 유망주였다는 올리비아 러셀.
의심 가득한 태주의 눈빛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섭섭한데, 내가 자네한테 거짓말할 이유도 없잖은가.]‘쉽게 믿기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에 발레를 하셨다고는….’
[일전에 발레단에도 잠깐 몸담았던 실력이라고. 이봐,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 주면 믿겠는가?]올리비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자세를 잡았다.
팔을 둥글게 구부려 앞에 모으고, 발꿈치를 들어 까치발 자세를 한 다음.
[잘 보게, 이게 기본자세라고.]그대로 통, 가벼운 발걸음을 바닥에서 띄웠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나비가 날아다니듯, 나풀거린다고 생각하면 돼. 원투쓰리, 원투쓰리, 이렇게.]가벼운 스텝으로 바닥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몸짓.
태주는 그녀에게 시선을 뺏겨 버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진 올리비아의 독무대.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그녀의 몸짓은 무척이나 가볍고도 우아했다.
[멋있어 보인다. 태주 너도 노력하면 저것의 반쯤은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이중협의 말에 태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어요.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건, 제 방식이 아닌데.’
[그래, 일단 도전은 해봐. 게다가 발레로 한 인물의 서사를 표현하는 건 또 처음이잖아. 좋은 경험이 될 거야.]그때, 앞에서 에린이 통, 하고 테이블을 쳤다.
태주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내심 걱정되었던 듯 그녀는 떨리는 시선으로 태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무리한 제안이었나요? 그런데 뮤직비디오나 광고 전체를 발레로 꾸밀 건 아니에요. 몇몇 씬을 발레로 구상해 보자는 거죠. 우아한 발레가 우리 향수의 모토와 잘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하겠습니다.”
긍정을 표한 태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평생 해본 적 없는 ‘발레’라는 낯선 종목에 망설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 태주 씨. 지금껏 춤, 노래만 경험해 봤지, 발레는 해본 적 없잖아.”
브리짓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태주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또 알아? 발레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지”
“예전에 폴라리스 뮤직비디오에서 태주 씨 춤추는 거 봤는데. 가볍게 스텝 밟으면서 느낌 있게 잘 추더라고요. 몸이 유연해서 새로운 춤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발레도 잘할 것 같은데요?”
에린은 눈을 찡긋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태주 씨만 믿겠습니다. 캐스팅이 잘 성사돼서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광고와 뮤직비디오 제작에 박차를 가할게요.”
그 말에 미첼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브리짓과 내가 노래는 완성됐으니. 남은 건 뮤직비디오 촬영이겠네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향수가 아닌가요?”
태주가 에린을 마주하며 질문을 던졌다.
“향수는 제작이 완료된 건가요?”
“아, 제가 안 보여줬었나요? 여기 샘플이 있을 텐데….”
에린이 몸을 일으켜 책상에 있던 향수를 하나 가져왔다.
“이거에요.”
그녀가 건네준 향수를 태주는 꼼꼼히 살폈다.
손에 들어오는 원뿔형의 검은색 케이스에 하얀색 펄이 흩뿌려진 모습이 세련되고도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다.
[너희 고모가 좋아할 스타일이네. 너무 화려하지도, 난잡하지도 않고. 깔끔하면서도 우아한 게.]‘그러게요.’
태주는 고개를 들어 에린에게 물었다.
“예쁘네요. 그런데 이번 향수 이름이 뭡니까?”
“미스 올리비아.”
에린이 씩 웃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의 얼굴이었던 올리비아 러셀을 만약 향수로 표현한다면 이런 향이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진 향수거든요.”
그 말에 태주는 전율이 휩싸였다.
어떻게 타이밍이 이리 딱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제 옆에 올리비아 러셀이 있는 지금, 그녀를 표현한 향수가 나오다니.
한편, 박인우는 에린이 건네준 서류를 검토하며 입이 쩍 벌어졌다.
“계…, 계약금이 이렇게나! 역시, 이게 할리우드 클래스인가?”
서류에 적혀있던 0의 개수를 보던 박인우가 깜짝 놀라자.
옆에 있던 이중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 정도 돈을 받는 건 당연하잖아. 태주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간 건 생각을 안 하나?]태주를 쓱 바라보던 이중협의 얼굴은, 무한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간단한 미팅이 끝난 후.
브리짓은 미첼과 일이 있다며 먼저 떠났고, 남은 건 태주와 에린이었다.
태주는 박인우와 장진혁을 양쪽에 낀 채 먼저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이렇게 가는 게 어딨어요, 섭섭하게.”
눈웃음을 치던 에린이 요망한 녹색 눈을 태주와 마주쳤다.
“혹시 점심 식사하는데, 낄 생각 있어요?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드시는 거 아닌가요? 제가 끼면 실례일 것 같은데요.”
“에이, 한태주 씨랑 같이 먹는 거면 제 일행도 좋아할 거예요. 걔도 한국 사람이라 한태주 씨를 잘 아는 데다가 팬이거든요.”
[같이 가도 괜찮지 않을까? 고급스러운 데로 데려갈 것 같은데. 나도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 보며 먹는 느낌 좀 내자.]이중협의 말에 태주는 즉각 대꾸했다.
‘안 돼요, 아까 브리짓이 말했던 것도 있고 해서.’
그가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던 이유는, 브리짓이 떠나기 전 태주에게 당부했던 것 때문이다.
-에린 저 기집애, 함부로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자기 비즈니스가 흥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이슈를 만들어 키우는 성격이거든.
그러고 보니 미첼도 로저에게 들은 게 있다면 이야기를 전해줬었다.
-일전에 로저와 열애설 났던 것도, 결국 자기 인지도 높이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어요. 아무튼 에린 웰링턴, 저 여자의 모든 행보는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함이라니까요.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에린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에린! 이제야 미팅이 끝난 거예요?”
“저기가 나랑 같이 점심 먹기로 한 내 친구예요! 한태주 씨, 당신의 팬이랍니다~”
에린의 시선을 따라간 태주는 순간 굳어버렸다.
그의 시야에 걸린 사람의 낯이 익었기 때문.
바로 민소예였다.
[네 전여친 아니냐?]‘맞아요. 근데 왜….’
이미 남이 된 지 오래였지만, 그녀를 보니 당황스러운 태주였다.
그건 민소예도 마찬가지.
태주를 보자마자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그런 민소예를 보던 에린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서로를 소개해줬다.
“소예야, 이쪽은 한태주 씨. 네가 엄청 팬이라고 했지?”
“흠흠, 내가 언제.”
“왜 이렇게 목소리가 오늘따라 작아? 아무튼 태주 씨, 이쪽은 소예예요. 일전에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났다가 절친한 사이가 됐다고 말씀드렸죠? 자, 서로 인사해요.”
탐탁지 않은 시선이 태주와 민소예 사이에 오간 그때.
태주는 빠르게 손을 내밀어 민소예와 악수를 한 다음,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죄송하지만,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박인우와 장진혁을 데리고 빠르게 사라졌다.
태주는 빌딩 밖으로 나오자마자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난감한 듯한 눈매가 이리저리 요동쳤다.
“도대체 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옆에서 박인우가 재밌다는 듯 얄밉게 킬킬거리자, 태주는 그에게 쏘아붙였다.
“형은 알고 있었지? 쟤 미국에 있는 거. 그럼 나한테 미리 알려줬어야지.”
“패션쇼에 참석한다고 해서 미국에 있는 건 알았는데, 여기에 올 줄은 몰랐지.”
머리를 긁적이던 박인우는 태주의 눈을 보더니 움찔했다.
“게다가 에린 웰링턴하고 친한 줄은 정말 몰랐어.”
“그것보다, 나 아까 얼굴 어땠어? 이상했어?”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하는 것만큼 너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너보다는 소예가 더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던데?”
박인우가 이를 씩 내보였다.
“걔, 네가 출연한 작품 다 봤다고 했거든. 적어도 네 팬이 된 건 확실해.”
“저기….”
그때 옆에서 잠자코 있던 장진혁이 묵직한 입을 뗐다.
“혹시 그 여자분, 스토커입니까? 그럼 제가 회사에 알려서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하하, 하하하!”
박인우가 배를 잡고 웃는 이때.
태주가 한숨을 쉬며 장진혁의 어깨를 툭, 치곤 지나갔다.
“스토커가 아니라, 전여친입니다. 아무튼, 배고프니 밥이나 먹으러 가요.”
그 말에 장진혁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전…, 전 여친?”
“뭐, 좋게 헤어진 사이는 아니니 태주가 저런 반응인 것도 이해는 돼요. 하지만….”
박인우는 못내 재밌다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흘러가냐, 진짜.”
* * *
동 시각, GX 그룹 본사.
고요한 대표실에서 회장이 누군가의 보고를 받고 있다.
“그래서, 전 상무 생각에는 소예가 진행하려는 이 사업,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높은 편입니다.”
남자는 의심이 가득한 회장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아가씨와 함께 미국 공장 견학을 다녀온 부장들의 말로는, 일단 제품 퀄리티가 좋은데다가 컨셉이 확실하답니다. 올리비아 러셀을 모티브로 한 고급스러우면서도 우아한 향수. 여성들이라면 당연히 쓰고 싶어 할 향이었습니다.”
“컨셉, 제품 퀄리티,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그것을 총괄하는 리더가 너무 애송이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소예 말이야. 이번이 첫 프로젝트인데,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인 건. 결국 제 욕심 채우기밖에 더 되겠냐고.”
회장은 찡그린 미간을 세게 문질렀다.
“솔직히 소예가 이런 제조나 유통업계를 얼마나 안다고 향수를 들여와. 괜히 돈지랄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아가씨께서 회사에 들어오시면서 한 번 모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거겠죠. 저는 백번 이해합니다. 이번에 자신이 맡은 첫 사업을 성공시켜서 자신의 입지를 키우려는 작전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얘가 오빠들하고 경쟁하면서 크더니, 이런 되지도 않는 승부수를 띄운 모양이야.”
혀를 끌끌 차던 회장이 덧붙였다.
“게다가 솔직히 뭘 믿고 에린 같은 애송이가 만든 향수를 수입하겠다는 건지. 그러다 쫄딱 망하면 어쩌려고.”
“에린 웰링턴도 승부수를 띄운 듯합니다.”
전 상무는 긴장한 마음을 꿀꺽, 침으로 흘려보냈다.
“이번에 에린 웰링턴 쪽에서 직접 한태주를 향수 광고모델 및 향수와 함께 출시될 홍보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한, 한태주?”
낯설지 않은 이름에 회장은 눈을 찡그렸다.
“아직 언론에는 노출되지 않은 극비리의 소식입니다만.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승부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주면… 일단 광고 파급효과는 끝내주겠군. 이 소식, 우리만 알고 있나?”
“아뇨, BS 백화점 측에서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도 한태주가 모델인 향수 브랜드를 입점하려 노력하는 듯 보이고요.”
“흠….”
잠시 생각하던 회장은 전 상무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소예 편으로 웰링턴 쪽에 전해. 우리 쪽에서 이번 향수의 한국 유통,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말이야.”
“생각해 보겠다고요?”
“아니, 아무리 에린 웰링턴이 셀럽이라고 해도 사업에서는 생판 신인인데, 쉽게 자리를 내줄 수는 없잖아.”
살짝 짜증이 난 회장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한태주는 언제 한국에 들어오나?”
“1주일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금 미국 여러 조합을 상대로 ‘나의 미래’ 시사회를 열고 있어서 말입니다.”
“아, 본격적인 아카데미 레이스에 들어갔나 보군?”
회장이 재밌다는 듯 손을 비볐다.
“이번에 한서경 부회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한태주한테 승부수를 띄운 건 마찬가지군.”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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