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69
백일몽 (3)
“하아, 하······.”
흐려졌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선명하게 뻗어있는 손가락의 모습이 시야에 비추어졌다.
전신을 뒤덮고 있던 부유감도,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전능감도 사라진 채였다.
나는 여전히 자신의 원룸에 서있었다.
버튼을 누르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익숙한 풍경이었다.
회사에 취업하고서 출근을 위해 골랐던 작은 방.
몇번이고 눈을 붙이고, 몇번이고 아침에 일어났던 그 방에 내가 있었다.
방에 있는 것은 여전히 나 혼자뿐이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손에 들려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져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게임을 하고 있었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내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바닥을 나뒹구는 스마트폰에는 여전히 게임이 켜져있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플레이하던 방치형 게임.
자그마한 화면의 너머에서는 게임의 캐릭터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내가 방금 전까지 사도들을 마주하고 있던 석조 신전에서 말이다.
– “······다시 눈을 감았네요.”
– “위대하신 분께서 완전히 강림하신게 아니었던건가?”
– “아직은··· 우리가 준비해야하는 것들이 남아있는 모양이에요.”
화면 너머에서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방금 전의 기억과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신전에서 사도들이 나누던 대화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처음으로 들어본 그들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었다.
짧은 단편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그 다음의 내용은 아마 지금 눈에 보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한순간의 꿈이라고 치부했던 사건의 결과물이 눈앞에 실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꿈이, 아니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내 손으로 만들어냈던 그 모든 결과물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을 리가 없다.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흔들리는 화면 너머로 보이는 유테니아가 유리관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테니아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로, 유리관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 “다음에 찾아오셨을 때에는, 이 세상 전부가 위대하신 분의 발치 아래에 놓여있으면 좋겠네요.”
툭.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었다.
나는 화면 너머의 유테니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위대하신 분을 위해서라면 제국도 성지도 얼마든지 바칠 수 있으니까요.”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결국은 무언가를 인정하게 되고 마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부정하고 싶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고집이 꺾인 채로 수긍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부정의 너머에서 결국 그것을 긍정하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만······.”
이것은 꿈이 아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사실은 알고 있다.
이런게, 거짓일 리가 없다.
그래.
내 눈앞에 비치는 화면 속의 세계는 현실이다.
–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나는.
나는 사람을 죽였다.
사람을 죽이는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뻐했다.
손짓 한번에 무수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그만해······.”
이제는 그렇게 만들어낸 교단이 나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린 녀석들이 나를 위해 악을 자처하고 있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도 없다.
이들은 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여나갈 것이다.
나를 위해서.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유테니아 하이로스트는 앞으로도 사람들을 죽여나갈 것이다.
“······.”
얼마나 죽였지?
몇백? 몇천? 몇만?
얼마나 많은 숫자를 바쳤지?
고작해야 내 오락따위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죽어야,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지?
“나는······.”
모르겠다.
가늠조차도 되지 않는 숫자가 머릿속을 계속해서 떠돌고 있을 뿐이다.
너무나도 많은 생명을 죽였다.
무료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우울해서.
카르마를 가지고 싶어서.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여왔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에, 수없이 많은 생명이 으스러졌다.
게임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학살기계가 계속해서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던 것이다.
– “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저는 노력할거에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내 시야에, 계속해서 유테니아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흰색 바탕에 적혀있는 검은 글자들은 무엇보다도 강하게 내 뇌리에 새겨지는 중이었다.
눈을 가려도, 시선을 피해도.
결국에는 유테니아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질없는 자신의 오락을 위해 전력으로 노력하는 그녀를 마주하게 될 뿐이었다.
“······그만하라고 했잖아.”
–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그딴걸 위해 노력하지 말라고——!”
콰앙!
집어던진 스마트폰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머리가 달아오른다.
뜨거워진 뇌가 사고를 방해하면서, 달아오른 숨결이 거칠어진다.
잘게 떨리는 입술로 흐트러진 숨을 내쉬다가, 몰려오는 메스꺼움에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억눌러놓았던 사고들이 일제히 역류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역겨웠다.
사람을 죽이며 희열을 느끼던 자신이 역겨웠다.
게임의 흉내를 내며 나를 괴물로 만들던 저 자그마한 기계장치가 역겨웠다.
저딴 물건을 게임이라며 만들어내고서는, 그것을 즐기는 자신을 구경하고 있었을 누군가가 역겨웠다.
속에 고인 모든 것들이 토해낼 기세로 요동쳤다.
“우으읍······.”
배에 집어넣은 모든 것들이 인간의 살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향취가 인간의 피비린내처럼 느껴졌다.
짓밟고 서있는 바닥이 시체의 산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죽여나가며 웃고있던 과거의 자신이 지옥의 악귀처럼 느껴졌다.
강하게 올려오는 구토감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으읍··· 우으윽······.”
지금 당장 쌓여있는 것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급하게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비어있던 변기를 붙잡고서는, 가슴속에 쌓여있던 모든 것을 일제히 게워내었다.
무언가를 토해내려고 발버둥치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
오늘은 뭘 먹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라면을 먹었던 것 같았다.
쌓인 것을 게워내는 속이 좋지 않았다.
“———.”
몇명의 목숨을 짓밟고서 이곳에 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던 것 같았다.
잊어버린 것을 되새겨가는 심장이 무거웠다.
“하아··· 후우, 하······.”
신물이 난다.
역류하던 감정을 토해내던 입술이 멈추어섰다.
한참동안 속을 게워낸 위장이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더럽다. 그리고 추악하다.
쏴아아아아.
세면대의 물을 틀어 더러워진 입안을 헹궈내었다.
“하······.”
입을 헹궈내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비추어진다.
거울속에는 초췌해진 얼굴의 남자가 서있었다.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을 깎지 않고서, 더벅진 머리로 거울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평소의 내가 아니다.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초라한 남자가 거울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이게······.”
끼릭.
과하게 힘이 들어간 손이 수도꼭지를 멈춰세웠다.
귓가에 울려퍼지던 물소리가 멈추어선다.
정적이 내려앉은 화장실속에서 내 목소리만이 조용히 메아리쳤다.
“여기 있는게··· 나라고······?”
거울 속의 남자는 망가져있었다.
이제서야 진실을 마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비추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그보다도 한참 전부터 엇나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반년.
혹은 일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우스운 모습이네.”
치직—.
거울 속의 상이 뒤틀리면서, 말끔한 모습의 자신이 되돌아온다.
학살자에 어울리는 괴물의 모습은 이제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대로의 내가 이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후우······.”
정신이 나가다못해 이제는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집에서 혼자 즐기던 조잡한 방치형 게임이 사실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실이라니.
누구라도 들으면 비웃을만한 이야기였다.
친구에게 말하더라도,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어느쪽도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신이야? 겨우 이런 녀석이 신이야?”
헛웃음이 입가에 새어나온다.
메스꺼움이 가시고 난 이후에 찾아온 것은, 지독하리만치 무거운 탈력감이었다.
고작해야 스마트폰으로 터치나 하고 다녔다고, 나를 바라보면서 신이라고 부른다니.
생각할수록 우스운 이야기다.
“이딴게··· 악신이야······?”
결국 사람을 죽인 악의는 자신의 것이었다.
기계가 전달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의사였으니까 말이다.
깊게 생각할수록 자신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끼이익.
화장실의 문을 열고 빠져나간 내 눈앞에 두꺼운 현관문이 보이고 있었다.
“누가봐도··· 말이 안되는 일이잖아······.”
도망치고 싶다.
가슴속을 억누르는 이 답답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일순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자신을 움직이는 이 거대한 충동을 구태여 거스르지 않았다.
그래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까닭이었다.
“게임따위에 죄책감을 느끼는게··· 멍청한거잖아.”
철컥.
두터운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슬리퍼 차림의 발걸음이 느릿하게 건물을 빠져나갔다.
뺨을 타고 스쳐지나가는 늦가을의 찬바람이 왠지 모를 우울함을 더해주었다.
“그래. 게임이라고 했으니까.”
터벅. 터벅.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인적이 드문 길목을 걸어나간다.
사람도 없다. 차량도 없다.
모든 것이 사라진 적막한 길을 나는 홀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현실이란걸 알았다면, 분명 죽이지 않았을거야.”
입에서 나오는 것은 가시돋친 변명의 말이다.
말이 필요했다.
자신을 속일 수 있는 한마디가 필요했다.
녀석이 나를 속이고 있던 것처럼, 나 역시 스스로를 속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 속인 녀석이 잘못한거잖아.”
앞으로 나아가던 발걸음은 어느덧 차가 없는 횡단보도에 도착해있었다.
빨간불. 흐릿하게 빛나는 신호등의 모습이 보였다.
차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자신을 가로막는 신호를 무시하고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내가 잘못한게··· 아니지 않아······?”
터벅.
느릿하게 내딛은 걸음의 너머로, 우렁찬 엔진음이 들려오는 모습이었다.
차가 오고있다.
그것을 깨달은 내가 고개를 들었다.
“······.”
도로를 건너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머나먼 차도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차량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차량은 나를 발견했음에도 그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충돌한다.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어버린 내 다리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빠아아아앙——!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자신을 향해 울려퍼진다.
고막이 떨려올만큼 날카로운 소리가 자신에게 위험을 알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차량이 그 속도를 줄이는 일은 없었다.
환하게 빛나는 헤드라이트를 앞에 두고서, 나는 힘이 빠진 두눈을 질끈 감았다.
– [마검 : 인과살해자]가 발동합니다.
– : 인과성을 무시하고 신체를 재생합니다.
– 모든 부정적인 효과가 해제됩니다.
* * * * * *
– 까악. 까악.
다시 눈을 뜬 내가 마주한 것은, 칙칙한 빛으로 물들어있는 고요한 세계였다.
강렬한 헤드라이트의 불빛도, 맹렬하게 달려오던 차량의 모습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지 코앞에서 멈춰서있는 망가진 차량 뿐이었다.
유리창이 깨진 채로 멈춰서있는 차량에는 수많은 먼지가 내려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차량은 운전이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태였다.
“······뭐야.”
이 상황을 마주한 내 입에서 처음으로 튀어나온 것은, 당황으로 가득차있는 한마디였다.
운전자가 없는 파손된 차량에 겁을 먹고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 말인가.
급변한 상황에 사고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마주했던 것 같은데, 눈앞에 있는 차량에는 불이 꺼져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과 함께 천천히 주변의 풍경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
금이 가있는 아스팔트.
하나같이 망가진 채로 방치되어있는 차량.
언제 세차를 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만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보닛.
빛을 잃어버린 채로 침묵하고 있는 신호등.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유리창이 부서진 채로 불이 꺼진 적막한 빌딩의 모습.
“이게, 뭐냐고······.”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하나같이 망가져있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기척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동네 전체가 숨을 죽인 채로 멈춰서있었다.
버려진 세계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
생활감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간속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앞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터벅. 터벅.
불이 꺼진 횡단보도에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유리창이 깨진 편의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까워져가는 편의점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왜 갑자기 전쟁이라도 난 것 처럼······.”
유리창이 망가진 편의점의 너머에는 바닥을 나뒹구는 진열대가 보였다.
과자나 라면같은 것들은 전부 사라진 채로, 썩어버린 샌드위치에 구더기가 들끓는 중이었다.
자리를 비운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면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속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애써 편의점의 풍경을 무시하고서, 다른 곳을 확인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었다.
“아······.”
그렇게 죽어버린 거리를 맴돌던 도중, 신발에 무언가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지이이익.
신발에 짓밟힌 신문지가 반으로 찢어져있는 모습이었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에 놓인 신문지로 향했다.
너덜너덜해진 신문지는 바닥에 방치된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물건이었다.
빛이 바래있는 신문지의 상단에는 큼지막하게 헤드라인이 적혀있었다.
“폭발적인 확산세에··· 도시 봉쇄 명령······.”
신문의 헤드라인을 바라보던 나는, 곧장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망가진 도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
인간의 생활감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던 도시의 모습이었다.
도시 봉쇄 명령.
그리고 사람 하나 없이 버려져있는 도시.
적막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혼잣말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 뿐이다.
“내가 버려졌다고······?”
잿더미에 뒤덮힌 풍경을 응시하던 내 눈동자가 이번에는 집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자취방의 풍경은 언제나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창밖으로 비추어지는 가을의 모습도.
열려있는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언제나와 다를 바가 없는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집에 가자.”
확인해야만 했다.
방금 전에 빠져나왔던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던 발걸음을 재촉해, 다급하게 집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일들만이 가득한 하루였다.
제발 이 모든 상황이 꿈이길 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제발······.”
속도가 붙은 걸음이 횡단보도를 건너, 언제나 지나쳐야만 했던 비좁은 골목에 되돌아왔다.
익숙해진 거리를 지나 지름길을 거치면,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건물을 마주한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창문이 깨져나간 건물의 외관은 무척이나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만한 장소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 아······.”
모든 것이 이상했다.
악몽이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 않은가.
게임속의 캐릭터가 실재하고 있는 것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폐허로 변해버린 것도.
전부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악몽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꿈, 인가?”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자신이 살던 자취방을 찾아 올라갔다.
먼지가 쌓인 계단을 지나쳐, 자취방이 있는 층계로 올라서 잠겨있을 자취방의 문을 찾았다.
너저분한 층계를 무시한채로 문앞에 다다르면, 제대로 닫히지 않은 현관문이 보였다.
집을 나설때 제대로 문을 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철컥.
문고리를 붙잡고 잡아당긴 후에, 그 안으로 한걸음을 옮겨 들어갔다.
“······.”
방에 들어온 나는 가장 먼저 방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빛이 바랜 복권용지.
너덜너덜해진 치킨박스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검은 깃털.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흙먼지 투성이의 라면박스.
비어버린 채로 바닥을 뒹구는 초록색 소주병.
그 모든 것들의 사이에 에스텔이 서있었다.
“에스텔?”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를 마주한 에스텔은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주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의 사이에 에스텔이 서있다.
나는 에스텔을 마주하기 무섭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스텔이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것은 악몽이었다.
영문도 모르게 변해버린 현실따위가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에스텔과 마주하는 흔한 악몽의 하나였다.
“다행이다······. 전부 꿈이었구나.”
꿈을 증명하는 에스텔의 모습에 안도하면서 방안에 들어선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것도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을만한 악몽이었다.
갑작스럽게 망가진 세계에 나 혼자만이 버려지다니.
기괴한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꿈보다도 현실적이라 기분이 나쁜 꿈이었다.
“꿈일리가 없잖아?”
“뭐?”
허나 이어지는 에스텔의 이야기에 사고가 멈춰섰다.
지금 에스텔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한거지?
멍한 눈동자가 기억을 더듬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정일색의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는 칠흑의 소녀는 더할나위없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부정하는 에스텔을 향해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에스텔,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를 바라보던 에스텔이 미소를 지었다.
무너진 세계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고고하게 서있는 채였다.
에스텔의 오만한 눈동자가 초라해진 나의 모습을 비추었다.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은 거울속에서 마주했던 그것과 이상하리만치 닮아있었다.
그녀는 망가져있는 나를 천천히 바라보면서, 잔잔하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꿈은 이미 끝나버렸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