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26
우리 곡이야!
타이틀 외에 미니 1집 앨범에 들어간 곡 중에 테오라 멤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곡은 팬송인 ‘여름이었다’였다. 앨범 발매에 맞춰 팬송과 팬송의 뮤비도 함께 공개되는 일정이다.
당연히 타이틀곡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도 팬송의 반응도 만만찮게 기대된다.
코넬 선배님과 관계자분들이 팬송 뮤비를 호평해서 그런가? 자신감이 조금 붙었나 보다.
“대박 나면 어쩌지! 나 설레어!”
“뭘 어떡해. 즐기면 되지.”
오란이 박하의 어리광을 단호하게 차단했다.
서혼 형이 살짝 불안해 보이는 거 빼곤 다들 평온해 보였다.
특히 지온은 앨범 발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소파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들었는데, 긴장을 즐기는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지온아. 일어나. 이제 6시야.”
앨범 발매 시간은 오후 5시. 실시간 차트에는 1시간 뒤인 6시부터 반영된다.
“…나중에 확인할래. 본다고 달라질 결과 아니야.”
맞는 말이긴 하다. 발매된다고 바로 반응 보기는 어렵기도 하고.
인기 그룹은 발매 즉시 차트를 뚫고 올라가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서 테오라는 아직 그 정돈 아니니까.
그렇긴 해도 저렇게 무덤덤해질 수 있다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저 평정심을 배워야 하는데, 타고나야 하는 부분인가?
“내가 매니저 형한테 부탁해서 요리 재료 준비하고, 오늘 만찬 즐겨도 된다고 허락받았는데…. 잠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네.”
번쩍 눈을 뜬 지온의 눈에는 잠기운이 전혀 없었다. ‘요리’라는 단어에 자동 반사적으로 잠을 떨쳐낸 듯했다.
“Where?”
“냉장고에 준비해뒀어.”
지온은 소파에서 바로 일어나 소매를 걷었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다른 일로라도 긴장을 풀어야겠다 싶어서. 나는 언제 다른 멤버들처럼 대범해질 수 있을까.
아직 데뷔 1년 차 햇병아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게 7년 차 베테랑이 된다고 달라질까? 매번 새롭고, 매번 떨릴 것 같다.
주방으로 들어서자 지온이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내밀었다. 나와 서혼 형이 주로 재료 손질을 돕기 때문에 당연한 절차였다.
“든든한 메뉴가 좋겠지? huh?”
답을 정해두고 하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여줬다. 초록 형에게 요리를 허락받은 건, 지온의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테다.
오늘이 앨범 발매일이기도 하고, 그간 자유 시간 없이 빽빽하게 보냈으니.
이럴 때는 지온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풀어줘야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같이 먹을 요리로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는 본인이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잔뜩 쌓여 있을 수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게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비법이다.
공황 장애를 겪는 연예인들이 많아서 스케줄에 차질 없이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점을 회사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테오라로 데뷔하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다 같이 예방 차원에서 상담받은 적이 있다.
하눌 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이 가는 곳이었는데, 의사 선생님과 간단한 대화만 나누다 돌아왔다.
아직까진 큰 문제 없지만, 스트레스를 신경 써서 관리하라는 충고를 들었었다.
유혹이 많은 연예계에서 바람직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은 지온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그러고 보면 난 무슨 방법으로 풀고 있지? …현이를 꼭 껴안고 힐링하는 거? 그럴듯하다.
“올라왔다!”
박하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지온이 주는 과일을 받아서 씻었다.
“센스 넘치네. 우리 리더는 지나가는 말로 얘기한 것도 기억하네.”
“초록 형이 매니저 형한테 부탁한 재료가 하고 싶던 요리 재료야?”
“어. Definitely. 내가 능이백숙 만들까 했거든. 한국에선 복에 백숙 먹어서 기운 나게 한다며? 아직 그날은 아니지만.”
지온은 복날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어디서 들었는진 몰라도 복날까지 챙기려고 하다니.
이걸 어딜 봐서 우리나라 사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직접 능이백숙을 만들겠다는 사람을?
“복날? Lucky day? 신기해서 기억해. 복 오는 날이라니. 그것도 세 번에 나눠서.”
뜬금없이 쑥 들어온 엉뚱한 해석에 웃음이 났다. 초복, 중복, 말복의 참신한 해석이다.
행운을 뜻하는 복과 복날의 복은 다른 한자를 쓰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세 번에 나눠서 행운이 오는 날, 원래의 의미보다 더 기분 좋은 해석이니까.
“압력밥솥에 들어갈까?”
초록 형이 자기 먹는 양을 계산해서 부탁했는지 냉장고에서 닭이 10마리 넘게 나왔다.
“…안 들어갈걸?”
우리 둘이 이 닭을 어떻게 익혀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거실이 시끌시끌했다.
“우악! 있다, 있다!”
“이거 맞냐? 눈이 미쳤나?”
“잠깐 댓글….”
“회사에 연락해서?”
목소리로도 구별되지만, 말투만으로도 누군지 유추할 수 있었다. 다들 개성 하나는 확실하다.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주로 놀람이지만 즐거움과 기대, 설렘이 섞인 채였다. 적어도 이번 앨범이 망하지 않았다는 건 알겠다.
“음, 음, 음~ ‘Butterfly~’”
기분이 들떠서 저절로 흥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번 앨범 타이틀인 ‘탈출해’의 한 소절이.
“이원, 혹시 랩 해볼 생각 있어?”
뜬금없는 지온의 질문에 손에 들고 있던 수박을 놓쳤다.
콰강 소리를 내며 싱크대로 떨어진 수박을 재빨리 다시 붙들고 나서 지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랩? 갑자기?”
“이원은 랩하기 좋은 조건 가지고 있거든. 언어 감각도 좋고, 리듬감도 좋고, 음색도 좋고. 래퍼의 스웩만 좀 배우면 H21으로 데뷔해도 되겠어.”
에이치투원.
그리운 가명이 랩네임으로 튀어나왔다. 작곡한 곡을 회사에 처음 보낼 때 사용한 가명은 그 후로 쓴 적이 없다. 그래서 다들 한번 듣고 잊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멤버들은 기억하고 있는듯했다. 오란의 또 다른 팬카페 닉네임도 그렇고….
유창한 발음으로 들으니 현오 형이 지어준 예명이 래퍼 네임으로는 꽤 괜찮은 것 같다.
“아니. 안 돼.”
지온이 몇 초 만에 변덕을 부렸다. 왜 갑자기 안 된다는 거지. 랩 해보라는 제안을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거절당한 기분이다.
“이원 더 바빠지면 안 되니까. 지금도 심하게 바빠.”
단체 연습이나 단체 스케줄 외에 프로듀싱이나 작곡까지 손대고 있긴 하지만…. 아, 나만 가끔 학교를 나가는 중이긴 하다.
그래도 다른 멤버들은 학교를 나가지 않는 대신 틈틈이 공부하던데.
오란과 박하는 검정고시 준비하고 있고. 시험 날짜가 8월 한창 활동할 시기라 다음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고는 했어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특별히 바쁘진 않은데?”
“그건 이원 너만의 착각. 기준을 테오라 멤버들한테 두면 안 돼. 다들 한계까지 체력을 쓰고 있으니까.”
아…. 그런가.
주변 사람이 전부 무리하고 있는데 그걸 기준으로 두면, 당연히 평범하다고 느껴지겠지.
우리 멤버들이 열심히 하는 건 하눌 엔터 내에서도 유명하다.
용건이 있어서 사옥에 가면 직원분들이 건강을 챙기라거나 홍삼 스틱 같은 걸 찔러주면서 응원해주신다.
근데 그게 우리 기준에서 ‘열심히’였고, 다른 사람들 기준에선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깨닫는다고 해도 지금은 멈출 수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테오라가 단단한 인지도를 얻으면 멤버들도, 스탭들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이번 활동은 그래서 특히 중요하다. 테오라가 신인 아이돌로서 자리 잡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이므로.
앞으로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테니까.
“가볍게 받아. 그리고 나중에 한가할 때나 떠올려.”
그게 좋겠다. 급한 일은 아니니까.
지온은 툭 해결책을 던지더니 자기 방에 들어가서 들통을 가져왔다.
…들통?
“그게 도대체 왜 방에서 나와?”
“저번에 사뒀어.”
“…그걸?”
숙소는 거의 밥을 먹거나 취침의 용도로만 쓰여서 딱히 오란과 지온이 함께 쓰는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둘에게 볼일이 있을 때도 굳이 들어가기보단 노크하고 불러냈고.
그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지금 밝혀졌다.
예전에 지온이 혼자 살던 집에 갔을 때 있던 정글의 버전 2가 우리 숙소에 있는지도…?
오란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깊은 모양이다. 초록 형이 저 방에서 지냈으면 당장 방 교체를 요구했을 테고, 내가 지온과 같은 방에 배정됐어도 힘들었을 것 같다.
지온은 커다란 스테인리스 들통을 닦더니 닭을 차곡차곡 넣고 불을 올렸다. 저렇게 보니까 지온이 식당 주방장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먹을 양이라기엔 워낙 대량이라서.
“미리 말하지. 요리 시간 오래 걸리는데.”
서프라이즈 같은 이벤트는 지온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요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불만만 늘어놨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근데 뭘 말했길래 과일이 이렇게 많아?”
“화채.”
“화채! 나 화채 좋아해.”
“이제 이원 입맛 분석 끝났어. 이번 화채는 아마 네 입맛에 딱 맞을걸? 기대해도 좋아.”
“와.”
지온이 대놓고 기대하라고 한 메뉴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지온이 한 요리가 맛없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지금까지 요리하면서 내 음식 취향을 분석했구나. 입맛에 꼭 맞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다른 디저트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화채를. 진짜 기대해야겠다.
지온을 도와서 과일을 씻고 손질하고 잘라서 커다란 통에 담아 냉장고에 담아뒀다.
“재료 한 가지 없어서 편의점 갔다 올게.”
왕복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이 있긴 한데, 혼자 보내기가 좀 그랬다.
“나도 같이 가.”
“이원은 불 지켜보고 있어.”
앞치마를 벗은 지온은 방에 들어가서 무장하고 나왔다. 모자와 알 없는 안경, 마스크까지 끼고.
“뛰어갔다 올게. In 3 minutes.”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관문으로 쏙 나가버렸다. 휴대폰에 집중해있던 멤버들이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에 현관문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지온이 나갔어?”
“응. 뭐가 부족한가 봐.”
“다음부턴 깜짝 선물하지 말아야지. 지온이가 쓸 만한 재료 부탁하긴 했는데 괜히 귀찮게 했네.”
그러는 게 지온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는 그 자체도 즐기니까.
“…어때?”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순위로 시작했어.”
주어를 전부 빼고 말했는데도 초록 형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해줬다. 데뷔 타이틀곡은 실시간 차트 79위로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높다면.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
초록 형이 내민 폰 화면에 나온 한 줄의 기록.
【new 19. 탈출해(Escape) – TEORRA(테오라)】
“19위? 앨범 발매하고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저번엔 데뷔 쇼케이스가 끝나고 확인했던 터라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땐 79위보다 훨씬 낮은 순위였을 거다. 그때와 비교하면 월등한 성적!
“…얼떨떨해. 신기해.”
“네가 만든 곡이 올라간 거야. 이원아.”
“내가 만든 곡…?”
“TOP100 차트도 확인해봐.”
전엔 TOP100 차트에 들어갈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였는데. 이번엔 초록 형이 담담하게 성적을 확인해보라고 부추겼다.
긴장으로 손에 들린 휴대폰이 떨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손에 힘을 주어 고정하고 차트를 넘겼다.
아래에서부터 스크롤해서 위로 올라왔을 때 테오라의 곡을 찾을 수 있었다.
【new 32. 탈출해(Escape) – TEORRA(테오라)】
【new 40. 여름이었다 ? TEORRA(테오라)】
“…진짜 우리 곡이야!”
반사적으로 소리 내어 감탄해버렸다. 두 곡이나 TOP100 차트에 올라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