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1
특훈이다!
컴백 무대를 무사히 치르고 내려왔다. 다소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팬들이 눈치챌만한 실수는 없었다.
“이원아. 다들 눈치 못 챘다니까? 나도 모를 정도였어.”
서혼 형이 그렇다고 하니까 믿어봐야겠다. 그런데 왜 다 보이는데 눈치를 못 채…?
어쨌든 다음엔 꼭 만족스러운 무대를 보여줄 거다. 자동으로 한 치의 오차 없는 음이 나오도록 연습실에서 멤버들을 달달 볶아서라도.
다음 스케줄을 하러 차에 탔는데 다리가 썰렁했다. 여름이라 날이 춥다기 보다는 어색해서 그런 것 같았다.
평소에 입지 않던 반바지가 어색했다. 마린룩이 반바지 형태인 멤버는 나와 박하, 오란.
박하는 평소에도 반바지를 입으니까 익숙할 거다. 그와 반대로 평소 긴바지를 고수하는 오란은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저게 바로 프로의 자세일까?
담요를 끌어다 드러난 무릎을 덮었더니 오란이 힐끔 보곤 코웃음을 쳤다.
“그것도 창피하냐? 코티지들이 좋다는데?”
“…도대체 코티지들은 이게 왜 좋대? 털 난 남자 다리가 보고 싶대?”
“웃기시네. 시커먼 털이나 나고 말하지?”
담요를 걷어보지 않아도 안다. 내 다리가 매끈하다는 건. 나 혼자만의 콤플렉스였는데….
“이 시기 아니면 입을 일도 없을 테니까 즐겨둬.”
“즐겨…?”
“반바지는 상큼 발랄, 소년미의 상징이야. 박하랑 나랑 너만 반바지 입은 것만 봐도 모르겠냐? 다른 셋은 안 어울린다는 거잖아.”
“나는 왜….”
순식간에 세 명이 싸잡혀 버렸다. 엉겁결에 소년미와는 거리가 멀어진 세 명은 억울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코디 누나한테 나도 반바지 입혀달라고 해야겠어. 상큼 발랄 청량이 나랑 안 어울릴 리가 없지.”
어쩌면 초록 형의 다음 무대 의상은 반바지로 바뀔지도.
“어…, 그렇게까지?”
“난 빼줘.”
얼떨떨해하는 서혼 형과 관심 없는 지온까지 완벽한 테오라 그 자체였다.
“히힛! 역시 우리 스탭은 배운 분들이라니까! 어울릴 때 반바지 입어둬야 한다는 아이돌의 법칙을 아는 거야!”
그게 무슨 법칙…? 박하는 왜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팬들의 문화에 익숙해지면 다 이런가?
“코티지들은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니까! 나이 먹어서 반바지 입고 귀여운 척하면 어떻겠어?”
의도치 않게 서혼 형이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종종 서혼 형을 나이보다 더 많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가?
“토 나오지.”
“토…! 아잇, 홍오란 입 다물엇! 그게 아니라 나이에 어울리는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게 포인트!”
“알았어. 뻔뻔하게 반바지 입으라는 거지?”
“역시 이원 형은 이해가 빨라!”
사실 계속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긴 하지만, 현장 반응이 그 민망함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좋았다.
코티지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초록 형이 예전에도 우리 음방에 코티지들이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해줬다.
난 신인인 우리를 응원해줄 사람이 없어서 불쌍해서 다른 그룹 팬이 응원해주는 줄 알았다….
우리 팬인 줄 모르고 엄청난 착각을 해버렸다. 그때 알았더라면 열심히 인사했을 텐데.
대충 얼굴을 기억해서 다행이다. 언젠가 무대 아래 위에서 마주하게 되면 꼭 팬서비스를 해줘야지.
“그거 알아?”
좌석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던 초록 형이 퍼뜩 상체를 세우고선 물었다.
“뭔데?”
“우리 응원봉 출시된 거 매진됐다는 거!”
“Awesome!”
“우아! 진짜? 진짜?”
“진짜.”
매진된 거면 준비된 수량이 적었나? 사려고 들어갔던 코티지들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 의문을 풀어주듯 초록 형이 설명을 덧붙였다.
“준비된 수량만 판매하고, 그다음부턴 예약판매로 전환한다고 들었어. 넉넉하게 준비했다고 그랬는데 그 이상으로 사려는 사람이 많았던 거지.”
“우리 출세했나 봐!”
출세. 박하가 단어 선정은 특이하게 했어도 그 의미는 정확히 전달했다.
실물 데뷔 앨범이 얼마나 팔렸는지 무서워서 물어볼 수 없었다. 기대와 달리 처참한 숫자를 보게 될까 봐.
그랬던 우리가 응원봉을 매진시킬 수 있는 파워를 가지게 됐다. 기본형 응원봉 가격만 해도 덥썩 지르긴 망설여지는 금액인데 말이다.
거기다 코티지들이 이번 미니 앨범까지 샀다고 한다면, 얼마나 큰 투자를 한 걸까.
단지 우리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학생들은 용돈을 모아서 앨범과 응원봉을 샀을 것이다. 우리 앨범을 사느라 알바를 한 사람도 있겠지. 직장인 팬들도 스쳐 지나가는 월급을 아꼈을지 모른다.
마음에서 우러나 기꺼이 쓰는 돈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만한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실패한 투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들이 대가 없이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팬들의 헌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만큼의 행복, 그만큼의 응원을 코티지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코티지에게 surprise gift가 되겠네. 놀라는 모습 보고 싶은데?”
좌석 손잡이에 팔을 올려 턱을 괸 지온은 그윽하게 웃었다. 응원봉을 받은 코티지가 앞에 있다는 듯이.
시크하고 기가 세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코티지에게만큼은 한없이 물렀다. 초록 형이 지온 보고 왜 자제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코앞에서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봐주면 설렐 만하다. 현실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얘들아, 우리 응원봉 애칭이 뭔지 들었어?”
“서혼 형, 나 알아! 지킴이!”
‘변신 합체 응원봉’의 줄임말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될 줄 알았는데. 하긴 어떻게 줄여도 어려운 발음이긴 하다.
왜 지킴이라고 부르는지는 알 것도 같다.
호신봉 모드로 바꾸면 경고음이 울리지 않나, 기능을 등록하면 바로 경찰서로 신고되지 않나. 어디로 보나 응원봉에 들어갈 만한 기능은 아니긴 하다.
“우리 팬 이름이 코티지잖아. 그래서 집 지킴이래.”
“집 지킴이…?”
어떤 코티지의 드립이었을까. 뭔가 절묘해서 신기하다.
“…House keeper?”
“아니아니, 지온아 어디까지 가? 응원봉 애칭이….”
“응원봉이 하우스키퍼래! 최첨단인데!”
집 지킴이를 직역하니 정체불명의 애칭이 나와버렸다.
키퍼는 나쁘지 않았는데? 가디언으로 바꿔줘야 하나?
떠오르는 단어를 그대로 뱉은 지온 탓에 원래 말하려던 주제가 뭔지도 잊을 지경이었다.
서혼 형은 우리 응원봉의 애칭이 ‘집 지킴이’라 귀엽다고 얘기하고 싶었을 텐데.
낙담해서 축 처진 서혼 형의 어깨를 박하가 주물렀다.
“지킴이든 키퍼든 부르기도 쉽네.”
초록 형의 의견에 동의한다. 실물 응원봉이 팬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테오라의 콘서트에서 응원봉을 흔들 코티지를 떠올리며 만든 응원봉이니까.
응원봉답지 않은 기능이 들어간 부속품도 비상용으로 하나씩 집에 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람 일은 혹시 모른다. 응원봉, 지킴이가 우리를 대신해 코티지를 지켜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약하고 오래 기다려야 살 수 있는 건 아니죠?”
평소처럼 우리의 수다를 들으며 운전에 집중하는 매니저 형에게 질문했다. 매니저 형은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보는 빈틈도 보이지 않고 대답을 내놓았다.
“개시한 지 몇 시간 안 돼서 매진된 거라 바로 추가 생산 들어간다던데. 추가로 공장을 찾는다고 하니 믿어봐야지.”
“일이 너무 착착 풀려가는데. 불안하게….”
오란은 수월하게 일이 처리되는 모습이 불안한가 보다. 운이 나빴던 기억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으려나.
“홍오란. 너는 이제 불운한 홍오란이 아니라 테오라의 오란이야.”
“와. 함이원, 뭐냐? 나 꼬시려고 작정했냐?”
되지도 않는 소리에 미간을 좁혔더니 혼자 방긋방긋 웃어댔다. 좋은 소리를 해주면 안 되는 것 같다.
지온에게서 배우는 솔직한 ‘래퍼 스피릿’이 시도 때도 튀어나와서 문제다. 코티지들에게만 발휘해야 하는데 왜 홍오란을 상대로…?
아직 서툴러서 그런가? 더 능숙해질 때까지 연마한 뒤에 선보여야겠다.
“참, 팬 미팅은 한 달 후로 일단 예상해두도록. 날짜 확정 전이지만 한 달 후를 목표로 일정 짜고 있으니까.”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된다고 했다. 매니저 형의 굵직한 목소리가 천사의 음성 같았다.
“팬 미티이이잉! 야호!”
“우리가 진짜 팬 미팅을….”
“그럼 준비 철저하게 해둬야겠네. 처음이면 아무래도 실수도 나올 테니까.”
“Fan-Meeting? 이원이 원하던 Fan-Concert?”
지온의 말에 잊었던 걸 떠올렸다. 팬 미팅을 원했던 건, 정확히는 팬 콘에서 우리 무대를 직접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초록 형이 관계자분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를 팬 미팅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으로 인식시켰다. 그러니 가릴 것도 없다!
“팬 미팅에서 뭐 할 수 있어요?! 노래는요? 춤은요? 무대는요?”
빨간 불 신호에 맞춰 차를 멈춰 세운 매니저 형이 핸들을 잡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돌아보는 그 얼굴에 웃음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말이 부정확했나. 팬 미팅으로 열리지만 팬 콘 형태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너희와 상의해서 짤 테니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두고.”
“예~!”
“팬 콘이라니. 우와.”
“서혼 형은 팬 사인회나 팬 미팅 해보지 않았어?”
서혼 형 정도의 인지도라면 소규모로라도 할법했다.
“팬 사인회 세 번? 뭘 모를 때라 매니저 따라서 참석하고 이름 쓰고 그랬지. 팬들 만나서 좋긴 했지만….”
서혼 형의 표정은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다시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마주한 표정 같달까.
“내 경험은 별로 도움이 안 되네.”
“서혼 형도 함께 ‘박하의 팬 미팅 클래스 feat. 초록’을 들으면 돼!”
“어째서 매번 박하준이 강의하게 되는 건데? 초록 형 뭐해? 리더답게 이끌어.”
“오란아 미안. 나 바빠서.”
초록 형이 바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양하는 게 아님을 우리 멤버들 모두 알고 있었다.
초록 형이 연예계 전반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면, 박하는 팬 문화에 빠삭했다.
실제 팬이었던 기간도 길어서 팬들의 여러 문화를 속속들이 체득했다.
팬들의 마음도 잘 이해했다. 그래서 가끔 팬들이 SNS에 조련당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올리기도 했다. 그건 전부 박하 덕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의도치 않게 능숙하게 팬들을 길들이는 조련사가 되어버렸다.
“나만 믿어! 완벽한 팬 미팅이었다는 소리가 코티지 입에서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아주 난리 나겠네.”
“그치? 난리 나겠지?”
오란의 말투만 들으면 절대 칭찬일 수 없는데, 긍정 필터를 낀 박하는 멋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저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매번 신기하다. 조금 배우고 싶을지도?
“얼른 와라! 팬 콘!”
박하가 주문이라도 외우듯 몇 번이고 반복했다.
빨리 팬 콘에서 코티지들을 만나고 싶긴 하다. 하지만 그 전에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준비를 해야 한다.
TV나 뉴튜브에서 볼 수 있었던 무대를 실제로 보여주는 것도 물론 기쁘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짧은 방송 시간 때문에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테오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때까지 특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