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2
제대로 하자
음방 컴백 무대를 시작으로 스케줄표가 빽빽하게 채워졌다. 덕분에 수면 부족을 겪고 있었다.
인기 아이돌의 삶은 이보다 힘들겠지?
인기 아이돌이 아닌 우리도 바쁜데, 난다긴다하는 아이돌 그룹은 더할 거다. 이동 시간에 밴 안에서 쪽잠을 자는 게 일상이 아닐까.
“함이원. 잠이나 자.”
예민한 오란이 내 뒤척임에 잠이 깼나 보다. 옆과 뒤에 앉은 서혼 형과 초록 형을 보니 다행히 깨지 않았다.
“뒤척여서 깼어? 미안.”
“어차피 미리 일어나려고 했어.”
우리는 다른 멤버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게 나지막하게 속삭임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나눴다.
“뭐 하려고?”
“형이랑 톡 하려고. 통화 시간 맞추려고 했더니 안 되겠더라.”
뒤바뀐 밤낮에 타이트한 스케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범무 형과 엇갈릴만한 일정이었다.
틈이 난다 싶으면 새벽이거나 한창 바쁘게 일할 어중간한 시간이었으니까.
아빠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화가가 아니셨으면 연락도 힘들 뻔했다. 부모님은 우리들을 배려해서 선뜻 전화를 걸기 어렵다고 하셨다.
가족 톡방에 톡이나 사진을 보내두면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확인하곤 했다.
“하….”
톡을 한참 하던 오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팅되지 않아 푸석푸석한 핑크색 머리를 쓸어올리는 손놀림이 거칠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나랑 가족인 거 밝히지 말라고 해뒀는데 자랑하고 싶다고 난리 났어, 아주. 다 형 생각해서 그런 건데. 알면서도 이러는 거 아냐?”
찌푸려진 미간에 형을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홍오란에게 범무 형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족. 걱정하는 것도 이해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일단 가족관계를 밝히지 않기로 했었다.
연예인의 가족이면 피곤해질 일이 많다고 판단했으니까. 아직 테오라의 인지도가 낮아 먼 훗날의 이야기이겠지만, 들리는 얘기는 흉흉하기만 했다.
밝히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도 가족들이 받아들인다면 모를까, 의도치 않게 가족의 얼굴까지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잘생긴 화가로 알려진 아빠에게도 수도 없이 가족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었다. 그런데도 전부 거절한 건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였겠지.
오란과 같은 처지에 있어선지 그 대처가 이해됐다. 범무 형은 오란을 세상 사람들 전부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테오라의 파급력이 약한 지금이야 특별한 사건은 생기지 않는대도, 나중까지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테오라는 최고의 아이돌이 되겠단 목표를 이룰 테고, 가족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범무 형은 단순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똑똑한 범무 형이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자기가 얼마나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홍오란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오란이 곤란해서 쩔쩔매는 모습도 보고.
범무 형은 의외로 장난기가 넘쳤다.
가까운 가족인 오란은 왠지 제가 형의 보호자라도 된 듯이 행동했다. 그러느라 정작 범무 형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홍오란이 한참 어린데 왜 범무 형을 보호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여러 차례 톡과 통화로 이야기를 나눈 나는 든든한 어른인 범무 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귀띔해주지 않기로 했다. 홍오란이 곤란해하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오란에게 범무 형과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밝히기 싫으니까.
범무 형과 친해졌다는 얘기는 되도록 오래 숨기로 했다. 범무 형 찬스를 써야 할 때가 올 수 있으니까!
이게 전부 홍오란이 쌓은 업보다.
한결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눈을 감으려다가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에 멈칫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스럽게 못된 생각을 했나 해서.
이제야 알 것 같다. 같은 반 애들이 왜 친구끼리 비방을 일삼았는지.
그런 녀석들끼리 친구가 된 게 아니라, 친구가 되었기에 서로 필터 없는 장난을 쳐도 받아줄 수 있는 거였다.
원래 친구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이가 일반적이었나보다. 그럼 지금까지 너무 조심스럽게 대했던 건가?
혼자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에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오란은 여전히 인상을 쓰고 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다른 멤버들은 여전히 꿈속을 여행했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매니저 형은 지루하지도 않은지 아무 말도 없이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다음 스케줄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조금이라도 자 두는 편이 낫겠지.
에어컨으로 차 내부가 서늘해서 얇은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다.
* * *
저번이 마지막 만남일 줄 알았는데, 프케이 선배님과 다시 마주치게 됐다.
사녹으로 진행한다던 프케이 선배님이 웬일로 생방 무대에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이 마지막 방송이라 오셨나? 순위 발표하고 1위로 방송 활동 마감하는 것도 의미 있으니까.”
아, 그럴지도.
M.com은 프케이를 데뷔하게 해준 을 방송했던 음악방송 전문 채널이기도 했다. 프케이에겐 이 무대를 끝으로 방송을 마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프케이가 M.com이 배출한 아이돌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특별한 행사를 열어줄 수도 있고.
한편, 주변에서는 테오라를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는 신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신인 아이돌 그룹치고는 탄탄대로를 달라고 있다고.
하루가 다르게 팬카페에 가입하는 팬 숫자가 폭증하고, SNS 팔로워 수는 단위부터 달라졌다.
아빠가 우리가 보지도 못한 테오라 관련 기사나 짤을 톡 방에 우르르 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팬 미팅 당일이 되어야 확실히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코티지들의 뜨거운 열기를 직접 느껴봐야 알 것 같았다.
우리 음원 성적이 좋다고 해도 1위 후보에 들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물론 아직 컴백 초기라 포기하긴 이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예계 속에 있으니까.
M.com 방송국으로 들어가는데,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방송국 건물 앞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 프케이 선배님들이 멋지게 서 있는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역시 오늘 M.com 측에서 프케이를 위한 이벤트를 열어주는 듯했다.
두 번째는 바깥에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뭐지? 생방 보러 온 팬들이라기엔 너무 많아!”
박하 말대로 M.com 음방 방청객에 들어갈 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오늘 마지막 방송이라고 프케이 선배님 팬들이 전부 모였나 봐.”
콘서트 투어를 해도 전부 갈 수는 없으니 여기서 옷자락이라도 보려는 걸까. 흰색 혹은 은색으로 보이는 굿즈로 온몸을 감싼 팬들이 방송국 건물 앞을 점령했다.
“근데 다들 다운되어 있는 것 같네.”
서혼 형은 프케이 선배님의 팬들을 안쓰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멤버 한 명이 아니라 그룹에서 나오는 케미를 좋아했다면, 그 팬은 하루아침에 우상을, 동경의 대상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프케이라는 그룹은 기간 한정 아이돌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빠져들었을 팬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프지 않을 리가 없다.
‘기간 한정’…. 문득 떠오르려는 현오 형의 얼굴을 눈꺼풀 안으로 넘겼다.
새 건물이라 그런지 신인인 우리에게도 단독 대기실이 주어졌다. 돈 많은 모회사를 둔 방송국다웠다.
메이크업과 헤어, 의상까지 거의 준비를 다 마쳤다. 선배님들에게 인사하러 한 바퀴 돌고서도 대기 시간이 남았다.
잠깐 눈을 붙여도 되지만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아무 데서나 잘 잠들고 잘 깨는 지온은 벌써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초록 형과 서혼 형은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오란은 헤드셋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조는 거 같기도 하고?
그 틈의 심심함을 견디다 못한 박하가 휴대폰을 들었다.
“이원 형. 안 졸리지?”
“응. 사진 찍게?”
“그건 아니야. 코티지들한테 줄 영상 찍을 건데, 협조해줄 거지?”
여기서 안 된다고 대답할 수가 있을까? 테오라 멤버들끼리 정한 규칙은 아니어도, 그 규칙들의 바탕이 되는 대원칙이 있다.
코티지가 좋아하면 하고, 싫어하면 하지 않는다.
“떡밥은 다다익선이라구!”
다들 최신 문물을 이용하는 법을 모른다는 둥, 훌륭한 소재를 버려둔다는 둥 박하가 중얼거렸다. 전문용어가 빠르게 지나가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우리 멤버들이 뭔가 효율적이지 못하게 행동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박하는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대중은 점점 도파민에 중독되어 가고, 참을성이 약해지는 추세라고.
반박하고 싶기도 했는데, 그랬다간 박하가 목에 핏대를 세울 기세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강렬하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줘야 해!”
“…그래서 결론은?”
“킬링 파트 안무 추면서 애교 부리기!”
다들 애교에 무슨 원수라도 졌나? 애교를 시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무대에서 한 거로 부족해?”
“무대는 무대고!”
여기서 안 하겠다고 했다간 대역죄인이 되겠다. 킬링 파트 안무는 자다가도 툭 치면 나오게 연습했으니까 어렵지 않다.
문제는 애교인데, 우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얀 배경이라 딱 좋다!”
박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벽을 배경으로 섰다. 박하가 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BGM은? 그냥 아무것도 없이 해?”
“앗, 잠깐만! 노래 틀어줘.”
내 휴대폰으로 우리 타이틀곡 탈출해(Escape) 하이라이트 쪽으로 넘겨 틀었다.
간주가 나오고 다 같이 부르는 후렴이 재생됐다. 우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지온을 뺀 멤버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구경에 나섰다.
박하에게 설득당한 내 모습이 곧 자신들의 모습이 될 것을 알고는 있을까.
음악에 맞춰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자세로 입술에 힘을 줘 호선을 만들었다.
이 곡은 밝고 톡톡 튀는 곡이라 웃는 표정을 기본으로 장착해야 했기에 무대가 끝나면 얼얼한 얼굴 근육을 문질러야 했다.
웃음이 익숙한 박하나 초록 형, 서혼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평소에도 자유자재로 표정을 바꿔대는 오란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비슷한 상황인 멤버는 지온뿐이었다. 그런데 시크한 래퍼 포지션이라 그런지, 한쪽 입꼬리를 올려서 비웃는 표정을 지어도 아무 지적도 없었다.
나 혼자 거울 보면서 표정 연습을 했다는 건 영원히 비밀이다.
입을 크게 벌려서 안면 근육 스트레칭을 했다.
이번 타이틀은 표정 연기가 관건. 홍오란과 비슷한 속도로 다이나믹한 표정으로 변신해야 했다.
“오오! 이원 형 본격적인데!”
“어차피 하는 거 제대로 하는 게 낫잖아.”
둥둥?, 빠르게 울리는 비트 음을 따라 가볍게 바운스를 넣었다. 노래가 나오자 멤버들의 어깨가 자동으로 들썩였다. 부단한 연습의 효과였다.
애교는 나와 관련 없는 단어지만, 코티지들이 원한다면야 눈 딱 감고 한다!
이번 타이틀의 포인트 안무는 점프를 기본으로 쭉쭉 뻗는 동작이었다. 기지개를 켜듯이 점프하고 팔다리를 뻗는 쉬운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렴 한 구간에 점프 6번을 해야 하지만 어렵진 않다. 그래서 우리의 표정 연기가 특히 중요했다.
박하는 길어 보이게 찍어야 멋있다면서 바닥에 엉거주춤하게 앉았다.
여기서 탈출해 (따분한 오후) 지금 당장
졸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괬다가 ‘지금’에 맞춰 팔다리를 뻗으며 다리를 살짝 굽혔다.
정해진 높이가 꽤 높아서 힘을 주는데 발이 미끄러졌다.
“이원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