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23
실패하면 한 번 더
코티지들은 테오라 단독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미쳐 날뛰었다.
데뷔하고 2년도 되지 않은 그룹이 단독 콘서트라니! 아무 가수나 할 수 없는 일을 내돌이 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어쩐지 팬클럽 가입을 멈추더라!”
상시 모집 상태에서 갑자기 가입을 막았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팬클럽 가입이 막히면 뭔가 이벤트가 있다는 신호로 보면 될 것 같았다.
팬들은 날짜와 장소가 확정돼서 공지로 올라왔을 때부터 결의를 다졌다.
무려 테오라의 첫 단콘. 팬들은 기념비적인 자리에 반드시 참석하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왜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는 콘서트를 열지 않느냐는 푸념이 나오긴 했지만, 팬들에겐 일상적인 일이라 잠깐 글만 올라오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첫 단콘을 서울 한 군데서 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전국 투어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루로 끝나긴 하지만 말이다.
“팬콘이랑 온콘으로 준비운동을 해둔 거라니까? 계략돌이 따로 없어.”
PC방으로 티켓을 예매하러 함께 온 친구도 동의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연습 공연 했다에 한 표. 셋 리스트 모자랄 것 같으니까 정규 앨범 딱 낸 거 봐.”
커버 곡을 사용해서 무대를 꾸밀 수야 있다지만 커버 곡 비중이 높으면 주객전도되는 셈이었다.
“무대 얼마나 죽일까? 현장에서 보면 그렇게 쩐다며?”
“음방도 가보고 축제 무대도 본 내 육감이 말하고 있어. 콘서트 티켓 구하기 쉽지 않겠다고. 돈지랄해서라도 티켓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잔뜩일걸?”
“…그 정도야?”
팬 카페에는 단독 콘서트 일정이 올라왔을 때부터 무슨 수를 쓰든 티켓을 득템하겠다고 아득바득하는 팬들이 넘쳤다.
여러 번 현장에서 무대를 경험한 팬들일수록 눈에 불을 켰다. 라이트 팬들은 그 무서운 기세를 느끼면서 콘서트에 기대감을 품었다.
“게다가 애들 성격 봐서는 앵콜도 오래 해줄걸?”
충분히 길게 즐길 수 있을 거란 뜻이었다. 콘서트 시간을 시간 당으로 나누면 가성비도 괜찮을 듯했다.
“인증은 받았지?”
“받았어! 일반 예매 좌석 얼마 없던데 피 터지겠다.”
“누구 걱정을 해줘. 선 예매도 마찬가지일 텐데.”
공식 팬클럽 회원이 돼서 인증받은 팬들만 티켓을 선 예매할 수 있는 날. 오늘이 바로 그 디데이였다.
예매 시간은 20분도 남지 않았다. 인터넷 시계에 적힌 숫자가 점점 예매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손에 땀이 났다.
“나만 떠는 줄 알았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구나?”
다리를 짚는 친구의 손에 그제야 자신이 다리를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가고 싶다. 테오라 첫 콘서트!”
“나두.”
“가려면 꼭 티켓팅 성공해야 하는데. 제발 성공하게 해주세요…!”
손을 모아쥐고 기도했다. 오늘만큼 간절하게 기도했던 적은 몇 번 없었다.
하눌에서 본인 확인을 엄격하게 하겠다고 미리 밝혀둬서 그나마 암표가 돌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곳이었으면 말만 그렇게 하고 대충 들여보내 줄 수도 있다고 희망을 품겠지만, 하눌 엔터는 한다고 하면 그 말을 지켰다.
코넬 콘서트가 그 예였다. 바쁘고 붐빌 텐데 어떻게 하나하나 확인하겠냐고 얕보다가 진짜로 콘서트장을 앞에 두고 못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발을 동동 굴리며 눈물을 흘려도 끝까지 들여보내 주지 않았고, 그 이후로 하눌 소속 연예인의 행사가 있을 땐 암표가 거의 돌지 않았다.
뭣 모르는 사람이 사는 경우만 가끔 있는 정도였다.
“취소 표라도 줍고 싶다!”
“아직 티켓팅도 안 했잖아. 취소 표 주울 생각부터 해?”
점, 타로, 별자리 등 온갖 미신이란 미신은 전부 좋아하는 친구가 부정 탄다면서 나무랐다.
“쏘리. 일단 최선을 다해 보고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예매 시간이 5분 앞으로 다가왔을 때부터는 대화도 완전히 끊었다. 한눈도 팔지 않고 눈을 시계 초침에 고정했다.
손에 자꾸만 땀이 나서 바지에 쓱쓱 문질렀다.
5, 4, 3….
“0!”
클릭하는 소리가 갑자기 요란해졌다. 테오라 콘서트를 위해 PC방에 방문한 사람이 여기저기 더 앉아 있는 듯했다.
“됐다!”
“야! 넘어가! 넘어가라고…!”
화면을 보며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호성을 내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선택받지 못한 자였다. 좌석 선택 화면까지는 넘어갔는데….
“빌어먹을 이선좌….”
얼핏 들으면 이름처럼 들리는 단어를 씹어뱉었다. 왜 전부 ‘이미 선택된 좌석’이라고만 하는지.
순발력이 대단한 건지 컴퓨터와 인터넷 성능이 대단한 건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
“…성공했어?”
“…아니. 넌?”
“…….”
긴 침묵과 침울한 표정이 결과를 말해줬다.
“도대체 성공한 사람은 뭐야…? 매크로 썼나?”
“매크로로 인식되면 계정 비활성화된다던데?”
그런 위험하고 멍청한 짓을 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하아…. 어떡할래? 이대로 포기해?”
“…아니. 밥 먹고 놀다가 밤에 취소 표 나올 때 다시 오자. 오기로라도 꼭 구해야겠어.”
취소 표가 많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정 안되면 지방까지 내려가서라도 볼 각오도 했다. 그 티켓을 예매할 수 있어야 가능한 얘기겠지만 말이다.
“험난하다, 험난해. 두 눈으로 직접 우리 애들 보고 싶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이야?”
“그러니까.”
인기 아이돌이나 빌리는 콘서트장인데도 거기에 우리 둘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니. 슬퍼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스트레스받는데 밥 먹고 노래방 가자. 매운 거 어때.”
“좋지. 닭발 먹으러 갈까. 매운 갈비찜도 끌리네. 짬뽕이나 훠궈도 괜찮고.”
“나 닭발이랑 갈비찜 둘 다 하는 가게 알아.”
“이따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거기로 가자.”
“하늘이 우리를 안 버렸다면 살아날 구멍이라도 알려주겠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고고!”
어깨동무하고 PC방을 빠져나간 둘은 밤늦게 다시 들어와서 기어이 티켓팅의 승자가 되었다.
야단법석을 떨어서 알바생한테 조용해달라고 주의를 받았지만,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신나서 자랑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 * *
“여기가 어디예요? 왜 스태프가 아무도 안 보여요?”
준현 형에게 대전에서 참석할 행사가 있다고 들었다. 내일 아침에 바로 청주에서 스케줄이 있어서 하룻밤 자고 갈 거라고만 들었는데 어째선지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에 와 있었다.
“스케줄은 거짓말이었다.”
“엥? 왜요?”
“어째서…?”
밴은 좁은 길로 들어가더니 작은 집 앞마당에 섰다. 주변에 집 몇 채만 보이는 한적한 곳이었다. 편의점도, 상가도 눈에 띄지 않았고 썰물 때라 물 빠진 갯벌만 보였다.
“쉬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먹으니 강제로 쉬게 해주는 수밖에. 저 앞에 보이는 집 통째로 빌렸으니까 짐만 내려두고 나와라. 장 봐야 하니까.”
어리둥절한 멤버들과 함께 밴에서 내려서 마당을 두리번거렸다. 나지막한 사철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 근처엔 분홍색 꽃이 피어있었다.
전에 갔던 펜션처럼 넓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대신 편안한 공간이었다. 깔끔하긴 해도 전문 숙박시설 같은 느낌이 아니라 어릴 적에 알던 친구 집 같았다.
지온과 서혼 형은 마트에 가고 초록 형과 홍오란은 쉬겠다고 해서 박하와 둘이 산책하러 밖으로 나왔다. 평소와 달리 모자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편하게 나왔다.
휴가철이고 바닷가지만, 해수욕장 근처가 아니어서 우리를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시골이 거의 그렇듯이 어르신들만 사는지 몇 분을 마주친 게 전부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학생들이구먼. 골목 끝 집에서 왔나?”
피부가 볕에 까맣게 탄 할아버지는 곱게 생겼다는 칭찬도 해주셨다.
“네. 하룻밤 머물다 가려구요.”
“집주인이 비앤빈가 에이비씬가 한다더니 낯선 손님들이 와서 자고 가는 집이여. 내가 이 마을 이장이라 가끔 손님들헌티 안내도 해주고 그러지.”
숙박 공유서비스에 등록된 집이구나. 깨달음에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산책 코스를 추천받았다.
“작은 동네라 구경할 것은 바다밖에 좋? 길게 둘러볼 거 아니믄 바다 주변 도로 따라서 동네 한 바퀴 돌어.”
걷다 보면 나오는 빨간 지붕 건물이 마을회관이라면서 거기서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을 살 수 있다는 팁도 알려주셨다.
밀짚모자를 쓴 이장님은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우리를 앞질러 갔다.
“빠르다! 경운기가 원래 저렇게 빨라?”
물어봐도 대답해줄 수 있을 리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계속 서울에서만 산 서울 토박이다. 실제로 경운기도 처음 보는데….
시멘트 길을 따라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그늘에 앉아서 파도 소리도 들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서 출발 지점에 다시 돌아왔을 땐 장을 보러 갔던 사람들도 와 있었다.
“산책 코스는 어땠어?”
“더워!”
“고즈넉한 경치 빼곤 아무것도 없어. 우리 꼼짝없이 쉬어야 해.”
그나마 인터넷은 되니 다행인데 뭘 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휴가철인데도 손님이 없는, 버스 노선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마을인데 오죽할까.
“하룻밤이라 천만다행이지. 난 뼛속까지 도시 남자라고.”
초록 형은 폰으로 주변에 뭐가 있나 검색하다가 배달 음식도 시킬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다.
“얌전히 쉬고 있어라. 내일 데리러 올 테니까.”
“준현 형은 어디 가려구요?”
“30분 거리에 본가가 있어서. 내일 오후 3시쯤 올 거니까 점심 먹고 있어라. 라방이랑 SNS 업로드는 금지다.”
“엑!”
준현 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몰아서 떠났다.
“와….”
“…우리 뭐 해?”
“준현 형이 시키는 대로 놀고먹으면서 쉬어야지.”
“난 여기 올 이유 없는데.”
“지온아, 우리 말은 바로 하자. 네가 여기 올 이유가 없어? 몸 챙겨가면서 잘 쉰다고? 그럴 리가.”
“잘 쉬는데?”
지온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뻔뻔하게 잘 쉰다고 우겼다. 그에 초록 형이 반박했다.
“우리 전부 하루 일정 비슷하잖아. 연습도 같이하고. 너 혼자 잘 쉰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지온이 머리만 대면 잠드는 스타일이라 그나마 다행인데 최근엔 잠드는 시간도, 깨어나는 시간도 불규칙했다. 잘 쉬었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다.
“난 회복력이 좋아.”
이제 초점을 다른 쪽으로 옮기기로 했나 보다. 회복력도 멤버들 모두 괜찮은 편이라 비교하긴 어려울 텐데.
“글쎄.”
“우리가 아직 어린 축이라 회복력은 좋겠지만, 방심하면 안 돼. 연골 다 닳아서 고생하는 선배님들 얘기 못 들었어?”
“들어봤어!”
워낙 유명한 이야기였다. 현실 공포가 담긴 경험담이기도 했다. 아이돌인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서.
모든 상황이 우리의 휴식을 강제하고 있었다.
“흐음. 저녁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자.”
멤버들은 잠깐만 자고 일어나겠다면서 에어컨을 약하게 튼 시원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세 명씩 머리를 가까이 두고 누워서 얇은 이불을 배 위에만 걸쳐 올려뒀다.
“저녁엔 뭐 먹을 거야?”
음식은 언제나 우리의 최대 관심사. 인사보다도 메뉴를 훨씬 자주 묻고 고민하곤 했다.
“고기.”
“장르가 뭐야?”
“돼지, 소, 닭, 오리.”
…응?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에 고개를 돌리는데 나만 빼고 다들 눈을 감고 있었다. 대답을 하는 지온도 눈 감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귀로 저음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고기 파티라서.”
고기면 뭔들 맛이 없겠냐만, 고기 파티라는 단어는 발음부터 맛있게 들렸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