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64
테오라 찾기 (2)
교내를 돌면서 축제를 즐기고 오니 지온이 노래자랑 예선 참가자가 되어 있는 이 기막힌 상황. 같이 있던 준현 형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했다.
지온은 노래자랑 예선전이 열리는 노천극장 계단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광합성을 하고 있었는데, 예선전 참가 등록을 한 참가자가 대거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졌단다.
예선, 결선 나눌 필요도 없을 만큼 참가자가 적어서 즉석 지원까지도 허용했는데 그마저도 얼마 없어서 진행이 어려워질 정도였다고 했다.
노래자랑 사회자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고, 그게 추천을 받은 사람을 무대 위로 올리는 것이었다.
노천극장에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 부르기 싫어서 서로 눈치를 보게 됐고, 눈을 감고 있던 지온이 희생양이 되어 무대로 올라갔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돌아와서 같이 설명을 들은 초록 형과 박하는 돌계단에 엎어져서 웃기 바빴다. 자기 일 아니라고 잔뜩 신나 있었다.
“수호야, 원래 대학 축제가 이렇게 막무가내인 편이야?”
“노래자랑을 빙자한 장기자랑에 규칙이 있기나 하겠어? 재밌고 사건만 안 터지면 되는 거지.”
수호는 사회를 맡은 선배도 비슷한 방식으로 끌려와서 MC가 됐을 수도 있다면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지온 표정은 나쁘지 않은데….”
“잔뜩 긴장한 사람들 사이에 여유로운 사람 한 명이 끼어 있으니까 되게 튄다.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
우리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여유가 넘치는 멤버가 지온. 일반인 사이에서라면 더 도드라지는 게 당연했다.
“노래까지 부르는데도 안 들키는 거 아냐?”
“안 들키겠어? 목소리만 들어도 팬들은 눈치챌걸.”
“한번 잠깐 듣는 걸로는 확신까지 하긴 어렵지.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다, 하고 넘어갈 것 같은데.”
나는 결국 수호와 내기를 하게 됐고, 한강에 가서 치맥을 살 사람이 정해지는 내기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에게 순서대로 마이크가 넘어가다가 지온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어느 학과 몇 학년 누구신지 말씀해주시죠.] [한국대 학생은 아니고 축제 놀러 온 스물두 살 김지훈입니다.]지온의 임기응변으로 테오라 제톤이 아니라 흔하디흔한 김씨 성을 가진 지훈이 됐다. 아직까지 지온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놀러 오셨다가 당첨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콩그레츄레이션!]대놓고 뻔뻔한 태도가 얄밉지 않다는 듯이 지온이 입꼬리를 올렸다.
잠깐 사이에 어떤 곡을 떠올렸을까? 만약 지온이 랩을 한다면 정체는 대번 들통날 것이다.
[테오라의 ripen up 부르겠습니다.]사회자의 콩글리쉬와 비교되는 유려한 발음의 제목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필 바로 어제 이 학교에서 라이브로 들었던 곡이었다. 살벌하게 비교당할 미래에 사람들이 지온을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ripen up은 여섯 명이 부르는 노래. 혼자서 부르려면 호흡 조절이 쉽지 않은 곡이니 저런 반응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금방 쓸모없어질 안타까움이겠지만 말이다.
[누굴 닮았나 했더니 테오라 제톤 닮지 않았나요?]네?, 하는 대답이 울려 퍼졌다. 보급형 제톤이라는 사회자의 표현에 사람들은 지온 눈치를 봤다. 지온의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보급형 제톤’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런데도 안 들킨다고? 목소리도 똑같은데? 믿을 수가 없다….
[Drop the beat.]래퍼다운 요청에 오올~하는 감탄이 터졌다. 사람들이 지금은 지온이 프로 래퍼라는 사실을 모르지만,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ripen up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중간중간 소화하기 힘든 고음이 나오는 곡이라 그런지 지온은 전체적으로 키를 낮춰 부르기 시작했다.
춤을 추지 않고 가만히 서서 지온 혼자 부르는 ripen up은 테오라의 노래보다 묵직하고 우울하면서도 퇴폐적이었다.
“쩌는데…? 랩하는 것만 봐서 몰랐는데, 원래 노래도 이렇게 잘 불렀어?”
고음을 어려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온의 노래 실력은 좋았다. 노래를 부르면 특유의 감성이 짙게 배어 나와서 뭘 불러도 어둡고 묘하게 섹시해진다는 약점이 있는데 ripen up은 그 약점이 강점으로 승화될 수 있는 곡이라 시너지가 생겼다.
준현 형이 찍고 있는 이 영상이 공개된다면 래퍼 지온이 아니라 보컬리스트 지온을 연호하는 팬들이 대거 등장할지도? 내가 듣기에도 소름 돋을 정도로 음색이 곡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느리게 편곡해서 호흡만 조절하기 편해지게 한다면 어떨까. 지온 맞춤 곡이 탄생하게 되지 않으려나.
개인 활동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게 될 때를 대비해서 편곡 버전을 하나 만들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 쉬는 것도 잊고 지온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저 사람이 나와 같이 활동하는 테오라 멤버라고 자랑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가 뭐가 그리 급한지 거의 뛰다시피 지온에게 다가갔다.
“와, 와! 지훈 씨, 왜 프로로 활동 안 하세요? 프로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제가 몰라보는 건가요? 그렇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프로, 는 맞는데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몰라볼 수도 있죠.”
특수 분장까지 해서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보게 꾸민 지온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더 노력하겠다는 능청스러운 대답을 내놨다. 그리곤 지온답지 않은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진짜 아직까지 눈치를 못 챈 건가? 노래 한 곡을 완창했는데? 랩이 아니라 노래라고 해도 어떻게 개성적인 지온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수가 있지? 심지어 ripen up 랩 파트까지 소화했는데 말이다.
“휴….”
내기에서 졌다고 인정하려고 하는데, 무대 뒤쪽에 서 있던 노래자랑 참가자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면서 손가락으로 지온을 가리켰다.
“?지온! 테오라 김지온!”
그게 무례한 동작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단발머리의 여자 참가자는 다가가서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졌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수호의 목소리 뒤로 사회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온이요? 테오라요? 저분이 지훈 씨를 테오라 지온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우리는 마이크를 지온의 입에 가져다 대는 동작을 보고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할 준비를 했다. 저기서 지온이 자기가 테오라 제톤이 아니라고 부정할 리는 없으니 그 뒤의 소란을 피하려면 얼른 도망가야 했다.
“다음에 보자. 한강 치맥은 너 편한 시간에 조만간 살게. 그럼 걸리지 말고 조심히 가. 연락하고.”
빠르게 속삭인 수호는 일행이 아닌 척 팔을 휘적휘적 흔들면서 떠났다.
[안녕하세요. 테오라 제톤입니다. 대학 축제를 즐겨보고 싶어서 깜짝 방문했는데 어쩌다 보니 노래를 부르게 됐습니다.] [얼굴, 얼굴은…?!]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터진 사람들의 비명에 목소리가 묻혀서 질문이 다시 반복됐다.
[특수 분장입니다.] [혼자, 혼자 오신 건가요? 아니면 멤버들이랑 같이?] [같이 왔습니다.]지온이 우리를 향해 시크하게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지온은 미소를 씩 지어주고는 무대에서 뛰어내려 우리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노래자랑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버벅거리다가 우리를 쫓아왔다. 우리는 달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전력 질주했다.
축제가 한창인 교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추격전은 우리의 완승. 잠깐 흩어져서 위장술로 추격자들을 따돌린 다음 서혼 형까지 데리고 다시 차에 복귀했다.
“하, 오랜만에 쫄깃했다.”
“너무 금방 돌아왔나? 초록아, 더 놀고 싶었던 거 아니야?”
“대학 축제를 얼마나 오래 즐겼는지보다는 즐겨봤다는 경험 자체에 의의가 있지. 난 만족했어.”
“난 좀 아쉬워! 특수 분장하면서 준비한 시간이 있는데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긴 아깝다구!”
투자한 시간과 수고만큼의 본전을 찾으려면 더 놀다가야 했다. 우리는 이왕 특수 분장까지 한 김에 평소에 가기 힘들었던 곳에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놀이공원. 가본 지 백만 년은 된 기분이라는 박하의 칭얼거림에 행선지를 놀이공원으로 바꿨다. 용인으로 가기엔 멀어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실내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이럴 때 아니면 놀러 가기 힘든 장소이긴 하네.”
붐비는 정도만 다를 뿐 놀이공원은 거의 항상 북적이는 곳.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놀이기구를 탈 수는 있겠지만, 위험 부담이 커서 웬만하면 올 엄두도 내지 못할만한 장소였다.
“머리띠 골라주기 하자! 머리띠!”
시커먼 남자 여섯, 아니 준현 형까지 일곱 명이 머리띠를 하고 돌아다녔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놀이공원이니 여한 없이 놀다가 돌아갈 작정이었다.
남자 여럿이서 동물 머리띠를 쓰고 몰려다니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긴 했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각자 노느라 바빠선지 타인한테 관심을 줄 여유까지는 없는 듯했다.
우리는 격렬하게 놀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초록 형과 지온은 높이 올라가는 놀이기구를 제외하고 탔고, 나는 나머지 멤버들과 어트랙션을 하나하나 정복해나갔다.
마지막 코스는 드높은 실내 천장을 둥둥 떠다니는 놀이기구가 차지했다.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알록달록한 레고 같았다.
놀이공원에 가족끼리 온 적은 있는데 친구들끼리 와서 논 건 오늘이 처음이다. 어릴 때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긴 한데 그때 나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돌아왔다.
다들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난 그 아이들처럼 소리를 지르게 되는 상황이 두려웠었다. 누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라도 할까 봐.
맘껏 소리 지르고 소리 내어 웃는 이 보석 같은 시간이 새삼 감사했다.
현오 형이 내게 목소리만 준 것이 아니었다. 아이돌이라는 꿈을 줬고, 친구들을 만들어줬고, 친한 형들과 만나게 해 줬고, 지금 같은 순간까지 선물해줬다.
문득 현오 형이 가슴 시리게 그리워졌다. 나는 이 그리움을 익숙하게 다독여 삼켰다. 이제는 갈 곳 없는 그리움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순응. 이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너무 푹 빠지지도 않는 것.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면서 순간을 소중히 하는 것.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얻어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찾은 방법이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원아, 무슨 생각해?”
“아니, 그냥 좀 행복해서.”
아이돌로 활동하는 것도, 멤버들과 이렇게 놀러 나온 것도 다 즐겁고 행복했다. 이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기를 바랄 정도로.
“…기다려. 내가 특수 분장 배워서 오늘처럼 놀러 나오게 해줄 테니까.”
“진짜?! 오란 형 최고야!”
박하가 오란에게 격하게 들러붙는 바람에 우리가 탄 열기구 모양의 놀이기구가 잠시 출렁거렸다.
특수 분장에 관심 있는 것 같더니 제대로 배워볼 마음이 생겼나 보다.
항상 대중의 시선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 연예인의 직업 특성상 가끔이라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 돌 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나도, 멤버들도.
오란의 말이 빈말로 끝나더라도 우리를 생각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고마워.”
“…고마우면 다음에 녹음할 때 살살 해주든가.”
괜히 멋쩍어서 엄살 피우는 오란, 우리를 따듯하게 쳐다보고 있는 서혼 형, 아직도 오란에게 철썩 달라붙어서 애교를 떠는 박하, 저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초록 형과 지온.
이들이 같은 그룹의 멤버라는 게 좋았다.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