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65
신드롬
테오라 멤버들이 한국대에 특수분장을 한 채로 나타났다는 소식은 팬 카페를 한바탕 들었다 놨다. 한국대 근처에 있던 팬들은 왜 그때 한국대 축제에 놀러 가지 않았느냐면서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한국대생 코티지이면서도 테오라 멤버들을 보지 못한 이들은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렸다. 눈썰미만 있었더라면 성덕이 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우연히 노천극장에서 멍 때리기를 하다가 테오라를 목격한 팬이 소수지만 존재하긴 했는데 그들마저도 증거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사실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누가 거기에 다른 얼굴로 변장한 테오라 멤버가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고,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없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테오라 공식 계정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특수 분장을 하고 한국대 축제에 깜짝 방문했던 그날의 영상이었다.
팬들은 무서운 짐승처럼 달려들어서 영상을 감상하고 또 감상했다. 영상에 실체가 있었더라면 물리고 뜯기고 씹혀서 너덜너덜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 뜨거운 반응에 테오라는 한번씩 몰래 다른 얼굴로 돌아다니면서 2회차, 3회차, n회차 깜짝 카메라를 찍어 올리게 되었다.
팬들은 불규칙적으로 올라오는 목격담에 땅을 치고 후회하다 관련 영상에 환호하기를 반복하고, 팬들과 테오라 멤버들의 이 밀당은 자연스럽게 숨바꼭질 놀이로 자리 잡는다.
테오라 멤버들은 매번 다른 분장으로 갑작스레 출몰하고, 팬들은 다른 얼굴로 돌아다니는 멤버들 필사적으로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진짜 테오라 멤버들과 닮은꼴인 사람들이 의심받기도 하지만, 크게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은 없다. 잘생기고 예쁜 아이돌을 닮아서 착각했다는 말에 나려던 화도 저절로 풀리는 까닭.
엉뚱한 사람을 테오라 멤버로 추리한 사람은 팬 카페와 자기 SNS 계정에 석고대죄를 연상하게 하는 처절한 반성문을 올리는 규칙도 생겨난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못 알아보는 못난 눈썰미를 자책하는 내용인데, 그 반성문은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리면서 유명해진다.
이런 팬들의 기행이 소문나면서 테오라와 코티지의 관계성을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게 다시 입덕 계기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루게 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였다.
* * *
지온 혼자 정식으로 부른 편곡 버전 ripen up이 뉴튜브에 올라갔고, 내 희망 사항이 듬뿍 담긴 커스텀 이어폰도 스펙 조율을 끝내고 시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들려온 새로운 소식은 더 있었다. 예전에 찍었던 가 레몬 TV에서 선 공개되는 날짜가 잡혔다는 것.
공개일이 한 달 후라서 한창 홍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조연으로 출연한 우리도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면서 바쁘게 돌아다녔다.
6월 말에 8화로 끝나는 시즌 1이 TV에서 전부 방영되고 시즌 2가 공개될 즈음, 테오라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아이돌 경연 무대까지 준비하고 있어서 우리는 컴백 직전처럼 틈만 나면 연습실을 찾았다. 요즘엔 숙소보다 연습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커다란 주제만 알려주고 알아서 하라니! 거저먹겠다는 심보 아니야?”
“여기서 투덜거려봤자 그치들한테 들리겠냐?”
“그치만! 가이드 라인은 줘야 할 거 아니냐구!”
단기간에 여러 무대를 동시에 준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1차, 2차 경연 주제를 경연 참가자들에게 공개한 상태였다. 2차 경연까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3차와 파이널 경연은 우리 힘만으로 준비해서 무대를 꾸며야 했다.
우리는 상의 끝에 1차 경연부터 우리 손으로 전부 준비해보기로 했다. 3차와 파이널 경연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대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본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체제작돌’로 불릴 만큼 다른 그룹에 비하면 앨범 작업에 많이 참여해왔지만, 이번엔 부담감이 컸다. 앨범 준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지만, 퍼포먼스 주제나 컨셉의 방향, 무대 세팅까지 손대본 적은 없었다.
주제도 주제였다. 1차 경연은 아이덴티티, 2차 경연에선 새로움. 갖다 붙이기 나름일 것 같은 추상적인 주제가 제시됐다.
아마도 1차는 그룹별 색깔을 보여주고, 2차에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주제로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돋보여야 한다는 점이 까다로웠다.
에 출연할 아이돌은 거의 확정된 상태. 사정이 생겨서 교체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미리 일정과 주제까지 공지한 마당에 출연진이 바뀔 일은 웬만하면 없을 터였다.
그렇게 참가하게 된 총 여섯 팀의 남자 아이돌 그룹. 그중에 우리는 활동 경력이나 나이로 따지면 막내, 인지도로 따지면 현재는 세 번째 정도라고 초록 형이 얘기해줬다.
1군 남돌을 우선적으로 섭외하긴 했는데 그 그룹들은 이 프로그램이 리스크만 크다고 판단해 출연을 고사한 것 같다고 했다. 더 올라갈 곳이 없는데 괜히 경연에 나왔다가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주지 못하면 안 좋은 말만 나올 가능성이 크긴 할 거다.
그런 이유로 은 비슷한 목표를 가진 그룹들이 모이게 됐다. 계기만 있다면 1군으로 올라설 잠재력을 가진 그룹들로.
“초반 기선 제압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다들 한껏 벼르고 나올 텐데.”
장유유서 같은 덕목은 이런 경쟁에서 필요치 않았다. 선의의 경쟁은 하겠지만 나이가 어리고 활동 경력이 짧다고 해서 숙이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1차 경연 전에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긴장감을 풀고 그 게임 우승자한테는 그룹 PR 할 수 있는 시간을 두 배로 준다고 하던데. 그 시간에 또라이 짓이라도 해야 하나. 기선 제압은 될 텐데 말이지.”
“초록아.”
“알아, 알아. 농담 한번 해봤어.”
살벌한 농담이었다. 초록 형이라면 완벽하게 또라이 행세를 하고도 남는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아닌 어딘가에서 기선 제압을 할 필요가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저지를 사람이다.
“기선 제압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해. 다른 참가 그룹이 아니라 시청자들한테.”
“역시 경험자.”
랩 경연 프로그램 출신인 지온이 말하길 ‘크라운 오브 아이돌’의 포맷을 보면 경쟁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승하려면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들 그리고 시청자들.
“깊은 인상이라…. 혹시 영상으로 대체하면 안 될까?”
“무슨 영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혼이 형?”
“테오라가 지금까지 어떻게 하나의 팀이 됐고 어떻게 활동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영상. 우리한테 몰입하게 하려면 우리의 서사를 알려주는 게 좋은 방법 같아서.”
“아이디어 자체는 진짜 괜찮은데? 서사를 시청자들 머리에 때려 박아주면 이후 무대에 우리한테 쉽게 몰입할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우리만 영상으로 대체하면 PD 픽이냐는 둥, 돈 먹였냐는 둥 헛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거. 그런 소리 안 들으려면 우리가 게임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어.”
게임의 승자가 된다면 미리 준비해둔 영상을 재생한다고 해도 불평은 얼마 나오지 않을 것이다. 승자는 특별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니까.
“무슨 게임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목숨 걸고 무조건 이겨야겠네. 당연히 이길 생각이긴 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멤버들이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 입꼬리도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 * *
최초의 좀비. 3년간 연재된 이 유명 웹툰은 좀비물 매니아들 사이에선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좀비물보다는 인간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스릴러에 더 가까웠지만, 중요한 건 재미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드라마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팬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원작 웹툰의 팬들은 드라마화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캐스팅 단계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주인공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 말들이 많았지만, 배우 강백의 연기력이라면 믿어볼 만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원톱 주연을 내세우는 작품이라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의 캐스팅 과정에 큰 잡음이 나올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원작 팬의 사랑을 받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여럿 있었고 그 중엔 서혼이 맡은 악역 ‘제문’도, 함이원이 연기한 나르시시스트 선하도 있었다.
지온이 연기한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좀비는 각색 과정에서 탄생한 캐릭터여서 캐스팅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면, 서혼과 함이원이 맡은 배역은 원작에 나오는 캐릭터라 출연한다는 기사가 올라왔을 때 원작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을 ‘뻔’했다.
다행히 주요 배역이 아닌 조연이기도 했고, 여러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호적인 시선이 대세가 됐다.
[최좀 제문 역 서혼, 선하 역 테오라 함이원이라는데?]제곧내. 같은 그룹 아이돌이 둘이나 아니지, 새로 생긴 역까지 세 명이나 출연함. 서혼은 아역 배우 출신이니까 아이돌로 치지 않아야 하나? 암튼 그렇다고 함.
어떨 거 같음?
– 제문에 서혼? 연기력은 둘째치고 비주얼 싱크가 안 맞는데?
└제문 : (이미지) 악역/20대/호감형 외모/친절함/삐뚤어진 신념 때문에 돌아버린 캐릭터. 한 바퀴 돌아서 겉으론 멀쩡해 보임
└캐디가 서혼이랑 쫌 다르긴 하네 근데 저 정도는 화장이랑 스타일링으로 커버 될걸?
– 요즘 서혼이 길게 연기하는 걸 못 봐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데 아직 연기력 살아 있나?
└단역으로 잠깐씩만 나오긴 했는데 연기력 어디 안 가더라 어려운 역이긴 한데 기대해봐도 될 듯
└서혼님이 아역이었다고??
└와 그걸 모르다니 세대 차이ㄷㄷ
└애기구나 며짤?
└응애
– 선하 캐릭터는 비주얼만 본 거 아냐?
– 근데 선하 역 가상 인간임?
└왜 이런 얘기 하는지 이해돼서 웃음만 나온다ㅋㅋㅋㅋ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외모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인간이구요, 노래하고 춤도 춘답니다
– 노래 부르다 삑사리 내고 춤 뚝딱거려도 용서될 것 같은 얼굴
└근데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춘다는 게 함정. 심지어 작곡까지 척척
└선하 캐는 어차피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캐릭터긴 한데 함이원 연기도 그럭저럭 괜찮게 하는 편
└이 얼굴로 연기까지 해? 웹툰 주인공도 이 정도면 현실성 없다고 욕먹음
└+한국대생
└??????
– 아이돌 출연시켜서 후광 효과 얻으려고 한 건 줄 알았는데 이쯤 되면 걍 실력으로 뽑힌 거 아님?
└팩트) 테오라 서혼, 함이원, 제톤(김지온)은 오디션 보고 캐스팅됐다
– 다된 드라마에 재 뿌린 게 아니라 트러플 오일 뿌린 격
└너 테오라 팬이지 잡았다 요놈
팬들이 평가가 어떻든 이미 촬영이 끝난 상황이라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 대중에게 평가받는 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최초의 좀비’가 레몬 TV에서 선공개되는 D-day.
레몬 TV의 야심작이 공개되는 순간 최초의 좀비를 보게 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들이 정주행을 시작했다.
8편까지 있는 시즌 1을 전부 감상하는 데엔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최초의 좀비는 애플 TV 월드와이드 랭킹 1위였던 드라마를 2위로 끌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최초의 좀비 신드롬이 일어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