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66
최초의 좀비 신드롬
‘최초의 좀비’는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뛰어넘는 잠재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인기 원작의 재미를 영상 미디어라는 매체에 훌륭하게 적용시킨 작품이기도 했다.
밤을 새워 정주행을 끝낸 사람들은 아침이 되자 등교와 출근을 하며 일상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길게 남은 여운은 좀처럼 떨쳐지지 않고 머리를 맴돌았다.
“하아암?”
하품을 도대체 몇 번이나 했을까. 연속으로 나오는 하품에 눈치가 보여서 카페인을 들이부었는데도 몽롱함이 가시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돼서 바깥 공기를 마신 후에야 조금 머리가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대리님, 어젯밤에 뭐 하셨길래 눈이 그렇게 충혈되셨어요?”
“드라마 정주행하느라고요.”
“아, 어제 최초의 좀비 본다고 하셨죠? 끝까지 다 보셨어요?”
“두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끊을 수가 있어야죠….”
그런 단호함이 자신에게 있었더라면 진즉에 금연과 다이어트에 성공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재밌어요?”
“좀비물인데도 심리 묘사가 죽여요.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 긴장감 넘치는데 곳곳에 적당한 유머까지 들어가 있어서 강약 조절이 절묘하다고 해야 될까요? 시즌2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것만 빼면 잠을 희생할 가치가 있어요.”
“그 정도라고요?”
“간만에 대작 나왔다고 벌써 반응이 오던데, 안 보면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드라마 랭킹이 올라가는 속도나 언급량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전에 두 달 넘게 월드 와이드 랭킹 1위를 유지했던 작품이 이와 비슷한 분위기였던 걸 떠올리면, ‘최초의 좀비 신드롬’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봤다.
“얼른 봐야겠네요. 주말 약속도 없는데 금요일에 달려야겠어요. 추천 감사합니다, 대리님.”
“현명한 선택이에요.”
기왕 볼 거라면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보다는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법! 그래도 현생까지 희생하지 않고 주말에 보겠다는 걸 보니 저보다는 훨씬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하아…, 시즌2 도대체 언제 나오나….”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할 분량은 이미 OTT 플랫폼 레몬 TV에서 이미 본 내용이라 적어도 4주는 기다려야 했다.
“괜히 미리 봤어요. 시즌2 완결편까지 나온 후에 볼걸.”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하는 후회지만, 매번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참, 거기 테오라 애들 나오는 거 알죠? 서혼이랑 이원이랑 지온이.”
책상에 자랑스럽게 장식한 아이돌 포토 카드와 굿즈. 다른 부서 직원들도 알 정도로 아이돌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자신이 그 아이돌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까지 저절로 외우게 될 정도였으니 말해 뭐할까.
“네…?! 울 애기들이 나온다고요? 저 왜 지금까지 몰랐죠? 이럴 수가…! 저 지금 진심으로 충격받았어요. 코티지라고 말하고 다닐 자격이 없네요….”
깜짝 놀라다가 반성하고 침울해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럴 수도 있죠. 현생이 바빠서 그랬다고 하면 애들도 이해해줄 거예요.”
대대적으로 드라마 광고를 뿌리면서 테오라 멤버들이 조연으로 나온다는 소식이 곁다리로 언급됐을 뿐이다. 소속사에서 냈을 것 같은 기사나 SNS를 염탐하다가 가져온 사진이 올라오긴 했겠지만, 묻히는 건 언제나 순식간이었다.
“초록이가 최애이긴 해도 제가 얼마나 소홀했던 건지…. 집에 가서 회개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당장 봐야겠어요. 주말? 그때까지 어떻게 참아요. 근데요. 애들 연기는 잘했죠? 아이돌이라고 욕먹을 정돈 아니었죠? 물론 우리 애들 연기는 평균 이상이긴 하지만,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
“아이돌인 거 몰랐으면 어디서 유망한 신인 배우가 나왔구나 생각했을걸요?”
“역시 그렇죠? 대리님, 잠깐만요. 저 검색 좀….”
슬쩍 보니 현란한 손짓으로 화면을 휙휙 바꾸고 있었다. 뉴스 섹션과 SNS 계정, 팬 카페를 오가는 듯한데 글자는 읽히나 싶은 속도로 바뀌는 폰 화면에 감탄이 다 나왔다. 저 정도의 동체시력을 가져야 덕질을 원활하게 할 수 있나?
“와…. 모르는 팬들이 없는데요. 저는 무슨 TV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 오지 산간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휴, 너무 게을렀네요. 앞으로는 성실하게 덕질해야지. 어쩜 이렇게 캐릭터도 딱 어울리는 걸로 맡았지? 히히히.”
광기 어린 웃음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뭐 하나에 꽂혀 있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성숙한 문화시민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이다.
“거기서 주인공이 얼마나…. 입이 다 근질근질하네요. 스포하는 못된 사람은 아니니까 시즌1 다 보고 올 때까지 참을게요. 내일 아침에 벌건 눈으로 올 거 같으니까.”
일단 보기만 하면 누구라도 붙잡고 떠들고 싶어서 못 견딜 것이다. 자신이 딱 그런 상황이니까.
좀비물이라는 장르 말고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게다가 최초의 좀비는 이미 원작에서 그 재미가 검증된 작품. 십중팔구 드라마의 재미에 멱살 잡혀서 중간에 끊지도 못하고 남은 회차가 줄어들 때마다 조바심이 드는 경험을 하게 될 터다.
‘나 혼자 괴로워할 수는 없지.’
머지않아 시즌2를 기다리는 고통을 같이 느껴줄 후발대들이 잔뜩 생기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는 동지가 될 동료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딱 하루 뒤.
퀭한 눈으로 비척비척 걸어오는 모습에 직감했다. 드라마 정주행하다가 밤을 꼬박 새웠구나!
“재밌었죠?”
“대리니임! 딱 한편만 더, 한 편만 더 하다가 결국 한숨도 못 잤어요. 저 다크서클 너무 진하죠?”
나름대로 가려보려고 뿔테 안경을 쓴 듯했지만, 오히려 초췌한 얼굴이 더 강조됐다. 좀비 드라마를 본 게 아니라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출근한 게 아닐까?
사실, 출근길에 눈을 반쯤 감고 어기적거리면서 걷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목격했다. 이렇게나 감염자가 속출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바이러스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죠? 재밌었죠?”
“드라마에서 웬 좀비물인가 싶었는데, 흥행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제작한 거였어요.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잘 만들었을 텐데 섣불리 판단한 제가 어리석었죠. 레몬 TV에서 랭킹 1위던데 그 드라마에 우리 애들이 출연했다니! 역할도 찰떡이었고 연기도 자연스러워서 안심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게 될 드라마에 아이돌 연기력이 옥의 티로 꼽히기라도 하면 전 세계적으로 까이는 수가 있다.
“대리님 그거 아세요? 우리 초록이가 안무 조감독이었다는 사실! 어쩐지 좀비 움직임이 예술적이지 않았어요?”
전문가가 아니라 콕 짚어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좀비들의 움직임이 다른 좀비물과 다소 다르긴 했다. 그 차이가 과연 안무 감독도 아니라 조감독에게서 나왔을까 싶긴 했지만, 희망 회로를 돌리는 아이돌 팬을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안무 조감독? 행보가 독특하네요. 배우가 아니라 제작진으로 참여한 거잖아요?”
“몸의 움직임에 따라 어떤 인상을 주는지 다 알고 있는 거죠. 초록이가 고등학교 때 현대무용 전공이었다고 하던데 도움이 됐으려나? 하여튼 너무 대단해요.”
대화가 재밌다기보다는 누군가를 저토록 좋아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더니 상대방은 아이돌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주제를 돌렸다.
“마지막 장면엔 소름이 다 돋았어요! 주인공이 좀비처럼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들켰잖아요.”
“다음 시즌 안 보고는 못 배기게 끊어버려서…. 하, 진심 궁금해 돌아버리겠어요. 이 부분만큼은 원작 웹툰에도 없어서 참는 수밖에 없다고요.”
시즌을 두 개로 나누면서 시즌1 엔딩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시즌별로 한 번에 공개하니 웬만하면 1화부터 8화까지, 9화부터 16화까지는 쭉 이어서 시청할 것이다.
문제는 시즌1에서 2로 넘어가는 약 한 달의 공백. 시즌 2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최대한으로 높여 둬야 시즌2까지 시청률을 그대로 끌고 갈 수 있었다.
그 목표를 위해 원작 작가와 각색 작가가 힘을 합쳐 1부의 엔딩을 짜냈다고 인터뷰 기사가 떴다. 원작에 없던 에피소드여도 원작의 팬들마저 불평할 수 없는 이유였다.
“시즌2는 더 재밌을 거라고 하던데 너무 빨리 봤어요. 한 달을 어떻게 참아요…? 완결 나고서 보는 건데!”
테오라 멤버가 출연한 이상 참아봤자 며칠 정도였겠지만, 그 마음을 모르진 않았다.
“나랑 같이 참읍시다.”
“시즌2 시작하는 날이 공교롭게 월급날이더라고요. 다음 월급날은 2배로 기다려지게 생겼어요.”
“아하하.”
“이원이가 광고하는 한정판 무선 이어폰도 그날 추첨한다는 거 보면 일부러 노렸나….”
“한정판이요? 함이원이 광고한 버디 프로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정판이 나와요?”
“아, 제가 말씀 안 드렸어요? 버디 프로랑 별개로 함이원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판 무선 이어폰이 나온대요. 가격이 버디 프로 두 배이긴 한데 당첨만 되면 돈 버는 셈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제품을 사는데 돈을 벌어요?”
“함이원이 청각이 진짜 예민하기도 하고 음악 관련해선 타협이 없는데, 그런 애 이름 달고 나오는 제품이잖아요. 성능은 현존하는 무선 이어폰 중에 최고로 나오지 않겠냐고 예상하던데요? 게다가 한정판이잖아요, 한정판.”
스타 이름이 붙은 상품이라는 것만으로 무지성 구매자가 줄을 설 텐데 성능까지 좋고, 한정판이라는 희소성까지 있었다.
디자인 또한 버디 프로와 비슷하게 나오거나 더 힙하게 나올 테니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까지 나오지 않을까.
“당첨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네요. 우리 중에 함이원 에디션 사게 되는 사람 있으면 구경시켜주기로 약속해요.”
“좋아요! 우리 둘 다 성공해서 자랑해요! 헤헤.”
“커피 마시고 일 시작할까요? 제가 살게요.”
얘기하는 와중에도 졸음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보니 어제의 제 모습이 저랬을까 싶었다. 물씬 느껴지는 동질감에 커피를 사주고 싶어졌다.
“감사히 마실게요. 저는 샷 두 번 추가한 아메리카노로요….”
투 샷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아메리카노인데 거기에 샷 추가 두 번? 정신은 번쩍 들 것 같긴 하지만, 맛이 사약이랑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리 커피가 직장인의 생명수라지만….
다행히 하루만 참으면 주말. 딱 하루만 위가 견뎌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른 가요. 사람 밀릴 때라 돌아오려면 아슬아슬할 거 같으니까.”
새까만 색의 커피를 바닥이 보일 때까지 홀짝거린 덕인지, 아니면 점심시간에 잠깐 자서 그런지 좀비는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버텨냈다.
고개가 뚝 떨어져서 키보드에 머리를 몇 번 박을 뻔하긴 했지만, 그 정도면 양호했다. 그 장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대신 눈치를 봤는데 다른 직원들도 피곤해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기색이었다.
혹시 다들 어제 ‘최초의 좀비’ 정주행 달린 거 아니야…?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