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66
166. 결전의 징후(徵候)
백리빙은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때였다. 갑자기 방안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한 명의 시녀가 장검 한 자루와 한 벌의 흑색 경장을 들고 와서 낮은 소리
로 말했다.
“우문선생이 빨리 옷을 갈아 입고 무기를 지니고 영당으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백리빙은 곧 옷을 갈아 입고 보검을 차고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서는 우문한도와 무위도장, 손불사 등이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백리빙은 곧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심목풍이 왔어요?”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곧 올 겁니다. 낭자께서는 영당의 휘장 뒤에 숨어 있다가 제가 부를 때 나오시오.”
백리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휘장 뒤로 가서 앉았다.
우문한도는 이 영당을 설계하는데 상당히 머리를 쓴 것이었다. 휘장 뒤에는 캄캄하기 이를 데
없어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 뒤를 볼 수가 없게 돼 있지만 반대로 휘장 뒤에서는 영
당의 전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환히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우문한도가 낮은 소리로 말힌다.
“악소채와 옥소랑군은 이미 함께 떠났으므로 현재로서는 손노선배님이 싱목풍에게 도전하는 방
법밖에 없소. 그러나 심목풍이 만약 도전에 응하지 않는다면…”
손불사가 말을 가로챘다.
“이 늙은 거지는 지금부터 당신의 지시에 따르겠소.”
우문한도가 말을 이었다.
“만약 심목풍이 응한다면 노선배님께서는 조심해서 신뢰(神雷)를 터뜨리십시오.”
손불사가 말을 받았다.
“그런데 이 늙은 거지는 싸우는 도중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미처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르
니 여러분께서 역시 도와주어야 할 것이오.”
우문한도는 간단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우문한도는 무위도장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도장께서도 나서야 할 것 같소. 하지만 그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되오. 혹시나
그가 갑자기 손이라도 쓸지 모르니까…”
이 때 갑자기 초곤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화산장의 심대장주께서 오셨소이다.”
무위도장이 주렴을 젖히면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백리빙이 휘장 너머로 바라보니 심목풍이 네 사람을 거느리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금화부인과 남옥당 외에 한 사람은 붉은 가사를 입은 화상이었는데 그는 수중에 한 쌍의 구리
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청삼을 입은 안색이 창백한 젊은이로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
았다.
무위도장은 합장을 하고 심목풍 일행을 맞았다.
“심대장주는 약속을 잘 지키는군요.”
“이 심모는 좀 일찍 온 것 같소…”
심목풍은 시선을 돌려 사방울 두리번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악낭자는 지금 어디 있소?”
“심대장주께서는 꼭 악낭자와 싸워야겠소?”
“그건 이 심모의 의견이 아니오. 다만 나의 몇 분 친구들이 모두 악낭자를 만나려 하고 있을 뿐
이오.”
무위도장은 안색이 창백한 소년을 힐끗 바라보았다.
“여러분들께서 꼭 악낭자를 만나시겠다면 수고스럽지만 좀 기다리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심목풍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남옥당이 말을 가로채고 나섰다.
“악소채가 도대체 여기에 있소, 없소?”
무위도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악낭자와 여러분이 약속을 할 적에 빈도가 보증이라도 섰단 말이오? 마치 빈도에게 악낭자를
내놓으라고 몰아 세우는 듯하니 좀 지나친 것 같구려!”
이 때 손불사가 갑자기 휘장 뒤에서 나타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심목풍, 이 늙은 거지를 알아 보시겠소?”
“개방의 장로이시며 일대의 협인이신데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소?”
손불사가 말을 받았다.
“원 별말씀을… 이 늙은 거지는 곧 흙으로 돌아갈 나이이며 너무 오래 살았으므로 이제는 산다
는 것이 오히려 지겹소이다. 그래서 내 죽기 전에 무림 동도를 위해서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생
각이오.”
“대명을 날릴 만한 일이라도 있소?”
“이 늙은 거지는 먼저 심대장주와 생사의 판가름을 하고 싶소. 서전(序戰)을 벌이잔 말이오. 그
러나 심대장주께서 이 늙은 거지의 도전을 받아 줄 용기가 있을는지…”
심목풍은 의외인 듯 미간을 찌푸렸다.
“손형, 나와 싸우고 싶단 말이오?”
“그렇소. 그리고 어느 쪽이든 죽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기로 함이 어떻소?”
심목풍은 두 눈에 광채를 번쩍이며 영당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형의 호기에는 탄복했소이다.”
손불사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도전을 받아주시는 거요?”
심목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아직 아니오.”
손불사는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까닭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오.”
손불사는 화를 벌컥 냈다.
“그렇다고 도전에 응하지 않는단 말이오?”
“일이 상식에 벗어나는 것을 보니 반드시 무슨 음모가 있을 것이오. 손형이 정녕 싸우고 싶다면
소제는 다른 사람을 지정해서 함께 어울리도록 해 주겠소…”
손불사가 채 대꾸도 하기 전에 심목풍이 홍의화상을 가리켰다.
“대사께서 수고해 주실 것이외다.”
그러자 홍의화상은 성큼 앞으로 나서며 심목풍을 가로막았다.
“귀하가 싸우기를 원한다면 소승이 모시겠소.”
손불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문한도의 예측은 과연 보통 사람과는 다르구나. 그러고 보니 이 늙은 거지는 진 것이 틀림없
군.’
손불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심목풍! 대가 만일 이 늙은 거지의 도전에 응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강호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요.”
그러자 심목풍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장부는 천추의 대업을 다툴 뿐이지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릴 필요는 없소.”
홍의화상은 이미 수중의 갈고리를 휘두르며 냉랭하게 말했다.
“먼저 소승을 누른 다음 심대장주께 도전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말을 마치자 곧 몸을 번쩍이더니 손불사에게로 육박해 왔다. 그리고는 손을 휘둘러 한 줄
기의 금망(金芒)을 그려내는데 날카롭기 그지없으며 또한 오싹한 살기가 느껴졌다. 손불사는 깜짝
놀라서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화상은 냉소를 터뜨리고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쌍갈고리를 휘둘러 좌우에서 공격해 들어
왔다.
손불사는 재빨리 양장을 쳐냈다. 투 줄기의 강력한 암경이 밀려나가 화상의 공격을 막았다.
이 틈에 손불사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외쳤다.
“손을 멈춰라!”
홍의화상은 쌍갈고리를 내리면서 말했다.
“소승은 일찍부터 늙은 거지의 이름을 들어왔지만 이처럼 싸움을 겁내는 비겁한 인물인 줄은 몰
랐소.”
손불사는 비록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억지로 분을 달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늙은 거지가 심대장주의 말을 들어 보았을 때, 그대는 아직 이 늙은 거지와 싸울 자격이 없
소.”
홍의화상은 벌컥 화를 냈다.
“먼저 소승을 누른 다음 큰소리를 쳐도 늦지 않소.”
손불사는 몸에 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신뢰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혹시 그 신뢰가 갈고리에
닿아서 폭발할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돌아서서 휘장 뒤로
들어갔다.
홍의화상이 왼손을 쳐들었다. 값자기 갈고리가 공중에서 맴돌더니 한 덩어리의 금망으로 화해
곧장 기습해갔다.
그러자 무위도장이 장검을 휘둘러 한 아름의 검망이 공중에서 번쩍였다.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리며 홍의화상이 던진 갈고리가 장검엔 부딪쳐 밀려났다.
홍의화상이 왼손을 쳐들어 다시 날아오는 갈고리를 잡아 챘다.
눈깜짝할 사이에 이들 두 사람은 각자 자기의 솜씨를 나타냈다. 영당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
은 은근히 칭찬해 마지않았다.
홍의화상은 갈고리를 다시 받아 든 후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무위도장이오?”
무위도장은 장검을 짚고 앉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소. 빈도가 바로 무위도장이오. 그런데 대사의 법명은?”
홍의화상은 역시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승은 일정한 거처가 없거늘 법명은 밝혀서 무엇하겠소.”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현재 무당파 중에서는 도장의 검술이 제일 높다고 하니 소승은 한 번 가르침을 받을까 하오.”
무위도장이 대답했다.
“대사의 갈고리를 던지는 솜씨가 제법이어서 소림의 절기 회선비발과 흡사한데…”
홍의화상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소림 말고도 천하에는 절기가 많습니다. 도장께서는 손을 쓰시오.”
그가 소림의 제자라는 것을 끝내 시인하지 않자 무위도장은 하는 수 없이 장검을 휘두르며 입을
열었다.
“대사께서 성명을 밝히려 들지 않으니 우리는 결국 무공으로 승부를 가리는 수밖에 없구려!”
무위도장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 홍의화상은 솜씨가 비상하였으므로 무위도장은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조금도
경시하지 않았다. 그는 암암리에 진기를 모아 더욱 경계를 강화했다.
무위도장은 화상의 앞 삼 보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때 홍의화상은 쌍갈고리를 교차시켜 쳐들었다. 그 모습이 아주 괴상했다.
무위도장은 검을 비스듬히 내밀었다. 그것은 곧 태극혜검 중의 첫머리 초식이었다.
쌍방은 피차가 모두 공력을 집중시키고 있었으므로 일단 초식이 발출되면 무시무시한 일격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막 공격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불호(佛號) 소리가 들려오며 한 사람이 나타
났다
“도장께서는 손을 멈추시고 뒤로 물러서기 바라오.”
무위도장은 그 자세대로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곧 회색 가사를 입을 한 노승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 노승은 손에 계도(戒刀)를 들었는데 나
이는 예순 가량 되어 보였다.
그는 바로 소림의 고승 정광대사(正廣大師)였다.
무위도장은 낮은 소킥로 물었다.
“대사께서 어떤 일로?”
“소승은 그 대사가 갈고리를 날리는 법이 제법일 뿐만 아니라 바로 도장의 말씀대로 우리 소림
회선비발이므로 도장을 대신해서 그와 한 번 겨뤄 보려는 거요.”
무위도장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빈도가 양보하겠소.”
정광대사는 수중의 계도를 눕혀서 앞가슴에 받들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사실은 우문한도가
휘장 뒤에서 영당 안의 상황의 변화를 살펴보고는 암암리에 모든 지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손불사는 이미 휘장 뒤로 들어가 우문한도의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품 속의 폭약을 꺼
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선생의 선견지명에 이 늙은 거지는 탄복할 뿐이조. 이후부터는 선생의 명령에 따르겠소.”
손불사는 공손한 태도로 폭약을 우문한도에게 건네 주었다. 우문한도는 미소를 지으면서 신뢰를
받아들였다.
“아마 오늘의 싸움에서는 이 신뢰를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소이다. 소대협이 이미 영당에 있소.”
손불사는 다시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디에 있소? 이 늙은 거지의 눈에는 어째서 보이지 않을까?”
“만약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영당 문 앞에 서 있는 황삼을 입을 노인이 바로 소대협일 거
요.”
손불사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과연 영당 입구에 예순 살 가량 돼 보이는 노인이 죽장을 짚고
서 있었다.
그러나 손불사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단정할 수 있소?”
우문한도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죽장을 보시오. 아주 새 것이오. 대나무 밭에서 방금 잘라 온 것 같지 않소? 만약 진짜 노인의
지팡이라면 그렇게 새 것일 리가 없소.”
손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탄복했소. 정말 탄복했소.”
그러나 손불사는 갑자기 양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심목풍이 알아채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직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소.”
“그렇다면 심목풍이 선생보다 그 지략에 있어 떨어진단 말이오?”
우문한도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이미 오늘 오전 중에 소대협이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심목풍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오.”
손불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이 때 정광대사는 홍의화상의 앞에 나서며 경멸에 찬 어조로 말했다.
“소림파는 무림의 정의를 위해 싸워 왔을 뿐만 아니라 역대의 선사(先師)들 중 이를 위해 뜨거
운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분들이 적지 않소.”
홍의화상은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소림파의 일이거늘 소승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그러자 정광대사는 엄숙하게 그를 꾸짖었다.
“그대가 만일 얼굴의 인피가면을 벗는다면 내 당장 그대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소.”
홍의화상은 역시 그런 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승은 날 때부터 이와같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대사께서는 너무 신경을 쓰시지 말기
바라오.”
정광은 나직이 염불을 외었다.
“그럼 그대의 발법은 소림의 무공이오?”
홍의화상은 냉랭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불문의 사람은 선장을 사용하지 않으면 계도나 비발 종류를 사용하기 마련이며, 그 장법
이나 발법에 있어서도 역시 별 차이가 없거늘 대사께서는 어찌 저를 무조건 소림의 출신이라고
우기는 거요.”
정광대사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대가 정녕 소림사의 출신이 아니라면 소승은 이를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오.”
홍의화상은 잠시 어리둥절하는 눈치더니 이어서 곧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소승의 출신을 따지기 전에 그대는 먼저 소승의 갈고리를 누른 다음 얘기를 하시오.”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갈고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쌍갈고리는 두 줄기의 차가운 빛을
발하며 정광대사의 좌우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정광대사는 냉소를 한 다음 계도를 휘둘러 지용금련(地勇金蓮) 일초를 쳐내니 검빛이 번쩍이며
곧 장검은 홍의화상의 앞가슴을 향해 찔러갔다.
모두들 이 광경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하는 싸움 방식이구나. 정광대사의 이 한 칼은 이미 급소를 노리고 있
지만 거기에 못지않게 홍의화상의 쌍갈고리도 역시 정광대사를 죽이겠구나…’
무위도장조차도 깜짝 놀라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화상들은 정말 목숨을 내걸고 싸울 셈인가?’
이 때였다. 갑자기 흥의화상이 양 손을 거두며 쌍갈고리를 회수하여 재빨리 두어 걸음 물러났다.
정광대사가 냉소를 터뜨렸다.
“그대는 소림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발법은 역시 소림의 것이구려,”
홍의화상은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쌍갈고리를 휘두르며 재빠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금빛을 번쩍이며 종횡무진하게 나는 갈고리 공세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정광대사 역시 재빨리 수중의 계도로써 반격을 전개했다. 두 사람의 동문고수가 한바탕 격투를
전개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홍의화상이 휘두르는 한 쌍의 갈고리가 정광대사를 갈고리 그림자 속으로 몰아
넣은 것 같았다. 그러나 정광대사는 겉으로는 허술한 것 같았지만 기실 홍의화상의 갈고리를 제
어하고 있었다.
보통 강호의 사람들은 이 싸움의 내막을 잘 몰랐지만 무위도장과 같은 역전의 고수들은 정광대
사가 이미 홍의화상의 갈고리를 누르고 초마다 기선을 제압하여 흥의화상의 갈고리는 맥을 못 추
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목풍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심목풍은 곧 양미간을 찡그리며 큰 소리로 외쳤
다.
“손을 멈추시오!”
홍의화상은 즉시 힘껏 쌍갈고리를 휘둘러 정광대사의 계도를 막으며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정광대사는 정색을 하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왜 싸움을 피하는 거요?”
“두 분의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을 테니 싸움을 계속해 봤자 피차 상할 따름이오?.”
정광대사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심대장주는 눈이 삐었구려! 소승은 이미 승산이 있었는데.”
심목풍은 껄껄 너털웃음을 웃어젖혔다.
“아, 그랬던가요? 저는 전혀 몰랐구려.”
정광대사는 홍의화상에게 시선을 옮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소림 일문은 강호에서 언제나 무림 동도의 존경을 받아 왔으며 역대에 걸쳐 모두 무림 정
의를 수호하는 것을 스스로의 임무로 생각해 왔소. 무수한 사조(師祖)들이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헌신짝같이 그 보람이 오늘날의 소림을 만들어 놓았소. 그런데…”
이 때 심목풍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남형, 그대가 가서 이 소림의 고승과 맞서 보시오.”
그 말을 듣자 남옥당은 곧 검을 뽑아 들고 정광대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변변치 못한 남옥당은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싶소.”
정광대사는 그의 나이가 아직 어린 것을 보자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대가 소승과 손을 쓰려고?”
남옥당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 대사께선 조심하시오.”
남옥당은 말을 마치자 곧 손을 휘둘러 양검을 찔러냈다. 그러자 그의 검끝에서 두 송이의 검꽃
이 밀려 나와 곧장 정광대사의 두 군데의 대혈을 향해 날아갔다.
정광대사는 남옥당의 검세가 놀라을 만큼 빠른 것을 보자 곧 뒤로 물러나서 칼을 휘둘러 맞섰
다.
남옥당은 일단 장검을 휘둘러 기선을 제압하게 되자 속공을 가하여 무수한 검꽃을 뿌리며 끊임
없이 정광대사의 급소를 향해 찔러댔다.
정광대사는 비록 수중의 계도를 힘껏 휘둘러 열세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지만 남옥당의 검세의 변
화는 너무도 괴이했고, 또한 초마다 정광대사의 요혈을 노려 왔으므로 정광대사는 수비에 급급하
여 반격을 가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싸움은 격렬하여 눈깜빡할 사이에 오십여 합을 싸웠다.
남옥당의 검세는 시종 장강대하처럼 밀려 왔고, 정광대사 역시 안간힘을 써서 버티었다. 그러나
정광대사는 이미 기진맥진할 단계였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우문한도는 휘장 뒤에 숨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가 백리빙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광대사의 공력은 남옥당에게 뒤지지 않지만, 워낙 휘둘러대는 남옥당의 활발한 검세에는 당
하지 못할 것 같소. 곧 다른 사람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이십여 합 내에 반드시 남옥당의 검세
에 상하고 말 것이오.”
“그렇다면 제가 나가 볼까요?”
“소대협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달리 무슨 속셈이 있는 것 같소.
그러니 낭자는 아직 손을 쓸 시기가 아니오.”
백리빙이 말을 받았다.
“그는 어차피 심목풍을 상대해야 할 텐데 그리 쉽게 손을 쓸 수가 있겠어요?”
“무위도장이라면 충분히 남옥당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므로, 내 생각 같아서는 그가 나설 것 같
소.”
이 때 과연 무위도장이 일어섰다.
“대사, 손을 멈추시오.”
정광대사는 이미 남옥당의 검세에 몰려 연방 후퇴하고 있던 차에 무위도장의 고함 소리를 듣자
곧 뒤로 물러나려 했다.
이 때 갑자기 남옥당의 냉소가 터져 나왔다.
“소대로 물러서시겠소? 너무 싱겁지 않소?”
그는 이렇게 외침과 동시에 갑자기 일초를 쳐냈다. 순간 그 일검은 정광대사의 왼팔을 찔렀다.
정광대사의 왼팔에서 선혈이 뿜어 나왔다.
무위도장은 이 광경을 보자 대갈일성을 하며 재빨리 뛰어나가 장검을 휘둘렀다. 한아름의 싸늘
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것이 바로 무당파 검술의 정화인 태극혜검 중의 성하도괘(星河倒掛)인 일초였다.
이 일초는 숱한 검빛을 유성처럼 번쩍이며 무수한 검꽃을 뿌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눈 뜰 새가
없도록 몰아쳐 갔다.
그러나 남옥당은 장검을 휘둘러 해시신루(海市蜃樓) 초식을 전개하여 한 조각의 검막을 형성하
여 몸을 보호했다.
순간 쨍그렁! 소리를 내면서 두 검이 맞부딪쳤다. 검빛은 사라지고 사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
다.
남옥당의 장삼이 검에 찢어지고 그의 몸 두어군데 가벼운 상처가 생겼다.
심목풍이 냉랭하게 웃어젖혔다.
“당당한 무당파의 장문인이 암기습을 하다니 사람들의 저주가 무섭지도 않소.”
무위도장도 역시 냉소를 터뜨렸다.
“심대장주께서 차륜전법을 지시한 처사는 옳다고 생각하시오.”
심목풍은 두 눈에 광채를 발하며 주위를 살피다가 영당 입구에 서 있는 황삼을 입은 노인에게
멈췄다.
그러나 그는 곧 시선을 다시 남옥당에게 돌렸다.
“남형의 상처는 어떻소?”
“옷이 찢어지고 약간 긁혔을 뿐이니 아직 싸울 기력이 있소.”
남옥당은 말을 마치자 갑자기 앞으로 두어걸음 나가서 검으로 무위도장을 가리켰다.
“도장은 이 남모와 결투를 벌일 용기가 있소?”
무위도장은 코웃음을 쳤다.
“귀하야말로 이 빈도와 결전을 벌일 용기가 있소?”
“물론이오. 만약 도장께서 저와 대결할 용기가 없다면 물러가서 악낭자를 내보내시오.”
무위도장은 담담하게 웃었다.
“귀하가 여기에 온 뜻은 바로 악낭자를 만나고 싶어서인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악낭자는 귀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남옥당이 성난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시오?”
무위도장은 냉소를 터뜨렸다.
“악낭자가 그대를 만나려고 했다면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오.”
남옥당의 안색이 돌변했다.
“악낭자가 정말 떠났소?”
무위도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소. 그녀에게는 그대들과 만나려고 한 약속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갔는지도 모르오. 그
리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단지 그대들이 보기 싫어서 이곳을 떠났는지도 모르고…”
금검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