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79
179. 반토막의 옥비녀
무위도장은 두 사람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자 나직한 음성으로 전엽청에게 말했다.
“자네는 문 옆에 지키고 있다가 저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는 즉시 우리에게 알려 주게.”
전엽청이 대답하고 곧 몸을 돌려 나갔다. 무위도장이 그에게 덧붙여 말했다.
“조심하게, 포노선배님은 의심이 많으신 분이니 그에게 눈치채지 않도록 주의하게.”
무위도장은 소영, 백리빙, 우문한도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우문한도가 물었다.
“도장께서는 제가 사람을 보내서 술좌석을 마련케 했다고 하셨는데 무위도장이 빙과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이미 빈도가 사람을 시켜서 처리토록 하였으니 우문선생께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우문한도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도장께서는 매우 깊은 걱정이 있는 듯합니다.”
“세 분께서도 어서 앉으십시오. 빈도는 재삼 생각을 한 뒤 심중에 품은 생각을 미리 이야기하기
로 결정했소. 장미대사는 빈도에게 적당한 기회를 봐서 말하도록 하였지만 지금은 결코 그 적당
한 시기라고 할 수 없소.”
우문한도가 물었다.
“그런데 미리 말해도 무방할까요?”
“빈도의 생각으로는 소대협과 우문선생의 지혜로 어쩌면 일찍이일이 해결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토록 엄중합니까?”
“빈도는 간단히 경과를 설명하겠으니 세 분께서 전반의 내정을 이해하여 도움이 있으시기 바랍
니다.”
소영이 그의 말을 받았다.
“경청하겠으니 어서 말해 보십시오.”
무위도장이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빈도가 마가장을 떠나 칠성담으로 온 것은 바로 장미대사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었소.”
우문한도가 물었다.
“도장께서는 우리가 기다리기 전에 장미대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 까?”
“없습니다. 빈도 등이 이곳에 온 후 장미대사는 줄곧 우리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던 것이오. 빈도
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 곳에서 기다렸소이다. 그 사이에 자연 짜증도 났었으
나 우리는 조용히 참아 오다가 오늘에서야 장미대사를 만날 수 있었으며 겨우 그의 은밀한 사연
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오.”
우문한도가 다시 질문을 했다.
“장미대사는 어째서 그토록 늦게 여러분과 만났을까요?”
무위도장이 대답했다.
“아아! 말하자면 매우 비통한 일입니다. 장미대사는 몹시 엄중한 내상을 입었으나 그의 수십 년
쌓은 정심한 내공의 힘을 빌어 억지로 상세를 누르며 꼼짝 못하도록 하여 오늘의 이 소원을 이룬
뒤 겨우 손을 떼고 죽어간 것입니다.”
우문한도가 물었다.
“그는 금궁에서 부상을 입은 뒤 지금까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 상세가 이제 발작한 것입니까?”
무위도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우리를 초청한 다음 날 밤 어떤 자와 싸움을 해서 발작을 한 것이오.”
우문한도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로군요?”
“그렇소. 보름도 되지 않은 일이오.”
소영이 물었다.
“누가 이곳에 장미대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누가 그와 대전할 만한 사람이 있단 말입
니까?”
“천축의 한 고승이라 하오. 두 사람은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그 고승은 장미대사의 손에 죽었
지만 장미대사 역시 부상을 입었으며, 그 상처가 몹시 중하였기에 그는 우리를 이곳에 초청하여
포일천과 회담하기 전에 그 시일을 이용하여 검술을 우리에게 지도할 계획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
소. 그것은 그가 모든 정력을 모아 자기의 생명을 연장시켜 오늘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오.”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그랬군요.”
무위도장이 천천히 소매 속에서 흰 비단에 싼 두루마리를 꺼내며 말했다.
“소대협, 이것을 보시오.”
소영이 그것을 받아 들고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무위도장이 말했다.
“장미대사가 남긴 검초이오. 또한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준비했던 검법이오.”
“이것을 제가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소대협은 검법이 절묘하여 우리가 이해 못하는 점을 해독할 수도 있지 않소이까?”
소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두루마리를 펴서 두어 번 훑어보고 말했다.
“단지 삼 초의 검법뿐이군요.”
“옳습니다. 장미대사도 빈도에게 말하긴를 여기에 적혀 있는 검법은 무당태극혜(武當太極慧) 중
의 삼검 절학이니 우리의 무당 검법을 도로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것뿐이라고 했소.”
“그 장미대사는 과연 심지가 깊은 분이군요. 그런데 그가 어디서 귀문의 삼검 절학을 찾았을까
요?”
“금궁 안에서 빈도의 스승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그렇군요.”
소영은 천천히 두루마리를 무위도장에게 넘겨 주며 말했다.
“이것은 도장께서 보관하십시오. 후일 도장께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으면 저는 함께 연구해
보겠습니다.”
무위도장이 그것을 받아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장미대사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이 삼 초의 검법은 태극혜검에 귀입한 뒤 곧 그 검의 위력을
몇 배 더 증가시켰다 하오. 그것은 이 삼검법이야말로 그 검법 중의 정수라는 것이오.”
“도장께 축하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빈도뿐 아니라 소대협과도 관계가 있는 일이외다.”
“저와 관계가 있다니요?”
“장미대사께서 악소채의 말을 들추었으니 소대협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닙니까?”
“악누님이 어쨌습니까?”
“장미대사는 비록 강호에서 활동을 과히 안했지만 가끔 강호의 일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으므로
그가 알고 있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소영은 악소채의 일을 항상 걱정하고 있었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그쳐 물었다.
“악누님이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장미대사는 악낭자를 들출 때 세심모사도 들추었소. 그러나 빈도는 아무리 머리를 짜보아도 그
세심모사가 어느 곳에 있는지 생각해 내지를 못하겠소.”
소영은 심중으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 장미대사가 혹시 우리 악누님이 그 세심모사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렇소. 악낭자는 잠시 그곳에 기거하고 있다 하오. 장미대사는 자세한 말을 안했으나 빈도의
추측으로는 우리가 포일천을 처치하지 못할 때 그 세심모사의 여주인에게 부탁하라고 하는 듯하
였소. 장미대사는 또한 나에게 반토막의 옥비녀를 주며 말하기를 만약 세심모사의 여주인이 응낙
하지 않을 때 이 반토막의 비녀를 주라고 했소.”
우문한도가 입을 열었다.
“이 반토막의 옥비녀를 주면 세심모사의 주인이 응낙한단 말입니 까?”
“아마 그럴 것이오. 그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으며 빈도 역시 더 이상 묻지 않았소.”
우문한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세심모사라? 그런 이름은 생전 듣지 못한 것이군요.”
소영은 무위도장과 우문한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곳을 압니다.”
무위도장이 말했다.
“소대협께서 아시면 됐습니다. 만약 필요하면 하는 수 없이 그곳의 주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소
이다.”
소영의 뇌리에는 악운고의 유채를 맡길 때 만났던 노파를 생각했다.
‘그럼, 그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강호에서 은거한 기인이란 말인 가?’
무위도장이 말을 이었다.
“그 장미대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만약 우리의 힘만으로 포일천을 상대할 수 있다면 그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했소.”
우문한도가 물었다.
“그 반토막의 옥비녀는 어떻게 하고요.”
“은밀한 곳에 묻어 버리든지 강물 속에 던져 버리든지 할 것이오.”
“그 반토막의 옥비녀가 세심모사의 주인으로 하여금 강적을 상대하도록 응낙을 받아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평범한 물건은 아니거늘 어찌 아무렇게나 버릴 수 있습니까?”
“나도 우문선생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장미대사에게 물어 보았소.”
“그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그분은 이 반토막의 옥비녀는 원래 평범한 물건이지만 그 가치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다고 하더
군요. 또한 그것은 한두 사람에게 국한되어 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가치는 사라진다고 했소.”
“이것은 일종의 신물(信物)이며 장미대사와 세심모사 주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빈도도 그렇게 생각하오.”
소영이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도장, 심목풍의 행적은 아직도 도장의 감시하에 있는지요?”
무위도장이 마리를 저었다.
“심목풍은 한 번 모습을 나타낸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났단 말입니까?”
“빈도의 생각으로는 그는 아직 이 부근에 있으며 떠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 부근은 산이 높고 우거져 만약 우리에게 단서가 없다면 무턱대고 산 속을 뒤질 수가 없는
노릇이오.”
“빈도의 추측으로는 심목풍은 이곳에서 한 개의 분타(分舵)를 경영하며 그 인원수는 적지 않다
고 봅니다. 양식도 그곳에서 조달하는 모양이며 그들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소.”
“심목풍은 매복의 명수인데 도장께서는 어째서 그가 이 칠성담 부근에 매복을 설치하지 않았다
고 보십니까? 어쩌면 이미 도장의 행적은 심목풍의 이목에 들었을지 모릅니다.”
소영의 이 말에 무위도장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말했다.
“소대협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빈도에게는 다른 견해가 있소이다.”
우문한도는 묵묵히 두 사람의 논변을 듣고 있었다. 무위도장은 말을 다시 계속했다.
“그 견해를 들려 주십시오.”
“칠성담은 이 산중의 한 풍경에 불과하여 무림의 인물인 이곳에 오는 일은 거의 없어 심목풍의
지략이 아무리 높다 해도 그가 이곳에까지 매복을 설치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소. 내가 이곳에 온
뒤에 제자 열 명에게 행상과 어부로 변장케 하여 사방에 배치시켜 놓고 행적이 수상한 자를 감시
토록 했는데 아직 그런 인물을 발견치 못했소.”
“도장께서 그렇게 말하시니 염려 없군요. 그런데 도장께서는 언제쯤 심목풍을 찾아 낼 수 있다
고 봅니까?”
“그것은 확정하기 어렵소. 빈도의 짐작에 그들이 먼젓번 조달한 양식이 다 떨어질 때가 되었으
니 사, 오 일 안에 응당 다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니 열흘은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오.”
우문한도가 말했다.
“소대협은 그 세심모사에 한 번 가보고 싶으시군요?”
“그렇소. 내가 그곳에 가길 희망하는 것은 악누님을 만나고 또한 악운고의 유체를 보기 위해서
입니다.”
무위도장이 그의 말을 받았다.
“소대협은 여기서 그곳까지 왕복하는데 며칠이나 걸린다고 보십니까?”
“순조롭게 갔다온다면 칠 일 내지 십 일이면 갔다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변고를 만난다
면 알 수 없지요.”
무위도장은 난처한 눈길을 우문한도에게 돌렸다.
“우문선생은 이 일에 무슨 고견이 있소?”
“내 마음 속에는 두 가지의 명백치 못한 일이 있으니 무어라고 할 수 없군요.”
“무슨 일인데요?”
“하나는 포일천이 정말 장미대사의 말대로 심목풍과 금광대사를 처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포일천의 무공이 그들을 당해 낼 수 있는지, 이것들을 해결한 뒤 소대협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포일천의 무공을 논한다면 수십 년 전 무림에서 뛰어난 고수 중의 하나이며 심목풍과 금광대사
는 얼마 전에 부상했으니 과히 힘들지 않을 것이오.”
“만약 심목풍과 금광대사가 합세하여 공격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빈도도 그것을 생각해 보았소. 정말 그렇게 되면 빈도는 두 사제와 협력해서 포일천을 돕겠소.”
“포일천이 도장의 안배를 들을 것 같습니까?”
“빈도가 그것을 미리 말하지 않으면 될 것이며 결전장에서 정세를 그렇게 이끌어 볼 것이오.”
“도장께서 그런 계략이 있어 포일천이 그것을 응낙한다면 소대협이 이곳에 남아 있든 없든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오.”
“장미대사의 말대로 포일천이 장미대사의 죽음을 안다면 그 후의 일이 문제지요. 그러나 그는
장미대사의 죽음을 한 달 내에 알지는 못할 것이오.”
“포일천은 의심과 질투가 대단하고 또한 남의 감언을 좋아하므로 그는 수시로 마음이 변하니 이
점을 도장께서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장미대사는 그를 나쁘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질투심이 많고 변절하기 쉬운 두려운 존재요. 만약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금궁
의 참사를 빚어내지는 않았을 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소영이 말했다.
“우문선생의 말이 옳소.”
무위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빈도가 걱정하는 것은 포일천이 심목풍과 금광대사를 죽인 뒤에 변심한다면 나의 힘으로는 그
를 굴복시킬 수 없는 것이오.”
“무엇 때문에 꼭 그의 목숨을 뺏는단 말입니까? 차라리 그를 포섭하여 좋은 일을 하게 하는 것
이 어떻소?”
소영의 이 말을 우문한도가 받았다.
“장미대사가 죽은 줄로 그가 안다면 고삐가 풀린 말처럼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위험 인물
입니다.”
“장미대사가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것이므로 빈도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문한도가 소영에게 향해 말했다.
“소대협도 급히 세심모사에 가야 되겠군요.”
“나도 정세를 보니 역시 한 번 갔다 와야 될 것 같소.”
“지금의 상태로는 심목풍을 죽이는 데 소대협의 도움이 필요 없으니, 내가 이곳에 남아 있을 테
니 소대협은 백리낭자와 함께 그곳에 갔다 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문형의 지략이 절세의 것이니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러므로 빈도는 소대협을 붙잡지 않겠
소.”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만약 세심모사에 아무 변고가 없으면 곧 돌아오겠소.”
우문한도가 말했다.
“소대협은 다시 이곳에 돌아올 필요가 없소. 나는 이곳의 소식을 모두 마가장에 보낼 것이오.”
“여러분은 몸조심하십시오.”
소영은 백리빙과 함께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무위도장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직이 우문한도에게 말했다.
“그 얽매인 정사가 영특한 인물을 파멸시키지 말기 바라겠소.”
“파멸할 리는 없겠지만 그 복잡한 여인들의 애정 사이에서 그는 무척 고심하고 있소.”
그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소영과 백리빙은 길을 재촉하여 이튿날 해질 무렵, 세심모사에 당도했
다.
세심모사는 칠성담과 불과 이백여 리 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인적이 매우 드문 곳이었다.
먼 산에 숲이 우거지고 봉우리의 기복이 심하며 멀지 않은 대나무 숲속에 한 채의 초가집이 보
였다.
소영은 육 년 전에 악소채를 따라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노파의 차가운 모습이 눈
에 생생했다.
옛곳에 다시 오니 머릿속에 추억은 새로와 그 노파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것은 세심모사 안에
는 삼척동자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는 냉랭한 비꼬움이었다.
그는 백리빙을 돌아보며 말했다.
“빙아! 저 집의 여주인은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 하니 네가 들어가서 내 대신 일을 해다오.”
“무슨 일인데요?”
“그곳에 닿기 전에 다시 말하자. 만약 그 여주인의 생각이 변해서 나를 들어오게 할지도 모르니
까.”
“그 여주인은 젊은가요?”
“늙고 괴상하며 사람을 냉랭하게 대하니 넌 많이 참아야 한다.”
그들 두 사람은 푸른 대나무 숲을 돌아가 그 초가집 앞에 당도했다. 나무 문이 확 닫혀 있고 냉
기가 도는 것은 육 년 전과 다름없었다.
소영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참 후에 집 안에서 낮은 음성이 났다.
“누구요?”
소영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후배 소영이 왔소이다.”
집 안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외객을 만나지 않으니 귀하는 돌아가시오.”
“후배는 이곳에 사람을 찾으러 왔으니 노선배님께서 관례를 깨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나무문이 삐걱 열리며 백발이 성성하고 쪼그라진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그녀
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백리빙은 그 노파를 보는 순간 흠칫하고 놀랐다. 노파는 싸늘하게 물었
다.
“누구를 찾소?”
“악소채 낭자를 찾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눈을 번쩍 뜨더니 백리빙을 싸늘하게 쏘아 보았다.
“너는 누구냐?”
“후배 백리빙입니다.”
“이곳에 그녀는 없다.”
노파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소영은 다시 문을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저는 그녀가 이곳에 있는 줄 압니다. 노선배님은 어찌 천 리 밖에서 온 사람을 이토록 박대하
십니까?”
그러자 나무문이 다시 열렸다.
“내가 이곳에 없다면 없는 줄 알아라!”
“악운고의 유체는요?”
“악운고의 유체는 여기에 있다.”
“후배는 악운고의 유체를 뵙고 싶습니다.”
“세심모사는 남자를 들여놓지 않는데 너는 그 예를 깨려고 하느냐?”
“후배는 악운고에게 은혜가 깊은데 근 칠 년 간이나 그 유체를 뵙지 못했소. 그러니 노선배님께
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
“나는 관례를 깨뜨릴 수 없다.”
“허락을 얻는 방법 외에 집 안에 들어갈 다른 방법은 없는지요?”
“방법은 하나 있으나 네가 그런 재간이 있는지…”
“무슨 방법입니까?”
“무공으로 내가 그어 놓은 금지를 돌파하는 것이다.”
“아아! 어찌 제가 노선배님과 싸움을 하겠습니까?”
“어려움을 알면 물러서는 게 상책이다.”
다시 덜컥 문을 닫았다.
소영은 진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말했다.
“정 그 길밖에 없다면 그렇게 하지요.”
소영이 나무문을 향해 일장을 쳐 내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그러자 음산한 냉소가 들려왔다.
“대담하구나.”
한 줄기의 강력하기 짝이없는 장력이 재빠르게 밀려왔다.
소영은 오른손을 들어 재빨리 그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 장력은 마치 살을 가르는 기세와 같아
소영은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그는 암암리에 생각했다.
‘이 노파는 대단한 내력을 갖고 있구나.’
이 때 날은 차츰 어둡기 시작했다. 소영이 노파를 바라보니 오른손에는 여전히 죽장을 짚고 있
었다. 그 놀라운 장력은 왼손으로 쳐낸 것이 분명했다.
소영은 포권을 하고 말했다.
“노선배의 장력에 후배는 감탄합니다.”
“너의 그 나이로 놀랍게도 나의 일 장을 받아 내다니 참으로 뜻밖이로군.”
소영은 이 말에 공손히 절을 했다.
“후배가 오늘날 이처럼 된 것은 모두 악운고의 덕분입니다. 후배는 수 년 간 그 은인인 악운고
를 뵙지 못했으니 선배님은 예를 깨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노파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좋다! 네가 나의 일장을 훌륭히 받아 냈으니 나는 너에게 반 시진만 은덕을 베풀겠다. 시간이
되면 즉시 이곳을 떠나되 만약 오래 끌면 나를 무정하다고 탓하지 마라.”
소영은 뜻밖에 반 시진이라는 긴 시간을 얻어서 매우 기뻤다.
“노선배님의 각별한 호의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후배에게 또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꼬마야! 너는 갈수록 양양하구나.”
“후배와 함께 온 낭자가 있는데 저와 함께 들어 가게 해주십시오.”
“흥, 너는 많은 여자 아이를 알고 있구나? 그렇지?”
소영은 흠칫했으나 곧 부인했다.
“많지 않습니다.”
“너를 따라 온 저 아이는 너와 어떻게 되느냐?”
“그녀는 북천존자의 딸입니다.”
노파는 화를 벌컥 냈다.
“나는 너와 그녀가 어떤 사이냐고 물었지 누구의 딸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후배와 생사를 같이한 벗입니다.”
“너희들의 사이는 좋으냐?”
“남매와 같지요.”
“너는 악소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으냐?”
“그녀를 누님으로 매우 존경합니다.”
노파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다! 그 아이도 들어오게 해라. 그러나 너희들이 함께 들어온다면 나는 시간을 단축하겠다. 나
는 너희들이 물러날 때를 알려 주겠으니 들어가라. 악운고의 시체는 바로 서쪽 방에 있다.”
노파는 말을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노선배님, 감사합니다. 빙아, 들어가자.”
백리빙이 급히 걸어 오며 말했다.
“저는 밖에서 기다려도 되는데요. 제가 들어가면 시간이 줄어 들잖아요.”
“너는 나를 따라 함께 악운고의 유체를 뵈어야 한다. 내가 오늘이 있기까지는 모두 악운고의 은
덕이다. 시간이 촉박하니 어서 들어가자. 초를 갖고 있느냐?”
“있어요. 우문선생이 길을 나서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마침 잘 됐군.”
그들은 서쪽 방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백리빙이 켜든 촛불을 들고 안을 살피니 소
나무로 된 영대(靈臺)가 벽에 바짝 붙어 있고 두 개의 휘장이 늘어져 있었다.
백리빙은 그 안의 등잔에 불을 당겼다.
“이 휘장 뒤에는 분명히 악운고의 유해가 있겠군. 나는 수 년 간 뵈옵지 못했는데…”
소영은 그 휘장을 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서 소복을 입은 악소채가 걸어 나왔다.
소영은 한동안 멍하니 악소채를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누님!”
악소채는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로 답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이 때 백리빙은 급히 다가오며 말했다.
“언니, 저는 언니가 무척 그리웠어요.”
백리빙은 사뿐히 큰절을 했다. 악소채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백리낭자, 어서 일어나요. 내가 어찌 이처럼 과분한 큰절을 받을 수 있겠소. 감당하기 어렵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