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518
518. 한번 기가 꺾일 필요가 있겠군요.
2016년 원숭이해의 첫 거래일 아시아 증시는 피의 월요일을 맞이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국교 단절과 중국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 전체가 3~4%대의 급락을 기록했다.
특히나 중국 상해종합지수는 거래 금지가 풀린 대주주들의 대규모 매도 물량에 대한 우려까지 번지며 242.92포인트, 6.86% 갭하락을 한 채 장이 시작됐다.
이후로도 상해종합지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려 오전장에 중국 증시 사상 처음으로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15분 뒤에 거래가 다시 재개됐지만 지수가 또다시 폭락하자 2차 서킷 브레이크가 내려졌고 오후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날 거래가 마감되어 버렸다.
서킷 브레이크 이후 CSI300 지수가 7% 이상 급등락하면 바로 증시 거래 중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조항에 의한 조치였다.
작년 증시가 폭락하자 국영기업과 상장사 지분을 5%이상 보유한 대주주들에 한해 6개월간 거래를 금지한 조치가 8일에 해제되는 걸 감안할 때 한동안 증국 증시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현재 매매가 동결된 주식 규모가 1조 2,900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팔. 중국 펀드가 수익률이 좋다고 해서 가입했는데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질 못하네.
↳설마 더 떨어지지는 않겠죠?
↳브릭스. 브릭스하면서 좋다고 떠들어대던 전문가들 다 어디 갔냐!!
↳그래도 폭망한 브라질 채권에 비하면 양반임.
↳국장에서 깨져~ 중국 펀드까지 박살 나~ 정말 계좌가 녹아내린다.
↳정말 주식 접어버리고 싶네 TT
유니콘 증권 마포 지점.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건물 계단을 올랐다.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었는지 회사 로고가 작게 가슴에 박힌 점퍼 차림 그대로였다.
김태일은 초조한 얼굴을 하고서 대기표를 뽑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도 거르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라 대기하는 시간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태도였다.
마침내 띵동 하는 벨소리와 함께 자신의 번호가 뜨자 김태일은 얼른 여직원이 앉아 있는 가운데 창구로 갔다.
“오래 기다리셨죠. 뭘 도와드릴까요?”
김태일은 허둥지둥하면서 점퍼 안주머니에서 펀드 통장을 꺼냈다.
“이거 해약하려고요.”
“잠시만요. 음, 유니콘 차이나 투자 펀드시네요.”
여직원은 컴퓨터로 계좌를 확인해 보더니 어머, 하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수익률이 상당히 잘 나오고 있는데요? 지금 해약하면 아깝지 않으시겠어요.”
“무슨 소리예요?”
반면 김태일은 눈을 껌벅이면서 오히려 황당하다는 것처럼 대꾸했다.
“지금 뉴스에서 중국 증시가 크게 폭락했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수익률이 좋다는 겁니까.”
그제야 김태일이 왜 황급히 달려와 펀드를 해약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여직원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아, 중국 증시가 안 좋다는 뉴스를 보고 오신 거네요.”
“예.”
김태일은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만기 된 적금을 유니콘 증권 펀드에 넣었다가 큰 수익을 본 김태일은 마침 회사에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다시 새 계좌를 만들었다.
한번 크게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돈을 불려주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게다가 중국 시장이 뜨고 있으니 유니콘 증권 중국 펀드에 계좌를 만들 때만 해도 설마 폭락이라는 폭탄을 맞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중국 증시가 폭락한 건 맞는데 저희가 운용하는 중국 관련 펀드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아니, 중국에 투자하는 펀드인데 어떻게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겁니까.”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김태일이 눈을 치떴다.
이것들이 설마 내 돈을 떼먹을 생각인가, 하면서 가슴 속에서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돈을 맡긴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정상이었기에 여직원은 차분한 말투로 설명을 계속했다.
“예, 고객님 말씀이 맞는데 폭락 전에 투자했던 중국 주식을 전부 처분했기 때문에 펀드 자산은 전혀 손해 본 게 없습니다.”
“뭐라고요?”
김태일이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중국 주식을 다 팔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김태일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주변 시선을 눈치채고서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상식적으로 중국에 투자한다고 돈을 모은 펀드가 주식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다 팔았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고객님처럼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해주셨는데요. 전혀 걱정하실 게 없어요.”
여직원은 머뭇거리는 것 없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물론 이건 특이 케이스이긴 합니다만, 연초에 중국 증시가 안 좋을 걸 예상하고 저희가 미리 대응한 겁니다.”
다른 증권사의 중국 펀드들은 다 마이너스가 났다는데 유니콘 증권만 손해를 보지 않았다니.
그것도 하락을 예측하고 미리 대응했다는 점에서 김태일은 내심 크게 놀랐다.
“그래요?”
하아, 하고 김태일은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회사에서 다른 동료들이 펀드 계좌를 열어보고 곡소리를 내는 걸 듣고 난 뒤라 더욱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찾으시면 예치 기간이 짧아서 수수료가 많이 나오는데, 이대로 해지해 드릴까요?”
“지. 지금 수익률은 얼마나 되죠.”
“19%입니다.”
“그렇게나요?”
김태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년 중국 증시 폭락 때도 저희 펀드들은 이익을 많이 냈거든요.”
여직원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고객님은 예치 기간이 짧아서 이 정도지 펀드 설정 초기에 들어오신 분들은 수익률이 50%가 훌쩍 넘어간답니다.”
기대한 것 이상의 수익률에 김태일은 입을 헤 벌렸다.
불안으로 쿵쾅대던 심장이 어느새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해지하실 거면 신분증을 준비해 주셔야 되는데…….”
“아, 아니요! 해지 안 할 겁니다!”
김태일이 손을 마구 흔들며 소리쳤다.
여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미소 띤 얼굴로 펀드 통장을 되돌려주었다.
통장을 손에 들고 증권사를 나온 김태일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묻지도 않고 바로 해약했으면 괜히 해지 수수료만 날아갈 판이었다.
“역시 유니콘 증권에 돈을 맡기길 잘했어.”
김태일은 펀드 통장을 다시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펀드에 넣어둔 돈이 얼마로 불어날지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 * *
잠깐 반등하던 중국 증시는 하루 만에 다시 무너지더니 13일 심리적 저지선이던 3,000선까지 깨지고 말았다.
드디어 골드원과 유니콘 증권이 다른 금융회사들과 맺은 CDS 계약의 수익 구간에 들어온 것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재성은 데이비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설마 하다가 정말로 상해종합지수가 3,000을 깨고 내려가니까 CDS 계약을 맺은 곳에서 계속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재성이 살짝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국에서 IT 버블이 터진 것처럼 대폭락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 거겠죠.”
[저 역시 주가 그래프가 흘러내리는 걸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드니 그럴 겁니다.]손에 든 스마트폰을 고쳐 쥐며 재성이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한 건 우리예요. 그러니 목표 지수에 이를 때까지 요청을 무시해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참. 그리고 아이오와 코커스가 다음 달 1일에 열리죠?”
[그렇습니다.]한국하고 달리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은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두 방식으로 진행됐다.
간단히 설명하면 코커스는 해당 정당 당원들만 모여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프라이머리는 당원이 아닌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일종의 개방형 국민경선이었다.
이 두 방식 중에 하나를 선택해 여러 주들이 차례대로 대선후보를 선택했는데 아이오와 코커스가 양 정당이 제일 처음 여는 경선이었다.
“아이오와에서 이기는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겠네요.”
[초반 판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거인 데다가 무엇보다 여기서 이기면 기세를 몰아 대세론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하긴 대선 풍향계라는 별명이 달리 붙은 것이 아니겠죠.”
[맞습니다.]“공화당 경선 분위기는 어때요?”
[지금까지 나온 여론 조사를 보면 애런 아서가 아이잭 전 주지사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걸로 나오고 있습니다.]모두의 예상을 깨고 애런 아서는 여론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며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아이오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 같아요?”
[주 지지층인 백인 인구가 많고 농업 종사자가 대부분이라 보수 색채가 짙은 곳이니 아마도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거기다 여론 조사 결과도 높게 나오고 있고요.]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애런 아서가 경선을 다 완주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했던 데이비드였다.
그런 데이비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지금 미국에서 애런 아서가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러니까 공화당 유력 인사들이 내부 총질까지 불사해 가며 안절부절못하는 거겠지.’
처음엔 농담거리였던 것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자 삽시간에 불안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임에도 공화당 유력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비난을 쏟아내며 애런 아서를 깎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애런 아서의 지지율은 점점 더 높아지는 중이었다.
그만큼 미국 내 백인들, 그중에서도 블루칼라와 중산층들의 불만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민주당은 공화당이 본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며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는 게 현재 미국의 대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주당도 미리 불씨를 꺼트리지 못한 걸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
지금은 애런 아서가 본선까지 올라오는 걸 내심 바라고 있을 거다.
사람들의 눈길만 끌 줄 아는 광대 따위는 상대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다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되어버린 후일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재성은 한쪽 머리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애런 아서가 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데이비드의 목소리에 의아해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애런 아서를 지지하는 가장 큰 후원자가 바로 재성 본인이었다.
거기다가 여론 조사 결과까지 좋으니 당연히 애런 아서의 승리를 점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하니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오와 경선이 프라이머라면 애런 아서가 유리하겠죠. 하지만 당원들만 참가하는 코커스니까 조직력에서 앞서는 아이잭 전 주지사가 이길 가능성이 커요.”
재성의 말대로 애런 아서는 오랫동안 공화당에 몸담은 인물이 아니었다.
애런 아서의 본업은 사업가이지 정치 경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다.
거기다가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까지 왔다 갔다 하며 당적을 바꾼 이른바 철새 짓을 한 이력까지 있었다.
그러니 재성의 말대로 조직력 승부라면 밀리는 게 당연했다.
[그럼 큰일 아닙니까.]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에 데이비드가 우려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재성은 자신이 후원하는 애런 아서의 패배를 점치면서도 여유로워 보였다.
“아이오와에서 지더라도 공화당 후보로 본선에 나서는 사람은 애런 아서가 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면서 재성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우리에겐 잘된 일이죠.”
[어째서입니까?]“요즘 높은 지지율로 콧대가 한껏 높아져 있는 거 같은데 이참에 기를 한번 꺾어놔야죠. 그리고 선거 캠프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눈치 빠른 데이비드는 바로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렇군요. 말씀대로 최근 하는 행동을 보니 애런 아서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백악관에 입성하더라도 오너를 홀대하지 못하게 만들려면 이쯤에서 한번 기가 꺾일 필요가 있겠군요.]“어쨌든 아이오와 경선 전에 다시 미국에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알겠습니다.]재성은 데이비드와 잠깐 더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애런 아서를 만나 어떻게 다룰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얼마 있지 않아 재성을 태운 차는 목적지인 마곡 지구에 있는 유니콘 제약 본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