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699
699. 러시아가 알아서 큰 거를 던져주네요.
오늘 EPL 명문 구단인 첼시가 2003년부터 구단을 인수해 경영해 온 러시아 석유재벌 포민이 떠나고 유니콘 그룹 박재성 회장이 새로운 구단주가 됐다고 발표했다.
2003년 1억 4,000만 파운드, 한화로 약 2,200억 원에 구단을 인수한 포민 회장은 19년 동안 과감한 투자로 첼시를 EPL을 넘어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 가운데 하나로 우뚝 올려 세웠다.
그동안 첼시는 챔피언스 리그와 유로파 리그에서 각각 2번씩 우승을 거뒀고 EPL 우승컵 역시 5차례나 들어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당연히 첼시의 구단 가치 역시 크게 뛰었고 포민 구단주는 절대 구단을 팔지 않을 거라고 수차례 말해왔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시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취하는 과정에서 크라스니 대통령과 밀착해 막대한 부를 쌓은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들에 대한 제재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여기에 포민 회장도 포함된 것이다.
당연히 포민 회장이 소유한 첼시 역시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했다.
EPL 최고의 명문 구단 중에 하나이자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만큼 매각에 많은 인수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 가장 높은 액수를 써낸 박재성 회장이 첼시를 42억 5,000만 파운드(약 6조 7,000억 원)에 사들이기로 결정됐다.
포민 회장은 4억 500만 파운드 제외한 매각액 전부를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런 조건에 영국 정부와 프리미어리그 사무국 그 외 관계 당국들이 이번 인수를 승인해 준 걸로 밝혀졌다.
새롭게 구단주가 된 박재성 회장은 “전통 있는 첼시의 새로운 구단주가 되어 영광이다”라고 하면서 “과거가 그립지 않을 정도로 화끈한 투자로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팬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이거 실화냐??
↳첼시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박 회장도 이제 현실판 풋볼 매니저 게임 시작하는 건가.
↳과거가 그립지 않을 정도로 화끈한 투자라니 벌써부터 내년 시즌이 기다려지네.
↳아 형 우리 구단 사주지 ㅠㅠ 왜 첼시 감.
↳하필이면 근본 없는 첼시여.
↳벌써부터 애들 헛소리 작렬하네 ㅋㅋ 부러워 디지겠지 니들.
↳근데 EPL은 요즘 한물갔잖아. 돈도 많은데 라리가 팀 사지 아쉽.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급매로 나온 거 줍줍한 거잖아. 딱 보면 모름?
↳포민 속 엄청 쓰리겠네.
↳그래서 그 급매 가격이 얼마라고?
↳6조 7천억.
↳돌았나 진짜;; 조 단위인데 급매라는 말이 나옴?
↳첼시가 그 가격이면 싼 거지 알못아 -.-
대전 유성구 스타테크놀로지 연구 센터
얼마 전 새로 완공된 C동 건물에 이국적인 외모의 중년인 한 명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크만.
올해 43살의 우크라이나 출신 스타테크놀로지 선임 연구원이었다.
스타테크놀로지가 인수한 예전 UMZ 산하 유즈노에(UZNOE) 설계 연구소에서도 핵심 인력으로 평가받던 뛰어난 로켓 공학자였다.
우수한 인재인 만큼 러시아 침공 직후 당연히 1순위 대피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 직전에 아내와 어린 딸이 국경과 가까운 하르키우 친정에 갔다가 연락이 끊기는 바람에 아크만은 한국행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에 남았다.
회사 측에서 몇 번이나 설득했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만 도망갈 수 없다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러다 스타테크놀로지의 의뢰를 받아 우크라이나 현지에 만약을 위해 들어가 있던 재성 소유의 민간군사기업인 블랙가드 용병들이 움직였다.
블랙가드 용병들은 한창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하르키우까지 단숨에 들어가 아크만의 가족을 구출해 왔다.
그렇게 데려온 가족과 함께 아크만은 동료들보다 한 달이나 늦어서야 비로소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시설을 둘러보는 중 직원이 묻는 말에 아크만이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드니프로에 있던 연구소도 스타테크놀로지가 인수한 이후 여러 설비를 보충해 줘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여긴 더 마음에 듭니다.”
“회장님 지시로 돈을 아낌없이 퍼부어 최첨단 장비와 연구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으니까요. 이 정도면 세계에서도 손꼽힐 겁니다.”
직원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됐다.
아크만 역시 완벽하게 갖춰진 연구시설을 보고서 여기서 일하기로 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사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아크만은 죄책감에 남몰래 고통스러워했다.
전화의 불길에 휩싸인 조국을 놔두고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게 어찌 죄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가 느끼는 고통은 불면증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렇게 영혼을 좀 먹어가던 우울함이 사라진 건 연구센터장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였다.
오너인 재성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장에 나가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다, 전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를 설득했다.
그 덕분에 아크만은 죄책감과 부끄러운 마음을 씻어내고 평소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스타테크놀로지는 우크라이나 현지 법인을 통해 전쟁 이후에도 수천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해 전쟁 비용 충당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드니프로에 위치한 공장에서는 넵튠 지대함 미사일을 비롯한 여러 로켓과 발사 차량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러시아군의 탄도탄과 순항 미사일을 공격을 받아 생산 시설 일부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렇게 드니프로에 있는 공장이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부에 징발돼 전쟁 무기 생산에 이용되고 있었으나 부산에 대규모 공장 시설을 갖춰둔 덕분에 우주개발 프로젝트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스타테크놀로지는 우크라이나에서 데려온 인재들을 위해 가족별로 머물 아파트를 제공하고 담당 인력을 배치해 최대한 불편함 없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거의 빈손으로 피난을 떠나 경제적 어려움과 각종 범죄에 노출된 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다른 우크라이나 난민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후한 대접이었다.
위험 지역에서 안전하게 대피시켜 줬을 뿐만 아니라 거처와 적응까지 도와주는 모습에 우크라이나 출신 연구원들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회사와 재성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높아져만 갔다.
“여기가 앞으로 일하실 연구실입니다.”
직원이 넓은 복도 한쪽에 있는 하얀 방문을 가리켰다.
“목에 걸고 계신 신분증을 전자 도어락에 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립니다.”
한번 해보라며 직원이 손짓하자 아크만은 연구센터에 도착해 발급받은 신분증을 목에서 풀어 도어락에 갖다 댔다.
삐리릭 하는 전자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탁 풀리는 소리가 났다.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직원을 따라 연구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30평도 넘을 법한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각종 연구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고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 다섯 명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
얼굴을 알아본 아크만이 순간 반가운 표정을 했다.
다들 우크라이나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고개를 드는 시늉도 안 했지만 분명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아크만! 아크만 아니야?”
“이 친구 살아 있었구만.”
“어서 오게! 자네 혼자 남았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아크만의 목소리에 뒤늦게 사람이 온 것을 알아챈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마치 헤어진 형제를 다시 만난 것처럼 다들 반가워하며 껴안고 난리가 났다.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몰라?”
아크만이 웃으면서 묻자 가장 친하게 지내던 로만이 으음, 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말이야. 이상하게 요즘 들어서 집중이 엄청 잘된다니까?”
“어어, 맞아. 한번 일을 시작하면 식사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몰라.”
“난 아예 배도 안 고파. 밤에 잠도 거의 안 자는데 정신은 되게 맑아서 막 일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
동료들이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던 아크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좀 이상한데.”
식욕도 수면욕도 느끼지 못하고 일만 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농담이겠지.’
그만큼 다들 새로운 연구시설에 와서 능률이 오른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뜬금없이 일이 잘 풀리고 능률이 오르는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번에도 비슷한 거겠지, 하고 대충 흘려들었다.
“음? 아니 자네 얼굴이 왜 이래!”
아크만은 동료들의 얼굴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턱 어깨를 붙잡았다.
“내, 내가 뭘.”
“꼭 며칠 동안 안 자고 일만 한 사람 같잖아. 게다가 눈밑에 다크서클까지.”
“뭐 일을 좀 열심히 하긴 했지.”
머쓱하게 뺨을 쓸어내리는 동료를 보고서 아크만이 심각한 표정을 했다.
“일이 많이 타이트한가?”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로만이 자기도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듯 머뭇거렸다.
“나도 모르게 연구가 술술 잘 풀려서 리듬을 깨고 싶지 않은 때가 있지 않나.”
“그렇지.”
“요즘 우리가 딱 그렇거든.”
옆에서 다른 동료가 말을 거들었다.
“그래서 벌써 20일째 연구소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중이라네.”
“뭐?”
아크만이 황당한 낯으로 입을 딱 벌렸다.
아무리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하루 이틀이지 무려 20일을, 그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진해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니.
만약 동료 입에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면 절대 믿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동료들의 얼굴에 억지로 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자네들이 성실하긴 했지만 그래도 뒤늦게 열정이 피어오른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야.”
아크만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동료들을 향해 엄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건강을 생각해야지. 거울은 봤나? 자네들 얼굴이 너무 안 좋아.”
“으음,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밤을 새서 연구해도 피로가 전혀 안 느껴지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일주일 동안 매일 한 세 시간 잤나? 그것도 잠깐 눈만 붙인 건데 꼭 숙면을 취한 것처럼 컨디션이 너무 좋아.”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다 재성이 연구센터에 붙인 SSR등급 일해라 노예야 패치 때문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 아직 근무시간 중이니까 잡담은 이쯤 하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자고. 아크만 자네는 이쪽이야.”
한참 동안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서로 회포를 풀고 있는데 로만이 손으로 짝 소리를 냈다.
로만은 비어 있는 큰 책상으로 아크만을 데려가 여기가 앞으로 쓸 자리라고 말했다.
책상에는 최신형 컴퓨터와 필요한 사무용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까 안내해 준 직원한테서 명함 받았지? 필요한 게 있으면 거기로 연락해. 뭐든 가져다줄 거야.”
“그렇군.”
“일단 맡아줄 파트가 정리된 파일을 보내줄 테니까 오늘은 간단히 살펴보기만 해. 퇴근 시간은 4시니까 일이 끝나면 알아서 가면 되고.”
어차피 다들 경력자이기 때문에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로만이 손을 흔들면서 떠나자 자리에 앉은 아크만은 먼저 컴퓨터를 켜서 기본적인 자료와 프로그램들을 확인해 봤다.
오늘은 그냥 분위기만 익힐 겸 가볍게 일하다가 퇴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놀림도 느긋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아크만은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저녁 주문할 건데 자네도 먹을 거지?”
“저녁?”
아크만이 놀란 얼굴로 벽에 붙은 시계를 쳐다봤다.
분명 연구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환한 낮이었는데 벌써 저녁 5시가 넘어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무려 8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대체 뭐야. 별것도 안 했는데 왜 갑자기 시간이.”
허둥대는 아크만을 보고서 로만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거봐, 이렇다니까. 자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지? 다들 이래. 이상하게 연구소 문턱만 넘으면 사람들이 다들 일벌레가 된다니까.”
로만은 이미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연구소 식당에 주문하면 이리로 도시락을 가져다주는데 자넨 어쩔 거야? 계속 일할 거면 같이 주문하고.”
“어, 부탁하네. 나도 시켜줘.”
아크만은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시간이 넘었기 때문에 집에 가겠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하게 엉덩이가 의자에 딱 붙어서 움직이질 않았다.
일이 너무 잘 풀려서 흐름을 끊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알았어. 여기 식당 음식이 호텔 레스토랑 못지않게 맛있으니까 기대하라고.”
아크만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로만을 쳐다보다가 다시 모니터로 눈을 향했다.
분명히 자료만 훑어볼 생각이었는데 모니터엔 신형 로켓 엔진 설계도가 띄워져 있었다.
게다가 눈에 띄게 작업이 진척된 상황이었다.
“정말 뭐지?”
아크만은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 IT기업들이 즐비한 이곳에 테슬라 사이버 안전 센터가 위치해 있었다.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상황실에는 5m 높이의 정면 벽면 전체에 대형 LCD 90장을 붙여서 만든 상황판이 위용을 자랑했다.
그 앞엔 8줄로 길게 이어붙인 책상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데 책상마다 서너 개의 모니터와 최신형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형 상황판에는 사이버 공격 탐지기의 작동상태와 분석된 트래픽량 추이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테슬라 전체의 사이버 보안을 책임지는 곳답게 센터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입고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로완 역시 20살에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한 천재 해커였다.
로완은 한정판 나이키 에어조단을 신은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지루한 표정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 모습을 한 아바타가 열심히 무인도를 돌아다니며 새총으로 바람에 날려오는 풍선을 맞추는 중이었다.
“아, 왜 레어 등급이 안 뜨냐.”
가구 만들려면 꼭 그게 있어야 하는데.
로완은 심통 난 어린애처럼 입을 삐죽거리며 또다시 아바타를 조작해 하늘을 살폈다.
풍선은 몇 분마다 랜덤으로 생성되는데 그걸 맞추면 각종 재료가 떨어졌다.
생긴 것과 달리 귀여운 걸 좋아하는 로완은 계절에 맞춰 아바타가 지내는 집 인테리어를 싹 바꾸는 게 취미였다.
그래서 오늘도 최고급 레이스 침대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으기 위해 하염없이 풍선만 쳐다보고 있는 거였다.
삐빅삐빅!
“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든 로완은 모니터에 빨간색으로 경고 메시지가 뜬 걸 보고 게임기를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놨다.
후다닥 자세를 바로 한 로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는 것처럼 날아다녔다.
“이것 봐라.”
뭔가를 발견한 로완이 흥미로 눈을 반짝였다.
어느새 일상의 지루함 따윈 싹 날아가 버린 뒤였다.
“켄드릭! 이것 좀 봐요.”
고개를 들어 한쪽 팔을 붕붕 휘두르자 켄드릭이 심드렁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는 30대의 젊은 센터장으로 로완이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도 대충 넘어가 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뭔데?”
“쥐새끼 한 마리가 우리 메인 서버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해킹 시도가 있다는 말에 켄드릭이 눈썹을 찡그렸다.
“네 선에서 막을 수 있지?”
“있죠. 그런데 공격지가 모스크바이고 아무래도 상대가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아서.”
그제야 굳은 얼굴을 한 켄드릭이 로완의 뒤에 서서 모니터를 같이 쳐다봤다.
“러시아 놈들인 게 확실해?”
“그럼요.”
로완은 키보드를 쳐서 자신의 모니터로 보이는 화면을 대형 상황판으로도 볼 수 있게 전환시켰다.
그러자 띄워진 전 세계 지도에서 붉은 선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해 중국과 인도, 싱가폴, 런던 등 여러 국가를 거쳐 테슬라 메인 서버가 위치한 캘리포니아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복잡하게 여러 곳을 우회해서 들어왔지만 내가 누굽니까.”
이 정도쯤은 껌이라며 로완이 거드름을 피웠다.
“우리 메인 서버를 노리는 거야?”
켄드릭은 팔짱을 낀 자세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닌 것 같고 데이터 센터를 통해 스타테크놀로지 서버를 뚫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스타테크놀로지라고?”
의아한 표정을 한 켄드릭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우리 대장, 아니, 오너가 환인 서비스를 동원해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위성 인터넷을 지원해 주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그걸 끊어버리려는 것 같아요.”
“그렇군.”
켄드릭의 시선이 아래에 있는 로완을 향했다.
“막을 수 있겠어?”
그러자 로완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생긴 것처럼 한껏 짓궂은 표정이었다.
“나한테 걸린 이상 공격은 이미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센터에서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로완에겐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
“좋아.”
켄드릭은 로완의 어깨를 두드리고서 센터에 있는 다른 직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들었지. 쥐새끼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오려는 모양인데 여기가 어떤 곳인지 단단히 알려주도록 해! 두 번 다시는 얼쩡거리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주라고.”
그러자 휘익, 하면서 휘파람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요즘 러시아 애들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아주 탈탈 털어주자고!”
“이 자식들 다 죽었어.”
여기저기서 의욕을 불태우는 가운데 켄드릭이 당부했다.
“아, 그리고 러시아 소행이라는 증거를 확실히 남겨두는 것도 잊지 마.”
그렇게 뚫고 들어가려는 러시아 해커들과 방어진을 친 테슬라 사이버 안전센터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러시아 해커들이 끝도 없이 여기저기를 찔러대며 틈을 노렸지만 테슬라 사이버 안전센터는 단 한 순간도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반나절을 넘는 사투 끝에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건 러시아였다.
러시아가 해킹을 포기하고 물러나자 센터 직원들은 저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승리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 * *
경기도 판교 저택.
여느 때와 같이 몸에 딱 맞는 이태리 수제 양복을 입은 재성이 저택을 나오자 선정혁이 꾸벅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그래요.”
잘 꾸며진 잔디밭을 성큼 걸음을 옮기며 걸어가자 선정혁이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밤새 실리콘밸리에 있는 테슬라 데이터 센터가 해킹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해킹이라고 했어요?”
“예.”
슬쩍 눈치를 살피며 선정혁이 말을 이었다.
“테슬라 테이터 센터를 통해 스타테크놀로지 서버로 침투하려 한 걸로 의심된답니다. 그리고 공격을 시도한 곳이 러시아 모스크바라고 합니다.”
러시아라는 말에 재성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러시아가 공격한 것이 확실해요?”
“예. 러시아 해커들의 행위라는 증거를 상당수 확보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러시아의 짓이라면 환인 서비스를 노린 공격이었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재성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IEEPC 실행을 이끌어내는 데 명분이 조금 부족했는데 러시아가 알아서 큰 거를 던져주네요.”
잠시 뒤 재성은 대기하고 있던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저택을 떠나 유니콘 타워가 있는 서울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