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1237
밥만 먹고 레벨업 1238화
그런 날이 있다.
시험 준비, 바쁜 업무, 다양한 상황 때문에 한 끼도 먹지 못한 날.
든든하게는 먹고 싶지만, 과하게 먹고 싶지 않은 날.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그 날. 가벼운 주머니와 다르게 든든하게 배를 채워줄 ‘순대국밥’의 펄펄 끓는 그 국물을 조심스레 한입 떠먹으면 얼어붙은 몸이 따뜻해지고 빈속이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민혁의 기분이 딱 그랬다.
군신이 되자마자 백만대장 선정이란 이름으로 증명해야 했고, 끝나자마자 뒷수습하느라 바빴다.
돼지내장으론 정말 많은 요리를 할 수 있지만, 오늘 민혁이 선택한 것은 속이 든든한 ‘순대국밥’이다.
이미 손질이 끝난 재료는 뽀얀 국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뚝배기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하얀 국물의 순댓국.
그 주변에는 깍두기, 배추김치, 양파, 청양고추, 쌈장이 놓여있다.
순대국밥의 반찬으로 이 정도면 훌륭하다.
먼저 수저를 이용해 그 뽀얗고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맛본다.
뽀얗지만 밍밍하다. 새우젓을 퍼서 넣고 그다음 빨간 다대기를 풀어준 후.
‘흐흐.’
부추가 정력에 좋다는 흔한 소문을 믿으며 가득 넣어준 뒤 마지막으로 들깻가루로 장식한다.
뽀얗기만 하던 국물이 변했다.
수저를 푹 찔러 퍼보자, 재료들이 튼실하게 퍼 오른다.
뜨거운 속 재료들을 수저를 이용해 옮긴 후 입에 넣어준다.
특히 별미는 순댓국 안에 고작 3~5개 들어가 있는 순대다.
속 재료들을 따로 먹어주다가 뜨끈한 밥 한 공기를 말았다.
불그스름한 순대국을 한입 떠서 맛본다.
‘이게 순대국이지!’
순대국의 간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컬컬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수저로 가득 국밥을 퍼 올린다. 수저 위에 밥과 국물, 여러 다채로운 재료가 딸려온다.
후후 불어 입으로 식혀준 후 크게 한입 넣는다.
다채로운 재료의 향연과 그 국물을 느끼며 먹기 좋은 크기의 깍두기를 집어넣는다.
아삭아삭-!
맛있게 씹혀주는 깍두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다 또 국밥 한입을 먹고 이번엔 생양파를 쌈장에 푹 찍는다.
“난 개인적으로 이 생양파를 쌈장에 찍어 먹는 게 좋더라.”
생양파는 매운맛보단 단맛이 나는 편이다. 특히 짭짤한 쌈장과 어울린다.
한참 먹어주다가 어느덧 조금 식은 순대를 먹는다.
하나는 그냥 먹고, 또 다른 하나에는 새우젓을 올려 먹는다.
또 한 번은 수저 위에 다시 올려 국물에 푹 담갔다가 꺼내 뜨끈하게 먹는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이다.
그렇게 먹어주다 뚝배기 안의 내용물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릇째로 뚝배기를 들어 올려 그 국물을 크게 취해본다.
후루루루룹
“크흐. 시원하다.”
국물을 취하자 모습을 드러낸 내장과 말린 밥을 수저로 먹어준다.
다시 뚝배기를 기울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먹어치운 후 식사를 끝마친다.
“크…….”
역시 대미의 장식은 물이다. 하지만 오늘의 물은 조금 달랐다.
‘밥이랑 먹는 보리차는 이상하게 맛있단 말이지.’
컵에 가득 따라진 보리차를 단숨에 들이켜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요리의 신의 내장 재료를 드셨습니다.] [모든 스텟 0.6%가 상승합니다.] [모든 스킬 숙련도가 20% 상승합니다.]식사를 끝내자 대장군 제넬이 들어왔다.
보좌관 벨슨은 민혁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위임받아 처리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예의를 취한 제넬은 이제 충심 가득한 표정으로 민혁을 보고 있다.
“돌아가십니까?”
“돌아가야지. 이 땅도 소중하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도 지켜야 하거든. 모든 일을 보좌관과 대장군에게 위임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제넬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보좌관 벨슨 님은 되려 ‘결국 군신은 아니니까 마음 놓고 활개 쳐도 되겠군.’이라며 좋아하시더군요.”
군신이란 이름의 무게에 짓눌린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것이리라.
“저는 언제나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니 괜찮습니다. 1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군신님의 자리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든든한 말이다. 민혁은 결국 이 신들의 땅보다 지상이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랬기에 이곳에 머무는 날도 실질적으로 많진 않을 거다.
“아직 실감이 안 나. 변한 게 없어.”
“하나둘씩 변해갈 겁니다. 전대 군신께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많은 힘을 가지게 되셨으니까요.”
아직 민혁이 군신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음을 알리는 암시다.
‘잠시 대식신이 되는 길은 내려놓는다.’
결국 심연에서 민혁은 로카더의 업적 쌓기에 실패했으나, 그의 업적은 찾고자 한다면 언제든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이제 대천외제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할 때야.’
지금이 적기다. 민혁이 진짜 군신이 되었음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할 거다.
누군가는 적대하려 할 것이고, 누군가는 화친을 맺고자 할 것이다.
빛이 만들어지며 한 존재가 민혁의 팔 위에 내려앉았다.
‘슬피 우는 신화 속의 새’였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놀랍게도 슬피 우는 신화 속의 새의 소유권은 제넬이 가지고 있었다.
과거 민혁은 이 슬피 우는 신화 속의 새를 캐시로 구매해서 사용한 적 있다.
제넬은 민혁에 대한 충심을 드러냈는데, 그 표현이 바로 이 ‘신화 속의 새’의 선물이다.
그는 조금 반감을 가졌었다.
괴짜의 성질을 가진 녀석의 행실이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 속의 새는 단순히 그런 종류의 새가 아니다.
‘녀석을 사용하는 데 있어 신중함을 가해야 하는 것은 맞다.’
소유물이 된 슬피 우는 신화 속의 새는 그 이름이 아니다.
‘신화 속의 새’.
딱 그 이름이었는데 상세설명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랜덤으로 앞의 이름이 변화했다.
‘슬피 우는’, ‘예의 바른’, ‘분노하는’, ‘힘을 주는’ 등의 수십 가지 이름으로.
민혁은 녀석의 이름이 매번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문제는 한번 띄울 때 랜덤으로 성격이 변한다는 거다.’
분노하는 신화 속의 새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또 힘을 주는 신화 속의 새는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알 수 없다.
그랬기에 무조건 녀석을 띄우는 건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3개월에 딱 한 번 녀석의 상태를 소유권자가 지정할 수 있었다.
민혁은 신화 속의 새의 상태를 변경시켰다.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로 설정합니다.]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가 당신이 지정한 사람들에게 날아갑니다.]빛이 되어 사라지는 신화 속의 새를 바라본다. 민혁이 오래도록 갈망했던 그때가 왔다.
바로 ‘유저의 왕국’을 천외제국 휘하에 두는 거였다.
* * *
절대군주 리챠드는 마세르라티 왕국의 왕이다. 한때 지존 민혁과 리챠드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마세르라티 왕국은 천외제국과 다르게 여전히 루브앙 제국과 전쟁 중이었고 제국건립을 위해 나아가려 할 때마다 루브앙 제국에 의해 발목을 잡혀 왔다.
근래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루브앙 제국이 더 큰 압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혁이 군신이 되었다.’
리챠드는 그 씁쓸한 말을 곱씹었다.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가 이젠 자신보다 더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빛이 만들어지며 한 정체 모를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땅에 내려선 새는 예의 바르게(?) 부복하여 날개를 오른쪽 가슴 위에 얹었다.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가 당신께 민혁의 뜻을 전합니다.]“…….”
리챠드는 정체 모를 새를 통해 전해지는 민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마세르라티 왕국이 천외제국 휘하에 들어왔으면 했다.
‘민혁이 군신이 된 마당이다.’
더 많은 이주민이 천외제국으로 몰리고 있으며 이젠 루브앙 제국도 그 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다.
마세르라티 왕국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결국 천외제국에 종속되는 거다.
하지만 리챠드는 말이 없었다.
자격지심, 열등감.
인간이 흔히 가지는 그러한 감정들이 리챠드를 채운다.
현실은 알아도 냉정하지 못하다.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의 밑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참담한 일이다.
그때.
[종들의 왕 레이칸이 모든 이방인들의 왕국을 멸망시키고자 합니다.] [인간을 제외한 지상의 모든 종족이 레이칸을 중심으로 모여 연합군을 형성하여 진격을 시작합니다.]“…….”
리챠드는 올 것이 왔음을 알았다.
종들의 왕 레이칸은 기둥후보다.
야금야금 여러 왕국을 멸망시킨 그는 자신의 힘을 입증했다.
‘그는 유저들부터 굴복시킬 생각이다.’
리챠드는 마세르라티 왕국이 종들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천외제국에 손을 뻗는 순간, 마세르라티 왕국은 사실상 천외제국의 휘하에 들어가는 격과 다름없다.
신하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그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죽어도 마세르라티 왕국에서 죽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군 왕국인데요.”
“전하, 우리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리챠드도 오늘은 그답지 않은 선택을 내리고자 했다.
영광스럽게, 그리고 후회 없이 가자.
비록 마세르라티 왕국이 멸망했다고 한들 자신들은 ‘마세르라티 길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라도 연명할 수 있으니까.
그가 뜨겁게 말하려 한다.
“우리 모두 영광스럽게 지…….”
그런데.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가 부탁합니다.]갑자기 새가 날개를 싹싹 비벼대기 시작했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그러면서 머리를 세차게 숙인다. 그 행동을 몇 차례 반복했다.
“……?”
리챠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새가 계속 리챠드에게 부탁해왔다.
사실 리챠드는 영광스럽게 가자고 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론 차라리 편한 길을 갈까 하는 생각도 있는바.
그 상황에서.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부탁…….] [부탁…….] [부탁…….]“…….”
리챠드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십 번도 더 들리는 알림을 들으며 깨닫는다.
“보이는가. 천외제국 황제가 보낸 새가 이토록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얼마나 신신당부를 했으면 이러겠는가?
얼마나 우릴 위하면 이러겠는가.
민혁의 간절함이 보인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새가 머리마저 땅에 박아대며 그 뜻을 전한다.
정도를 모르는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를 보며 리챠드가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맞습니다. 사실 멸망하는 건 좀 그랬습니다.”
“헤헤…….”
자존심 때문이지, 모두 마음속 한편에선 이 마세르라티 왕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민혁, 너의 간절한 부탁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토록 우릴 원하고 있던 거였군.”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짹?’이란 울음을 흘리는 신화 속의 새를 보며 리챠드가 새로운 마음을 잡았다.
하지만 리챠드는 천외제국의 휘하에 순순히 들어가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 방법을 리챠드가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가 씨익 웃으며 다시 어디론가 날아갔다.
‘정도’란 걸 모르는 새였다.
* * *
부탁하는 신화 속의 새를 보낸 민혁은 천외제국의 집무실에 돌아왔다.
그가 헤이즈와 대화를 나눴다.
“그 어떤 유저들이나 왕국도 응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민혁도 헤이즈와 같은 생각이다.
“위험에 빠졌다고 한들 콧대 높은 그들은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하려고 하겠죠. 마음속 한구석에는 천외제국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란 생각을 해도, ‘랭커’라 이름 붙은 그들이 우리가 먼저 굽히지 않는 이상 굽힐 리 없다는 거죠.”
민혁도 동감했다. 굽힌다 한들 어떠한 조건과 같은 걸 확률이 높다.
“특히 마세르라티 왕국은 천외국과 경쟁국이었고, 신궁 먀오는 애초에 민혁 폐하를 별로 안 좋아하지요.”
민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켄타로 경께서는 민혁 폐하와 친분이 두터우나 해당 대륙의 이방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런 상징적인 존재가 천외제국의 회유를 받아들이기엔 많은 것이 뒤따르죠.”
“헤이즈,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너무 때린다. 뼈가 시려…….”
민혁은 그들을 설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민혁이 일어섰다.
“다녀올게. 그래도 내가 직접 가면…….”
그때.
[먀오: 네가 싫다 민혁. 그리고 네 밑에 들어오라고? 그것도 끔찍하게 싫다.]“……?”
[먀오: 하지만 네가 보낸 새를 통해 너의 간절함을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한 제국의 황제이자 군신이란 네가 이렇게 애걸복걸하며 너의 진심을 보여줄지는 몰랐다.]“……?”
[먀오: 고려해 보겠다. 현재 리챠드, 켄타로 등과 이야기 중이다. 곧 답변을 주겠다.]“……?”
곧바로.
[켄타로: 민혁 님, 민혁 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사실 거절하려 했습니다. 한데 당신이 보낸 새를 통해 그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군신임에도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자. 또 민혁 님께선 저의 위상을 세워주기 위해 그러셨던 거겠죠? 깊게 고려해 보고 있습니다.]또.
“뭔 소리여……?”
민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