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503
밥만 먹고 레벨업 504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불던 눈보라. 굵게 내리던 눈들이 일제히 멈춰선다.
어떠한 이는 귀신창 밴이 다시 움직인다는 사실도 자각한 채 멈춰선 눈꽃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름…… 답다…….’
이 공간이 마치 멈춰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침내, ‘에르데스 창술 4장.’이라고 조아렸던 귀신창 밴의 입이 또 한 번 열린다.
“멸화창(滅華槍).”
그 목소리와 함께 방금 전 눈꽃에 손을 가져다 대던 기사의 눈이 돌아간다.
귀신창 밴이 잡아낸 빛의 창에서 흘러나온 빛들이 수백여 개의 빛의 창을 피워낸다.
마침내, 아름답게 피어난 빛의 창이 뻗어 나가 적들을 관통한다.
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푹-
한 명을 뚫고, 두 명을 연이어 뚫고 세 명, 네 명, 다섯 명, 일곱 명, 열 명.
하나의 빛의 창이 열 명 이상의 판금 갑옷을 부수고 관통하여 계속 뻗어 나간다.
찌이이이익-
심지어 드래곤 장로 벨라크의 안면의 피부가 찢어져 붉은 피가 주르륵 떨어진다.
“크흡!”
쏘아져 오는 빛의 창을 막아낸 렌지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다가 결국에야 입에서 피를 뿜는다.
“쿨럭!”
땅에 주저앉은 렌지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머리를 크게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던 그는 곧바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오금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환하게 피어오른 빛의 꽃 주변에 있던 3천 명이 넘는 기사와 병사, 몬스터들이 일제히 잿빛으로 소멸되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허공에 흩어지는 수천의 그들 사이에서 천천히 귀신창 밴이 몸을 일으킨다.
그의 검은 색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어있고 허리로 올 정도로 어느덧 길어져 흩날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충격적인 알림이 주변 유저들에게 강타한다.
[익명의 유저가 자신의 가신을 인간의 한계를 넘어, 반신의 경지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시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초월자. 반신이 세상에 탄생했습니다!!!]“……!”
“……!”
“……!”
“……!”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하고야 만다. 아칸의 추종자인 루티오는 서둘러 방송종료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귀신창 밴이…… 신이 되었다고……?] [반신……? 내가 지금 바로 본 거 맞지?] [NPC가 자력으로도 신이 될 수 있는 거였어?] [귀신창 밴이 살아났다…… 귀신창 밴이 살아났어!!!] [천외국 미쳤다…… 세계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매번 해내는 것이 천외국이다…….] [개쩐다…… 진짜. 갓식신에 이어 갓귀신창인 거냐?] [이 정도면 천외국 밸런스 브레이커 아니냐……?] [ㅇㅈ, 또 ㅇㅈ. 천외국이 밸런스 다 망가트림. 근데 귀신창 밴 너무 멋있어서 뭐라고도 못하겠다…….]루티오의 입술이 깨물어졌다.
천외국을 몰락시키려던 방송이, 천외국을 오히려 더 띄워주고 있는 셈이다.
결국에야.
‘X발 될 대로 되라.’
아칸의 추종자인 루티오였지만 그는 재미 삼아 아테네의 붕괴를 꿈꾸는 이 중 한 명일 뿐이다.
어찌 보면 그저 방송을 하고 있는 일개 유저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구독자 수나 늘려서 방송이나 제대로 해봐!?’
그는 멈추지 않고 방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고오오오오오-
그저 창 한 자루를 쥐고 있을 뿐이나 귀신창 밴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루나를 한 번, 헤이즈를 한 번 바라본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렌지.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막아아아아아아!!”
그 외침과 함께, 숙련된 기사들의 검기가 하늘을 잠식하는 화살비처럼 그를 향해 쏟아졌다.
귀신창 밴의 창이 하늘을 가를 듯 높이 세워진다. 그리고 내리친 순간.
푸화아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바람이 불며 주변의 모든 검기들을 소멸시켜버린다.
“……!?”
렌지는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에 경악한다. 그리고 귀신창 밴이 루나를 안으며 한 걸음을 뗀다.
“신보(神步).”
신의 발걸음.
수만 개의 눈이 귀신창 밴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벨라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움직임을 쫓지 못했다.
어느새 귀신창 밴은 루나를 옆구리에 끼고 헤이즈의 바로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녀를 힘껏 안아 든 그가 말 한 필에 그녀와 루나를 태웠다.
찰싹-
말의 엉덩이를 힘껏 후려치자 비명을 지르는 말이 앞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는 말을 막는 기사들과 병사들, 몬스터들은 귀신창 밴이 죽이기 시작했다.
콰지이이이익-
앞으로 뻗어진 그의 창이 그들의 갑옷을 부수며 단숨에 다섯의 기사를 죽이고.
쑤우우우우욱-
콰지이이익-
휘두르는 그의 창이 여럿의 기사들을 베어낸다.
찌이이이익-
때론 어떠한 기사의 몸을 반쪽으로 두 동강 내버린다. 달리는 말을 보호하며 그 앞을 막는 자들을 쓸어버리는 귀신창 밴의 모습은 창신 그 자체였다.
그때 벨라크는 이대로 루나를 놓칠 수 없다 생각했다.
벨라크의 입에서 거대한 힘이 휘몰아친다.
“미, 미친……! 당장 거두십시오. 아군들이 있습니다!!”
렌지가 그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드래곤은 애초에 인간의 목숨을 크게 여기지 않는 존재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것도 인간 따위라면 그에게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쿠화아아아아아악-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 장로 벨라크. 그의 입에서 마침내, 붉은 브레스가 내달리는 귀신창 밴을 향해 쏘아진다.
“히히히히히히힝!”
말이 더욱더 울음을 흘리며 도망치고 그 순간 귀신창 밴이 몸을 돌린다.
그의 창끝이 드래곤 브레스를 겨눈다.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드래곤 브레스를 막는 인간?
이제까지 세상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벨라크가 살아온 ‘이제까지’에 불과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불과율이 지금 이 순간, 귀신창 밴의 손끝에서 깨져나간다.
“에르데스 창술. 6장.”
창끝이 검게 물든다.
“반(反).”
반(反). ‘되돌리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이다.
퓨우우우우우우-
거대한 드래곤 브레스를 귀신창 밴의 창끝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단숨에 모든 것을 먹어치운 그의 창끝이 벨라크를 겨눈다.
“돌려주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밴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그의 창끝에서 거대한 드래곤 브레스가 뿜어져 단숨에 벨라크를 향해 뻗어졌다.
쩌저저저저저정-
찰나의 시간. 그가 붉은빛 실드를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적-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작은 균열이 일어난 실드가 와장창창 깨져나가며 벨라크의 몸을 덮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드래곤 장로 벨라크가 하늘 위에서 포효한다. 하지만 그치지 않고 신보를 사용한 밴.
그는 어느덧 벨라크의 코앞에 와있었다.
푸지이이이이익-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이다. 드래곤 장로라는 이름만큼이나 위대한 드래곤 벨라크의 몸을 빛의 창이 꿰뚫는다.
그를 힘껏 털어내자 벨라크가 땅에 처박혀 몸을 뒤틀어댄다.
“크아아아악, 크라라라라락!”
다시 한번 신보를 사용한 밴이 말을 호위하며 내달린다.
어느덧 그가 베여낸 적의 숫자 총 1만 5천을 넘으니 그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
헤이즈. 그녀는 스스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밴 어르신……! 신에 오르다니요. 정말 대단해요. 정말 대단하다고요!!”
앞으로 그가 얼마나 천외국에 커다란 힘이 되어줄지, 그리고 민혁이 이를 알고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한 헤이즈가 활짝 웃으며 그를 돌아봤다.
하지만 곧 그녀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르신……?”
사아아아아-
귀신창 밴.
그의 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재가 스르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즐거움으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확인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신속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네, ㈜즐거움입니다. 아, 귀신창 밴의 밸런스 붕괴요? 아닙니다. 우리 ㈜즐거움은 최대한 밸런스 붕괴가 없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네네.”
빗발치는 전화는 시청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유저도 아닌, 일개 가신이 신에 오른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항의하고 있다.
그 정도로 아테네 역사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시각.
회의장 내로 들어왔던 NPC 관리팀의 팀장 한인혜와 강태훈 사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귀신창 밴이 어떻게 반신에 오를 수 있었던 거지? 확률적으로 고작해야 0.1%가 될까 말까였어. 천운이라는 말은 변명이 안 돼.”
아무리 강태훈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붕괴를 뜻한다.
하지만 한인혜 팀장은 곧 고개를 저었다.
“밸런스 붕괴가 아닙니다. 왜냐면…….”
그녀는 모니터 속. 수만의 적군의 길을 대부분 헤쳐내고 나아가는 귀신창 밴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것은 유저와 NPC의 깊은 유대감이 만들어낸 기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인혜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는 신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결국에야 그녀가 눈물 한 방울을 흘리다가 서둘러 팔로 훔쳐내고야 말았다.
강태훈 사장은 슬퍼하는 그녀에 의해 의아해졌다.
그리고 신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급기야, 모니터를 보던 강태훈 사장도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신창 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정체 모를 검은 재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또한 반신 에르데스와 만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 * *
창신 에르데스.
5천 년 전의 먼 과거.
창의 초월자라는 이름을 거머쥐고 반신의 길을 걷게 된 그녀. 그리고 끝내 창신에 도달한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그만큼이나 그녀는 오만하고 괴팍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반신의 수련 시험은 끔찍하고도 괴팍했다.
만 번.
그 만 번 동안 단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커다란 치명상을 입히면 성공하게 된다.
만 번의 도전 중 포기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기 전, 에르데스는 매 순간 가장 끔찍하게 상대방을 죽인다.
에르데스는 앞에 있는 노인의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기에 이른다.
벌써 3천 번이 넘었다.
그 반복되는 횟수 동안 에르데스는 그의 눈을 뽑고, 팔다리를 자르며, 때론 심장을 터뜨려버렸다.
누구라고 할지라도 커다란 정신력마저 상실하고 미쳐 버릴 정도의 고통이 분명하다.
하지만 앞의 노인은 어떠한 비명도, 물러섬도 없이 죽어도 죽어도 계속 그녀에게 덤벼들고 있다.
더 섬뜩한 것은.
“다시 시작하지.”
죽지 않는 그의 눈빛이었다.
에르데스.
오만하며 위대한 창신.
그녀가 급기야 그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어떠한 전설들도 1천 번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은 결국에 미쳐버리고야 말았다.
또한 귀신창 밴은 절대 1만 번 중 단 한 번도 자신의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의지를 인정하여 말한다.
“강인한 힘이 필요한가?”
노장은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에르데스. 그녀는 다소 슬픈 눈으로 속으로 질문해본다.
‘나의 인정을 받지 못한 자여, 당신은 반신의 길은 걸을 수 없을 것이니. 하나. 내 힘을 빌려줄 순 있을 것이다.’
때문에 에르데스는 슬펐다. 자신은 원치 않으나 그것이 그가 원하는 길이니.
“내 힘을 잠깐 계승시켜 주려한다. 하나, 신의 힘을 일부 계승한다는 것은 그대의 육체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가?”
그 질문.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르데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죽음을 맞이한 그대의 영혼은 죽음의 신이 관장하는 지옥에 떨어져 수천 년을 고통받고서야 소멸될 것이다.”
하나하나. 그가 힘을 잠깐 동안 계승 받음으로써 얻게 될 고통이 나열되기 시작한다.
“지옥에 떨어진 그대의 영혼은 칼로 이루어진 산을 걸어 항상 칼에 찔리는 고통을 느낄 것이며 뜨거운 무쇠솥에 빠져 삶아지는 고통, 얼음 속에 갇히는 고통, 계속해서 혀가 뽑히는 고통, 독사들이 온몸을 감아 물어뜯는 고통, 톱으로 온몸의 뼈가 썰리는 고통, 살을 에는 바람을 맨몸으로 맞이하는 고통,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홀로 수천 년을 지내야 하는 고독의 고통, 그리고 영원히 환생할 수 없는 공허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가?”
그녀의 목이 메인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창신인 자신조차도 치가 떨리는 고통이다.
그녀는 원했다.
그가 이를 거부하고 도망치기를. 지금 하려는 바를 버리고 자신만 생각하기를.
하지만 노장이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