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3번 용병대의 대장 에릭은 대원들과 함께 아케인 상단의 본진을 향했다.
“레드필의 영주라면 지금쯤 제가 보낸 제보 때문에 브릴런트의 상황을 알아보고 성국이 얼마나 흑마법에 예민한 상태인지 알았을 거예요.”
“너는 영주가 아케인이 흑성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그건 확실하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심증 정도는 있겠죠. 알아보니까, 아케인도 풀 게더에 당할 뻔한 적이 있더라구요? 누가 봐도 아케인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는데, 그때 어떤 괴물 같은 마법사가 나타나서 풀 게더의 전력을 다 죽였다고 하더라구요.”
“뭐?”
“완전 처음 보는 종류의 마법이었는데 음침하고 기괴했다고 해요. 제가 볼 땐 그놈이 흑마법사 같아요,”
“그건 너무 추측 아닌가?”
“저는 그 전부터 아케인이 레드필에서 급격히 성장한 것도 의문이었어요. 마치 거대한 비밀 세력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근데 그게 그 흑성이라고 하면 말이 되죠.”
“흑성에 줄을 댄 상단이다?”
“네.”
알비노는 거의 반쯤 확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릭은 그의 확신이 도대체 어떤 근거로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렇게 머리 좋은 놈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논리 구조를 가지고 정답을 도출하기에 그러려니 했다.
“알겠다.”
에릭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여태 알비노가 추측한 것들은 거의 다 들어맞았었으니.
“이참에 흑성의 끄나풀로 아케인을 조지고 신성 왕국에 사례나 받죠?”
“나쁘지 않지.”
에릭이 씩- 웃으며 대답한다.
“아케인 쪽 전력 대부분이 이미 저쪽에 가 있으니 우리는 빈집만 털면 돼요.”
“가지.”
에릭이 땅을 박차고 건물의 안쪽으로 파고든다.
“저, 적이다!”
상단의 건물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소리쳤지만, 의미 없다.
3번 대의 대원들이 단번에 문지기들의 목을 꺾으며 들어간다.
천천히 그들이 만들어놓은 참상들 사이로 에릭이 시꺼먼 장포를 펄럭이며 걸어갔다.
“단번에 상단주의 방으로 진입-.”
그때였다.
건물을 둘러싸며 나타난 레드필의 병사들. 하나 같이 검과 창을 들고 위압적인 기세로 다가온다.
“알비노,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 영주가 어떻게…….”
병사들을 이끌고 온 지휘관이 앞으로 나서자, 때마침 안쪽에서 그들을 보고 누군가 튀어나왔다.
“아이고! 저희 상단을 지켜주러 오신 겁니까? 이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하하하!”
아케인 상단의 부단주였다. 그가 지휘관에게 다가가자 지휘관이 위협적으로 창을 내뻗어 오지 못하게 막는다.
“어, 어…, 왜, 왜 그러시는지?”
“아케인 상단이 부적절한 집단과 어울린다는 정보가 들어온바, 지금 당장 아케인 상단의 전수 조사를 시작하겠다.”
“에? 아니 그게 무슨! 안 됩니다!”
“시끄럽다! 지금 영주에게 반기를 드는 건가? 떳떳하다면 비켜라.”
“이건 억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전에 고지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고지는 무슨.”
“저희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무력시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단주의 협박에 지휘관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할 수 있다면 해보든가. 들어가라!”
레드필의 병사들이 일제히 상단으로 들어갔다. 현재 그들을 막을 병력이 없던 아케인 상단은 속수무책으로 내부의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우리를 막으러 온 게 아니었나?”
“보십쇼! 영주가 노선을 바꾼 겁니다.”
“고작 네가 보낸 서신 하나로?”
“어……. 그, 그러게요?”
이런 상황은 알비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서신 때문에 그가 태도를 바꾸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만 끌 수 있으면 충분하다 여겼건만.
“뭐가 됐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아니요, 좋다뇨! 이번에 아케인을 조지는 데에 저희가 일조해서 풀 게더에게 콩고물을 얻어먹고 렌 아르젠의 가족을 통해서 렌 아르젠과 물꼬를 트려고 했는데 말이죠. 근데 지금 레드필에서 이렇게 나서버리면 저희는 할 게 없어지잖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그렇게 수긍하고 끝나면 어떡합니까! 대장!”
알비노가 답답해서 가슴팍을 두드리고 있을 때, 에릭의 시선은 상단의 건물 어딘가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활약할 기회가 있을 거 같은데?”
“……예?”
콰아아앙!
상단의 건물에 들어갔던 병사가 창문을 부수며 3층 높이에서 떨어져 내린다.
쿵!!
“어우! 죽은 거 아니에요?”
“죽었다.”
이미 떨어지기 전부터 병사는 죽어 있었다. 이미 왼쪽 가슴이 꿰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저쪽에 상급 기사가 있다! 모여라!”
지휘관이 다급히 병사들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지휘관의 실력은 기껏해야 기사 상위급. 상급 기사에겐 한주먹거리일 뿐이었다.
“상급 기사를 남겨둘 정도로 아케인에 여력이 있었나?”
“그럴 리가요. 아케인 상황도 그리 녹록지는 않았을 텐데.”
“흠.”
깨어진 창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흑색 가면을 쓴 기사가 노란 눈동자를 굴리다가 지휘관을 발견하고는 3층에서 뛰어내렸다.
“흡!”
등에 걸어놨던 창을 쭉 빼낸 에릭이 지휘관을 죽이려는 흑기사의 검을 막아낸다.
카앙!!
“허억!”
지휘관이 눈앞에서 창날에 막힌 검을 보고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고, 고맙습니다.”
“뒤에 물러나 있어라.”
“예, 옙!”
지휘관이 다급히 뒤로 빠졌다.
가면 속에서 분노로 일렁이는 노란 눈동자.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혀 스파크를 만들어내더니 이내 달려든다.
카아아앙!!
“거기서 멍하니 보고 있을 겁니까?”
“예?”
그리고 그사이 지휘관에게 다가간 알비노가 그를 나무랐다.
“그릴리쉬 용병 길드의 3번 용병대입니다.”
“예? 그릴리쉬의 3번 대가 왜 여기?”
“아케인이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듣고 조지러 왔습니다만. 레드필이 끼어들어서 조금 곤란하던 상황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군요가 아니죠. 저 기사는 우리가 맡을 테니 빨리 엘로이 상단주가 자기 증거들 없애기 전에 들어가서 싸그리 수거하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지휘관이 다급히 병사들을 끌고 안으로 들어간다. 기사는 그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눈앞의 에릭에게 집중하고 있다.
‘엘로이가 고용한 놈이 아닌가? 흠, 뭐…, 저놈은 대장에게 맡기면 되겠지.’
설마, 대장이 지기라도 하겠어?
“가자. 레드필 병사들이 알아서 꼼꼼히 뒤져줄 테니, 우리는 가서 상단주나 잡아 오자고.”
“예!”
3번 용병대의 대원들이 알비노의 명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허공을 나부끼는 뇌기. 시퍼런 전광을 사방에 흩뿌리며 렌의 중심으로 도열하는 뇌기의 파편들은 렌이라는 검사의 존재감을 한층 더 높게 끌어 올려줬다.
‘하, 북부에서 마스터급의 괴수를 죽였다더니, 정말로 혼자 죽인 것이었나?’
느껴지는 존재감은 가히 마스터급.
하지만 그의 예리하게 치솟은 감각은 렌 아르젠이 결코 마스터급은 아니라 말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파악이 안 되는 인물은 또 처음이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지금 컨디션이라면 상급 기사 상위급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르겠군.’
대원들이 다 무력화된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애초에 맞부딪히는 것 말고는 선택지도 딱히 없다.
“나보다 강한 쌍검을 잘 쓰는 놈은 아직 못 봤는데 말이지.”
“그래? 그럼 오늘 처음 보겠군.”
렌은 피식 웃으며 초혼에 담았던 뇌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잠시 집어넣었던 혈검을 다시 꺼냈다.
‘월일쌍검술의 숙련도를 익히려면 이럴 때 써먹어야지.’
렌이 월일쌍검술을 익히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로 혈검을 이대로 방치하기는 아까워서. 둘째로는 월일쌍검술의 성질 변화 운용법 때문이다.
‘아무리 내 직관력이 뛰어나다 해도 기본적으로 지식이 뒤받쳐주지 않으면 한계를 맞이한다.’
성질 변화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월일쌍검술로부터 시작됐다. 뇌기를 좀 더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라도 월일쌍검술의 숙련도를 올리는 작업은 충분히 필요한 일이었다.
“전력으로 가지.”
페트라가 먼저 선공을 취했다. 렌의 초혼과 혈검이 페트라의 쌍검을 천천히 받아냈다.
‘생각보다 어렵네.’
로완이 강령하여 쌍검술을 펼쳤던 감각과 그간 연습해온 것들이 있다고 해도 아직 숙련도 면에서 페트라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어지러이 뒤섞이는 검로.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검이 얽혀 빈틈을 내보이는 것은 한순간이다.
카앙!!
“크읏!”
렌이 뒤로 밀려났다. 순수 검술로는 아직 페트라를 이기긴 힘들었다.
“뭐야? 실망인데?”
페트라가 조소를 흘렸다. 처음에는 렌이 장난질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검을 계속해서 주고받으면서 점점 확신이 섰다.
렌 아르젠의 쌍검술은 어설프다는 것을.
“여태 그 검들의 힘으로 이긴 건가? 특히 그 붉은 검. 정체가 뭐야?”
페트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붉은 검과 검을 맞부딪힐 때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만 정신을 건드렸다.
“음……. 그건 네가 이기면 알려주지.”
“끝까지 여유로운 척은.”
가슴 한 켠에 드리우는 불안감.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그가 다시 검을 휘두른다.
서로의 검이 맞부딪힌다. 시끄러운 금속음과 어둠을 밝히는 불똥이 어지러이 피어올랐다.
‘뭐지?’
분명 초반에는 페트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세가 아주 느릿하게 조금씩 꺾여나가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너무 작은 차이라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근데 수십, 수백 번의 검을 나누고 나자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카앙!!
“큽!”
두 사람이 동시에 밀려났다. 페트라의 얼굴에 조금의 당혹감이 서리고 렌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일부러 실력을 숨긴 거냐?”
“……그건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렌이 피식 웃었다. 페트라 때문이 아니었다. 허공에 떠오른 수많은 메시지 때문이었다.
[월일쌍검술의 숙련도가 0.5111% 오릅니다.] [월일쌍검술의 숙련도가 0.1325% 오릅니다.] [월일쌍검술의 숙련도가 0.3009% 오릅니다.] [월일쌍검술의…….] […….]쌍검술의 대가를 만난 건 로완 헤르티아 이후 페트라가 처음이었다.
페트라와의 검술 대결은 렌에게 실시간으로 깨달음을 밀어 넣어주고 있었다.
직관을 깨우친 이후 실전에서의 긴박한 상황은 렌의 집중력을 배로 올려주었고 그것은 곧 월일쌍검술의 숙련도를 급성장시켜주는 동력이 되었다.
쇠약의 주문, 거력, 영혼 부르기, 강령 등등.
아직 쓸 수 있는 수단은 많았고 월일쌍검술의 핵심인 성질 변환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뭐, 애초에 빠르게 끝낼 생각이었으면 초혼 하나로 상대했겠지.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월일쌍검술 숙련도를 올리겠나.
‘벌서 숙련도가 10%를 넘어섰다.’
갈수록 숙련도의 상승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대련 한 번으로 이 정도의 숙련도를 쌓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놀아줄 수 있다.
카앙―!
“어머! 렌!”
“오빠! 괜찮아?”
페트라의 검이 렌의 팔을 스치고 지나가자 놀란 나머지 다른 이들이 걱정을 쏟아낸다.
‘흠…, 슬슬 나도 제대로 해볼까.’
초혼에 차가운 에너지가 모여든다. 손등을 시리게 만드는 서리. 묵직하면서도 단단한 그 빙(氷)의 속성이 초혼에 드러나자, 페트라가 미간을 좁힌다.
“얼음…속성?”
뇌기를 다루는 검사가 또 얼음 속성까지 다룰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겠지.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화아아악!
혈검 위로 휘감기는 화염.
그 시뻘건 불이 혈검에 달라붙어 지면을 밝히고 싸늘하게 가라앉았던 옥상의 대기를 달군다.
“뭐야?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스킬라가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렌 님을 보고 계십니다만…….”
“내가 그걸 몰라? 넌 지금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저게 그리 대단한 겁니까?”
아크로는 사실 렌이 펼쳐낸 저 기예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상단 일에도 분명 무력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만, 렌과 같은 경지의 검사들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으니.
그나마 스킬라는 상단주로서 대륙 최고의 검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오다 보니, 렌이 펼친 기예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대충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문이 잘못됐었어.”
한쪽 눈가를 씰룩인 페트라가 나지막이 말한다.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됐잖아. 썅.”
그가 다가올 재앙을 대비해서 온몸에 남은 기력이란 기력은 전부 끌어올린다.
‘여태 보였던 어설픈 검술은 다 장난이었나?’
렌에게서 치솟는 저 강대한 기세는 결코 앞서 상대했던 어설픈 쌍검술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망할, 여기서 뒈질 수도 있겠단 생각은 안 해봤는데.’
페트라의 목표가 바뀌었다. 임무의 성공에서 생존으로 말이다.
“네가 쌍검술을 보여줬으니 나도 보여주지. 쌍검술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양팔에서 흐르는 상극의 두 에너지가 헌 곳으로 모여들고 거칠게 반발하더니 곧 다시 융화된다.
‘월일쌍검술.’
제5 절기
혼돈 십자성
수직으로 교차 된 두 개의 검이 페트라에게 검기를 쏟아내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그곳에 혼돈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