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30
제130화
페트라의 용병대가 풀 게더 상단의 사람들을 베어내며 빠르게 복도를 질주했다.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딱히 망설임은 없다. 그저 맡은 임무의 완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 죄책감을 느끼기에는 이미 이 바닥에서 너무 오래 일해 왔다.
“1층에 다 몰려 있던 건가.”
“2층은 조용한데요?”
온갖 고성과 소음이 난무했던 1층과는 다르게 2층에서는 작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없기에 조용한 것은 아닐 터. 풀 게더 상단에서도 적습에 대비해 무언가를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페트라는 최대한 예민하게 감각을 끌어올려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철그럭.
방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쇳소리.
쉬이이이익!!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날아온 쇠사슬이 그의 두 검을 휘감고 잡아챈다.
“헤헤. 죽여.”
부스스한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남자가 허리와 어깨에 휘감은 쇠사슬을 당기며 말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듯 훼까닥 돌아간 눈동자. 눈가에 일어나는 작은 경련. 놈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퀴퀴한 냄새.
‘약물 중독이네.’
페트라는 남자의 붉은 눈동자를 노려보다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그딴 거나 처먹으니까 사리 분별 못 하고 뒈지는 거지.”
페트라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더니 쇠사슬에 감긴 검을 훅 끌어당긴다.
자신이 힘에서 밀릴 거라 예상 못 했는지, 당황한 남자의 얼굴에 페트라가 이마를 박아넣었다.
팍!!
“크허억!”
코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핏물. 동시에 쇠사슬을 풀어낸 페트라가 놈의 심장을 찔렀다.
눈을 부릅뜬 남자가 잠깐의 경련을 일으킨 후 그대로 축 처진다.
“약쟁이 새끼. 각성 효과가 있었나?”
갈색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자 대원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입술을 쓸었다.
“대장, 아무래도 이상해요.”
“뭐가?”
대원은 1층에서 보았던 애매한 숫자의 적들을 보며 의문을 가졌었다. 가만 보면 놈들의 싸움 방식도 제각각에, 너무 허무하게 1층의 입구를 내어준 느낌이었다.
근데 2층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약쟁이가 숨어 있다가 습격했다.
전력으로 써먹으려면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두지 않았을까? 단지 약쟁이라 통제가 어려울까 봐? 그것도 아니면 죽어도 상관없어서?
“1, 2층은 버리는 카드가 분명해요. 이건-.”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건물 바깥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뇌성. 순간적으로 건물이 잠깐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화력이 바깥에서 쏟아졌다.
“뭐야?”
눈을 부릅뜬 페트라가 벽에 붙어 창문 밖을 노려본다.
어둠을 밀어내는 강렬한 전광이 상단의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는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췄다.
바닥에 그려진 검은 흔적과 바닥을 기는 전류의 가닥들만이 조금 전 그 뇌전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 뿐.
이미 아케인 상단의 병력 대부분이 쓰러져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친…….”
“아까 그 마법사가 한 건가?”
“그, 그런 거야?”
대원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다급히 마법사를 찾는다. 하지만 어딜 보아도 그 마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가 아니야.”
페트라가 잔뜩 굳은 얼굴로 창문 너머 어딘가를 주시했다.
어둠 속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한 남자. 은은한 녹빛이 감도는 검을 든 남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앞마당의 풍경을 훑고는 허리춤에 걸려 있던 두 번째 검을 꺼내 들었다.
“쌍검을 쓴다고? 누구지?”
“저도 모르겠어요.”
쌍검을 쓰면서 저 엄청난 뇌기를 흩뿌리는 검사.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의 머릿속에 그런 검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 정도 실력이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는데.”
“풀 게더에서 아케인에 덤빈 이유가 있었나.”
아마 바깥에서 화력을 지원하고 있던 마법사는 이미 죽었겠지. 뇌전이 쏟아진 시작 지점이 마법사가 있는 곳이었으니.
더구나 저렇게 활개 치고 있는데 변변찮은 마법 하나 날아오지 않는 것만 봐도 그가 적어도 이 자리에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상단주와 아크로가 여기 있다는 거 확실하지?”
“네. 그 정도 정보도 없이 저희가 합류했을까요. 여기 렌 아르젠의 가족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 알지? 렌 아르젠과 원수져도 상관없으면 모르겠지만.”
“당연하죠.”
먼저 가서 숨어 있을 상단주와 아크로만 붙잡으면 게임 끝이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4번 대 대원들이 표정을 굳혔다.
“1, 2층은 미끼에요. 아마 범죄자들 위주로 고용해서 상단원들인 척 1, 2층에 깔아두고 저희를 묶어 놓은 뒤에 3층부터 본격적으로 막겠죠.”
“저 남자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나. 내가 가서 붙는 건 말도 안 되겠지?”
“네. 대장이 이길 수 있어도 효율이 떨어져요. 그냥 이 위로 치고 들어가서 상단주와 아크로만 납치하고 도망가면 이기는 싸움인데요.”
그리 말한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숨에 2층의 나머지 방을 대충 훑었다. 숨어 있던 이들을 단칼에 죽이며 3층으로 올랐다.
시간이 촉박해진 만큼 그들의 손속도 더 잔인해졌다.
타다다닥!
페트라를 선두로 계단을 타고 3층으로 향하자 쇄도하는 화염구.
후우우웅―.
벽면을 거뭇하게 그을리며 날아간 머리통만 한 화염구가 대뜸 페트라의 앞에 떨어지며 폭발하더니, 계단을 뒤덮는 열풍을 일으킨다.
“크윽!”
머리카락을 살짝 태워 먹은 페트라가 화염을 밀어내고 튀어나와 복도를 내달렸다.
“막아!”
“마법사 님을 지켜라!”
순식간에 앞을 가로막는 상단원들. 마법사의 모습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그들의 틈 사이로 보이는 자그마한 눈동자.
품에서 벼락처럼 꺼낸 자그마한 단검이 상단원들 사이의 자그마한 틈으로 빨려들어 가듯 침투하여 마법사의 눈알에 적중한다.
푹!
“크하아아악!!”
마법사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이곳에 진짜는 없다.’
시간이 촉박해지고 상황이 긴박해지니 페트라의 감각이 평소보다 배는 더 예민해졌다.
풀 게더 상단의 병사들과 수많은 용병들. 조금 전 페트라가 무력화한 마법사가 그나마 강한 용병이었으나, 아무리 기감을 널리 퍼트려봐도 그에 준하는 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사는 시간을 벌기 위한 속임수다.’
눈살을 찌푸린 그가 3층의 탐색을 포기하고 몸을 돌린다.
“도망간다!”
“잡아! 4층으로 못 올라가게 막아!”
뒤를 돌아서는 용병대를 다급히 따라잡는 풀 게더의 검사들.
“대장, 놈들의 속임수일 수도 있어요.”
“결정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별수 없어.”
시간이 촉박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아래에서 괴물이 아케인 상단의 병사들을 쓸어버리며 올라오고 있을 테니.
“비켜.”
대원들 사이를 뚫고 튀어 나간 페트라가 계단의 길목을 막은 용병들을 죽이고 복도에 선다.
뇌기를 다루는 쌍검술사. 그 괴물 같은 힘을 본 순간부터 들이닥쳐 오는 위기감.
‘설마 저 인간이 렌 아르젠은 아니겠지?’
렌 아르젠은 검과 궁을 쓰는 고수라고 했지, 쌍검이나 뇌기를 다룬다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엘로이 이 개새끼. 렌 아르젠도 문제인데 저런 괴물까지 상대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을 안 해줘?’
풀 게더가 비밀리에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의 괴물이 움직일 정도라면 꽤나 큰 거래가 오고 갔을 확률이 높다.
대형 상단인 아케인이 중형 상단인 풀 게더보다도 정보력이 부족한 건가.
저 괴물의 존재를 몰랐다면 무능력함이 문제고 알았다면 우리를 속인 괘씸함이 문제다.
‘설마, 에릭 그 자식이 이걸 알고 이번 임무에서 빠진 건가?’
렌 아르젠이 분명 대단하다고 해도 임무의 보상을 포기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쯧.’
이제와서 후회한들 뭐가 달라질까. 결국, 그가 해야 하는 건 지금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엘로이의 멱살을 잡으러 가는 것일 뿐.
“막아라! 놈들이 올라왔다!”
4층에 올라서자 적들이 검을 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대장! 그 괴물이 지금 올라오고 있어요!”
“썅.”
페트라가 거칠게 욕을 뇌까렸다.
지원군의 도착 소식에 적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자신들이 이겼다는 확신의 미소였다.
페트라가 눈알을 빠르게 돌리며 복도의 전경을 훑었다.
긴 복도와 양쪽으로 나열된 방문.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병사들과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
유독 복도의 끝 쪽 방을 지키듯 서 있는 이들의 기세가 강하다.
‘이대로 쭉 뚫고 가면 저 복도의 끝에 있는 방을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저곳에 상단주나 아크로가 없다면 괴물에게 따라잡힐 확률이 급격히 높아질 터.
저것이 함정이라면? 그대로 작전은 실패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저쪽의 건물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만약 시간이 끌려 괴물이 들이닥치면 싸우는 수밖에 없는데, 저쪽엔 창문도 계단도 없다.
도망치기 힘든 구조.
‘함정이다.’
페트라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올린다. 감각을 최대한 위쪽으로 퍼트렸다.
‘5층도 아니야, 이건…….’
옥상.
“옥상으로 간다!”
“예? 옥상이요?”
페트라의 외침에 적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입가에 깃들었던 웃음이 금세 사라지고 당혹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답이네.’
“잡아라! 못 가게 막아!”
“5층에서 다 내려와!”
3층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막아내던 용병대 대원들이 그제야 합류했다.
“옥상이다!”
페트라가 몸에 생채기 몇 개 나는 것을 감수하고 무리하게 적진을 뚫었다.
생각보다 적들의 수가 많았다. 온몸에 자잘한 상처와 함께 어느새 피 칠갑을 한 페트라가 옥상의 문 앞에 섰다.
쾅!
그리곤 옥상의 문을 거칠게 발로 차서 열자, 그곳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일단의 무리들.
“어?”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하, 드디어 만났네.”
페트라가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뒤쪽에선 아직 적들을 뚫지 못한 대원들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으나 상관없다.
결국 자신만 올라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전부를 제압하는 건 쉬웠으니.
“여기 있었나? 스킬라, 아크로.”
옥상에 몸을 숨기고 있던 스킬라와 아크로가 페트라를 보며 표정을 굳힌다.
“그릴리쉬 4번 대의 임무 성공률이 그리 높다더니, 비싼 값 하는군.”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면 우두머리의 자격이 없지.”
비웃음을 흘린 그가 땅을 박차고 뛰었다.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건 여기까지. 우선은 스킬라와 아크로의 포획이 먼저다.
후우웅―! 카앙!
옆에 있던 기사 하나가 그의 검을 가로막다가 바닥을 굴렀다.
“크윽…….”
“레이먼! 괜찮아?”
“괜…찮습니다요.”
레시아와 세이아가 다급히 쓰러진 레이먼을 부축했다.
“음?”
페트라가 그제서야 두 사람을 인지했다. 스킬라, 아크로와 함께 대피하고 있을 만한 신분의 두 여자라면…….
“아르젠인가?”
“그래.”
“귀찮게. 너희 둘은 비켜라. 난 이 둘에게만 용건이 있으니.”
그리 말한 페트라가 스킬라와 아크로에게 다가가려는데 레시아와 세이아가 그 둘의 앞을 가로막는다.
하얀 머리 여자의 허리춤에 검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딱히 신경 쓸 수준은 아닐 터.
“위험합니다! 두 분께서 이러시면-.”
“괜찮아요. 지금 렌이 올라오고 있잖아요. 조금만 버티면 돼요.”
세이아의 말에 페트라가 눈을 부릅뜬다.
“렌? 지금 올라오고 있는 저 인간이 렌 아르젠이라고?”
콰아아아아앙!!
그때, 건물의 내부에서 거대한 폭음이 또 한 번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대원들과 렌이 마주친 것이리라.
‘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렌 아르젠이 지금 왜 이곳에 있는 건지, 또 그가 사용하는 능력은 어떻게 된 것인지.
‘소문과 맞는 게 하나도 없잖아.’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저 둘을 인질로 삼기라도 해야 했다.
“비켜!”
“꺄악!”
스킬라의 앞을 가로막은 레시아를 밀치고는 스킬라의 목을 팔로 감싸고 단검을 뽑아 가져다 댄다.
“상단주님!”
“난 괜찮아. 그러니-.”
“조용히 해.”
페트라의 일갈에 입을 다문 스킬라.
툭, 투두둑.
옥상의 입구, 어둠에 가려진 안쪽에서 튀어나온 4번 용병대의 대원들이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내팽개쳐진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가 잿빛 안광을 번뜩이며 눈살을 찌푸린다.
“레시아?”
“오빠!”
땅바닥에 엎어져 바닥에 피부를 쓸린 레시아의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새끼가.”
심기가 불편해진 렌의 초혼 위로 푸른 뇌전이 휘감기며 전광을 내뿜기 시작한다.
“움직이지 마라. 안 그러면 스킬라의 목이 날아갈 테니.”
페트라가 단검을 좀 더 가까이 가져다 대자 스킬라의 목에서 피가 배 나왔다.
“…네 친구들은 죽어도 상관없나 보지?”
렌은 한곳에 차곡차곡 모여 있는 4번 용병대 대원들 앞에 뇌기를 뭉쳐냈다.
그 모습에 페트라가 인상을 와락 구기고는 단검을 천천히 뗀다.
‘하, 렌 아르젠이라니. 이러면 협박도 안 통하겠어.’
렌 아르젠을 앞에 두고 상단주를 납치해 도망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다. 대원들은 무력화됐고, 상단주를 잡는다고 한들 렌이 쫓으면 도망가기 힘들다. 놓아줄 것 같지도 않고.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렌 아르젠을 이기는 것.’
페트라가 그리 생각하며 대결을 제안하려는 그때.
“우리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는 거 어때?”
역으로 들어오는 렌의 제안에 입술을 비튼 페트라가 눈빛을 가라앉히고 스킬라를 풀어 아크로 쪽으로 밀어낸다.
“…좋다. 나도 그 명성 높은 렌 아르젠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