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71
제171화
금빛의 복도를 지나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차갑고 서늘한 지하 감옥이 나온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그곳을 지키던 성기사들을 향해 고갯짓한다.
“비켜라.”
“문을 열어라.”
“이 시간에 이곳은 왜 오셨습니까?”
“내가 그것까지 너희에게 말해야 하나?”
“아무리 추기경 예하라도 지금 같은 시기에 지하 감옥으로의 출입을 마음대로 허락할 순 없습니다. 우선 절차를 밟아서-.”
그 순간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기가 성기사의 머리통을 움켜쥐고는 생기를 빨아들인다.
“크으, 윽……!!”
아자젤의 영향으로 약해진 성기사가 아무런 반항도 못 한 채 주저앉아 쪼그라들었다.
“쯧. 일어나서 이곳을 지켜라.”
그리고는 순식간의 몸의 살가죽과 피부가 부패 되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시꺼먼 안광을 번뜩이는 해골이 일어선다.
딱. 딱. 딱. 딱. 딱.
턱을 움직이며 연신 시끄럽게 소리를 내던 해골이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끼익-.
철창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낮은 천장과 좁은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고약한 분위기의 감방.
그 안에서 힘들게 몸을 비틀며 삶을 갈구하는 죄수들을 무시하고는 조금 더 깊은 지하실로 이동한다.
차갑고 탁한 공기, 습한 돌바닥.
으어어어어어어―.
살려…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의 비명과 절규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탁.
걸음을 멈춘 남자의 양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죄수들을 옥죄고 그들의 생기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라.”
살가죽을 뚫고 일어난 해골들이 온몸에 마기를 줄줄 흘린 채 기괴한 음성을 내뱉는다.
그어어어어어어…….
카앙!! 캉!
이내 철창을 구부리고, 부수고, 잘라낸 해골들이 지하 감옥을 휘저었다.
남자는 해골들은 그곳에 내버려 둔 채 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적막한 복도를 가로지르는 발걸음 소리.
가장 악독한 범죄자들이 갇혀 있다는 최하층.
그곳에 도착한 남자가 어느 한 곳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렘.”
치렁치렁한 검은 장발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다.
벽에 기대앉은 채로 축 늘어진 렘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너는.”
“다 죽어가네. 구해주러 왔다.”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눈동자가 남자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는다.
철컥! 끼익.
자물쇠를 열고 쇠창살을 열자, 양손에 구속구를 찬 렘이 몸을 일으켰다.
“나와라.”
“나 좀 회복시켜주겠나? 이대로 가다간 죽겠군.”
“알아서 해라.”
남자가 렘의 구속구를 손으로 부수고는 바닥에 내던졌다.
신성력의 통제가 풀리자, 해방감을 느낀 렘이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신성력을 끌어올린다.
“힘들어서 그런다.”
“귀찮게 굴지 마. 구해줬으면-.”
갑자기 남자의 로브를 잡아채고 어깨 부분을 쭉 내린 렘이 인상을 와락 구기고 이를 악문다.
남자의 몸에 새겨진 시꺼먼 문양. 이건 분명 흑성의 문양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뭐가 말이냐?”
“정말로 흑성에 넘어간 건가? 신을 믿는다는 추기경이 어떻게 신을 배신하고……!!”
“쯧.”
탁!
렘의 손길을 쳐낸 남자가 로브의 후드를 내리고 금발을 쓸어 넘긴다.
“너도 교황에게 티배코를 먹이지 않았나?”
“저스틴!!”
다시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린 렘이 이를 아드득 갈며 말했다.
“그건… 성국을… 위한 것이었다.”
“교황을 무너뜨리고 성국의 국민들을 기만한 건 마찬가지지. 부랑자들은 모두 흑성의 노예로 던져주지 않았나?”
“닥쳐라! 그렇다고 나는 신을 배신하진 않았다.”
저스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목을 잡고 벽에 던져 버렸다.
쿵!
“크윽!”
아자젤의 영향으로 신체가 극도로 약해진 렘. 구속구에서 벗어났지만 신성력은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너와 나는 달라. 난 신에게 배신당했다. 내가 왜 그런 신을 믿어야 하지?”
“……설마 오실리아 때문인가?”
“그래. 내가 신성 왕국에 사제로 들어온 것도, 신을 믿기 시작한 것도 전부! 오실리아, 그 아이 때문이었어.”
저스틴의 눈에 시꺼먼 마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한다.
금빛 동공이 검게 물들며 그 안에 탐욕이 일렁였다.
“신에게 기도하면 언젠가는 오실리아가 나를 봐줄 거라 믿었지. 하지만 그년은!! 두카스를 사랑했다. 나는 언제나 뒤편이었고 나 따위는 봐주지 않았지.”
“저스틴, 그건 헛된 바람이다. 신께서는 그런 것까지 도와주시진 않는다.”
“웃기지 마라! 신은 항상 무엇이든 해줄 것처럼 계시를 내릴 뿐, 결국 모든 걸 우리에게 맡긴다. 그리고 항상 욕망을 숨기고 가식을 바라지. 그 무엇보다 신을 믿었고 간절했던 나는 매일 가식적인 삶만 살다가 그녀를 놓쳤다.”
“미쳤군. 너는 단단히 미쳤다.”
렘이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신의 은총을 받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만큼 나의 신에 대한 믿음이 컸다는 거겠지.”
“믿음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러니 돌아서는 거다. 신과 다르게 흑성은 인간의 욕망에 충실하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다. 난 이번에 이 가식적인 세상을 없애고 욕망에 충실한 세상을 만들 거다.”
렘이 다급히 눈알을 굴렸다.
다급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애병인 인페르노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았을 테지만, 그것도 없었으니.
“머리 굴려도 소용없다. 조용히 내 말을 따랐으면 살았을 것을.”
렘이 그 말에 조소했다.
과연 신을 배신하지 않은 자신을 살려두었을까? 절대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렘은 확신했다.
“죽어라.”
검은 마기가 렘을 옭아맸다.
“크으…, 윽!!”
점점 빨려 나가는 생기. 덜덜 떨리던 렘의 손가락이 쪼그라들고 그의 몸도 따라서 축 늘어진다.
툭.
허무하게 죽어버린 렘의 시체를 바닥에 내던진 저스틴이 그를 해골로 일으켰다.
고오오.
텅 빈 눈두덩이에서 일렁이는 붉은 안광. 살기와 적의로 번들거리는 해골을 보며 저스틴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린다.
“성국의 종말과 함께 새 시대가 올 것이다.”
* * *
아스테논 신전.
아자젤의 발동 장소로 모여든 바란의 기사들과 성국의 추기경들이 일제히 신전 안으로 들이쳤지만, 외려 흑성의 함정에 당해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젠장! 추기경 여덟이 힘을 합친 신성 마법진도 통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거냐……!!”
“교황 성하가 있었다면…….”
추기경들이 모두 어두운 낯빛으로 탄식을 흘렸다.
아자젤을 저지하기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이 신성 마법진을 펼쳤지만, 오히려 아자젤의 강대한 마기에 휩쓸려 피해만 본 상태.
몇몇 추기경들은 피를 토하며 몸을 회복시키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렌 아르젠, 렌 아르젠 경은 언제 오는 건가!!”
애스턴과 함께 아스테논으로 달려간 추기경이 렌을 찾았다.
무언가 방법이 있다는 듯이 움직였던 렌이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기다려 보게. 렌 님이라면 분명 이 상황을 해결해줄 테니.”
애스턴은 그저 더 이상의 피해가 늘어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스테논 신전 지하실에 숨겨두었던 라만의 창. 그곳에서 치솟은 검은 마기의 기둥이 신전을 꿰뚫고 하늘로 뒤덮어 바스티안을 둘러싸고 있다.
시꺼멓게 물들어버린 라만의 창을 보았을 때 추기경들의 표정이 얼마나 허망했던가.
자신의 대에서 교황이 암살당하고 성물이 오염되는 치욕을 맛본 그들의 심정이 무너져 내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쏟아낸 신성 마법은 보기 좋게 막혔고, 그를 대비한 흑성의 역습에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그들은 신전을 빠져나오기에 급급했다.
열 명의 추기경 중 절반이 더 싸울 수 없을 만큼 치명상을 입었으며, 그 나머지도 상당히 지친 상태.
그나마 저 앞에서 흑성의 괴물과 싸우고 있는 검주 때문에 이나마라도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대주교들은 모두 아군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라!”
흑성의 전력은 단 한 명이었다.
온몸이 창백하리만치 하얗고 얼굴에 화려한 분칠을 한 검은 머리 장발의 남자.
가히 괴물이라 할 만한 인간이었다.
“크흐흐흐……. 서로를 증오하고 끊임없이 의심해라! 그리고 나를 위해 싸우는 거야! 그러면 내가 더 이뻐해 줄 테니까. 후후.”
남자가 손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수십 명의 기사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주교급 이상의 사제들과 상급 기사들은 그나마 저 악마의 힘에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 아래는 모조리 휘둘렸다.
“죽어! 너를 죽이면 러스트 님에게 칭찬받겠지!”
“사제 놈들, 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마침 잘 됐어. 이참에 다 죽여버리고 러스트님의 사랑을 독차지해주마!”
한순간에 눈이 돌아버린 제국의 기사들. 기사단장들과 상급 기사들이 그들을 막아보지만, 상황이 여의찮다.
죽일 듯이 달려드는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해야 하는 상황.
신성력을 펼쳐 마기를 몰아내려 해도 아자젤의 영향으로 러스트의 권능은 더욱 강해지고 사제들의 신성력은 약해져 그것도 어려웠다.
“젠장, 이래서 쓸모없는 놈들을 발목만 잡는다니까. 그냥 죽이면 안 돼?”
아르젠 가문의 여섯째, 아르한 아르젠이 짜증을 내뱉으며 기사 하나의 목을 후려치고는 말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위력. 그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며 공격하는 아르한을 보며 리안 아르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그렇게 막 학살하면 이 상황이 끝나고 검주에게 책임을 묻게 될 거야. 황실에서도 격한 반발이 있을 테고.”
“무시하면 되지! 아무리 우리가 아르젠인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다간 아버지가 널 지켜줄 거 같아?”
아버지라는 이름이 나오자 망나니처럼 행동하던 아르한도 혀를 차고는 기세를 가라앉혔다.
“형이 똑똑하니까 말해봐. 그럼 어쩌라고? 지금 죽으면 나중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생각 중이야. 기다려.”
“칫, 그럼 내 맘대로 한다?”
“아니, 그건-.”
리안이 그를 말릴 새도 없이 못 참겠다는 듯 뛰쳐나가는 아르한 아르젠.
그의 시선이 저 멀리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3검주와 러스트에게로 고정되었다.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볼까!”
자신감과 흥분으로 번들거리는 눈빛. 그런 아르한을 보며 리안이 얼굴을 굳혔다.
“저 멍청이가.”
아무리 아르한이 검술 재능으로는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도 그 게으른 천성과 자만심 때문에 아직도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반면에 저 둘은 마스터 중에서도 벽을 최소 한두 단계는 넘은 이들이었다. 아르한이 간들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분명한 상황.
리안은 자신의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고민에 빠졌다.
‘젠장, 마스터급이 둘 정도만 더 있어도…….’
저 괴물이 시간을 끌며 이쪽 진영을 갉아먹고 있어서 그렇지, 본격적으로 싸움에 집중하면 이미 3검주도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검은 빛기둥, 저 흑마법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하물며 저 검은 장발의 남자도 괴물이었고.
후웅―! 서걱!!
그때 제국 기사의 팔을 하나 잘라낸 짧은 머리의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리안 옆에 섰다.
“리안 아르젠.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로젠트 발렌베리? 용케 도망 안 치고 일로 왔네.”
“도망? 하! 우리 발렌베리를 뭘로 보고……!”
“그런 놈이 브릴런트를 쳐들어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도망갔어?”
리안의 말에 얼굴을 와락 구긴 그가 이를 아드득 갈며 짜증을 토해내듯 옆에 있는 기사를 향해 발길을 날린다.
“형! 도대체 이게……, 머리가 지끈거려서 버티기가 힘들어!”
밀로 발렌베리가 기사들의 검을 막으며 소리쳤다.
“쯧. 그러니까 평소에 수련을 열심히…! 하라고! 했지이!!”
기사 셋의 검을 동시에 막고 밀어내며 빠져나온 플랫 발렌베리가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리안 아르젠.”
“그래, 장난은 이만하자고.”
리안도 인정하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상급 기사 셋의 합류는 그로서도 더 환영할 일이었으니.
“지금은 마스터급의 실력자가 필요해. 저 괴물을 뚫으려면 마스터가 최소 둘은 더 있어야겠거든.”
“그래? 그럼 조금만 더 버티면 되겠군.”
로젠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리안.
“랜드알드로 군단장을 생각하는 거면 아마 바로 오지는 않을 거야. 그 노인네는 자기 왕국 사람들을 끔찍이 여겨서 거기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카앙!!
검을 쳐내고 기사의 투구를 바닥에 내리찍은 로젠트가 기사를 밟고 일어서며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난 렌 아르젠과 그 호위 기사를 생각하고 말한 거다.”
“……렌 아르젠? 그리고 그 호위 기사? 지금 무슨 헛소리를……, 설마 걔들이 마스터라고 하고 싶은 거야?”
“그래. 큭, 너는 믿고 싶지 않은 건가?”
로젠트가 재밌다는 듯이 리안을 보고 코웃음을 친다.
“이런! 씨-.”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기사들의 검을 간신히 피해 점프한 플랫이 욕설을 뇌까리며 중얼거린다.
“렌 아르젠 그 자식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이럴 때나 빨리 튀어나오지!”
“그니까! 브릴런트 기사들이라도 여기 집어넣어야 나오는 건가! 좀 빨리 와서 구해줘라!”
밀로 발렌베리도 한탄하듯 소리쳤다.
그들의 아우성을 들은 리안이 어리벙벙한 얼굴이 되어 생각에 잠겼다.
‘렌이 진짜 마스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