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
제22화
땅을 들어내고 튀어나온 수십 개의 촉수가 일제히 기사들을 향해 질주한다.
최대한 서로의 간격을 벌리지 않은 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루이즈와 기사들.
그 연계가 서로의 사각을 보완하며 제법 뛰어난 방어력을 보여줬다.
“조무래기들이 발악은 잘하는군.”
쿵!
흑마법사의 지팡이가 다시 한번 땅을 찍자, 촉수 표면에 시꺼먼 막이 생겨나며 촉수들이 검에 잘리지 않고 달라붙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뭐야!”
“떨어지라고!”
“젠장! 베지 마! 최대한 피하면서 흘려내라!”
생전 처음 겪어보는 적의 전투 방식에 당황한 기사들이 나름 서로를 보완하며 방어를 시도해보지만 소용없었다.
“어…엇!”
한 기사가 촉수에 검을 빼앗기자, 그들의 연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크허어어억!”
“그레이!”
“이런! 왕자님을 지켜!”
루이즈는 이를 악물었다.
렌이 상급 기사 수준의 적이라 했을 때, 조금 더 전략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다.
매일 같이 직접 검을 맞부딪혔던 이들이라 루이즈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기사들이 나름대로 방심하지 않으려 하긴 했지만, 상대를 상급 기사 수준으로는 보지 않았다는 것을.
‘도대체 이런 적이 어디서…….’
루이즈는 타고난 검재의 능력 덕분인지, 빠르게 적응하여 기사들보다 조금 더 수월히 촉수를 흘려냈다.
촉수를 피하며 슬쩍 뒤를 보니, 렌의 잿빛 눈동자가 담담히 흑마법사를 노려보고 있다.
‘긴장하고 있지만 동요하고 있지는 않다…….’
타고난 담력이 큰 탓일까?
아니면…….
– 루이즈, 내가 너를 위해 비밀 호위를 원정대에 넣었어.
– 예? 누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아니야!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나름 강하다고?
– 그게 누구입니까?
– 데케인 알지? 거기 묘지기인데-.
– 데케인의 묘지기 말입니까? 그 아르젠 가문 출신의?
– 응! 내가 봤는데 나름 검을 잘 쓰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 누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자꾸 말 끊지 마. 그리고 너……, 안 믿는구나?
– 아니, 그게 아니라-.
– 됐어. 아무튼 그리했으니 알아두라고. 놀라지나 마.
그때의 대화가 왜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일까.
분명 치기 어린 누님의 쓸데없는 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음?”
쇄도하는 시꺼먼 촉수들 사이로 갑자기 검을 들고 뛰쳐나가는 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건 착각인가…….
타다다다닷!
‘헛것이… 아니야?’
거침없는 다섯 번의 도약 이후, 휘둘러지는 검.
서걱!
쿵.
기사를 묶고 있던 촉수가 렌의 검에 힘없이 잘려 떨어진다.
눈을 부릅뜬 루이즈는 방금 본 장면이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으어어……, 렌?”
땅에 엉덩방아를 찍은 기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촉수를…잘랐어?’
루이즈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태 아무도 저 검은 마력에 휘감긴 촉수를 잘라내지 못했는데, 렌은 나뭇가지 잘라내듯 손쉽게 촉수를 베어냈다.
그리고 촉수들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패도적인 사막 부족의 모습 같았다.
‘아르젠의 검은 저런 강검이 아닐 텐데?’
거침없는 손속과 망설임 없는 움직임.
보는 이들마저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의 검술을 펼치던 렌이 쇄도하는 촉수를 왼손으로 붙잡더니 우악스럽게 이빨로 물어뜯었다.
우드드득!!
그리고는 입에 문 촉수를 거칠게 뱉어낸다.
퉤!
“레, 렌이 원래 저런 스타일이었나?”
“나도 모르겠군.”
“이빨에 분명 기를 실었어……, 저게 가능한 건가?”
기사들과 루이즈는 렌의 전투를 보며 입을 떡 벌린 채 전투가 끝날 때까지 다물지 못했다.
* * *
흑마법사의 실력이 생각 이상이다.
루이즈와 기사들이 제대로 상대도 안 되는 것을 보면.
‘내가 끼어들면 오히려 저 연계가 깨질 수 있어.’
이를 악문 내가 옆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을 때, 옆에서 잘라탄이 중얼거렸다.
– 역시, 비실비실한 것들이 싸움도 답답하게 하는군.
“도와주십시오.”
– 음……, 어떻게?
“이렇게.”
[강령 – 잘라탄]
나는 즉시 잘라탄에게 강령을 사용했다.
– 호오…….
그의 감탄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잘라탄이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입술을 달싹인 잘라탄이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땅을 박차고 뛰었다.
서걱!
단번에 잘려나가는 촉수.
그가 휘두르는 검격 한 번에 근육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허약하군.”
– 좀 적당히…….
“적당히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듯 보이던 그 움직임이 점차 자연스레 변하더니 이제는 마치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촉수들을 이리저리 피해댄다.
우드드득!!
거기다 저 위험천만해 보이는 촉수를 망설임 없이 손으로 붙잡아 이빨로 잡아 뜯는 호쾌함까지.
나는 그의 전투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이 무슨?”
순식간에 촉수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내 모습에 흑마법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다시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지팡이 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시꺼먼 악귀의 형상이 내게 덮쳐온다.
화아아악―
잘라탄은 미쳐 그것을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돌진하다 검은 마력에 휘감겨 바닥에 쓰러졌다.
– 뭐야? 잘라탄 님? 괜찮…….
– 괜찮다.
잘라탄의 영혼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의 옆에는 조금 전 내 몸으로 날아왔던 악귀가 손에 들려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끄허어어억…….”
잘라탄이 내 몸으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신음을 자아냈다.
분명 멀쩡한데 연기하고 있는 거다.
“렌!”
“젠장! 뭔 짓을 한 거냐!”
연기인 줄도 모르고 뒤쪽에서 기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어서 흑마법사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실 웃는 놈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니, 놈도 제대로 속았다.
“크흐흐……, 끝났군. 이제 네놈은 마귀에게 정신을 갉아 먹히며 서서히 죽음을-.”
후웅―푹!
“커허억……!”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음을 인지한 잘라탄이 기습적으로 땅을 박차고 달려들어 흑마법사에게 검을 내질러 심장을 찔렀다.
눈을 부릅뜬 그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찌른 검날을 붙잡는다.
검날에 베인 손바닥에서 바닥으로 핏물이 툭툭 떨어졌다.
그가 지진 난 듯 요동치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도대체 어떻게…….”
“크하하하학! 그까짓 마귀로 무…크윽!”
갑작스레 신음을 내뱉은 잘라탄.
고개를 떨구니 흑마법사의 핏물이 뱀처럼 검을 타고 들어와 옆구리를 꿰뚫고 있었다.
“흐흐흐…….”
그 모습을 보던 흑마법사가 비열한 웃음을 실실 흘리고.
촤아악―!
서걱!
인상을 구긴 잘라탄이 거칠게 검을 빼내고는 흑마법사의 목을 쳐냈다.
– 크하아아아…….
동시에 머릿속에선 잘라탄에게 붙들린 마귀가 무력한 신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 하찮군.
그리곤 잘라탄의 영혼이 시꺼먼 마귀를 붙잡아 뜯어먹기 시작했다.
[영력을 흡수합니다.] [영력이 1.3 증가합니다.]
‘오, 뭐야?’
잘라탄이 마귀를 삼키자, 그 영혼의 힘이 내게 들어온 듯했다.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렌.”
예상치 못한 능력치 상승에 놀란 것도 잠시.
어느새 내게 다가온 루이즈와 기사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강령이 풀립니다.]
그리고 할 일을 끝마친 잘라탄이 내 몸에서 빠져나왔다.
– 저 비실한 놈들보다 몸이 허약하다니……. 쯧, 내 몸이었다면 이런 상처 따위 잠깐이면 나았을 것을.
나는 그런 잘라탄을 무시한 채, 괜찮다며 루이즈와 기사들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실 괜찮지 않다.
아프다. 그것도 상당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옆구리가…….”
피가 철철 흐르는 옆구리를 보던 콧수염 기사가 다급히 여분의 붕대를 꺼내 내 허리를 감아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건 우리가 할 말이지.”
“맞아. 렌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지금쯤 다 저 흑마법사한테 죽었을 거다.”
“근데 아까 무슨 악귀 같은 거에 쓰러지던데, 그건 괜찮은 건가?”
루이즈의 물음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괜찮습니다. 흑마법사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되지도 않는 변명이었지만, 딱히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근데 분명 내 눈에 보였는데.”
“나도.”
“그니까, 무슨 난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도 소름이 끼치더군.”
역시, 기사들은 단세포라 그런지 딱히 내 말에 더 깊게 의구심을 가지진 않았다.
‘기사들은 대충 넘어간 거 같은데…….’
슬쩍 루이즈를 보았다.
그의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근데 렌, 자네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만?”
“그러게 말이야. 왠지……, 사막 괴수들을 처리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어.”
“도대체 그 촉수는 어떻게 벤 거야? 아무리 베려고 해도 안 베어지던데.”
“하하하…….”
질문 공세가 끊이질 않는다.
내가 한 게 아니라 딱히 뭐라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저 촉수는 도대체 어떻게 벤 거야?
나는 기도 쥐꼬리만 해서 기로 누를 수도 없는데.
– 쯧쯧.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기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마력의 흐름을 베면 되는 거다.
잘라탄이 내 표정을 읽기라도 했는지 나를 타박했다.
나는 ‘마력의 흐름이 뭔데?’라고 반문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기사들의 선망 어린 눈빛이 계속해서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얼굴에 약간의 창피함도 떠올랐다.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나를 지킨다고 나섰던 게 부끄러운 것이겠지.
근데 나 너희보다 약한 거 맞아…….
후련하게 속내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참 답답할 따름이다.
“그만. 렌도 방금 전투로 쉬고 싶을 테니 그만 괴롭혀라.”
의외로 제일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내던 루이즈는 단 한 마디의 물음도 없었다.
‘오히려 이게 더 무서운데?’
그래도 루이즈의 제지 덕에 나는 몰려오는 피로를 좀 풀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던 중에도 루이즈는 무언가 생각에 잠겨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뭔가 내가 싸우던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나는 더 이상 루이즈에 대한 신경을 끄고 잘라탄의 묘비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 저 인간 시체 치우고 가라.
“이거 여기다 묻고 가면 안 됩니까?”
– 여긴 붉은 달 부족의 묘지다. 저런 하찮은 놈을 여기에 묻는다고?
“저 시체 멀리에 숨겨 놓을 여력 없습니다. 이거 밖에 꺼내놨다가는 저놈 동료들한테 이곳 위치 들킬지도 모릅니다.”
– 크흠…….
나의 설득에 잘라탄이 고민에 휩싸여 침음을 흘린다.
“저거 여기서 망령되면 직접 괴롭힐 수 있고 재밌지 않겠습니까?”
– 허, 그것도 그렇군. 아까 저 녀석에게 찔린 옆구리가 아직도 쓰라린 것 같았는데, 마침 잘됐군.
잘라탄이 말하는 걸 보니, 흑마법사는 죽어서도 곱게 못 살 것 같아 보인다.
‘어라?’
이걸로 퀘스트를 받을 거라 생각은 못 했는데,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이건 무조건 끝내고 가야지.’
잠깐의 휴식 후, 루이즈를 보았다.
뭔가에 심취한 듯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콧수염 기사에게 다가갔다.
“이제는 빨리 가야겠습니다. 저 녀석과 비슷한 동료가 또 온다면 다음에는 정말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겠군. 너도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까 말이야.”
“아직 루이즈 님이 준비가 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저 좀 잠깐 도와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렌이 부탁하는데 우리가 안 들어줄 수가 있나?”
콧수염 기사의 말에 나머지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기 땅 좀 파주시겠습니까?”
“……어?”
“저 흑마법사 좀 묻으려고 합니다.”
“굳이 왜?”
“묘지기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도와주실 거죠?”
방긋 웃으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기사에게 들이대자, 갈피를 잃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결국 고개를 처연히 끄덕인다.
기사들 체면에 맨손으로 땅을 파는 짓을 또 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으나,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슥- 슥- 슥-
기사 넷이 빙 둘러 쭈그려 앉아 맨손으로 땅을 파는 모습이 퍽 웃기다.
그래도 기사들이라 힘이 강해서 땅을 파는 건 금방이었다.
[영력이 0.1 증가합니다.] [「서브 퀘스트 – 붉은 달 부족의 장난감」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힘 +0.2, 체력 +0.1, 기력 +0.1」을 획득합니다.]
‘좋았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이제 잘라탄의 부탁만 끝내면 그래도 이곳까지 온 보람이 생기겠지.
묘가 다 만들어지고, 때마침 루이즈도 눈을 번쩍 뜨더니 우리를 보고는 일어섰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시간이 끌렸나?”
“아닙니다.”
형형하게 빛나는 루이즈의 안광이 이전보다 조금 더 정순해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빨리 올라가죠. 언제 놈들이 올지 모릅니다.”
“그래.”
일행들과 함께 채비를 끝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던 중.
두근- 두근- 두근-
내 심장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씨…….”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 심장은 왜 또 이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