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크림슨 상단이 레드필에서 급속도로 성장해서 중형 상단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까지 자리를 잡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리코더였다.
브릴런트에서 시작된 리코더 열풍이 순식간에 퍼져 코르미르와 레드필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요즘엔 다른 나라에도 조금씩 그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다.
근데 리코더 제작에 가장 중요 소재인 버들나무가 바로 크림슨 상단이 독점하고 있던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버들나무 재배가 다른 곳에도 이뤄져 독점이 불가능하겠지만 현시점에서는 크림슨 상단이 독점하며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상단이었던 크림슨이 단숨에 중형 상단까지 올라왔지만, 레드필을 꽉 잡고 있는 풀 게더 상단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
더구나 브릴런트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발전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그쪽 시장을 선점한 풀 게더를 무시하고 브릴런트에 진출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얍삽한 놈 같으니라고. 리코더 제작 재료를 어떻게 알고 다른 걸 죄다 매수한 거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버들나무와 더불어 다른 재료들까지 그들이 팔았다면 그 수익은 극대화되었을 텐데, 풀 게더에서 재빠르게 다른 물량을 싹 쓸어갔다.
그렇기에 풀 게더와 협력을 하지 않으면 버들나무의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상대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힘 싸움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렇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꼭 네놈들 끌어내리고 그 반질거리는 머리통 숙이게 만들어주마.’
그때, 상단원이 들어와 그에게 아들놈의 사고를 말해준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해보십시오.”
“아들 녀석이 시비가 붙은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그렇습니까?”
“잠시만 나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상단원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크림슨.
아크로는 그런 그를 빤히 보다가 보좌관을 불렀다.
“아까 분명 치료원이라고 했지? 여기서 치료원이면 프랜시스 님이 하시는 곳이지 않나?”
“맞습니다.”
“알아봐. 저것들이 지금 무슨 짓 하려고 하는지, 이전에 무슨 짓 했는지, 전부 다.”
“예.”
보좌관이 그들을 따라 방을 나가고 잠시 후에 크림슨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근데 한 분은……?”
“아, 일이 있어서 먼저 보냈습니다. 저와 이야기하시죠.”
“예.”
아크로와 이야기를 끝내고 상단으로 돌아온 크림슨이 아들을 불러 크게 혼을 냈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아들아.”
“죄송해요. 아버지.”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쯧.”
“……예?”
크림슨이 고개를 저으며 아들의 양어깨를 잡고 말한다.
“돈을 쓸 거면 어중간하게 쓰는 게 아니라 화끈하게 써야 뒤탈이 없는 거다. 아들아. 어중간한 건 안 쓰느니만 못한 법이지. 알겠느냐?”
“예! 알겠어요! 아버지.”
“내가 사람을 불렀다. 너에게 맡기려고 가만히 놔뒀는데 괜히 일만 더 귀찮아졌구나.”
“죄송해요.”
“아니다. 이번 일로 배우는 게 있겠지. 네가 나중에 우리 상단을 물려받으려면 이 정도 일은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설령 불법적인 것이라 해도 말이다.”
“꼭 명심할 테니 그놈들 다 죽여주세요. 아버지.”
“걱정 마라. 이참에 그 치료원이라는 곳이 그렇게 돈을 잘 번다는데, 뺏어오는 건 어떠냐? 그 원장이란 여자도 네가 마음대로 하거라. 결국 크림슨 상단에 덤빈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흐흐…, 좋아요.”
하루가 지나고 크림슨 상단으로 들어오는 5명의 검은 복장의 검사들.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크림슨이 아들에게 소개한다.
“상급 기사급 둘과 기사 상위 셋으로 이루어진 팀이지. 치료원을 빼앗고 몇 달은 굴려야 본전을 뽑을 수 있을 정도가 들었다.”
“그, 그렇게나 많이요?”
그 정도면 거의 수백 골드는 들어갔다는 소린데, 한 번 움직이는 데 그 정도라면 너무 과한 지출이지 않나 싶었다.
“과해 보이느냐?”
“사실 조금 그래요.”
“여러 가지 이익들을 생각해 보거라. 그것들을 전부 떠올린다면 전혀 아깝지 않을 테니. 그리고 네가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다.”
“알겠어요!”
“우리는 치료원을 완전히 부숴놓을 거다. 그리고 몇 달간 일도 못 하게 그 원장이란 여자도 다치게 만들고 돈에 허덕이게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돈을 빌려주는 거지. 그러면 끝이다. 치료원도, 그 원장이란 여자도 우리 크림슨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할 테지.”
“아버지는 진짜 대단하세요!”
“오늘 밤에 남들 모르게 처리하는 거다. 그리고 착검은 당분간 네 호위로 둬라. 놈들이 너를 찾을 수도 있으니.”
“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해도 괜찮을까요?”
“괜찮다.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찾을 수 없을 거다.”
“그렇군요.”
“오늘 밤이다. 그때 이 귀찮은 일도 빨리 마무리 짓자꾸나.”
* * *
브릴런트의 아르젠 저택에 사업차 와 있던 아크로는 보좌관이 말해주는 소식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크림슨 놈들이 흑살단을 고용해서 오늘 밤 치료원을 치려고 하고 있다고?”
“예.”
“어떻게 알았지?”
“착검이 배신했습니다. 이쪽에 낭인왕이 있는 걸 알고 말이죠.”
“낭인왕?”
“렌 님께서 낭인왕을 데려오셨다고 합니다. 바실 님께서 렌 님 밑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고 낭인왕도 이쪽에 붙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허…, 용병왕이고 낭인왕이고 뭔 왕이란 왕은 다 수집하시는구만.”
아크로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생각할수록 웃겼다. 브릴런트에서 고작 이제 막 중형 상단으로 올라온 새파란 것들이 렌 아르젠의 사람을 건드리려 한다는 게.
끼익.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실.
나이는 아크로보다도 훨씬 많았지만, 저 건장한 모습만 보면 아직 팔팔해 보였다.
“뭐, 똥파리 하나가 자꾸 귀찮게 군다고?”
의자에 털썩 앉은 바실이 물었다.
“예. 첫날에 렌 님과 레이먼이 시비가 붙었던 것 같습니다. 렌 님은 그냥 넘어가셨지만, 아무래도 놈들이 렌 님에게 앙금을 품고…….”
“쯧, 어디라고?”
“크림슨 상단입니다.”
만사가 귀찮은 듯한 표정. 주변을 기웃거리는 똥파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아크로는 섬뜩함을 느꼈다.
어딘가 모르게 무거워진 분위기가 공간을 짓눌렀다.
아크로도 이제는 대상단의 부상단주로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는 만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자주 만났다.
그만큼 안목도 생겼고, 그간 접하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용병왕 바실, 현재 렌 님의 아래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사람.’
실상 렌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인물이다. 악마들을 썰어버리고 교황급의 신성력을 펼치며 차기 아르젠의 가주로 거론되는 렌이 인정한 검사.
대륙의 3검주도 바실에게는 한 수 접어줘야 한다던가.
‘중요한 건 렌 님의 세력엔 바실 님 뿐만이 아니라는 거지.’
끼익.
그때, 두 사람이 방으로 걸어 들어 온다.
둥그런 안경을 올려 쓰며 찰랑거리는 남색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미중년.
현 아르젠 가주인 플레처 아르젠의 동생이자 브릴런트의 아르젠을 이끄는 클레타 아르젠이었다.
그의 옆엔 남색 단발머리의 소녀도 있었다.
“늦었군.”
“미안하네. 애들을 봐주느라. 마티나, 바실에게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근데 제가 여기 있어도 되나요?”
안에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본 마티나는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을 눈치채고 슬쩍 빠지려 했다.
“아니다 거기 있어라. 넌 이따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같이 치료원에 좀 가야겠다.”
그때 바실이 그녀에게 손짓하며 앉으라 했다.
“최근에 미친놈들이 많아져서 실전 경험을 좀 쌓았지? 이번엔 좀 빡셀 거다.”
“예? 저 어린아이를 싸우게 하시려는 겁니까?”
아크로가 놀라 되묻자 인상을 팍 찌푸린 마티나가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노려본다.
“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어? 아니 그건 아닌데.”
“이 구역에서 제일 미친년이 나예요. 그놈들이 저보다 미치진 않았을걸요?”
그녀의 말에 미간을 좁힌 클레타와 호탕하게 웃는 바실.
“크하하하!! 하긴 너보다 미친 것들은 없긴 하더군. 지난번에 복부에 칼이 꽂히고도 상대의 목을 물어뜯는 걸 보고 대단하다 생각했지.”
“마스터께서 그런 상황에서도 투지를 보여야 한다면서요!”
“그래, 그래. 근데 그걸 진짜 바로 해내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마티나를 보며 즐겁다는 듯이 웃는 바실을 보며 아크로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이후로 크림슨은 너덜너덜해지겠군.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어.’
아크로는 조금 찝찝해졌다.
그들이 중형 상단이었을 때도 대형 상단이 되는 데 아케인 상단을 집어삼키며 커졌는데, 이번엔 또 크림슨 상단을 집어삼키게 생겼다.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상단 집어삼키는 이미지라도 생길까 괜히 두려워졌다.
* * *
밤이 되어 대기 중이던 흑살단이 움직였다. 능숙하게 담벼락을 넘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크림슨과 아들이 여유롭게 다과를 즐기며 기다렸다.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당하고도 왕실 경비대를 부르지 않다니.”
“아버지, 당한 건 저희예요.”
“……그건 맞군. 하지만 오늘로 치료원도 끝이다.”
“흐흐, 그 치료원장이란 여자 꽤 이쁘장하게 생겼던데 정말 제 맘대로 해도 되는 거 맞죠?”
“당연하지. 나중에 상단이 더 커지고 나면 네가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을 테니 너무 좋아할 것 없다.”
“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면 이제 저 대문이 열리고 만신창이가 된 치료원장이 나오겠지. 우린 여기서 그 모습을 보며 즐기면 된다.”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고 치료원 내부에서 먼지가 조금 피어나는 듯하더니 한참 후에 대문이 열렸다.
“조금 오래 걸렸군.”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크림슨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흑살단이 일을 마무리하고 나올 것을.
하지만 시꺼먼 인영 다섯이 던져지듯 대문 밖으로 나오더니 바닥을 굴렀다.
“뭐, 뭐야?”
“아버지, 어두워서 잘 안 보입니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함을 느낀 크림슨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언가 일이 틀어진 게 분명했다.
“아버지?”
“일어나. 빨리!”
“네, 네!”
그때 그들의 방 문고리가 부서지며 거칠게 열어젖혀 지고 일단의 무리가 걸어들어온다.
“누구야?”
“왕실 직속 기사단인 금사자 기사단의 단장 제프먼 알베르트다. 너희들을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하겠다.”
“뭐? 무슨 헛소리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체포해라.”
“예!!”
제프먼을 따라 들어온 금사자 기사단의 앤드류와 도미닉이 성큼성큼 걸어가 크림슨과 아들을 속박했다.
“이 자식들이! 나 크림슨이야! 크림슨 상단의 상단주라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아버지! 착검! 너 뭐 하는 거야? 당장 안 막아?”
착검은 코웃음을 치며 두 사람을 흘겨보고는 제프먼을 지나쳐 방을 나갔다.
그제서야 그가 배신했음을 깨달은 크림슨이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리고는 고성을 내지른다.
“이 새끼가!! 너 내가 반드시 죽여주마!”
“이게 돌았나? 지금 누구 앞이라고 살인을 하겠다 지껄여? 이거 완전 또라이네?”
“아아아아악!!”
앤드류가 크림슨의 팔을 잡아 꺾으며 말했다.
“이거 안 놔? 엉? 나랑 연결된 이들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너희 풀 게더에 돈 받아먹는다며? 거기 부상단주랑 나랑 무슨 사이인 줄은 알고 이러는 거냐!”
크림슨의 헛소리에 고개를 젓던 제프먼이 그에게 다가갔다.
“풀 게더 부상단주라……, 아크로 님을 말하는 건가?”
“그래, 크흐흐. 이제 좀 주제 파악이 되나? 원한다면 내가 돈 좀 넣어주지. 얼마면 되나?”
“이 상황에도 거래를 하려 드는군. 아무리 장사치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쯧. 네가 건든 분이 누군 줄은 알아?”
“내가 누굴 건드렸다는 거야? 나는 여기서 그저 아들과 오붓하게 차를-.”
“렌 아르젠. 네가 건든 분의 이름이시다.”
“……뭐?”
브릴런트에서 렌 아르젠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만큼은 어딜 가도 들을 수밖에 없으니.
“그, 그게 무슨 헛소리야!!”
“치료원장님이 렌 님의 친우이시다.”
“……뭐라고?”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치료원장의 뒷조사는 당연히 해본 상태.
그녀가 성흔 때문에 성국을 피해 몸을 숨기느라 정보가 거의 없기는 했다.
하지만 갑자기 렌 아르젠이 왜 나오는가? 렌 아르젠이 프랜시스라는 여자와 안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었다.
“……말도 안 돼.”
점점 창백해져 가는 크림슨을 보며 제프먼이 피식 웃는다.
“상황 파악이 되나? 장사치?”
* * *
그 시각,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데케인 근처에서 검을 휘두르던 렌.
그곳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한 여인이 걸어온다.
“……미리암 왕녀님?”
“여기 계실 줄 알았어요. 렌 경.”
미리암 헤르티아.
현재 렌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던 그녀가 갑작스레 그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