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39
제239화
처음에는 영혼 부르기를 이용해 콜 로스를 부르고 암황과 연결해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렌은 아직 에드리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의 숨겨진 비밀들을 모두 밝히기에는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봐 온 에드리크 님은 믿을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내가 아는 선에서일 뿐.’
브릴런트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면 로자리아에 가는 김에 암황과 함께 아비트라리를 들를 생각이었다.
어차피 가는 길이기에, 그 정도의 시간 투자는 괜찮을 테니.
그리고 에드리크의 입장에서도 아버지의 묘를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지.
“사, 사수님! 큰일…, 큰일났습니다요!!”
다급히 데케인을 올라오는 레이먼.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렌에게 달려온다.
“무슨 일이야?”
“국, 국왕 폐하께서…….”
레이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렌의 몸이 움직였다.
그의 뒷말이 무엇일지는 저 창백해진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었으니.
렌이 데케인을 떠나고 훈련장에 있던 시카가 레이먼을 붙들고 물었다.
“무슨 일이지?”
“국왕 폐하가 돌아가셨습니다요.”
“…….”
그 말에 시카의 낯빛이 어두워지며 데케인을 내려갔다.
데케인의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도, 브릴런트의 시민들도 모두 평온했다. 아무도 국왕의 서거 소식을 모르는 듯했다.
다급히 왕성에 도착한 렌은 금세 상황 파악을 끝냈다.
렌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제프먼이 렌을 마중 나와 있었다. 렌은 그와 함께 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문 앞.
왠지 모르게 적막하고 쓸쓸해 보이는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왔군.”
“렌…….”
알란과 루이즈.
“아버지……, 흐윽!”
국왕의 팔을 붙들고 울부짖는 1왕녀 제인.
“칫.”
렌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는 2왕녀 엘리.
“오셨…네요.”
울먹임을 참으며 렌의 옷자락을 붙잡는 3왕녀 미리암.
“폐하께서 편안한 곳으로 가셨다.”
무표정한 얼굴로 국왕을 내려다보는 모건까지. 국왕의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너를 부른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렌에게로 향한다.
“폐하께서는 어느 곳에도 눈치 보지 않는 왕국을 원하셨다. 지금 네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렌은 끝까지 입을 열지 못했다. 모건의 저 말에 무엇을 대답하겠는가.
왕의 피를 이은 자들이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앞에서 자신의 대단함을 대놓고 드러낼 만큼 렌은 뻔뻔하지 않았다.
모건은 렌이 없다면 전 국왕이 말했던 눈치 보지 않는 왕국이 이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 과한 생각인가 싶으면서도 이해되는 말이었다.
렌이 지금까지 밟아온 행보를 떠올리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브릴런트의 정통성이란…, 무엇이냐.”
“정통성은…….”
렌은 이것이 맞는 일인지 헷갈렸다.
이 자리에는 루이즈뿐 아니라 알란도 있었다. 모리스가 죽자마자 그 앞에서 루이즈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알란에게는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모건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단순히 국왕의 유지를 잇기 위함일 터.
대의적으로만 보아도 어쩌면 이게 맞을 수도 있다. 확실한 왕위를 세우고 왕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왕국을 지키는 일이니.
하지만 렌은 그럴 수 없었다.
“……스스로가 알 것입니다. 알란 왕자 전하도, 루이즈 왕자 전하도. 잘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렌 아르젠…….”
모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렌에게 경고했다. 더 이상 왕국에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지만 렌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장례식에서 뵙겠습니다.”
끼익…, 탁.
렌이 방을 나서고 그들 사이의 공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데케인에 도착할 때까지도 렌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루이즈를 밀어주었어야 했나.’
아마 루이즈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미 그가 가진 헤르티아 검술이 왕실의 정통성이라는 것을 말해주었으니.
하지만 지금의 왕실 분위기는 결코 좋지 않았다.
과연 누가 왕이 될 것인가로 나누어진 파벌. 기이한 공생 관계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대놓고 틀어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렌 아르젠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브릴런트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렌의 입김이 들어가는 곳으로 왕위가 결정될 것이란 게 그들의 생각이었으니.
모건과 왕자들 또한 그것을 수긍하기에 렌이 그 자리로 불려 간 것이었고.
‘……차라리 국왕이 알란이었다면 말했을 테지만. 쯧.’
루이즈라면 알란의 왕위를 인정하고 그의 형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과연 알란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생에서의 알란은 1왕자가 왕위에 오르고 곧장 처형당했다. 그렇기에 알란의 반응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알란은 똑똑한 인물이야. 완전히 선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악한 인물도 아니다.’
그간 알란을 봐온 렌의 생각이었다. 렌은 알란이라는 인물도 그대로 왕국에 끌고 가고 싶었다.
그가 이탈하는 순간 왕국에는 분명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그를 따르는 이들이 상당하니.
렌의 입김으로 루이즈가 왕위에 오른다고 한들 반발하는 이들이 다수 생겨날 것은 뻔한 일.
모건은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빠르게 왕위를 결정짓고 싶은 듯했지만, 렌의 생각은 달랐다.
‘왕자들 스스로가 깨우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루이즈가 스스로 왕위에 어울리는 인물이라 증명하는 수밖에.
“현자님.”
– 생각이 많으신 것 같군요.
“헤르티아 검술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 헤르티아 검술이라…, 어떤 게 듣고 싶으십니까?
“헤르티아 검술이 정말로 헤르티아 왕가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검술이 맞습니까?”
* * *
렌이 떠난 직후의 왕성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다른 이들이 알기에 앞서 주요 인물들만이 왕의 서거 소식을 먼저 접했을 뿐.
곧 브릴런트뿐 아니라 대륙 전체에 그 소식이 퍼질 것이다.
“대륙의 거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거다.”
알란은 혼란스러웠다. 이 자리에서 렌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의문스러운 말만 남기고 사라질 뿐이었으니.
“그들이 모여들기 전에 그들을 맞이할 대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형님…….”
“난 아직 모르겠다. 렌 아르젠이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야기한 것인지 말이야. 루이즈, 넌 아는 게 있나?”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더 이야기할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모두들 그만 자리를 비켜주시지요. 폐하가 있는 자립니다.”
모건의 말에 그들 모두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언제 알리실 겁니까?”
알란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먼저 물었다. 그들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선뜻 모건에게 묻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이 모리스의 자식이었지만, 그들 누구보다 모리스와 가까웠던 게 모건이었기에 그들은 모건을 존중했다.
“……3일. 3일 안으로 알릴 겁니다.”
모건은 국왕의 죽음을 바로 알리길 원하지 않았다. 다음 왕위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폐하는 왕국이 가장 먼저셨다.’
지금 폐하의 죽음이 알려지는 순간 왕국은 더욱 혼란에 빠질 터.
적어도 그의 자리를 물려받을 이가 확실히 되었을 때 공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의 장례가 조금 미루어지더라도 말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3일 뒤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죠?”
2왕녀인 엘리가 모건에게 따지듯 묻자, 제인이 그녀를 제지했다.
“엘리, 우리는 좋아서 가만히 수긍하는 건 줄 아니? 제발 조용히 해. 그전엔 아버지가 아프던 관심도 없던 녀석이.”
“언니! 그게 무슨-.”
“시끄럽다. 모건 경이 그리 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니, 너희도 그전까지는 입단속 잘해라.”
알란이 굳은 얼굴로 방을 나갔다. 그를 따라 다른 이들도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선다.
방에 홀로 남은 모건은 벽에 걸려 있던 자신의 애검을 향해 다가갔다.
국왕의 죽음 이후 은퇴하며 들지 않았던 그 검을 다시 들 생각이었다.
“3일이라는 시간, 그 안에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폐하.”
한편, 먼저 방을 나선 알란은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고 루이즈는 개인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집무실 가득 쌓인 고대 문서들. 왕국의 역대 기록들을 깡그리 모아놓은 알란은 심호흡을 하며 다시 책장을 넘겼다.
렌이 말했던 왕실의 정통성. 과연 그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알란을 그것을 찾기 위해 매일 밤낮 기록을 뒤지고 있었다.
‘과연 내게 정통성이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통성이란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렌 아르젠은 스스로가 그것을 생각해낼 수 있다고 했다.
정통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루이즈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애써 그러한 생각을 지우며 알란은 밤새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끝내 발견해냈다.
헤르티아의 기록이 담긴 오래된 고서의 끝자락에 남겨진 한 문장을.
[헤르티아 검술은 끝내 나에게 오지 않았다.]100년도 더 된 고서였다. 그 시기에 왕위에 앉았던 아르칼 헤르티아의 자서전 중에 있던 내용이었다.
알란은 헤르티아 검술이란 게 렌이 말했던 정통성일지도 모른다는 직감과 함께 지금 이 순간에도 훈련장에 있는 루이즈를 떠올렸다.
덜컹!
다급히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나간 그가 루이즈가 있는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알란 왕자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시종장이 그의 앞을 막아서자, 알란이 표정을 굳히며 그 자리에 섰다.
“여기에 루이즈가 있지?”
“예. 훈련 중이십니다.”
“비켜라. 루이즈에게 말할 것이 있으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루이즈가?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는 녀석이?”
평소에는 단체 훈련장을 이용하던 루이즈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훈련 모습을 감추는 것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렇게까지 꽁꽁 싸매고 있다는 건 무언가 확실히 숨겨야 할 것이 있다는 뜻.
“비켜라. 명이다.”
단호한 알란의 명에 시종장이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알란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에 집중했는지 누가 들어온 지도 모른 채 루이즈는 검술에 집중했다.
기본적인 찌르기와 베기. 복잡하고 어렵지도 않은 보법과 검술을 구사하면서도 낯선 검술을 루이즈가 펼쳐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 검술은…뭐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술이었다. 저건 브릴런트의 검술이 아니었으니.
단순한 듯하면서도 화려하다.
신기루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기묘한 검술.
후웅― 탁.
자신의 검술에 몰입해 허공을 베어낸 루이즈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깊게 심호흡을 내뱉은 그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훈련장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을… 안 닫았었나?”
* * *
데케인에 있던 렌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확인하고는 표정을 굳혔다.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걸어오는 노인.
날카롭게 갈린 저 칼날 같은 기세는 여태 받아왔던 다른 이들의 기세와는 또 다른 예리함이 있었다.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겠군.’
렌은 노인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초혼을 꺼내 들었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르기는 했군.”
자신의 애병 ‘영월(永月)’을 치켜든 모건이 렌에게 칼끝을 겨눴다.
“예전엔 내 검 한 번을 받아내지도 못하던 놈이었는데 말이다.”
“옛날 옛적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경께서도 나이가 많이 드셨나 봅니다.”
렌은 슬쩍 웃으며 맞받아쳤다.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아직 새파란 놈에게 질 정도로 저물진 않았다.”
“그렇습니까?”
“건방진 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놈은 입을 열지 않겠지.”
모건의 투기가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오늘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