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38
제238화
파직!
전류를 튀기며 뛰쳐나간 렌의 혈검이 폴른의 검과 맞부딪힌다.
“크윽…!”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난 폴른이 다시 렌과 격돌했다.
우웅- 우웅-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진동하는 혈검.
렌이 그 반응에 눈을 빛내며 폴른을 노려본다.
“너…, 이 검 알아?”
그가 초혼이 아닌 혈검을 들고 달려든 이유는 혈검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설렘 가득한 진동이 렌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서걱! 카앙!!
혈검의 칼끝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혈흔을 바라보던 폴른이 고개를 갸웃한다.
“뜬금없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저건 과연 연기일까, 진심일까.
혈검이 아무 의미 없이 이렇게 반응했을 리가 없었다.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이든, 정말 모르는 것이든, 혈검과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해.’
혈검은 북부의 검귀 슬라임이 가지고 있던 검이었다.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며 능숙하게 사람들을 베어내던 살인귀.
하지만 단순히 잘 만들어진 검 이상으로 혈검에는 특별한 점이 많았다.
시야에 흐르는 붉은 안개. 그 안에서 그어지는 수십 개의 붉은 선.
단순히 검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힘이 일반적인 범주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렌이 아닌 다른 이들이 혈검을 들었다면 이미 혈검에 잡아먹혀 인간들을 도륙하고 다녔을 테지.
‘역시…, 악마와 관계가 있던 건가.’
지금까지 여러 악마들을 만나왔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까지 혈검이 발광한 적은 없었다.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번개처럼 쇄도한 렌의 혈검이 허공에 그어진 붉은 선을 따라 폴른의 모든 검로를 막아낸다.
“……크윽!”
낭아검은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궤적으로 공격이 들어오기에 치명적이다.
인간이 펼쳐낼 수 없는 궤적을 자유자재로 다루지만, 혈검은 그 궤적을 모두 읽어내듯 렌에게 선명한 검로를 그려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혈검은 마치 익숙한 검술을 상대하듯 했지만, 폴른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싸울수록 쌓여가는 확신에 렌이 눈을 빛냈다.
“알 거 없다.”
쿵!
왼발을 내디디며 벼락처럼 휘둘러진 채찍 같은 발길질.
막을 수 없는 궤적으로 날아와, 옆구리를 허용한 폴른이 바닥을 여러 번 구르며 제단 밖으로 떨어진다.
“캬아악…!”
입가를 따라 흐르는 핏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일어서는 폴른.
퉤!
가래를 뱉어내고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렌을 노려본다.
“제법인데.”
어느새 암황에게 당했던 오른쪽 어깨도 거의 다 회복되었다. 렌에게 복부를 가격당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내가 죽을 거라고 했었나? 그 정도로 가능하겠어?”
“얻어맞고도 입은 살았군. 2검주와 대련할 때도 그랬나?”
“……개새끼가.”
역시. 폴른의 역린은 2검주와의 과거였다.
‘침착한 듯하면서도 감정적이다. 마기의 영향인가? 이걸 이용하면 그리 어렵진 않겠어.’
현자님에게 들었던 것처럼, 아마 폴른은 발크루스의 힘을 받아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
확실하게 끝내지 않는다면 죽일 수 없다.
쿠구구구구…….
동굴에 나지막한 진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이은 격렬한 싸움의 여파가 내부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빠르게 끝내지.”
파직!!
뇌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렌의 온몸에서 새하얀 전류가 쏟아져 흘렀다.
아르젠 검술 뇌신류
– 보법
– 뇌인(雷引)
눈 깜짝할 새에 폴른에게 파고든 렌의 검이 바닥을 내리찍자, 전류가 역류하며 폴른을 덮친다.
콰아아아아아!!
몰려드는 전류의 파도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폴른이 움찔한 사이, 결정적인 타이밍만 보고 있던 암황이 허벅지를 찔러 그대로 뼈 채 갈라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몸을 비틀어 암황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폴른.
폭발적으로 가속하는 칼날이 암황의 목을 금방이라도 절단할 듯 움직였지만, 공간이 비틀리며 그의 검이 암황의 왼쪽 어깨를 베어내는 데에 그치며 바닥을 내리찍는다.
“큭…!”
순간 서늘해진 목덜미의 감각을 느끼며 암황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둘.
‘이런…, 도대체 어떻게 피한 거지?’
‘그 상태에서 정확히 내 목을 노릴 줄이야.’
아무리 마스터급의 검사라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왼발이 무력화되었는데 그 발을 지지대 삼아 몸을 비틀어 그 속도를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비틀린 시간의 목걸이가 없었다면 아무리 암황이었다고 해도 방금 그 공격은 정말 위험했다.
‘괴물이군.’
하지만 동시에 암황은 안심했다. 적어도 상대는 지난번 포지티리움에서 만난 악마에 비하면 충분히 상대할 만했으니.
더구나 이번 공격은 폴른에게 치명타를 먹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끝이다.’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을 뿐.
폴른의 신체가 아무리 회복력이 빠르다고 한들 한계 이상의 파괴력에 당한다면 버티지 못할 터.
억지로 암황을 죽이려다 자세가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왼쪽 허벅지는 근육이 다 떨어져 나가 쓰지 못하는 상태다.
아무리 놈이라 해도 지금 이 공격은 피할 수 없을 테지.
‘끝내라, 렌 아르젠.’
서로가 미리 입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렌은 암황의 의도를 파악하고 폴른을 끝낼 준비를 했다.
아르젠 검술 뇌신류
– 제1 검
– 뇌격일섬(雷擊一閃)
발을 내딛는 순간 지면으로 전류가 튀어 오르고, 혈검을 중심으로 주변의 대기가 휘몰아친다.
‘이것도 버틸 수 있을까.’
그대로 뻗어진 새하얀 섬광이 가속하며 폴른을 덮치며 벽면으로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쿠구구구궁!!
안 그래도 위태롭던 공동이 뇌격일섬의 충격파에 휩쓸려 거세게 진동한다.
천장의 돌무더기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폴른이 처박힌 벽면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곧 무너지겠군. 그 전에 나가야 한다.”
“그러죠. 놈의 생사만 확인하겠습니다. 에드리크 님은 2검주 님을 부축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됐다. 나…, 혼자 움직일 수 있다.”
비틀거리며 가슴팍을 부여잡은 2검주가 창백한 낯빛으로 일어선다.
그의 시선이 벽에 처박힌 폴른을 향하다가 돌아섰다.
쿠구구구…….
“서둘러야겠군.”
동굴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시체들을 수습할 생각이었지만,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간 뒤에 생각해야 될 문제였다.
“먼저 가십시오.”
2검주 또한 렌과 함께 폴른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로 미적거릴 시간이 없었기에 곧장 입구로 향했다.
쿵! 쿵! 콰앙!!
거대한 돌덩이들이 떨어져 내리는 동굴 속에서 렌은 폴른에게 다가갔다.
‘뇌격일섬은 정확히 들어갔다. 일반적이라면 절대 살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폴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뜻.
‘2검주는 폴른의 근본이 착하다고 했지만, 이미 마기에 많이 잠식당했어. 2검주를 찌른 것만 보아도 돌이킬 수 없다.’
후두둑.
벽면에 산처럼 쌓인 돌무더기. 뇌격일섬의 영향으로 한쪽 벽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 도저히 파낼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파직!
‘과한 느낌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아르젠 검술 뇌신류
– 제1 검
– 뇌격일섬(雷擊一閃)
콰아아아아아아앙!!
뇌전의 빛무리가 돌무더기를 뚫고 내부를 가격했다. 커다란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비산하는 돌덩이들.
[「서브 퀘스트 – 낭아검의 주인」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 – 모든 능력치 +2, 낭아검」을 획득합니다.]‘죽었군.’
방금 뇌격일섬의 충격으로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밖으로 나가는 입구도 이제는 절반 넘게 막힌 상황.
렌은 최대한 속도를 내서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왔군.”
“폴른은? 녀석은…, 어떻게 됐나?”
2검주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던 렌은 그가 아직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했음을 느꼈다.
혹시 폴른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그와 동시에 결국은 죽음으로 그를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죄책감이 공존해 있었다.
“죽었습니다. 확실히.”
“……그렇군.”
후련한 듯하면서도 그의 얼굴엔 씁쓸함이 더 크게 드러났다.
“미안하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전부 떠넘겨 버렸다.”
“지금 2검주 님을 보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들 같습니다.”
렌의 싸늘한 말에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다.
“맞는 말이야.”
어둑해진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폴른을 추적하는 데에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마지막을 결국 남의 손에 맡기는 꼴이라니. 나 같은 놈에겐 제국의 검주라는 타이틀이 아깝다.”
“……그 말은.”
“제국으로 돌아가면 은퇴할 생각이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급하지 않아. 이미 수없이 생각했던 일이야. 그전까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이번에 확신이 들었다. 내겐 자격이 없어.”
그가 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내가 약조한 것은 반드시 지키지. 만약 정착을 하게 된다면 브릴런트로 서신을 보내겠다.”
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맞잡았다.
“치료라도 받으시고 가시죠.”
“됐다. 이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적어도 오늘을 잊지 못하겠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2검주가 숲속으로 터덜터덜 걸어 사라졌다.
렌은 그에게 손을 내밀까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 생각하고 접었다.
“이번에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야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아직 암황이 렌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렌은 처음 만날 때부터 줄곧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저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을 뿐.
“우선은 가시죠. 치료부터 받아야겠습니다.”
“그러지.”
* * *
현세대의 암황 에드리크 로스.
렌은 암황이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며 아르젠의 사람들을 구해줬을 때부터, 그가 무엇을 원하고 다가오려는 것인지 예상하고 있었다.
콜 로스. 자신이 두카스 교황을 죽이고 새겼던 그 이름.
암황이 자신을 찾을만한 이유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그의 이름이 에드리크 로스라는 것을 들은 순간 확신했다.
자신에게 귀술을 가르쳐주었던 콜 로스가 바로 전세대의 암황이었음을.
그리고 에드리크 로스가 그의 아들이었음을 말이다.
‘콜 로스 님에게 아들이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어.’
도대체 왜 아들에게 귀술을 전수해주지 않은 것인가.
그리고 암황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암황이 된 것일까.
“콜 로스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궁금하다고 하셨죠.”
“그렇다.”
지금까지 묻지 않고 참고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전 콜 로스 님과 직접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제가 죽은 망령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항간에 그런 이야기가 떠돌긴 하더군. 묘지기라는 이름 때문에 생겨난 헛소문이라 생각했다.”
에드리크 역시 렌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믿지 않았다.
“그 소문, 사실입니다.”
“……허, 믿을 수가 없군.”
“믿지 않으신다면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겠군요.”
“믿기 힘들다는 것뿐이다. 네가 굳이 내게 이런 걸로 거짓을 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 콜 로스 님에게 그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게 자신의 이름을 대륙에 퍼트려달라고 했죠. 전 그 부탁을 들어준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랬다고?”
“예. 후회하고 계셨죠. 죽고 나니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
에드리크가 침음을 흘리며 침묵하자 렌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나도… 아버지와 대화해볼 수 있겠나?”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당신의 아버지가 있는 무덤으로 말입니다.”
* * *
브릴런트 왕성 국왕의 침실.
누워 있는 모리스 국왕과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모건.
국왕의 가냘픈 숨소리가 이어지다 이내 멈춘다.
“……폐하.”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하던 모건은 국왕의 손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