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원정대가 한순간에 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브릴런트 왕국의 3왕자인 루이즈 헤르티아의 실종.
기존 사막 보스들과는 다른 엄청난 체급의 보스가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에 나타났다.
아무리 보스를 잡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더라도 원정대에는 상급 기사인 스칼렛 아르젠이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 허무하게 놓쳐버린 것이다.
‘쯧.’
스칼렛은 간만에 신명 나게 싸울 상대를 놓쳤다는 것에 열이 뻗친 상태였다.
루이즈의 실종은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렌 아르젠…….’
루이즈와 함께 사라진 그 녀석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자신보다 보스를 먼저 인지하고 루이즈를 지키러 간 놈.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 기껏해야 기사급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주변에서 일어난다.
‘궁금해.’
스칼렛은 원정대와 함께 루이즈 일행을 찾으러 나섰다.
전투 낙타를 탄 기동대.
그 안에 합류하여 빠르게 사막 지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꼬박 하루가 지나고 새벽녘의 푸른 하늘이 드러날 때쯤.
사막의 거센 모래바람을 발견했다.
“나 먼저 갈 테니, 알아서 따라와!”
스칼렛은 기사들을 내버려 둔 채, 낙타도 버리고 달렸다.
사막의 지평선 저편에서 보이는 모래 폭풍.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발생하기 힘든 현상이다.
우웅-
한 발자국 땅에 닿을 때마다 지면의 울림이 느껴진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저건……!’
허공에 흐릿하게 퍼져 있는 보랏빛 안개.
흑마법사들의 마력이 분명하다.
스칼렛은 이번 사건에 생각보다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모래 먼지 사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렌 아르젠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놈의 지팡이 끝에 피어나는 보랏빛 마력이 렌을 향하고 있었다.
아르젠 검술
– 제3 절기(絶技)
– 월파(月波)
검 끝에 모여드는 붉은 기가 반월의 형태로 쏘아져 흑마법사를 향해 날아간다.
기습적인 단 한방으로 흑마법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꺼낸 제3 절기.
“허?”
다급히 실드를 펼쳐낸 흑마법사는 월파를 받아냈음에도 땅을 굴렀을 뿐,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내 월파를 버텨? 렌 아르젠은 저런 놈을 상대로 버틴 건가?’
그의 뒤쪽으로는 이미 명을 다한 묵빛의 지렁이가 보인다.
머리에서부터 쭉 찢어진 피부를 보아하니, 이 녀석이 죽인 것 같은데…….
“너, 정체가 뭐야?”
정말 힘을 숨기기라도 했던 걸까?
렌 아르젠의 미약한 시선이 천천히 위로 향한다.
“당…신은…….”
후우우우웅!!
렌이 힘겹게 말을 내뱉는 와중에 뒤쪽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마력.
스칼렛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검을 움직여 방향을 예측하고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에 잘려 나간 촉수가 바닥에서 퍼덕이더니 흩어져 사라진다.
그녀의 입가에 얕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너 좀 강한가 봐?”
“이런 개 같은! 왜 자꾸 거슬리는 것들이 하나씩 튀어나오는 거지? 안 되겠어. 싹 다 죽여줄게.”
땅바닥을 몇 번 구르더니 열이 머리끝까지 뻗쳤는지, 흑마법사의 기세가 일변했다.
“재밌네.”
스칼렛은 짧은 감상평을 내뱉고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 * *
정신이 멍하다.
온몸은 괴물들에게 여러 대 얻어맞은 듯 욱신거리고 꿈쩍도 할 수가 없다.
무거운 눈꺼풀은 자꾸만 눈을 감으라 재촉하고 있다.
‘쯧.’
스칼렛 아르젠이 눈에 보인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안심이 됐다.
흑마법사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스칼렛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뒤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등이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은혜는……갚겠습니다.”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아마 치열하게 싸우느라 듣지는 못했겠지만.
눈을 뜨자 익숙한 막사의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메인 퀘스트 – 흑마법사의 음모 저지」를 해결했습니다.] [「쇠약의 주문」을 획득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메시지를 읽은 나는 내가 잠든 사이에 스칼렛이 니게르만을 잘 처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쇠약의 주문]
영력을 이용해 상대에게 악령을 붙입니다.
# 주위의 영혼이 상대를 옭아맵니다.
# 영혼이 달라붙은 상대는 신체 능력이 저하됩니다.
악령을 상대에게 붙인다?
어떤 느낌인지 이 설명만 봐서는 감히 잡히질 않았다.
더구나 주변에 영혼이 없으면 쓸 수조차 없는 능력.
힘들게 퀘스트를 완료한 것 치고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렌? 깬 건가?”
누워 있던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렸다.
루이즈가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 전하?”
당황스러웠다.
‘설마 내가 깰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의 떡 진 청색 머리카락과 퀭한 푸른 눈동자가 보인다.
“설마 여기서 제가 깰 때까지 기다리신 겁니까?”
“그래,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합니다.”
“그런 말 마라. 네가 나와 나의 기사들을 구하지 않았나?”
그 말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난 루이즈가 가볍게 목례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마십쇼!”
“미안하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너를 이 꼴로 만들었군.”
“아닙니다. 전하.”
“그리고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내 목숨은 그곳에서 끝이었을 테지.”
솔직히 이것도 의문이다.
내가 붉은 달 부족의 묘지를 찾자 말했고 묘지를 찾았기에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내가 없었다면 루이즈의 목숨이 위험했을까?
오히려 내가 있었기에 위험했던 게 아닐까.
“…….”
나는 그의 감사 인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하는 게 있느냐? 내가 어떻게 해서든 보상하겠다.”
보상이라…….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쓸만한 검 정도랄까.
하지만 지금 고민되는 건 데케인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일을 수락했을 때부터, 나는 데케인에 대한 지원의 확충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을 만나고 나니 그게 옳은 건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브릴런트 왕국에서 데케인에 대한 보안을 강화해 준다고 한들, 기껏해야 병사들의 수를 늘리거나 준기사 정도를 보내는 게 다일 것이다.
좀 선심을 쓴다면 기사 한 명 정도는 더 보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만난 흑마법사들은 둘 다 상급 기사 수준의 실력자들이었다.
즉, 같은 상급 기사가 지원을 오지 않는 이상 오나 마나 한 것이 된다.
오히려 국가의 지원 때문에 흑마법사들의 이목이 더 쏠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괜찮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죠.”
“그사이에 제법 나를 잘 파악했군.”
그사이가 아니라 당신을 십 년 넘게 봤는데 모를 리가.
루이즈의 얼굴에 얕은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자신을 잘 알아봐서 기분이 좋은 걸까.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생각나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알겠다.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면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보상을 주겠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왕실에서 보상을 내릴 거다.”
“알겠습니다.”
왕자를 구하는 데 일조했으니 당연히 표면상으로 보여지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한 것을 감안해서 국왕이 보상을 내리겠지.
“잘 깨어난 걸 봤으니, 난 그만 가마.”
“아, 전하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지?”
나는 품에서 작은 알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 알을 본 루이즈의 눈빛이 나를 향한다.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흑마법사를 상대하며 붉은 달 부족장의 묘지로 잠깐 도망쳤을 때 찾은 겁니다.”
“……부족장의 묘지에서 찾았다고?”
루이즈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어지간히 놀란 듯하다.
하긴, 포기했던 영약을 이렇게 갑자기 받게 되면 놀랄 만도 하지.
“붉은 달 부족의 비밀 영약입니다. 두 알이 있었는데 한 알은 제 상처를 회복하느라 먹었고 나머지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상처가 너무 심해서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됐다.”
루이즈가 내 손을 끌어 자신이 받았던 알약을 다시 내게 쥐여주었다.
“이건 네가 찾은 것이다.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은 없어.”
이럴 줄 알았다.
루이즈의 성격이라면 준다고 넙죽 받지는 않겠지.
이럴 땐 내가 그에게 단순히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외람된 말이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왕자 전하보다 훨씬 강합니다.”
“알고 있다.”
다른 왕자들에게 이딴 소리를 내뱉었다간 바로 칼을 빼 들었을 것이다.
상대가 루이즈이기에 이런 말도 가능한 것이었다.
“제겐 이 알약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를 먹어 보니 더 잘 알겠더군요. 이 알약은 신체 능력과 기력을 상당히 향상시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심(心)의 깨달음입니다. 이걸 먹는다고 한들 다친 몸이 빨리 회복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도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지금 루이즈 왕자는 나를 상급 기사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내가 말하는 것에 맹점을 찾을 수 없을 테지.
상급 기사가 그렇다는데 아직 완전한 기사급도 되지 않은 자기가 뭐 어쩌겠어?
“……그런가.”
역시.
루이즈가 내 말에 수긍하며 턱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
“그냥 드리는 게 아닙니다. 전 왕자 전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내… 가능성?”
“예. 전하의 검술 재능은 다른 기사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적어도 상급 기사… 아니, 마스터급 검사의 재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 말을 들은 루이즈의 동공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상급 기사도 아닌 마스터급의 재능이라는 소리에 부동심이 흔들리는 것 같다.
이럴 때 보면 아직 루이즈도 어리긴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아무리 루이즈 왕자라도 아직 10년은 멀었지.’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그의 손에 알약을 쥐여주었다.
“전 전하의 미래에 투자하는 겁니다. 받아주십시오.”
“……고맙…다.”
평소에 표정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루이즈의 눈가가 촉촉한 것이 감격한 것 같다.
좋아, 아주 효과가 좋군.
“바로 드시지는 마십시오. 나중에 제가 있을 때 데케인에서 복용하셔야 합니다.”
“왜 굳이 거기서 먹어야 하는 거지?”
그래야 조상님이 봐주실 수 있으니까.
효과를 최대로 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맘 같아선 잘라탄이 있는 붉은 달 부족의 묘지로 가고 싶지만, 그곳의 위치는 최대한 숨겨야 했다.
“그곳이 터가 좋습니다. 영약이 잘 드는 곳입니다. 제가 있어봐서 압니다.”
“……터가 좋다고?”
“예. 못 믿으시는 겁니까? 저 상급 기사입니다?”
“……알겠다.”
루이즈가 찜찜한지 미간을 좁혔지만, 결국 반박하지 못한 채 수긍했다.
“그리고 제 실력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알고 있다. 여태 실력을 숨긴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아, 그리고 붉은 달 부족의 묘지에 대해서도.”
“그래. 위치를 공개했다가는 흑마법사들이 다시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 내가 기사들에게도 일러두지.”
“감사합니다.”
루이즈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바깥에 소란이 일더니 또다시 막사의 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몰려 들어왔다.
루이즈의 기사들이었다.
“렌! 괜찮은 거야?”
“몸은 어때? 의사들이 온몸의 뼈가 금 가고 부러지고, 난리라던데?”
“옆구리는? 여기는 의외로 또 괜찮네?”
“흐어어어엉……. 렌! 난 네가 죽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이 양반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아픈 걸 알며 제발 좀 떨어져 줘.
“으어어어억!”
내 몸을 부둥켜안은 기사들을 밀어내기 위해 아픈 척을 시전했다.
“어어? 괘, 괜찮아?”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렌 아파하잖아!”
콧수염 기사 칼리드가 나를 안은 기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그를 당겨 떨어뜨렸다.
기사가 미안한지 나를 울먹거리며 조심스레 살피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비명이 괴랄하던데? 정말 괜찮아?”
“예. 버틸 만합니다.”
사실 하나도 안 아프다.
내가 자는 사이 교회의 성직자들이 완전히 회복시켜 놓았는지 몸이 팔팔했다.
“이것들을 그냥! 분명 렌의 몸이 완벽히 치료됐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어?”
어……? 그런 말을 들었었어?
“아무리 봐도 아파 보이잖아! 내가 가서 한마디 해야겠군!”
“나도 가지. 아무리 교회의 성직자들이라 해도 할 말은 해야지.”
“아, 아니…. 지금 보니까 몸이 괜찮은 것 같기도…….”
“렌! 괜찮아. 네가 우리를 살린 만큼 우리가 도와줄 테니 편하게 쉬고 있어라.”
그리 말한 기사가 대뜸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 잠깐만!”
뭐 이리 추진력이 좋은지, 내가 말릴 새도 없었다.
“에헤이! 걱정 말라니까!”
“아니, 나 괜찮다니까요?”
“무슨 소리야! 내가 방금 그 비명을 들었는데! 진짜 아프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비명이었어!”
“괜찮다니까?”
“쯧! 병자는 좀 누워 있어라! 우리가 은혜를 좀 갚게 해달라고!”
“야 이 색……!”
급기야 칼리드가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힘이 어찌나 센지 내 힘으로는 벗어나기도 힘들다.
“봐봐! 몸이 완전히 회복됐으면 우리를 못 밀어내겠어?”
“그렇네! 하하하!”
‘……이것들 사실 나 약한 거 알고 이러는 거 아니야?’
그날 나는 결국 성직자들에게 꼬박 반나절 동안 치료를 더 받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