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릴라 베이츠.
베이츠 염화술이라는 마력 술법을 가진 마법사.
마력 또한 11.5라는 제법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을 만큼 재능 있는 인물이다.
흑마법사 이후 정상적인 마력을 가진 인물은 릴라 베이츠가 처음이었다.
‘마법사들의 실력이야, 이전 생에도 꽤 많이 보았으니 뭐,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은 가는데…….’
검술도 검술마다 그 격차가 꽤 심하니, 마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가 가진 베이츠 염화술이 얼마나 대단한 마력 술법인지에 따라 그녀의 실력도 다르겠지.
“뭘…하고 있는 겁니까요?”
“또 뭔가를 분석하고 있는 것 같네.”
지난번 트레비스의 저택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또 저러고 있을 줄이야.
이번엔 도대체 무얼 분석하고 있는 거지?
“가까이 가보자.”
“들키지 않겠습니까요?”
“괜찮아. 어차피 저거 보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우리가 풀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제법 시끄럽게 냈음에도 릴라 베이츠의 시선은 자신의 손이 있는 곳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저렇게 연구든 분석이든 뭐에 집중하면 주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타입의 인간.
지난 트레비스의 저택에서도 저랬었지.
그녀의 뒤쪽에 다가가 뭘 하나 보니, 불을 뿜는 기다란 막대기로 붉은 꼬리 지네와 가시뱀물고기의 몸통에 불을 지졌다 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불이 너무 강했던가? 아니면 비늘이 아닌가? 아가미에? 아니면 눈알을 지져야….”
“와, 이 막대기 신기합니다요.”
“…아아악!”
난데없이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시뱀물고기 위에 주저앉았다.
“아악! 아으…….”
가시뱀물고기의 비늘에 난 뾰족한 비늘에 찔린 그녀가 엉덩이를 비비며 신음했다.
“어? 당신은……?”
“또 봅니다? 릴라 베이츠 씨?”
“렌 님이 여기는 어떻게…….”
“여기가 제 일터라서 말이죠.”
“네? 아!”
그제야 여기가 어디였는지 깨달은 그녀가 손뼉을 치며 탄성을 흘린다.
“데케인이 이 근처였나요?”
“예. 맞습니다.”
“그렇군요.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근데 이분은 누구신가요?”
그녀의 시선이 레이먼으로 옮겨가자, 레이먼이 웃으며 인사한다.
“아하하, 사수님의 오른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데케인의 부사수! 레이먼입니다요.”
“반가워요. 저는 릴라 베이츠라고 해요.”
두 사람이 악수하며 가볍게 인사한다.
“근데 저희 사수님과는 무슨 사이이십니까요?”
그 물음에 나를 한 번 쳐다본 그녀가 대답했다.
“별 사이는 아니고요. 며칠 전에 렌 님에게 신세를 지면서 알게 된 사이네요.”
그 말에 급격히 냉랭해진 레이먼의 표정.
“아, 그래요? 난 또……. 친한 척하길래 친한 사인 줄 알았네.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 거쇼?”
“네?”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레이먼의 태도에 당황한 릴라가 레이먼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게로 옮겼다.
“하하하…….”
나를 봐도 해줄 말이 없어.
얘가 원래 이런 놈이거든.
“근데 정말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찾을 게 있어서 브릴런트에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아! 그게…….”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그녀의 표정.
그 속내가 너무 얼굴에 잘 드러나서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다.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근데 제가 이곳에 제법 오래 있었어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불에 타지 않는 생물을 찾고 있어요.”
“불에 타지 않는 생물? 그런 게 존재하긴 하는 겁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저희 부모님이 제게 전해주신 유품에 있던 말이거든요.”
“아…….”
유품이라는 말에 나와 레이먼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릴라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전설들처럼 그 이야기도 과장된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몇 세대 전부터 내려오던 말이어서요.”
“그래서 그렇게 생물들로 실험을 하고 있던 겁니까? 트레비스 저택에서의 그 꽃잎도 그렇고?”
“네, 맞아요.”
난 지금까지 그녀가 단순히 그러한 연구나 분석을 좋아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보고 있어요. 가문에 남은 사람도 저뿐이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부모님의 유언에 따라 가문의 유산을 찾아보겠다고요.”
“가문의…유산이요?”
“아!”
그녀가 말실수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
“……맞아요. 사실 그것을 찾으면 가문의 유산을 얻을 수 있어서 찾고 있는 거예요.”
“걱정 마십쇼. 남의 유산을 탐낼 생각은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휴우……. 고마워요. 사실 렌 님이라면 왠지 믿음이 가서 저도 모르게 이야기가 나왔네요.”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야기했다.
“뭘 좀 아는 사람이네. 우리 사수님이라면 당연히 믿을 만하지!”
“렌 님이 말씀해주셨잖아요. 업을 쌓지 말라고요.”
“아…….”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참.
“그때 생각했어요. 제가 전생에 큰 잘못을 했기에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그것을 아는 렌 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믿어줘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이제 그것에 대해 알았으니, 정보를 수소문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정말…로.”
“제가 어떻게 연락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에요! 제가, 제가 올게요. 여기 데케인에. 아무래도 제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서 연락을 주고받기 어려우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정보를 알게 되면 데케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화를 끝내고 릴라는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더 돌아볼 곳이 있다고 하던가.
그리고 나와 레이먼은 데케인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사수님, 그 여자한테 또 가신다고요? 저 그 여자 무섭습니다요.”
“무섭긴 뭐가 무섭…기는 나도 좀 그렇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상상 그 이상으로 강해진 상태다.
지금 그녀를 상대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저도 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요?”
“아니, 너도 가야지. 눈도장 좀 찍어둬. 친해지면 좋을 사람이니까.”
“그 돈만 밝히는 여자가 말입니까요?”
“쯧, 사람의 본질을 봐야지. 나중에 너 나한테 고마워할걸.”
“그 정도입니까요?”
“그 정도뿐일까.”
키니쉬 블러프의 산 하나를 넘어 한참 움직이니 작은 마을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외곽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저기 나오네.”
마침 문이 열리며 금발을 뒤로 대충 묶은 여자가 커다란 이불을 어깨에 메고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를 보더니 멈칫한다.
“너희……!”
“안녕하십니까요! 저 레이먼이 왔습니다요.”
“프랜시스. 오랜만이네.”
표정을 굳힌 그녀가 이불을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빨래 걸이에 휙 던지고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지간히 짜증스러워 보이는 게, 별로 우리를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하긴……, 저번에 내가 그렇게 화를 내고 갔는데, 당연한가?’
“너!”
다짜고짜 다가온 그녀가 내 멱살을 쥐어 잡았다.
“어, 왜, 왜 그러십니까요!”
“왜 그래?”
나도 당황스럽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지난번에 뭐? 죽을 뻔했다고? 하! 근데 그 험난한 사막에서 살아 돌아오고, 심지어는 뭐? 역대급으로 강했다던 사막 보스의 대가리에 칼빵을 먹여?”
“어……,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오해는 무슨! 실력을 감추고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야? 그리고 나한테 그따위 훈수를 둬? 고작 고블린들이랑 그런 쓰레기 같은 용병들 상대하면서?”
“저기…, 좀 진정, 진정해봐.”
내 멱살을 쥔 악력이 어찌나 센지, 빠져나오기도 힘들다.
아까 그 커다란 이불을 휙 던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놔.”
“뭐?”
“내놓으라고. 돈.”
하……. 역시, 그게 문제였나?
“뭔 돈? 내가 왜?”
“네가 날 속였잖아. 계약 위반이야.”
“아니, 아니지. 잠깐 이거 놔 볼래? 우리 인간답게 대화로 하자고. 대화로.”
내 손짓에 그제야 손에 힘을 푼 그녀가 나를 놓아주었다.
“그래, 네 말대로 내가 실력을 속였다고 치자.”
“치는 게 아니지. 속였지.”
“그사이 성장했을 수도 있잖아?”
“성장은 무슨,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사막에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이 녀석도 운이 좋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내가 레이먼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이먼이 그럼 사막 보스의 대가리에 칼빵도 넣을 수 있니?”
“넣을 수 있지. 그 사막 보스는 이미 흑마법사한테 얻어맞고 빈사 상태였으니까.”
“그 흑마법사는 너를 가만히 내버려 뒀고?”
만반의 준비를 했구나.
빈틈을 찌르고 들어오는 게 제법 매섭다.
“네 말대로 역대급으로 강한 사막 보스였지. 흑마법사는 놈을 상대하기도 바빴어.”
“……그럼 도망 안 치고 왜 그놈을 공격했는데?”
“도망가려 하면 날 죽이려 했으니까.”
“억지 부리지 마.”
“억지는 네가 하는 거고.”
나와 프랜시스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치며 불똥이 튀기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쉽지 않은 상대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네가 뭐 이 녀석 정도의 실력이라 이 말이야?”
한발 물러서는 건가?
“그래. 나랑 레이먼은 그다지 실력 차이가 나지 않아.”
레이먼의 눈빛에 의아함이 담긴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눈빛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눈깔아.’
내 시선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레이먼의 시선이 내려갔다.
“레이먼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은데?”
“아닐걸? 레이먼. 내 말 맞지?”
“아, 예. 마, 맞습니다요! 저보다 아주 약간. 야아아아악간 더 강하십니다요.”
“그렇다는데?”
“그래서, 네가 준기사급이다. 뭐, 이 말이야?”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감돌았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확실히 말해.”
“……대충 비슷해.”
“호오…, 그렇다 이 말이지?”
프랜시스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당했음을 직감했다.
“근데 카르 가문의 셋째 아들, 로니 카르를 그렇게 가볍게 이기셨어? 로니 카르는 준기사급한테도 발리는 그런 등신이었다. 뭐, 이 말인가? 응?”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여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이런 촌구석에 박혀 있으면서 그 소문은 어떻게 벌써 들은 거지?’
프랜시스가 로니 카르와의 대결을 알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이 이야기로 나를 몰아붙이기 위해 지금껏 사막 원정을 강조하며 이야기했던 것인가.
정보의 우위를 이용하는 기술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이걸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돈을 뜯어냈을까.
“……그래, 내가 졌다.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인정은 빨라서 좋네. 그럼 지난번에 여기서 용병들의 몫까지 가져간 네 의뢰금의 7할 내놔.”
“……양심 없어? 7할? 3할로 해.”
“6할.”
“4할.”
“5.5”
“4.5! 더는 안 돼.”
“그럼 깔끔하게 절반씩 가져가자. 반반. 어때?”
“……하아, 그래. 절반! 그걸로 지난 이야기는 끝인 거다?”
“그럼. 당연하지. 나, 거래는 깔끔한 사람이야?”
깔끔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걸로 할까.
“그래서 용건이 뭔데? 부탁할 게 있으니까 온 거 아니야?”
“네가 말했던 로니 카르. 그 인간 좀 치료해줘야겠는데. 어떻게……, 가능하겠어?”
그 말에 그녀의 풀어졌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로니 카르? 왜 굳이 나한테?”
여기서부터 잘 말해야 한다.
로니 카르의 몸에 마기가 물들었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성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프랜시스는 신성력을 숨기고 있다. 이것을 부탁하기 위해선 그녀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던 것을 내가 알고 있음을 밝혀야 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말해야 할 것이긴 한데…….’
조금 빠른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로니 카르를 치료해주고 카르 가문을 완전히 우리 쪽 세력으로 흡수해야 하니 말이다.
애초에 이런 불법 사제를 찾는 것부터가 꽤 어려운 일이니.
“로니 카르의 몸에 마기가 물들었어. 그걸 네가 치료해줬으면 해.”
“……너!”
그녀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양 주먹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일렁이는 황금빛 신성력.
짙게 빛나는 신성력의 농도가 심상치가 않다.
‘……저거에 맞으면 며칠 앓아눕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