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 생각보다 잘하는군.
4시간 정도 짧은 훈련이 지나고 렌은 제법 즐거운 표정으로 훈련을 끝냈다.
이전까지 검술을 배울 때는 매번 구박만 받기 일쑤였지만, 생각 외로 렌에게는 암살자의 재능이 있었다.
그가 가르쳐주는 귀술(鬼術)을 가르쳐주는 족족 빠르게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 영력이라는 그 힘이 귀술과 아주 잘 맞는군.
“귀술이 영력을 쓰지는 않지 않습니까?”
– 그렇지만 그 결이 비슷해. 내게 만약 그 영력이란 게 있었다면 내 전성기보다도 더 강해졌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나 좋은 겁니까?”
– 그래, 너는 검사가 아니라 암살자가 되어야 했을 재목이었다.
“저는 검사가 좋습니다.”
– 쯧, 암살자가 됐으면 나와 같은 최고의 암살자가 되었을 텐데 말이지.
“그러면 죽은 후에 이렇게 후회하게 될 게 아닙니까?”
– ……맞는 말이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탓에 아마 동료들이 걱정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는 슬슬 돌아가야 했다.
– 아직 못 가르친 게 많거늘……. 쯧.
“아니면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 이 관이라도 들고 갈 셈이냐? 됐다. 이게 얼마나 무거운지는 아느냐?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굳이 아비트라리의 허름한 건물 안에 이런 정성을 들여 묘를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렌은 그의 사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 내게 아이가 있었다. 지금은 죽었지만, 그 녀석의 어미가 살던 곳이 여기였지.
“가족이 있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 지금은 없으니……. 아무튼 나는 굳이 여기를 떠나고 싶지는 않군.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귀환(鬼丸)을 3개나 쓴 탓에 네가 빨리 몸으로 습득한 것도 있다. 아직도 많이 어설프니, 반드시 다시 이곳에 오거라.
“알겠습니다.”
– 그리고 꾸준히 훈련해라. 암살은 무엇보다도 재능이 중요하지만, 훈련이 받쳐준다면 그만큼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없다.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렌은 고개를 숙이고 예를 취하며 그에게 인사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콜 로스는 분명한 그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점점 멀어져가는 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콜 로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내 이름이 여기까지 들리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 * *
레이크로 돌아가자, 렌을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놀란 눈으로 반겨주었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요! 걱정했습니다요!”
“밤 동안에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너 그 괴물한테 납치라도 됐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 볼일이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렸네.”
렌은 세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느라 조금 애를 써야 했다.
“렌 님?”
“어, 저…….”
에반이 민망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서 레이먼이 고개를 저으며 대신 말했다.
“사수님이랑 대련해보고 싶답니다.”
“아?”
“아! 한 번만 해주십시오!”
무슨 엄청난 부탁이라도 하는 듯 결의에 찬 목소리에, 렌이 헛웃음을 짓고는 승낙했다.
“따라와.”
대련을 할 곳은 이 무법 도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은 안쪽 구역도 마찬가지.
관리가 된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아비트라리에 한해서지 치안이 좋은 도시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물며 다른 도시도 치안의 빈틈이 많은데 오죽할까.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 뒷골목에 이르자, 인적이 뚝 끊어진다.
앞쪽으로 더 들어가니 버려진 공터가 나타났다.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널브러진 장소. 하지만, 주변 개의치 않고 싸우기엔 아주 적합하다.
‘마침 잘됐네.’
콜 스승님에게 배웠던 귀술(鬼術)을 시험해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안 그래도 상급 기사와 정면에서 붙을 때 사용하기엔 조금 무리고, 기사 중위급이면 딱 좋은데 에반의 실력이 그쯤 되니.
“가겠습니다.”
“그래.”
타다다닷!
밑바닥을 밀어내며 돌진하는 에반.
무작정 휘두르는 게 아닌, 하수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겠다는 심산이다.
캉! 캉! 캉!
공격을 받아내던 렌은 기회를 노리다 검을 위로 크게 휘둘렀다.
후웅!!
거친 바람과 함께 순간 시야가 가려진 에반이 렌의 기척을 놓쳤다.
‘아니……?’
금세 시선을 움직여 렌을 찾기는 했으나, 싸움에서는 그 찰나의 순간조차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윽.”
에반의 검이 막을 수 없는 궤적으로 검을 휘두른 렌이 그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졌습니다.”
“한 번 더 할까?”
그 말에 눈을 부릅뜬 그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잠깐만요! 저도 해주십쇼! 에반만 하는 건 차별입니다요!”
“그래, 너도 껴. 둘이 돌아가면서 아니, 같이 덤벼봐.”
정면 대결에서 귀술을 이용하니 생각보다 싸움의 효율이 높아졌다.
기회를 만들고 일격을 날리기가 좀 더 쉬워졌달까.
“둘이 말입니까?”
에반이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레이먼을 본다.
“하, 이런 녀석이랑은 못 합니다요!”
레이먼도 입술을 비틀며 고개를 저었다.
“둘이 같이 와야 그나마 조금 할만하겠는데? 왜? 둘이서도 안 될까 봐 겁나? 아니면 쫄기라도 했어?”
“…….”
“…….”
마지막 말에 둘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래, 너희가 별수 있냐.’
렌이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저 둘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다.
“너 제대로 해라.”
“너야말로. 방해나 되지 마라.”
두 사람이 검을 뽑아 들었다.
렌이 검지와 중지를 들어 까닥였다.
“덤벼.”
* * *
대련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귀술의 핵심은 기척을 없애고 존재감을 지워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에 있다.
내가 배운 것은 재능의 영역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싸움에 접목하니 레이먼과 에반 둘 다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다 대련이 끝나곤 했다.
“이게 아르젠 검술입니까? 하지만 제가 겪은 아르젠 검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무언가 혼란스러워 보이는 에반의 얼굴.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가 아르젠의 검술을 보았다면 그 차이가 명확히 느껴졌겠지.
“난 아르젠 검술을 쓰는 게 아니니까.”
“예……? 아, 아르젠이 아니라고 하셨던 게 이유가…….”
“그래, 난 아르젠 검술을 배우지 못했어. 다만 내가 가는 길과 아르젠의 길이 겹칠 수도 있을 뿐이지.”
“……설마 스스로 새로운 검술을 개척하고 계신 겁니까?”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본다.
그래, 이제는 하도 많이 겪는 오해라 별 감흥조차 들지 않는다.
“마음대로 생각해.”
“허어……. 역시 아르젠의 피는 다른 겁니까? 아니면 선배님이 더 특별한 겁니까?”
“우리 사수님이 특별한 거지! 아르젠 누가 검술을 개척해? 사수님은 아르젠으로부터 조금의 도움도 안 받았다고?”
괜히 자신이 가슴을 쭉 내밀며 자랑스레 말하는 레이먼.
너무 과한 찬사에 오히려 내가 머쓱할 지경이다.
“됐다. 이제 에반 너는 어떻게 할 계획이야?”
“저는 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곧 아카데미가 개학할 때라 다시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요.”
에반이 긴 한숨을 내쉰다.
“제가 너무 오만했던 것 같습니다. 고작 아비트라리의 암시장에 제가 못 들어간다는 게 화가 났습니다. 렌 님과 같은 분도 위험에 처했던 곳인데 말입니다.”
사실 에반 정도라면 충분히 갈 수 있다. 가문의 힘을 쓰고 돈을 좀 더 과하게 썼다면 충분히 티켓을 얻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가문의 힘도 쓰지 않고 이곳의 섭리도 잘 모르는 아카데미 학생이 구하기에는 어려웠겠지.
그래서 고작 흑사회 놈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나를 노렸던 것이 아니겠나.
“뭘 구하려고 그렇게까지 한 거야?”
“가문에서 찾는 유물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찾아가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질책만 받을 뻔했습니다.”
저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가문에 있었을 때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으니.
“그래, 돌아가면 아카데미 졸업이나 잘해라.”
“예, 저희 다시 볼 수 있는 겁니까?”
“졸업하면 브릴런트의 데케인으로 와. 그럼 손님 대접은 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에반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인사한다.
처음 봤던 그 오만방자하고 시건방진 모습은 사라졌다.
여전히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도 이제 돌아가야지.”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어.”
“뭐? 어디? 그건 계약 위반인 거 알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하지만 프랜시스는 내게 이미 커다란 빚을 졌다.
“네가 들어갔던 경매장의 입장권. 그게 얼마짜리인 줄은 알아? 더구나 그 덕분에 시간도 절약하고 헛고생도 안 했지. 소문의 진실도 확인하고 말이야.”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사실의 나열에 그녀가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눈알을 돌린다.
“잠깐 들르자?”
“……생각해보니 그것도 괜찮은 것 같네.”
그녀가 순순히 동의했다.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요?”
“리드라인 마을.”
“리드라인 마을? 그게 어딘데?”
“여기서 그리 안 멀어. 거기도 중앙 북부거든.”
조엘 홈멜스.
낭아검이라는 검술을 펼쳤던 미치광이 검사.
그 녀석의 동생이 중앙 북부 리드라인 마을에 있다고 했다.
‘다행히 지도에 리드라인 마을이 있으니…….’
* * *
다행히도 뒷골목의 우두머리인 크리스핀에게 중앙 북부 지역의 세부 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지도에는 지형지물과 곳곳에 어느 마을이 있고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쉽게 체감할 수 있게 그려져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길 헤매는 것 없이 리드라인 마을에 잘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산지 아래에 만들어진 그리 크지 않은 마을.
하지만 산을 오르는 이들이 제법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촌장님이십니까?”
“예.”
입구를 지키는 마을 사람들과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촌장.
겉보기에는 딱히 이상한 것 없는 평범한 마을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조엘 홈멜스라고 아십니까?”
예상 밖의 이름이었는지 촌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도 한순간에 달라진 것이 한 층 더 경계하는 모습이다.
“압니다. 이곳에 살았었죠.”
“조엘 홈멜스를 만났습니다. 그가 동생의 안부를 궁금해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오신 겁니까?”
“예. 아델린 홈멜스. 여기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마을 사람들이 걱정하는 눈빛을 했지만, 촌장은 마치 내 속내를 들여다보듯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시지요.”
프랜시스와 레이먼 또한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이다.
촌장이 향하는 곳은 마을 안쪽이 아닌 바깥쪽.
산의 입구로 들어가 한동안 걸으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거센 기합 소리.
동시에 무언가를 찍는 소리가 같이 들려온다.
쿵! 쿵! 쿵!
소리가 나는 쪽으로 들어가니, 나무를 베고 있는 한 근육질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쿵!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가는 두꺼운 나무.
선명한 근육이 팔에 붙은 것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왜소한 모습이다.
하지만 단 몇 번의 도끼질만으로 저 두꺼운 통나무를 쓰러트리는 것 하며, 쓰러진 나무의 밑동을 쉽게 들어 올리는 모습은 그 외관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미쳤다…….”
“저게 뭐야?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나?”
“허어…….”
우리 셋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사람이 아델린…홈멜스입니까?”
“예.”
촌장은 그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누구예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그녀가 통나무를 어깨에 짊어진 채 질질 끌고 다가왔다.
“이야기하시지요.”
촌장이 두 걸음 살짝 물러나고 그녀는 내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가까이 다가왔다.
“뭐죠?”
그리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오빠가 죽었다.”
“……뭐?”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고 들고 있던 통나무가 땅에 쿵! 하고 떨어진다.
금방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움켜쥔 주먹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저 주먹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본래 하려던 말을 내뱉었다.
“내가 죽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