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27
* * *
균열 발생 5분 전.
용산, 이능대응사령부 직할 신성기사단, 단장실.
“뭐? 작전참모.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 해보지 그래.”
신성기사단 작전참모 연시환 중령은 예상했던 대로 단장의 날 선 반응에 마른침을 삼켰다.
A급 특성, [징벌기사]의 보유자인 단장 강성태 대령.
특성명에 못지않게 호전적이고 불같은 성격이라는 건, 그간 보좌해오면서 익히 파악한 사실이지만.
이번에 내려온 명령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여겨, 이견을 제시한 그였다.
“불복이 아니라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린 겁니다. 성요한은 A급 [성자]. 비록 전투 특성은 아니지만, 잘만 키우면 ‘부활’도 쓸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잡아둬야 할 인재를 전역시키다니요?”
전날, 사령부를 통해 명령이 하나 내려왔다.
현 신성기사단 소속 성요한을 대체복무역으로 전역 처리할 것이니, 관련 절차를 밟으라는 내용으로.
연시환은 도무지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장인 강성태는 요지부동.
“이미 윗선에서 결정된 사항이야.”
“그래도 이견 정도는 내보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강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대체복무 길드도 정해졌다고 한다. 얼마 전에 등장한 ‘측정 불가’급 플레이어 이성우. 그자의 길드로 보낸다더군.”
“그럼 더더욱 안 됩니다. 분명 성요한의 전역 건은 이성우의 요구로 이뤄졌을 겁니다. 조회해보니 이제 막 길드 설립 인가가 나왔던데, 이 시점에 그가 성요한을 요구한다는 게 어떤 의미겠습니까? 지금 인재를 모으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강성태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무슨 의미긴.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의미지. 플레이어는 등급이 다가 아니야. 게다가 군인이라면 더더욱. 자네도 잘 알잖나?”
그건 연시환 본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타인의 시선을 훔쳐볼 수 있는 [염탐자]라는 특성의 보유자.
하나 시야 공유에 관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제약 탓인지, 등급은 고작 D가 나왔다.
그러나 군은 일사불란한 체계를 갖춘 조직.
지휘관의 명령만 있다면 전 부대원의 동의를 받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타인의 시야를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 곳곳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거기에 타고난 전술적 사고가 시너지를 일으켜, 무난하게 신성기사단의 작전참모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성요한, 그놈은 자네와는 달라. 정신머리부터 썩어빠져서는. 쯧.”
군에 몸을 담고 있노라면,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게 사고다.
게이트와 플레이어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그랬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
그것이 강성태가 보고 겪고 배운 군인이었다.
강성태 본인도 말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참 군인이기도 했고.
‘김포 웨이브 발발 당시, 냉룡에게 왼팔을 뜯기고도 후송가지 않고 민간인 구출에 동참하고. 다음날 청사로 출근했던 게 지금까지 귀감이 되고 있으니.’
그 부분에선 트집을 잡을 구석이 없기는 하다.
그는 안팎의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정신이야말로, 군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핵심이라 여겼으니.
사고를 겪고 방구석 폐인이 되어 버린 성요한은, 그의 눈엔 군인 감으론 비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단장님. 그 친구는 아직 어립니다. 작전도 그날이 처음이었다고 하고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하지!”
강성태가 호통쳤다.
“그렇다 해도 1년이나 틀어박혀? 내 수하에 그런 놈이 있는 건 두고 못 본다. 군인은 군체야. 그런 모자란 놈 하나가 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단 말이야. 등급은 아깝지만, 난 놈을 내보내는 데에 찬성이다.”
연시환도 ‘군인은 군체’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문제 행동이 집단 전체를 위험하게 한다는 것도 엄정한 사실······.
‘하지만 때로는 채찍이 아닌 당근을 쓸 때도 필요한 법인데.’
연시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해보려 했으나.
강성태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이미 성요한도 이성우의 길드에서 남은 복무기간을 채우는 건에 동의했다고 하니, 그냥 보내 주자고. 이 이상은 아무리 자네라도 항명으로 간주할 테니, 그만하지.”
“······예.”
결국 항명이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연시환은 나지막이 침음했으나,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성요한, 그 녀석이 동의했다고? 찾아가도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않던 녀석이······. 설마 이성우, 그자가 마음을 연 건가?’
군이 해주지 못한 역할을 이성우가 해냈다면······.
‘측정 불가 플레이어에 국내 유일 A급 사제라······. 이거, 엄청난 길드가 태동하는 순간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
“그럼······.”
연시환이 경례를 붙이고 물러나려는 순간.
벌컥―
누군가 다급한 기색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단장님! 아, 작전참모님도 여기 계셨군요.”
상대는 다름 아닌, 이날의 당직사관.
“어, 그래. 무슨 일이야? 급해 보이는데.”
당직사관이 마른침을 삼키고 단장의 물음에 답했다.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연시환이 인상을 구기며 되물었다.
“균열? 위치는?”
“남산 1호 터널입니다.”
“흐음······.”
듣고 있던 강성태가 고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좋은 소식이면서, 나쁜 소식이기도 했다.
균열은 마치 오래된 수도관에 생기는 누수와도 같다.
99% 이상 지표면에 형성되는 게이트와는 다르게,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 생겨나곤 하는 것이다.
“접근이 어려운 해저나 지저가 아닌 건 다행이기는 한데······.”
강성태의 의중을 읽은 연시환이 말을 받았다.
“예, 아무래도 민간인이 많았을 터라. 희생이 있었을 듯합니다. 아직 차 안에 고립된 인원도 있을 수 있고요.”
그 말에 당직사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 상황 관련, 실종신고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터널 내부에 고립된 수가 100이 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재난 문자로 차 안에 숨어있을 것을 권고한 상태라는데, 과연 안전할지······.”
“서둘러야겠군. 우리 신성기사단으로 기별이 온 걸 보면, 균열에서 발생한 몬스터가 언데드나 에테르 유형일 테니 말이야.”
“예, 에테르 형으로 확인됐답니다.”
이능대응군, 관리국, 민간 길드들을 통틀어.
언데드와 에테르 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 전문화된 집단은.
신성기사단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게이트든 균열이든, 두 유형의 적이 식별되면 곧바로 신성기사단에게 통지가 되도록 대응 시스템이 짜여 있었다.
“이미 선발대는 한강진역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곧 터널 남쪽 입구에 도달합니다.”
“빠르게 잘 대응했군. 무엇보다 ‘균열의 핵’을 우선적으로 수색, 파괴해야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지침 하달하도록. 작전참모, 우리도 후발대와 따라나서지.”
“예!”
강성태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개인 무장을 챙기면서 생각했다.
남산 1호 터널에 드리운 어둠은, 신성기사단이 무난하게 걷어내고 말 거라고.
* * *
한편, 남산 1호 터널의 북쪽 출입구.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빠져나간 터널 내부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광채가 길고 어두운 터널을 채색하고 있었고.
스스슥―
끼이익, 끼긱!
소형견만 한 크기의 어두운 형체가 스믈거리며 터널 벽면과 바닥.
그리고 차량 위를 기어 다녔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으으······ 형님, 저게 대체 뭔가요?”
성요한이 혐오감을 드러내며 묻는 순간.
키에에엑―!
앞쪽에 있던 차 밑에서 그 새카만 형체 하나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이성우는 성요한의 어깨를 홱 잡아당기는 한편,
터널 바깥 햇볕 속에 서 있는 차량에 [강착]을 시전했다.
슈아아악!
쏜살처럼 성요한을 스쳐 지나가, 화창한 햇빛에 노출된 어둠은······.
끼에에― 끼이이에!
귀를 찢을 듯한 괴성을 지르면서 빠르게 말라비틀어졌다.
치이익―
그리곤 그냥 한 줄기 연기로 화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게 대체······?”
성요한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림자 마수. 에테르 유형의 몬스터. 저놈들은 어두운 곳을 좋아하니까 놀라도 입 너무 크게 벌리지 않도록 조심해.”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거랑 입 크게 벌리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입 안이 어둡잖아.”
“헙······!”
장난이 아니다.
그림자 마수는 물리적 형체가 없는 에테르 유형.
말하자면 유령 혹은 정령의 일종이다.
빛을 피해 그림자에 숨는 습성이 있고,
인간의 체내로 침투할 경우 일종의 ‘빙의’ 현상을 일으켜 숙주를 조종한다.
‘그림자 마수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지. 습성에 관해 알려진 바가 없어서, 이전 회차의 신성기사단에서도 사상자가 나왔었지.’
그 사건의 보고서도 열람했던 이성우는, 물론 그림자 마수의 대응법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요한아, [축성의 광휘] 전개해. 오래 유지해야 하니까, 가능한 한 최소 출력으로.”
“네!”
기도하듯 눈을 감는 성요한.
잠깐 뒤, 그에게서 일전에 보았던 빛의 장막이 뿜어져 나와 주변을 비추었다.
이성우는 광휘가 닿는 범위를 살펴보고 물었다.
“이게 최소 출력이라고?”
“제가 아직 힘을 다루는 데에 익숙하질 않아서······. 더 줄이려고 해볼까요?”
“아니야. 네가 힘들지 않으면 상관없어.”
출력을 최소로 조절했다는 데도 반경 5m는 넉넉히 커버하고 남을 수준의 광휘.
이성우는 내심 성요한을 픽업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터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그리고 뒤따르는 성요한에게 주의를 줬다.
“광휘가 미치는 범위 안에선 놈들도 활동할 순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작은 그림자라도 밟지 않도록 조심해.”
성요한이 큼지막한 눈을 깜빡였다.
“아니, 형님은 모르는 것도 없으시네요.”
“정신 딴 데 팔지 말고. 그림자 밟으면 이렇게 된다.”
이성우는 바닥에 떨어진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차량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에 던져 넣었다.
키에에!
콰득―
“헉!”
성요한은 콘크리트 조각이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지는 걸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축성의 광휘]가 미치는 범위 내인데도,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가 공격한 것.“저놈들은 그림자 속에 녹아 있는 동안은 신성력에도 피해를 받지 않으니까.”
그 말에 성요한이 겁을 먹었다.
“그, 그러면 제 능력도 별 소용이 없는 거 아닌가요? 저희 괜찮을까요?”
이성우는 성요한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왜?”
“아니, 그림자 속에 숨어있으면 신성력도 통하지 않는다면서요?”
“아, 그거.”
이성우는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다.
아니, 정말로 그건 상관없는 문제였다.
“괜찮아. 숨어 있으면 강제로 끌어내면 되지.”
그가 방금 콘크리트 조각을 집어삼킨 자동차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강착].’
이성우의 의지를 따라 스킬이 발동되고.
그의 손에 또 하나의 중력의 중심이 만들어졌다.
지구 중력의 2배.
‘어쭈, 안 나와?’
2.5배······ 3배······.
앞에 서 있던 차마저 끌려오려고 들썩거리는 순간.
샤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차 밑 그림자에 숨어 있던 그림자 마수들이 뽑혀 나왔다.
그 좁은 곳에 숨어 있던 것만 11마리.
놈들은 태양보다도 치명적인 [축성의 광휘] 속에 끌려오다가.
이성우의 손에 닿기도 전에 완전히 소멸했다.
“와······.”
마치 귀신을 다루는 듯한 모습에 성요한은 연신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보고 마침 차 안에 있던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이성우가 만류했다.
“완전히 정리 끝날 때까지 안에 계세요.”
운전자가 순순히 다시 몸을 숙인 한편.
성요한이 돌연 궁금해졌는지 물었다.
“형님, 이놈들 에테르 유형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럼 물리력으로는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건데. 어떻게 형님 중력은 통하는 거죠? 중력도······ 물리 아닌가요?”
이성우는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중력도 물리적 현상이기는 한데······.’
에테르 유형이라고 중력의 영향까지 안 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평균 29.76km/s로 공전하고, 1300km/h로 자전까지 하며 우주 공간을 이동한다.
‘그런데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놈들이 이 공간에 얌전히 붙어 있을 수가 없겠지.’
그러니까 [대룡거검]으로 베어낼 수는 없어도,
[중력 지배] 특성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하지만 말로 하기엔 쓸데없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다.
“지평좌표계라고 알아?”
“그게 뭐예요?”
역시, 결국은 대충 둘러대는 게 낫겠다.
“아무튼 그런 게 있어.”
그때, 관리국에서 지급해준 무전기를 통해 음성이 흘러나왔다.
―치이익··· ‘오버로드’측에 전함. 터널 반대 측에 신성기사단이 투입했으니, 전투 중 오인 공격에 유의할 것.
‘신성기사단. 벌써 움직였나?’
이성우가 무전기에 응답하려는 순간.
제3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이익··· 에테르 형 몬스터는 만만히 볼 게 아닙니다. 우리 신성기사단에서 대응을 맡을 테니, 어설프게 몬스터 자극하지 말고 철수할 것을 권합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상.
하, 이것들 봐라?
이성우는 성요한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네 옛 선임들이 끼어든 모양인데?”
“선임이라뇨.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에요. 저 배치된 거 반대하는 인원도 한둘이 아니었다던데. 그런데 어쩌죠? 신성기사단이면 저희가 낄 틈도 없겠는데요?”
낄 틈? 없기는.
“아니야, 오히려 쟤들이 고생할걸. 네가 없으니까.”
“네? 헤헤,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에요?”
“과장 아니고, 진짜야.”
왜 바쁜 와중에 달동네를 올라 성요한을 영입했겠는가.
하지만 조금 속도를 낼 필요는 있다.
침식 균열의 근원인 ‘핵’을 빼앗기면 곤란해지니까.
현재 메인퀘스트가 요구하는 조건, ‘균열의 파편’을 획득하려면.
반드시 균열의 핵은 이쪽에서 파괴해야 한다.
더욱이 신성기사단의 공략이 초반 난항을 겪으면서 시간이 늘어지면,
이전 회차처럼 그림자 마수를 피해 차 안에 숨어 있던 민간인도 일부 희생당하는 결과도 이어질 것이다.
여러모로 늑장을 부릴 여유는 없는 것.
“[축성의 광휘] 범위를 좀 넓혀 봐. 터널 단면을 다 채울 수 있게.”
화악―
“이렇게요?”
터널의 위아래, 좌우 모두 빛의 장막 안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이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좋아. 여기서부터 쭉 밀면서 지워나가자고.”
이성우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며,
스킬의 영향에서 제외할 대상을 세심하게 정돈했다.
인간.
차량.
단 두 가지만 배제하는 데도, 터널 안에 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적잖은 심력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인명피해를 내지 않으려면 필수적인 과정.
번쩍―
이성우가 눈을 떴다.
“가자.”
[중력 역전].그의 권능이 터널 내부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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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남산 터널, 균열 봉합(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