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26
* * *
성요한에게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광휘.
그것은 그로부터 몇 미터 위의 공중으로 솟아올라,
돔처럼 주변을 덮고 있었다.
이성우는 그 스킬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축성의 광휘].’
아군에게는 치유 효과를, 적에게는 온갖 디버프를 부여하는 필드를 전개하는 힘.
비록 치유 효과도 디버프도 위력만 놓고보면 애매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언데드나 악마 계열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사기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치이이익―
“끄아아! 끄아아악!”
악마화한 블랙 타이드의 빌런놈의 살갗이 시시각각 타들어 가고 있듯이.
공간을 축복하는 신성력은 그처럼 삿된 존재에겐 상극 그 자체니까.
‘어지간한 성기사도 레벨이 50에는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일 텐데? 각성 후 레벨업도 못했을 텐데, 대단하군.’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레벨 10단위 성장을 이룰 때마다 스킬을 획득할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그건 보유한 특성의 기본 스킬셋 내에서만 가능하고.
비슷한 특성군이라 하더라도, 등급에 따라 어느 구간에선 전혀 스킬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 회차엔 나도 30레벨이 넘도록 스킬 하나 얻지 못했었지.’
게이트 레이드를 뛰는 라이센스 보유자가 아니라서 레벨 올리기도 힘들거니와,
F급인 만큼 성장잠재력 자체도 처참했던 것.
하지만 [측정 불가] 등급이 된 지금은 레벨에 구애받지 않고.
‘중력석’만 있다면 얼마든지 스킬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차근차근 스킬 트리를 해금해서 상위 스킬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타 특성의 고위 스킬을 아예 갖고 시작하다니. 확실히 [성자]도 만만하게 볼 특성이 아니군.’
괜히 블랙 타이드에서 1순위 제거 대상으로 꼽았던 게 아닌 것.
하지만······.
“크으윽. 왜, 왜 안 죽는 거야!”
성요한이 있는 힘을 다하는데도, 고위 악마의 힘을 빌린 놈의 숨통을 끊기는 역부족이었다.
‘아직 성장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1레벨에 이 정도 해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이성우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성요한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할 만큼 했어. 뒤는 맡겨라.”
마치 그게 쉬어도 된다는 허락이라도 되는 듯.
성요한은 거세게 뿜어내던 광휘를 거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틀어박혀 있던 동굴에서 스스로 뛰쳐나온 것만으로도 큰일 했다.’
이성우는 그를 뒤로하고, 처참한 몰골로 숨만 겨우 쉬고 있는 악마 숭배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제발······ 살려······.”
그렇지 않아도 농포로 뒤덮여 흉측하던 놈은,
전신이 불에 그슬린 듯 반쯤 익어버려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
미간을 찌푸린 채 놈을 짓누르고 있던 김포대교의 잔해를 회수했지만.
놈의 상처는 조금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재생력이 완전히 무력화된 모양.
이제는 그 어떤 피해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급 회복 저해’로도 이 꼴로 만들 수는 있었겠지만.
칼질을 좀 해야 했을 터.
성요한 덕에 불필요한 수고를 덜었다.
“잘 가라.”
이성우는 [대룡거검]을 휘둘러 놈을 양단하는 대신.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놈에게 [강착]을 시전했다.
“아, 안 돼······!”
살이 짓물러 뼈가 훤히 드러난 놈의 허리 언저리에 중력 작용점이 형성되었고.
지구 중력의 5배가 넘는 힘으로 악마 숭배자 놈의 신체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성우가 [중력 지배]의 특성으로, 효과의 대상을 놈으로 한정한 탓이었다.
“그, 그만둬. 제발······!”
꾸드득―
모든 힘을 소진한 데다, 신성력의 영향으로 약화되기까지 한 놈은.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뭉개지며 한 덩어리가 되기 시작했다.
우드득! 콰득!
“죽고 싶지 않······ 끄아아악!”
지옥에서 올라오는 듯한 비명이 한동안 이어졌고.
툭―
『레벨이 올랐습니다.』
『26레벨 -> 27레벨』
『[중력 지배] 제어 가능 범위가 0%~308%로 확장되었습니다
레벨업 알림과 함께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화해서 바닥에 떨어졌다.
인간 시절의 모습도, 악마화한 모습도 간직하지 못한 처참한 고기 경단.
인간을 배신하고 악마의 앞잡이가 된 놈들은 앞으로 죄다 이렇게 만들어줄 셈이었다.
‘하지만 성요한의 눈앞에선······ 좀 심했나?’
너무나 잔혹한 광경이었기에,
성요한이 충격을 받진 않았을까 걱정되어 고개를 돌렸는데.
“와아아······!”
녀석은 두 손을 모아 잡고 경탄 어린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어째 익숙한 눈빛인데.’
이성우는 어째서인지 폭발광이 되어 버린 정소현이 떠올라 불안해졌다.
저 녀석도 폭발광이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가 애써 자신을 우러러보는 눈빛을 외면하는데,
‘악마 숭배자였던 것’에서 아이템 두 개가 툭 떨어졌다.
하나는 이성우에게도 익숙한 물건, [중력석 덩어리].
나머지 하나는 놈이 차고 있던 [필살의 발톱]이었다.
‘게이트 보스도 아닌데 왜 [중력석 덩어리]가 나왔지?’
그 의문은 곧이어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해소해줬다.
『지구에 나타난 악마를 최초로 발견하여, 업적 [악마를 보았다]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최초 달성으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중력석 덩어리 (특성 보정)』
‘업적? 최초 발견? 하긴, [레라지에의 화신체]를 마주쳤던 건 게이트 안이었지.’
그런데 시스템 메시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별을 부른 자] 칭호 효과로 [아공간: 별의 회랑]에 [초신성 용광로]가 활성화됩니다.』
『[악마를 보았다] 업적 효과로 악마의 손을 탄 아이템이 ‘저주받은’ 접두사가 붙어 표시됩니다. ‘저주받은’ 아이템을 [초신성 용광로]에 넣어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초신성 용광로?’
[중력 지배].이 초월급 특성의 고유 효과는, 스킬 트리 하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 * *
삼십 분 뒤.
이성우의 전화 한 통에 미아리고개 달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관리국 요원들이 몰려와 주변을 임시 대피시키고,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까, 이 요상한 녹색 덩어리가······.”
관리국장 정찬석이 말을 하다 말고 성요한과 이성우, 그리고 차무혁을 번갈아 바라봤다.
“정말로 사람이었단 말인가?”
이성우와 성요한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었죠.”
“중간부턴 아니게 되긴 했지만요.”
“으윽. 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이 이렇게 미트볼처럼 될 수 있단 말인가?”
정찬석은 역겹다는 듯,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놈이 미트볼로 변신했던 건 아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이성우는 대충 둘러대고 넘어가려 했는데,
곁에 있던 성요한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 그게 아니고요. 엄청 거대한 도마뱀 같은 괴물로 변했다니까요. 거의 뭐 공룡 저리 가라였는데, 형님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막······ 쥐어짜서 저렇게 된 거죠.”
정찬석이 놀라움 반, 황당함 반 섞인 눈빛으로 이성우를 바라봤다.
“전엔 게이트 내부를 죄다 갈아엎더니, 이젠 맨손으로 악마를 구기나? 대체 어디까지 강해져야 직성이 풀릴 셈인가.”
‘중력 10000%. 100배 정도 찍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분명 미친놈 보듯 쳐다볼 게 뻔하니 그냥 침묵을 지켰다.
그 사이, 감시과의 ‘귀신 차장’답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역겨운 잔해를 살피던 차무혁이 허리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읽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이성우 플레이어의 공격에 실린 ‘회복 저해’ 효과와 성요한 플레이어의 신성력에 큰 피해를 입었다는 건 나옵니다만. 마치 오늘 태어난 괴물인 것처럼, 인간 시절의 로그는 표시 자체가 되질 않는군요.”
이성우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석을 삼켜 힘을 빌리는 악마화.
그건 단지 겉모습만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 자체를 변질시키는 모양이었다.
“이 잔해는 연구소의 홍선희 소장에게 전해주십시오. 재생력이 굉장한 놈이었어서, 괜찮은 연구 재료가 될 겁니다.”
달리 쓸데도 없거니와,
악마를 연구 재료로 던져 주면 홍선희의 영혼석 연구에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하위 악마나 마수가 아니라, 나름 고위 악마의 힘을 받았던 놈이니까.’
뭔가 재밌는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고.
“참, 국장님. 성요한 이 친구 말입니다.”
이번엔 성요한의 거취를 정리할 차례.
예나 지금이나 군은 몸을 담을 만한 곳이 못 된다.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남의 아들.
“음?”
“신성기사단에서 어떻게 빼 올 방법 없습니까?”
정찬석의 눈이 커졌다.
현재 성요한은 군 복무 중.
각성 후 이능대응군 일반병에서 신성기사단으로 소속만 옮겨졌을 뿐, 의무 복무 기간이라는 건 변함없다.
“음······ 자네가 부탁한다면 힘 좀 써보지. 병역법상 그냥 제대 처리는 힘들 테지만, 자네 길드에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게 전역시키는 방향으로 말이야.”
제대. 병역을 완전히 마치는 것.
그것까진 바라지 않았다.
병역을 전환하는, 전역이면 족하다.
좋아,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이젠 당사자의 의사를 물어야지.
이성우가 성요한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그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성요한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형님! 좋습니다! 곁에서 잘 배워서, 형님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언제부터 형님이 됐는지.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다.
“음. 나처럼은 어려울 거야. 각자 특성이 있는 거니. 너는 네 방식으로 강해질 방법을 찾아보자.”
“넵! 아, 참!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 어린 표정으로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성요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니, 동료들을 잃은 충격이 더 컸던 거겠지.’
그리고 그 마음만큼, 앞으로 많은 사람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게 될 터다.
‘그 시작은 남산 1호 터널에 곧 생겨날 균열이 되겠지. 이전 회차엔 신성기사단이 죄다 달려들어서야 클리어할 수 있었지만, 우리 둘의 전력이면 충분하다.’
이성우는 성요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출된 거주지는 위험하니, 한동안 지낼 숙소를 마련해줄게. 필요한 짐 들고 나와.”
“네, 형님!”
성요한이 어디로든 따라갈 기세로 짐을 싸러 뛰어 들어갔다.
* * *
성요한을 태성 운반팀 숙소에 넣어 놓고, 이성우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거실에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성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별의 회랑으로.”
익숙한 현기증이 한차례 지나갔고.
어느새 이성우는 고대의 신전을 닮은 공간,
별의 회랑에 서 있었다.
손에 [저주받은 필살의 발톱]을 든 이성우는, 회랑 정 가운데에 있는 보랏빛의 천체로 다가갔다.
별의 회랑 안에 초신성이라고 할만한 건 그게 유일했으니까.
“도대체 이게 뭔지 감도 안 왔었는데, 이런 용도였나.”
원래는 자세히 들여다봐도 아무런 정보도 떠오르지 않던 천체.
『초신성』
현재 활성화된 기능 : 용광로
용해 중인 아이템 : 없음
특성에 제공하는 보너스 : 없음
그것이 이제는 제 정체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현재 활성화된 기능······? 이것 말고도 다른 기능도 있다는 건가?’
개연성 높은 추측이지만, 어차피 당장 깊이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 뒤에 붙어 있는 ‘흡수 중인 아이템’ 그리고 ‘특성에 제공하는 보너스’가 중요하지.
‘그냥 이 초신성에 집어넣으면 되는 건가?’
이성우는 [저주받은 필살의 발톱]을 조심스레 초신성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잠깐,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더니······.
쑥―
안에서 뭔가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아이템이 초신성의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변화는 즉시 일어났다.
『용해 중인 아이템 : [저주받은 필살의 발톱]
남은 시간 : 12시간』
12시간이라니.
‘결과가 나오려면 좀 기다려야겠네.’
흡수가
손에 두툼한 [중력석 덩어리]를 쥔 이성우는, 벽면을 따라 길게 펼쳐진 별자리를 따라 거닐었다.
“[중력 방향 조작]······ 이건 아직 트리가 덜 뚫렸고. [거산(擧山)]······ 이건 제어 한도가 부족하네. [방어구 경량화], [비행]······ 이것들은 당장은 필요가 없고.”
그때, 이성우의 눈에 한 가지 핵심 스킬이 확 들어왔다.
『핵심 스킬 노드 정보』
이름 : 중력 역전
계열 : 보조
효과 : 핵심 패시브 효과. 이제부터 중력의 방향을 반대로 역전시킬 수 있게 됩니다.
“역시 지금은 이거지.”
남산 1호 터널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올 ‘그림자 마수’는 어림잡아 수천 마리.
대룡격변격을 터뜨려 남산을 통째로 날려 버릴 게 아니라면······.
‘이게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일 거다.’
[중력 역전]과 [성자] 성요한.퍼즐 조각이 모두 모였다.
‘언제쯤 열리려나.’
순간, 이성우는 어느새 위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웃음 지었다.
‘많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전개도, 나도.’
지금까지의 위기들은 어떻게든 극복해내, 결국은 기회로 바꾸는 데에 성공해왔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들도 전부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전 회차에선 아무도 따라가지 못했던 메인 퀘스트.
그 끝에 존재할 ‘굿 엔딩’에 이르는 것도 허튼 꿈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나가서 땀이라도 흘려야겠군.”
그리고 그건, 어제보다는 나아지겠다는 마음가짐.
하루하루 그 마음을 견지하는 것으로 이룰 수 있을 터다.
한창 4배의 고중력장 안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있던 그때······.
―Rrrr…
감시과 차무혁의 연락이 날아왔다.
“네, 차장님.”
―터널 내부에서 전조 증상이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조? 균열의 전조를 포착하는 방법도 있던가?
이성우가 의문을 가질 거라 여겼는지, 차무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연구소 홍선희 소장이 조악하게나마 마기 계측기를 만들어줘서 그걸 갖다뒀습니다. 저녁 즈음부터 수치가 잡히기 시작하더니, 점점 상승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내일쯤이면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시 홍선희.
뭔가 해낼 줄 알았다.
“알겠습니다. 내일은 터널 근방에서 대기하도록 하죠.”
* * *
다음날.
서울 중부의 명동에서 강남으로 빠지는 한남대교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
남산 1호 터널.
출근을 위해 이 터널을 경유하려는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관리국 명의의 행정명령으로 터널 북쪽에서 남쪽으로 빠지는 하행 차선이 막혀버렸기 때문.
“에이씨, 이걸 진짜로 막는다고?”
사전 예고가 있기는 했지만, 반발 여론도 거셌던 탓에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더랬다.
“이봐요! 여길 지나야 내가 출근을 하는데, 길을 틀어막으면 어떡합니까?!”
“왜 저쪽 차선은 안 막고 이쪽만 막는 건데!”
현장에서 항의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으나.
관리국은 요지부동.
“한남 고가도 통제 들어갔습니다. 지금 나오는 차는 통제 전에 진입한 차들이고요. 그나마 여기선 차 돌려서 우회하기 쉽잖습니까. 동대입구로 우회하세요.”
모처럼 휴가를 내고 아이와 함께 교외로 나들이를 나가려 했던 어느 가족도,
앞뒤로 들어찬 차들 탓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었다.
“엄마, 왜 안 가?”
“응. 저기 안에서 뭐 공사라도 하나 봐. 다른 길로 가라고 하는 모양이네? 우리 선율이 답답해도 조금만 참자?”
응, 하고 흔쾌히 대답한 아이는 턱을 괸 채 어둑한 터널 안을 건너다보았다.
그때, 공사 중은 공사 중인지.
번개가 치듯 새빨간 불빛이 연거푸 번쩍거렸다.
뭔가 불꽃놀이 같기도 하고, 지난 여름 캠프에서 피웠던 캠프파이어 같기도 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그 터널 안에서 사람들이 몹시 놀란 표정으로 뛰쳐나오고.
차들도 이리저리 추돌을 일으키면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아이가 돌아본 엄마의 표정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삐이이―
날카로운 경보음과 함께.
엄마의 핸드폰과 아이의 스마트워치에 나란히 재난 경보가 도착했다.
―남산 1호 터널 내 발생. 시급히 대피 요망.
남산의 밑바닥을, 이계가 침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율아, 안전 벨트 맸지? 문에 달린 손잡이도 꽉 잡아!”
차량이 거칠게 고개를 꺾어, 빈 공간을 파고들며 유턴했다.
빠져나가려는 차들과 터널 안에서 도보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한 데 뒤얽혀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모두가 터널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상황.
그런데······.
“어?”
아이의 눈에 비쳤다.
오히려 터널을 향해 걸어가는 두 명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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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남산 터널, 균열 봉합(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