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44
* * *
굳게 닫힌 성문을 두드리는 공격군의 관점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언제일까.
적의 방어가 너무나 견고할 때?
농성이 길어져서 보급품이 부족해졌을 때?
혹은 적의 증원이 도착했을 때?
물론 그 순간들도 공격자로서는 충분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나 자신들이 정복을 ‘하는’ 입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황에서, 도리어 정복을 ‘당하는’ 입장으로 전락하는 것만큼 황당하면서도 두려운 순간이 있을까?
‘곧 그 기분을 알게 해주마.’
이성우는 고중력장을 펼치는 한편.
길드원들의 대응을 살폈다.
성요한을 필두로 한 지원대의 방어막과 각종 신성 계열의 버프.
문경준을 필두로 한 백병전단의 검막.
타오르는 투지에 기름을 끼얹는, 발키리 정소현의 버프.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솔의 스킬까지.
『역병의사의 [훈증 연막]이 엔트의 [덩굴 속박]을 무효화 합니다!』
『······환상나비의 [잠가루]를 무효화 합니다!』
『······일각수의 [매혹]을 무효화 합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성우도 이번 침공 이벤트를 게이트 바깥에서 요격해낼 생각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최솔이 특성 진화를 이룩한 덕에.
숲의 군세가 가진 수많은 상태 이상 군중 제어기를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덕분에 전장을 이곳으로 옮겨, 오직 파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지.’
정령들의 속성마력구들은 성요한의 [조율] 덕에 강화된 신성력 보호막을 뚫을 수 없었고.
각종 환상수의 마법 가루는 봄철 꽃가루만도 못한 공해로 전락했다.
그리고 엘프 군대가 쏘아낸 무수한 화살과 엔트들의 투석은······.
후두둑―!
이성우의 8배짜리 고중력장에 의해 힘없이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함성과 소란으로 가득해야 할 전장이 기묘한 고요로 뒤덮였다.
“공략총괄님, 피해 보고하세요.”
전장 위, 약 5m 위에 떠 있던 정소현의 보고가 곧장 이어졌다.
“아군 피해 전무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성우와는 다르게, 엑스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태성 길드를 따라 들어와, 열두 대의 드론으로 전투 실황을 다각도에서 지켜보던 그는 눈으로······.
아니, 카메라로 수집된 장면들을 보고도 믿기가 어려웠다.
‘내,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분명 게이트 너머 이 땅에 발을 들이자마자,
코앞에 집결해 있는 적의 군세를 확인한 그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에이씨, 드론 열두 대만 날렸네’라고.
하지만 이성우와 태성 길드원들은 보란 듯이 자기들의 수십 배는 되는 규모의 공세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만일 이 자리에 우리 데우스 길드가 있었다면······?’
전멸.
온갖 변수를 고려해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오직 그 결과값은 변함이 없었다.
‘이성우, 저자는 개인의 무력만 뛰어난 게 아니구나.’
애초에 급이 달랐다.
자신이 여태 숱하게 마주쳤던 그 어떤 플레이어와도.
그 어떤 고등급 플레이어나 길드 마스터들과도.
달랐다.
격 자체가.
다음 순간,
이성우가 손을 들어 올렸고.
그의 ‘권능’이 전장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엑스는 열두 대의 드론을 다방면으로 펼쳐서,
이성우에게로 포커스를 집중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의 전투 데이터를 확보해, 수족이 되어주는 마공학 병기를 보완 강화해야 하는 플레이어로서도 그렇지만.
순수한 ‘강함’을 동경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듯한 이성우의 힘을 똑똑히 봐두고 싶었다.
엑스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대룡거검]과 수천 발의 화살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는 순간.
그의 시야를 통해 송출되는 공략 실황을 지켜보던 모든 이도 함께 숨을 죽였다.
이윽고.
저 높은 허공으로 치솟았던 병기들이,
일제히 비처럼······ 아니, 유성우처럼 쏟아붓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티, 티리스!”
뜻 모를 외침과 함께, 엘프 방패병들이 일제히 커다란 카이드 실드를 들어 올렸으나.
깡―!
“커허!”
기존 중력의 8배에 달하는 가속도에 힘입어,
무서운 위력으로 내리꽂히는 화살들을 다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평소라면 가볍게 튕겨 나갔어야 할 화살이 방패를 뚫고 들어오질 않나.
막아냈다 한들, 무지막지한 충격에 방패를 놓쳐버리거나 자세가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퍽! 퍼버─ 퍽!
“끄아악!”
“컥!”
“티리― 크헉!”
피유우우우웅······
엘프 군대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화살에 농락당하는 와중이기에, 상공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파공성에 그 누구도 주목하지 못했다.
······꽈아아앙!
물론,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는 후회조차.
그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이성우가 그럴만한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콰가가가가―
“아우타! 아우타!”
뿌우우―!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숲이 엉망으로 갈려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엘프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후퇴.
게이트를 통해 김포로의 침공을 준비하던 제2파 군세.
그 대규모의 병력이 나팔 소리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휘유! 점심 먹은 게 이제야 싹 내려가네!”
정소현은 그게 빈말이 아닌 듯, 배까지 쓰다듬었고.
“어후. 진짜, 이 형님은 괴물이야. 괴물.”
나머지, 이성우의 싸움을 처음으로 직접 목도한 길드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소사, 이게 진짜 사람의 힘이라고?”
“아까 1차 공세 쓸어버릴 때도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그냥 재앙이네.”
재앙.
그 단어에 모두가 동감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면······ 1인 군단 아닌가? 대체 길드원은 왜 모으신 걸까요?”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국내에선 1세대 S급 플레이어인 관리국장 정찬석이 나서야 보여줄까 말까 한 퍼포먼스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
그때, 길드원들 분위기를 살피던 정소현이 땅으로 내려섰다.
짝―
그리고 손뼉을 쳐서 주의를 모았다.
“전원 들으세요! 설마 마스터가 저런 힘을 가졌다고 해서, 월급 루팡할 생각은 아니죠? 반대로 쭈구리처럼 구겨지는 것도 나는 용납 못 해요.”
그녀가 허공에 떠 있는 데우스 길드의 드론들을 가리켰다.
“지금 온 국민이 저희를 지켜 보고 있다는 거 잊었어요? 길드 마스터가 혼자 적 병력 절반을 갈아버렸다고 앉아서 손가락만 빨 거예요?”
“······.”
그제야 잘못된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길드원들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럴 거면 돌아서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세요. 실업 급여도 받게 해줄 테니까, 개꿀 빨든 눈물 짜든 알아서 하시고. 그게 아니면 저랑 같이 주변 잔당이라도 정리합시다. 가자고요!”
정소현이 방패를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하자,
곧장 길드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따라붙었다.
“제가 앞장서죠.”
문경준은 그렇게 말하며 정소현을 앞질러나가기까지 했다.
앞서 이성우의 연설과 조금 전 벽력처럼 내리꽂힌 검격에서 얻은 심득을 어서 검으로 펼쳐보고 싶어 몸이 단 그였다.
원래 그가 수련하던 ‘천뢰검’은 그 이름처럼 하늘을 가르는 뇌전의 모습을 본따,
섬광처럼 빠른 쾌검과 극도로 절제된 검로를 지향하는 검법이었다.
그간 성장의 벽에 가로막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던 문경준은.
이제야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천뢰검이 놓치고 있던 요소들. 형과 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모든 걸 덮고 남는 파괴력. 그것을 나의 검에 담는다.’
이윽고 온몸이 눈처럼 새하얀 일각수 한 마리와 대치한 문경준은,
머릿속에 박힌 쾌의 검식을 버리고 혼신의 일검을 펼쳤다.
쐐액―!
본디 식(式)에 담겼던 쾌가 고삐에서 풀려난 듯,
자유로이 허공을 갈랐고.
쿠르릉―!
그 뒤로 우레 같은 굉음이 뒤따르며, 일각수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기존의 천뢰검이 빈번하게 번쩍이는 가느다란 뇌전이라면, 이번 것은 그 뇌전들을 전부 이끌고 지상을 강타하는 굵직한 낙뢰와도 같았다.
“와아아아!”
“가자!”
그 모습이 자극받은 백병전대가 그 뒤를 따랐고,
최솔이 통솔하는 후열공격대에서 지원 사격이 잇따랐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이성우는,
놀라움과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들 잘해주고 있네.”
정소현의 통솔력도, 문경준의 무위도 기대 이상이었고.
자신이 어떻게 간부를 맡느냐며 엄살을 부리던 성요한과 최솔도 제 역할을 너무나 잘해주고 있었다.
이성우는 [대룡거검]을 회수해, 저장된 충격량을 확인했다.
“41%라. 이번 낙하로 15%정도 채운 건가. 역시 널 두들겨 팰 때처럼 신경 써서 쏘아 올리지 않아서 그런지, 충전량이 기대 이하네.”
이성우가 왼쪽 어깨 위에 고개를 내민 레라지에를 향해 신경을 긁을 만한 소릴 했지만.
레라지에는 코를 킁킁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라도 느낀 건가?’
이성우는 품에서 [후각 증폭의 사오 츄르] 하나를 꺼내, 녀석의 주둥이 앞에 쭉 짜주었다.
“음? 챠, 챱챱······. 어떻게 알았지, 필멸자? 눈치도 좋구나.”
이 정도는 그냥 보면 알지.
“무슨 냄새가 나는데 그래?”
“음. 사실 조금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는데, 이 간식을 먹으니 확실해졌다. 여기서 아는 악마의 냄새가 난다. 아주 희미하지만.”
이성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악마? 고위 악마인가?”
“음······. 그렇기는 하나, 맞다고 하긴 애매하군.”
“무슨 소리야? 제대로 좀 얘기해 봐.”
레라지에가 혐오스럽다는 듯이 수염을 세웠다.
“고위에 속하기는 하지. 칠십이 위의 말석을 넘보기도 했었고. 그러나 그 본질이 천박하고 하찮은 놈이다. 나를 놈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군.”
이성우는 코웃음을 쳤다.
고양이가 되어버린 주제에 격을 따지고 있네.
“지옥의 순위 다툼 따윈 알 바 아니고. 놈의 진명과 본질을 밝혀봐.”
“말라디우스(Maladius). 기생과 세뇌의 악마다.”
“기생?”
“그래. 다른 존재에 빌붙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말 그대로 기생충 같은 놈이지.”
놈의 기척이 여기서 느껴진다라.
그렇다면 그놈이 이번 침공 이벤트의 배후일까?
“놈의 냄새가 어디에서 풍겨오고 있는데?”
레라지에가 솜뭉치 같은 앞발을 들어, 숲의 한가운데에 우뚝 선 거대한 나무를 가리켰다.
“흠.”
이성우가 턱을 매만졌다.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 묘사되던 엘프를 생각하면,
저것이 귀쟁이놈들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세계수쯤 될 것이다.
‘그런데 저기서 말라디우스의 냄새가 풍겨온다는 건, 좋지 않은 징조 같은데.’
저게 정말 그 전설이나 신화 속의 세계수라면 거기에 기생한 놈도 큰 힘을 손에 넣었거나, 곧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워낙에 거대해서 싹이라 부르긴 애매한 사이즈지만.
“지금 싹을 잘라버려야겠군.”
이전 회차의 기억을 뒤져봐도, 기생의 악마란 놈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었지만.
앞으로의 행보에 어떤 변수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그래야지. 나 이외의 고위 악마를 모조리 제거하는 게 우리의 약속이니까. 그래서, 어쩔 셈이지?”
레라지에의 물음에, 이성우는 되물음으로 대꾸했다.
“어쩌겠어? 우리 땅을 침공하려던 놈들을 싹 정리하고, 저 세계수에 붙어 있다는 말라디우스인지 뭔지 하는 놈도 그냥 터뜨려버리는 거지.”
“흐흐흐, 아주 좋아.”
레라지에의 웃음을 배경 삼아, 길드원들이 승기를 굳혀가는 전장을 둘러보던 이성우의 눈에 뜻밖의 존재들이 눈에 띄었다.
“저것들,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레라지에도 그들을 식별한 듯 이성우에게 주의를 줬지만,
이성우가 보기에 상대에게 전의는 없는 듯이 보였다.
위협적인 일각수가 아닌 평범한 사슴을 타고, 두 손을 들어 올린 채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문경준이 섬전처럼 달려와 이성우에게 시선을 보냈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물러났다.
복장으로 보아, 고위급일 것이 분명한 엘프 두 명이 이성우의 앞에 이르렀다.
이성우는 눈을 모로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능이 높은 몬스터를 상대하다 보면, 저쪽에서 대화 같은 것을 시도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대개 그 시도는 좌절로 돌아가기 마련.
우선 마정석을 노린 플레이어들이 굳이 수세에 몰린 몬스터들을 놓아줄 이유가 없고,
무엇보다 애당초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
“셀레브렌 아이 린달렌야 아민?”
역시나, 엘프들이 건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걸 어쩌나. 그냥 처리하고 밀어붙일까.’
그 순간, 어깨에 얌전히 앉아 있던 레라지에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 군대를 이끄는 왕이십니까? 라고 묻는군.”
이성우가 놀라움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자,
레라지에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꼬리를 탁탁 내려쳤다.
“왜? 나는 원래 언어에도 능통하다.”
“생각보다 쓸 만하잖아?”
“이 자식이······.”
그때. 이성우에게 눈을 부라리던 레라지에가 돌연 코를 벌름거리더니,
두 엘프 중 한 놈을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흐흐흐. 저 귀쟁이 새끼, 마귀가 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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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세계수, 기생의 악마(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