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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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어도 썩지 못할 놈아!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짓이냐!”
양 눈이 모조리 날아갔는데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고위 악마는 고위 악마인 모양이다.
“미안하군. 간만에 만난 게 너무 반가웠지 뭐야. 설마하니 알아서 찾아와줄 줄은 몰랐으니까.”
레라지에의 전례를 보면, 고위 악마나 되는 존재가 현세로 강림하는 데에는 막대한 대가가 뒤따른다.
아무리 아스타로스가 ‘사망의 탑’이 그러모으던 사기를 갈취하고, 자신이 뿌린 ‘부패’라는 토대가 있었다고 해도.
아스타로스가 직접 눈앞에 나타나 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놈이 직접 눈앞에 나타나 주셨는데.
이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
그래서 일단 첨탑이 위협적으로 솟은 교회부터 내던지고 본 것이다.
“반갑다고? 정신 나간 필멸자 같으니라고. 우리가 웃으며 한담이나 나눌 사이더냐? 추적하는 군단장을 곁에 두고 있다가 정신이 망가진 모양이구나.”
“뭐가 오해가 있나 본데.”
이성우가 입을 염과 동시에 손가락을 까딱하자.
“끄아아아아아! 그만두지 못할까!”
아스타로스의 처절한 비명과 동시에, 그의 눈구멍에 박혀 있던 교회가 억지로 뽑혀 나왔다.
“크허억······.”
“내가 너를 죽이려면 [타르타로스의 열쇠]를 써서 지옥으로 넘어간 다음, 네 영지까지 찾아가서 앞을 가로막는 권속들을 죽여 없앤 뒤에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거 아니냐. 그 귀찮은 과정을 건너뛰게 해줬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러자 아스타로스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광오하구나, 필멸자 사냥꾼아. 내 권속 파리여왕을 살해하고 내 눈알 하나를 부숴버렸다고 기고만장했더냐? 네가 아무리 역겨운 성소를 돌멩이처럼 다룰 수 있다 해도 나의 상대는 아니다. 나를 그 허접한 군단장처럼 생각지 마라!”
호기롭게 외친 아스타로스가 첨탑에 터져버린 왼눈으로 물갈퀴가 달린 왼손을 가져갔다.
“재생하려는 건가?”
“그래. 늪의 대공은 모든 걸 부패시키는 한편, 막대한 재생력을 지닌 놈이지. 너희 필멸자들이 혐오하는 바퀴벌레보다도 질길 거다.”
그아아아!
이성우는 변비라도 걸린 것처럼 용을 써대는 거대 두꺼비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강하기로 따지면 너와 대공은 어느 정도지? 아, 그리고 카인도 포함해서.”
“글쎄, 각자 특징이 명확하다 보니 상성이 생겨서 줄 세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충이라도. 너희가 지옥에 들어앉아 허구한 날 하던 일일 거 아냐. 누가 누구보다 강하네, 약하네 따지는 것 말이다.”
“그걸 대체 네가 어떻게 아는······ 너 진짜 악마 아니냐?”
그럴 리가.
지성이 있는 존재라면 동물이고 인간이고, 고블린이니 엘프니 오크니 하는 몬스터들까지도 서로 서열을 매기는 것이 본능이다.
가장 원초적인 유희이기도 하고.
그런 지성체들의 사념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악마들이 예외일 리가 없잖은가.
“셋 중에선 카인이 가장 강한 것은 명확하다. 가장 미친놈이거든.”
상식은 몰상식을 이길 수 없다는 명제는, 지옥에서도 성립하는 모양이다.
“그다음이 나와 대공인데, 솔직히 상성에선 내가 유리한 점이 없다고 봐야겠군. 아무리 화살을 박아넣어도 상처가 끊임없이 재생될 테니까.”
“흠, 그래?”
이성우는 남산 터널 밖에서 벌였던 레라지에와의 일전을 떠올렸다.
드높은 상공에서 내리꽂은 대룡거검을 배에 꽂은 채, 31% 충전된 대룡격변격까지 맞고도. 놈은 즉사하지 않았었다.
‘그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레라지에가 인정할 정도면, 확실히 피곤한 상대가 되기는 하겠군. 이거, [사수좌 문양 반지]를 괜히 문경준에게 넘겨줬나?’
그 반지에 달린 중급 회복 저해 옵션이라도 있었다면, 나름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상관없다. 놈이 신이 아닌 이상에야 재생력에도 한계가 있을 테고, 죽을 때까지 패주면 되지.’
그런데 눈알 하나 재생하는 데에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걸까.
한 번 정도는 ‘부패와 재생의 악마’라는 놈의 회복력이 어느 정도인지 봐두려고 했건만.
“이, 이게 왜······ 그아아! 아, 이상한데. 끄응.”
왼눈을 쥔 아스타로스는 어째 당황한 듯한 기색으로 연신 기합이나 외치는 중이었다.
“멀었냐?”
이성우는 홀스터에서 대룡거검을 해방해, 그 누구도 들지 못하는 검을 단 손가락 두 개를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다스렸다.
흡사 로켓처럼 상공으로 치솟았다가, 매섭게 내리꽂히는 거검.
푸허억―!
그 일격에 놈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크어억! 이게 뭔······ 비열한 놈아, 지금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웬만하면 기다려주려 했는데, 날 샐 것 같잖아. 내가 지금 좀 바쁘단 말이다.”
당장 소록도의 중심부에서 흑룡을 언데드로 부활시키려는 의식이 한창인 게 느껴진다.
그것도 막고, 악령술사의 목도 베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터다.
여기서 뭉개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
아스타로스가 허둥거리며 외팔을 흔들었다.
“기, 기다려 봐라. 이게 왜 재생이 안 되지? 아, 아하, 아무래도 성소에 의한 상처라서 그런 모양이다. 팔은 될 거다, 팔은. 그, 그아아아아!”
아스타로스가 다시 힘을 줬으나, 역시 변화는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으나 그 속도가 무척이나 더뎠다.
아무리 봐도 ‘재생의 악마’라는 본질에 걸맞은 속도는 아니었다.
“어째서······? 강림 과정에 무언가 잘못됐나? 아니, 설령 그렇다 해도 이럴 수는······.”
스르륵―
이성우가 대룡거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등 뒤에 떠 있던 성소 몇 개를 아스타로스를 향해 겨누었다.
“시시해서 죽이고 싶어졌다. 그만하자.”
아스타로스를 향해 뻗은 손아귀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정렬되는 성소들.
지면에서 이성우를 올려다보던 아스타로스가 돌연 외쳤다.
“시, 신성! 네놈, 신성을 지녔구나! 그래, 그런 거였어. 그러면 말이 되지!”
“신성?”
이성우의 손이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머리 위에 있던 사찰을 날렸다.
콰직!
“크허헉!”
“괜히 시간 끌려고 수작 부리지 마라. 너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땅엔 세계수가 뿌리를 내려서 버프가 발동됐거든. 제대로 된 정신머리만 갖추고 있다면, 저주와 흑마술 저항에 신성력까지 두를 수 있게 됐단 말이지.”
이성우가 이어서 손을 내리려 하자,
아스타로스가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잠깐, 그따위 ‘신성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신성! 그러니까 신격(神格) 말이다!”
신격?
눈을 가늘게 뜬 이성우를 향해,
어깨 위의 레라지에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봐, 필멸자. 지난번에 그 허여멀건 용을 죽인 뒤에 뭔가 얻은 거냐? 네가 삼킨 심장 이외에 말이야.”
확실히 지난번 김포에서 냉룡 스카디마이어를 죽였을 때, 그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긴 했다.
[신격의 조각]을 얻었노라고.그러나 플레이어 정보에서도, [별의 회랑]에서도, 소지품들 가운데서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기에 일단 의식 뒤편으로 미뤄뒀는데.
“그게 중요한 거냐?”
레라지에가 짝눈을 뜨고 대꾸했다.
“당연하지! 경우에 따라선 널 더는 필멸자라고 부를 수 없게 되는 건데. 맙소사, 신성이라고? 말도 안 돼. 아무리 용을 잡았다고 해도, 그건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 아니야. 그래, 네 녀석이라면······.”
이성우가 눈을 비뚜름하게 뜨고 물었다.
“그게 뭔데 호들갑이야.”
레라지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 감이 안 오는 거냐, 모르는 척하는 거냐? 평소엔 눈치가 빠릿하더니 오늘은 왜 이러지?”
말뜻은 당연히 이해한다.
용족은 흡사 호국대룡처럼 반신(半神)으로 여겨지는 존재.
조각난 것이니 불완전한 것이겠으나, 그 존재의 ‘격’을 이어받았으니.
필멸자이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쥐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런데? 그래서?”
차마 듣다 못했는지, 잘려나간 오른팔을 열심히 재생시키려 애를 쓰던 아스타로스가 끼어들었다.
“뭔 소리냐. 그래서라니? 네가 필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건데. 그게 사소해?”
“나 혼자 필멸의 운명을 벗어나 봐야 무슨 소용이 있지? 내가 사는 세상이 모조리 폐허가 되고, 아는 이가 전부 불귀의 객이 되고 나면 무슨 의미냔 말이다.”
“······.”
두 악마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필멸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악마로서, 그들은 이성우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하나뿐이야. 그 파편에 불과한 신격 나부랭이가 저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과 악령술사, 그리고 너희 악마들을 쳐 죽이는 데에 당장 도움이 되냐는 거지.”
레라지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네 신성이 대공의 재생을 방해하긴 했지만, 그게 아니어도 저 썩은 내 나는 독두꺼비놈은 이미 네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이미 네 힘이 신성을 초월하고 있는 상황이라 봐야지.”
“그래? 그럼 결론은 나왔군. 구태여 내게 신성 운운한 건, 시간을 끌려는 수작질일 뿐이었다는 거다. 내 말 틀려?”
아스타로스는 항변하고 싶었다.
설령 그게 불완전한 것이라도, 신격을 얻었으니 너는 이제 평범한 인간······ 필멸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이젠 네 영혼을 수집할 필요도, 수집할 수도 없으며, 그런 고로 서로 반목할 이유도 사라진 것이라고.
쓸데없이 싸움을 벌이다가 잘못 다치기라도 하면 신격을 완성하기 전에 허무하게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 여기서 멈추는 것이 피차 이득이라고.
하지만 이성우는 자기 이외의 존재들도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왔고.
아스타로스에게 그 모든 항변을 충분히 풀어낼 만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씨발놈아.”
“잘 가라.”
슈우우욱―!
공기를 가르며 사방에서 빗발친 ‘성소’들이.
푹, 푹푹! 퍼벅! ······콰직!
살 의지를 잃어버린 아스타로스를 연거푸 짓이겨, 끈적끈적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36레벨 -> 37레벨』
『레벨에 따른 중력 제어 한도가 확장되었습니다.』
『688% -> 696%』
『총합 중력 제어 한도 : 2,356%』
그 순간, 레벨업 알림과 함께 오랜만에 메인 퀘스트 알림이 떠올랐다.
『클리어 조건의 과반을 만족하여 퀘스트 정보가 드러납니다!』
클리어 조건의 과반?
『메인 퀘스트 – 국토 정화』
분류 : 메인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소속 국가(대한민국)을 공략 중인 고위 악마 3체 무력화.
1. 추적하는 군단장, 레라지에 (완료)
2. 늪의 대공, 아스타로스 (완료)
3. ■■ (미완료)
보상 :
1. 최후의 성채
2. 전 국토 성역화
‘전 국토 성역화?’
성요한의 [성역 선포]가 언데드뿐만 아니라 모든 몬스터를 배제하는 절대적 결계이듯.
성역은 성소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그런데 전 국토가 성역화된다는 건······?
‘앞으론 게이트 폭발이나 균열, 침공 이벤트, 웨이브······ 그 모든 비극의 원흉으로부터 이 땅이 안전해진다는 뜻이다.’
보상 리스트의 1번에 자리한 ‘최후의 성채’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설령 그게 없었다고 해도, 이건 미친 보상이다.
아직 토벌 리스트의 세 번째 칸을 차지하는 악마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건 보나마나 악령술사를 조종하고 있는 카인이겠지.
‘이러면······ 기필코 카인을 여기에 강림시켜야겠는데?’
이성우가 레라지에에게 물었다.
“이봐, 어떻게 하면 고위 악마를 소환할 수 있지?”
“악마 소환? 방법은 여러 가지지. 하지만 고위 악마를 불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는 일종의 벽이 있고, 강대한 존재일수록 그걸 넘나들기 어려워지지.”
벽이라, 일종의 필터 같은 느낌이라고 봐도 무방하겠군.
약하고 미미한 존재는 넘어오기가 쉽다는 것일 테니.
“그렇기에 나처럼 무리하게 현신하면 수십, 수백 년의 휴식기를 가져야할 정도로 힘을 소모하게 되는 거다. 물론, 매개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대로 된 의식이라든가, 제물이라든가, 대공이 현신한 저 썩어 들어가는 탑처럼 본질과 가까운 매개물 말이야.”
레라지에의 설명이 길어지려 하기에, 이성우는 손을 내저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내가 당장 궁금한 건, 카인을 어떻게 여기로 불러낼 수 있느냐야.”
레라지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 인간이 신성을 얻더니 미쳐버렸나?
지금쯤 카인은 제 영역에 드러누워 배 득득 긁으면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동족상잔을 관람하고 있을 텐데.
굳이 그놈을 이 땅으로 불러내겠다니?
“아니,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지옥에 처박혀 있는 고위 악마를 뭣 하러 불러내?”
이성우가 씩 웃었다.
“뭣 하러겠어? 배에 칼침 좀 놔주려는 거지.”
말을 잃은 레라지에에게, 이성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방법 있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