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98
침묵하던 량스이 총리는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입장문을 내놓았다.
내용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제 우연히 신문을 읽었다. 내각에 대한 심한 말들이 쓰여있어 매우 놀랐다. 한신 장군을 비롯하여 성명을 발표한 장군들은 모두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지적하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모름지기 내각이 처음 구성되면 하루아침에 안정되는 게 아니므로 힘써 도와야 한다. 이제 겨우 정책 몇 개를 시행하였을 뿐인데. 비판이 아닌 비난이 난무해서야 어찌 내각이 굴러갈 수 있겠는가. 부디 작은 잡음은 무시하고 중화민국의 대의를 위해 도와달라.」
량스이를 끌어내리라고 온나라가 난리를 친 게 벌써 몇주가 되어가는데.
어제 처음 기사를 접했다는 궁상맞은 변명은 접어두고.
입장문 자체도 내각이 비판받는 지점에 대한 서술은 쏙 빼놓은 채다.
이깟 전문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화약고가 잠잠해질 리 없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량스이의 배후에 선 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시기가 도래한다.
언론에 실리는 비판 강도는 나날이 커져갔으니.
슬슬 량스이가 아닌, 그 뒤의 장쭤린을 향한 책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쭤린은 행동했다.
대담하게도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
“무쌍장군! 이게 얼마 만이오! 나 장쭤린이오!”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우창에서 선양까지 전화선은 없을 터인데, 어떻게 거시는 겁니까?”
“흐흐, 다 방법이 있지.”
장쭤린은 톈진에 있는 걸까.
톈진은 차오쿤의 보금자리다.
나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삭막하게 왜 그러시오. 꼭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일이 있어서 전화를 주신 느낌이군요.”
장쭤린은 묵묵히 있더니 말했다.
“바로 맞췄소. 나는 용무가 있소.”
“말하십시오.”
“한때 우리는 외신에 함께 사진이 찍히기도 했었지. 그때는 사이가 참 좋았는데.”
“그렇지요. 그리고 지금이라도 사이는 다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두 개의 조치면 됩니다. 첫째, 량스이 내각이 총사퇴할 것. 둘째, 펑톈군의 소집을 멈출 것.”
수화기 너머가 침묵에 잠겼다.
한참 만에 장쭤린의 속삭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알았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펑톈군이 출병 준비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의미일 터.
장쭤린의 목소리에 점차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첩자로군! 펑톈군에 공화파의 첩자를 심어둔 거야!”
장쭤린을 대형(大兄)으로 모시는 펑톈군은 비록 못 배워먹었을지언정, 신의를 저버리는 녀석들은 아니다.
첩자따윈 없다.
그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장쭤린의 각오를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 점을 밝히진 않았다.
내분을 조장할 수 있다면 이득일 테니까.
“단 두 개의 조치면, 장군은 예전처럼 동북의 왕으로 대접받으며 사실 수 있습니다. 그 쉬운 길을 왜 택하지 않습니까?”
“으흐흐, 한신 장군. 나는 머저리가 아니오. 동북왕 장쭤린? 멋지지 물론! 하지만 그 평화가 몇 년이나 가겠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그 잘난 독일인들과 함께 국제연맹이라는 위명을 걸고 온 중국에 침략의 깃발을 들어 올릴 날이 몇 년이나 남았겠냔 말이오!”
어떻게 알았지?
융중대책이 새어나갔을 리는 없다.
리위안훙은 첩자가 아니니까.
그럼 때려 맞춘 건가.
“왜 대답이 없소! 역시 양위팅 선생의 예측이 맞았군! 당신도 마음속에 커다란 흉계를 품고 있었던 거야!”
간파한 사람은 양위팅, 그 친구인가.
역시 까다롭구먼.
장쭤린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굳이 성인군자인척 굴기보다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침략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조정입니다. 지금의 중화민국은 누가 보아도 통일국가의 위상이 아니니까요.”
나는 살짝 귀를 막았다.
장쭤린의 음성이 또다시 째질 듯이 울릴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들려오는 것은 걸걸한 웃음소리였다.
“으하하하하! 그렇군, 그랬어!”
“뭐가 그렇습니까?”
“당신이 그 대단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한낱 장군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 의아하다 생각했었는데···. 으하하! 한신도 천하인(天下人)이었군!”
좀전의 노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장쭤린은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천하인은 또 뭡니까.”
“소인배들은 떠들곤 해. 방 한 칸 얻어서 따듯한 밥을 먹을 수만 있으면 됐지. 어째서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자처하냐고. 하지만 나, 장쭤린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사내대장부가 태어났으면, 자기의 역량을 한계까지 시험해보아야 하는 법이지! 천하를 한번은 움켜쥐어봐야 우리 마누라 젖가슴이랑 뭐가 더 대단한지 비교할 수 있지 않겠냐! 우하하하!”
대충 알겠다.
이 통화는 싸움 전에 상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장쭤린은 마음을 굳혔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동의합니다.”
장쭤린은 내 대답에 만족한 것 같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전장에서 보자구.”
***
그날, 나는 집에 있었다.
시시우의 배가 남산만 하게 부풀었다.
출산 예정 일자가 코앞이었다.
“요즘 시국이 뒤숭숭하잖아. 사령관이 여기 있으면 어떡해. 가 봐.”
“시국이 이상한 건 어떻게 알아? 너 혹시 신문 읽어?”
“나한테는 그게 태교야.”
···황색 선전을 지양해야겠다.
시시우는 날 밀어냈으나.
만삭의 아내를 두고 자리를 비우고 싶진 않았다.
“옆에 있을게.”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 괜찮아.”
“그래도 있을게.”
되풀이하는 말은 옆에 있지 못할 것 같아 부득이하게 반복하는 것이었다.
내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조심스레 우리 집을 찾아온 리페이양은
시시우의 얼굴을 한번 보고, 그녀의 배를 본 후, 마지막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소식을 가져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시시우가 먼저 말했다.
“가 봐.”
나는 그녀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천하가 이것보다 대단할까?
알 수 없다. 얻어보지 않았으니까.
“금방 올게.”
1921년 11월 17일.
장쭤린의 선봉대가 산하이관을 통과했다.
이어지는 대부대는 20만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한장전쟁
장쉐량(張學良)은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오늘은 여기에 진지를 편다.”
장쉐량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지시가 하달되었다.
말에서 내린 장쉐량은 팔을 걷어붙이고 병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병사들이 손을 휘저으며 만류했다.
“어이구, 군단장님. 막사에 들어가 쉬십시오. 진지구축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아니야. 한 사람이라도 손이 늘어나면 일이 빨리 끝날 텐데. 어찌 나만 쉬겠나?”
“그래도 상장군께서 아시면···.”
“아버지가 뭐 어쨌다는 건가? 나는 만왕상장군의 아들이기 이전에 제3혼성여단의 지휘관이네. 마땅히 힘을 쏟아야지.”
“오오, 역시!”
어려서부터 아버지 장쭤린의 용인술을 보고 자란 장쉐량.
어떻게 행동해야 병사들의 충성을 끌어낼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한참 구슬땀을 쏟으며 땅 고르기를 하는데.
뒤에서 쇠를 긁는 것처럼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 바쁘십니까?”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무슨 기분 나쁜 음성인가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르지만.
장쉐량은 대번에 표정이 밝아졌다.
“선생님, 오셨군요!”
장쉐량이 반갑게 맞이하는 자는 궈쑹링(郭松齡).
펑톈의 동로군 제2군단 소속 제8혼성여단의 단장을 맡고 있으며.
장쉐량의 스승이자 의형(義兄).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가 바로 궈쑹링이다.
궈쑹링은 한창 진지공사에 열중인 병사들을 바라보며.
예의 쇳소리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가 진지를 꾸린 곳의 지세를 보아하니. 평탄한 와중에 높은 언덕이 있어 정찰이 용이하며, 남쪽으로 난 좁은 길은 적이 불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한하고 있군요. 병법에 나올만한 교과서적인 주둔지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다행이군요. 칭찬은 오랜만에 듣습니다.”
“저는 쓸데없는 공치사(空致辭)는 하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말이라 하는 것입니다.”
“압니다. 그래서 더욱 기뻐요.”
궈쑹링에 대한 세간의 평은 펑톈군 안에서도 극과 극으로 갈렸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꿰뚫은 현인이라며 뒤를 졸졸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는 반면.
그 특유의 까칠함과 오만함 때문에 맞는 말을 해도 들어 먹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있었다.
장쉐량은 궈쑹링이 건곤(乾坤)의 이치를 통달한 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야전에서 굴러본 적도 없으면서 입만 산 허영꾼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궈쑹링과의 만남으로 장쉐량은.
산적들 틈바구니에서 어설프게 군인 흉내를 내던 생활에서 벗어나 군지휘통솔자로서의 면모를 제법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베이징장교연구소와 육군대학을 졸업한 궈쑹링.
일본육사를 졸업한 양위팅과 함께 펑톈 내에서 보기 드문 엘리트였다.
항상 쌍으로 묶여 제갈량과 방통으로 불릴 정도였다.
장쭤린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에 평생 한이 맺힌 사람이었다.
장쭤린이 펑톈성의 독군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펑톈성에는 5,500여개의 학교에 22만명가량의 학생이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학교의 수는 8,000개에 달했고 학생도 35만명이 넘었다.
발맞추어 개교한 동북육군강무당은 펑톈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고등군사교육기관을 표방한 동북강무당은 개교하기 전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데.
펑톈군은 죄다 시커먼 마적 놈들 투성이이라 생도들을 가르칠 만한 교관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궈쑹링이었다.
전술교관 궈쑹링의 수업은 저 유명한 우창군관학교에서도 들을 수 없는 최고 수준의 강의로 인정받으며 생도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역사가 짧은 동북강무당이 바오딩군관학교, 우창군관학교, 윈난강무당과 함께 중화민국 4대 군사학교로 꼽힐 수 있었던 데에는 궈쑹링의 역할이 지대했다.
동북강무당 1기 졸업생인 장쉐량 또한 궈쑹링의 수업을 듣자마자 단박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궈쑹링의 까탈스러운 성격은 오히려 강단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강무당의 다른 교관들은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장쉐량을 어렵게 대했던 반면.
궈쑹링은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도 엄하게 가르쳤으니.
권력 앞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가는 교육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어쩐 일로 진지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선생님?”
“특별한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전선에 돌입하기 전에 공자에게 한 번쯤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게 뭡니까?”
궈쑹링은 바로 답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남서쪽을 내려다보았다.
마침 해가 지며 석양을 그리고 있었다.
“여기서 해안가의 좁은 길을 따라 쭉 남하하면 톈진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가면 마창이 있고요. 그 너머에는···. 마침내 적이 있겠지요.”
“정말이군요. 이렇게 갑자기 시작될 줄은···.”
“떨리십니까?”
떨리냐고?
장쉐량은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쿵쿵 울리는 박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