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dding, I’m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5)
〈 75화 〉 수련회 # 12
* * *
나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과도하게 팬 것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폭력을 참겠나? 그러니 숨길 것은 없다.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자.
“흠.”
이야기를 들은 레오나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초인이 된 이상, 그런 모욕은 그냥 넘길 수 없어요. 확실하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죠.”
의외로 레오나가 공감을 해줬다.
“아니, 레 오나씨? 사건을 일으킨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반장이 여기에 공감해도 괜찮은 거냐?”
“그렇지만 문민이 먼저 모욕을 했다면서요? 그것도 우리들을 들먹이면서.”
“그건 그렇지.”
“사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도 자비 없이 두들겨 패줬을 거예요.”
레오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것 또한 반장으로서의 의무일 테니까.”
의무인 거냐?
“아무튼 뭐, 이야기를 들어보니 좀 심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쪽도 초인인 이상 감당해야지요. 초인이 초인을 모욕했는데 그냥 넘어가는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이거 레오나가 생각보다 공감을 많이 해주네.
근데 초인이 초인을 모욕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라. 레오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는데, 이건 상식으로 통하는 일이 맞는 것 같았다.
“반대로 만약 김근철이가 누군가를 별 하찮은 이유로 모욕했다면, 김근철이도 당연히 맞아야 하는 거구요.”
“그래. 맞는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모욕에는 반드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근데 사실 이러한 생각은 현대 사회와는 결코 맞지 않는다. 사적제재는 아주 악한 일로 통하고 있으며, 설령 모욕을 당했다고 해도 무조건 참아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된 뒤로 딱히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미성년자였을 때야 그러한 법률을 무시해도 제재가 그렇게 크지 않았으니 막 나간 거지, 성인이 된 다음부터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으니 폭력을 끊었다.
그냥 그랬을 뿐이다.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내세워 무리를 짓고 사람을 패던 놈들이다. 그럼 나도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내세워서 놈들을 패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 성인이 된 다음에도 그러면 얄짤없이 전과자 신세고.
“레오나. 내 생각이 딱 그거야.”
하지만 여기는 내가 살던 현대 사회가 아니다.
군림하는 초인들이 살아가는 사회다. 당장 정치체재부터가 민주주의랑은 수천만 광년이나 거리가 먼 일인 독재 군주제다. 통령군주 김익수는 1세대 각성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며, 쿠데타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래요. 김근철이가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이해가 돼요.”
당장 이소라 교관님만 해도 그렇다.
내가 살던 곳의 교사들은 결코 내게 공감해주지 않았다… 맞아도 참으라고만 했지. 무조건 맞는 쪽이 잘못이라고 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면서. 그래서 상대방을 맞는 쪽으로 만들어주니 그땐 또 내 탓을 하더라.
하지만 이소라 교관님은 내게 공감해줬다.
폭력이란 것을 받아들이는 사상 자체가 내가 살던 곳이랑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당장 저만해도 유럽을 지배하는 귀족 가문의 자식이에요. 그런 제가 어줍잖은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가문의 체면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당연히 응징을 해야 하죠.”
“고맙다. 레오나. 그리 말해줘서.”
“훗, 뭘요. 그냥 당연한 건데.”
아주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얘기를 해주는 거다. 이거 진짜 천사 아니냐?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김근철이? 만약 문민이 초인이 아니라 민간인이었다면, 저는 김근철이를 결코 좋게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거야.
“초인과 민간인은 다르니까요. 전혀 동등하지 않죠. 초인이 동등하지 않은 민간인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것은 정말 나쁜 일이에요.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과 다름없잖아요? 민간인들은 보호의 대상이니까.”
“아.”
이 부분에서 레오나의 생각은 상상 이상으로 확고했다. 역시 귀족가의 영애라는 건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온 것이겠지.
“그건 그래. 나도 뭐 문민이 같은 초인이니까 그렇게 팬 거지, 민간인이었으면 제압만 하고 말았을 거다.”
“훌륭하네요. 난 또 무슨 큰일을 저질렀다고. 심장 철렁하는 줄 알았잖아요.”
“흐흐흐, 근데 이것도 좀 큰일 같은데. 아무튼 화해는 하고 왔어. 사과했다.”
“그럼 됐네요. 잘한 건 아니지만 김근철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ㅡ툭툭.
그리 말한 레오나가 내 어깨를 두들겨줬다.
“그런데 김근철이.”
“음? 왜?”
“역시… 마음 속에 조금 쌓인 것이 있는 건가요? 화라던가.”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아니 뭐 그런 건 없는데.
“야. 레오나. 나한테 그런 게 있겠냐?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가요… 뭐, 그럼 오늘은 푹 쉬세요.”
“그래야지.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
오늘 수업은 진작에 끝났다.
“야.”
“어? 우유리 왜.”
“나도 뭐, 이해한다.”
“이해를 해준다고?”
“뭐 시발. 걔가 좆같이 굴었다는데 어쩌겠어? 두드러 맞아야지. 잘했어. 원래 초인끼린 서로 패도 괜찮아. 민간인도 아닌데 뭔. 잘못했으면 처맞아야지.”
툴툴 거리는 듯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어투 속에 날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얘가 참. 눈빛이 날카로워서 그렇지 사람 자체는 다정하다니까.
“흐흐흐, 이거 또 우리 유리씨가 공감을 해주네.”
내가 친구 잘 사귀긴 했다.
이 좋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나였어도 비슷하게 했을 테니까. 그리고 뭐… 누구나 속에 품고 있는 화라던가. 분노 같은 게 있을 거 아냐.”
ㅡ처억.
유리가 내 어깨를 잡았다.
“음?”
“그러니까 이해해. 건드린 놈이 잘못 아니겠냐?”
“우리 유리씨 너무 다정한데?”
“지랄은. 아, 레오나. 이야기 다 들었으니 이제 돌아가자. 더 있다가 들키면 혼나겠다.”
“그래야겠어요. 아무튼 김근철이? 저는 다 이해하니까 다음에 봉사나 하러 가자구요.”
“그래!”
그리 인사를 한 두 여자가 밖으로 나갔다.
“후우.”
그것으로 시후와 둘만 남게 되었다.
“시후야?”
근데 시후는 뭔가 팔짱을 낀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름을 한번 더 부르자 눈을 뜬 시후가 말했다.
“근 철 아.”
“어, 어어?”
“그래도 친구를 팬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때리더라도 제압만 하고 끝낼 수 있잖아?”
“그거는… 뭐. 그런 방법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시후야. 알아도 해야 할 때가 있어.”
내 실력으로 문민을 제압만 하고 만다?
불가능해.
만약 손속을 봐주다가 놈이 일어났다면 내가 더 처맞았을 거다. 실력 자체는 문민이 한 수 위였으니까.
“그래도. 나였으면 제압만 했을 거야. 이번엔 근철이가 심했어. 당연히 이유 없이 욕먹은 것도 모자라 친구들을 끌어들인다면 나였어도 크게 화가 났겠지만, 도를 넘어선 폭력은 안 되는 거야.”
이거.
시후의 눈빛이 너무 강렬하다…!
그래, 뭐. 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바다. 제압했으면 냅둬야지. 그게 일반적인 상식일 테고.
“크으… 그래. 맞다. 시후 니 말이 맞어. 패도 덜 팼어야 했는데. 마지막까지 팬 건 솔직히 내가 잘못한 거 맞지.”
“그렇지?”
“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작정하고 날 혼내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겠나. 시후의 말이 맞는 것을.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도록 해야겠지?”
“맞아, 근철아. 이번은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제압만 하고 끝내는 걸로 해. 알겠지?”
“그러마.”
“나랑 약속해.”
ㅡ처억.
시후가 내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니, 뭐 낯간지럽게 약속을 하래.”
“근철아. 빨리. 내 주먹이 울고 있잖아. 지금.”
이거 새끼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이었냐?
“알았어! 알았어! 약속할게!”
바로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문민이랑도 제대로 화해하고 와. 사실 화해라고 해봤자 근철이한테 많이 맞아가지고 무서워서 적당히 한 거 아냐?”
어쩐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 그렇게 할게. 다음도 또 보고 이야기해야지. 아, 시후야. 그럼 나 먼저 씼는다?”
“근철이 믿어.”
“알았어 임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후우.”
레오나도 그렇고. 유리도 그렇고. 시후도 그렇고. 거기에 이소라 교관님도 그렇고. 전부 다 날 진심으로 생각해주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이거 너무 고마워서 등이 다 뜨거워질 지경이다. 그런 친구들이 해준 말이니 뭐… 나도 다음부터는 조절을 좀 해야겠지. 다른 건 몰라도 날 이해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순 없다.
그런데.
역시 신경 쓰인다.
“…”
그때 느껴졌던 기묘한 확신감이.
* * *
그날 꿈을 꿨다.
꿈속에 문민이 나왔다.
“이 새끼?”
녀석은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이거 설마 내가 줘 팬 탓에 쓰러져 있는 거냐? 오늘 팬 거 때문에 그게 꿈으로 나타난 건가? 꿈에서도 사람을 패다니 이건 좀 미안한걸.
그런데 나는 막상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그리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니 주변이 폐허였다. 늘 그렇듯이 꿈에는 맥락이 없었다. 쓰러진 문민 다음에는 폐허라니. 흔하디 흔한 개꿈이로군.
그리고 나는 일어났다.
* * *
“네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아침에 모이니 류씨가 언짢다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 드래곤씨 그게 궁금해?”
“드래곤 소리는 집어치워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아니, 뭐 별거 아냐.”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설명을 해 줘야지. 지금 류씨 이거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니 학기 초에 나보고 ‘죽여버리겠다!’ 이러면서 발광한 적 있지?”
“그, 그건!”
“비슷해. 근데 사정이 쫌 달라. 그놈이 갑자기 날 보고 모욕을 하길래 내가 ‘죽여버리겠다!’ 하고 줘 팬거지 뭘.”
“그렇군.”
류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그래. 이해가 됐지?”
“그런데 이번엔 맞서 싸운 모양이군. 저번처럼 도망치면서 야만인마냥 소리를 꽥꽥 지르지 않은 것인가?
“흐흐흐, 야. 그럼 내가 뭐 맨날 도망만 치겠냐? 싸울만 하다 싶으면 실제로 싸우는 거지 뭘.”
“허. 그렇다는 것은 나는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싸움의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는 거지. 상대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는 게 내 방식이다.”
류씨는 내가 못 이긴다. 그래서 비겁하게 싸운 거고. 문민 임마는 싸울만 하니까 싸운 것이다.
그 정도는 구분해야지.
안 그러냐?
옛날에 싸울 때도 그랬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다구리 까는 놈들은 혼자 있을 때를 노려야지. 다구리 까는데 혼자서 어케 이겨.
“자, 좋은 아침이다. 다들 잠은 잘 잤나? 잘 잤길 바란다. 오늘은 무인도 생존 체험을 시작하는 날이니까.”
이소라 교관님의 선언에 급우들이 술렁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