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seong Detective Agency RAW novel - Chapter 58
00054 악몽의 밤 =========================================================================
환을 따라 해경의 사무실로 들어선 두석이 놀란 눈치로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사무실의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의 위용은 확실히 압도적인 것이기는 했다. 자리에 앉아 무슨 서류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던 해경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가 환과 두석을 보고는 소파를 가리켰다. 환은 사무실 안을 한 번 더 슬쩍 둘러보고는 해경에게 물었다.
“소화 양은 어디를 간 겁니까?”
환은 그 순간 해경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환은 눈썰미가 좋은 편이었다. 해경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던진 질문인 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안다면 해경은 분명 자신을 성격 나쁜 인간이라고 여길 것이 틀림없었지만, 환은 그런 해경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물론 소화에게 개인적인 호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자신이 이렇게 소화에게 호감을 내비칠 때마다 해경이 마치 금쪽같은 여동생을 둔 오라버니처럼 자신을 은근히 불한당처럼 취급하는 것이 말하자면 좀 색다른 기분이었다. 일본 천황가에서도 누가 아직 미혼이네 뭐네 하며 은근히 결혼 압박을 주고 있는 데다, 그게 싫어서 귓등으로도 들은 척을 하지 않으니 이제는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어떻게든 자기 딸을 시집보내려 줄을 섰는데 고작 천애고아인 하녀가 뭐라고 자신을 그렇게 경계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경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잠시 알아볼 것이 있다며 나갔습니다. 같이 오신 분이 황두석 군인 모양이군요. 일단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해경이 창가로 가서 차를 따랐다. 쟁반에 찻잔을 올리고는 환과 두석의 앞에 하나씩 놓아 준 해경이 자리에 앉았다. 해경은 두석이 차를 한 모금 마시는 것을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사라졌다는 박경인 군과는 친한 사이였습니까?”
두석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경인이와는 고보에서 계속 테니스를 같이 쳤습니다. 경인이도 저와 함께 대회에 여러 차례 나갔었고요. 제가 작년 말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선수로 테니스를 치는 것은 그만두었는데, 경인이와 적수가 될 만한 상대는 저뿐이라 계속 연습을 돕고는 있었습니다.”
“사적인 것에 대해서도 잘 알았겠군요.”
“경인이는 대구에서 올라와 하숙을 하고 있어서 경성에는 연고가 없었습니다. 학우들 이외에는 친하게 지내는 이도 없었고,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늘 바빴지요.”
“대단한 모범생이었던 모양입니다.”
해경이 약간의 감탄을 섞어 말하자 두석이 그 말에 긍정의 표시를 했다.
“네. 어머님이 그리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대구에 갔다 오면 학교 수업에 간혹 하루 이틀 빠졌던 것도 가족들의 일을 돕느라 그랬던 것이라,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졌을 리 없습니다.”
해경은 두석의 말을 몹시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해경을 지켜보던 환이 물었다.
“지난번에 다른 실종 사건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았소?”
“네. 여러 방면으로 조사 중입니다.”
대답은 바로 돌아왔으나 해경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지금 여기서는 말씀드리기가 조금 곤란하군요.”
해경이 잠깐 두석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답했다. 해경의 그런 태도에, 환은 두석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리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그 모든 사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하면 기묘한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으나, 사실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직 없는 한 모든 것을 별개의 사건으로 본다면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수상한 시대였고 매일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취를 감추곤 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스스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고 일부는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경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더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도록 하시지요.”
환의 말에 두석이 곁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경은 말없이 시선을 어슷하게 내리고 있다가 한참만에 두석을 보았다.
“혹시 경인 군의 사진을 가진 것이 있습니까?”
두석이 놀란 표정을 했다.
“지금이요? 지금은 없습니다. 작년 대회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은 집에 있고요.”
“그 사진을 좀 가져다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집에 다녀올까요? 그리 멀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경의 말에 두석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사무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본 환이 팔짱을 끼었다.
“뭐가 마음에 걸리는 거요?”
해경이 미간을 약간 좁히며 환에게 시선을 주었다. 환은 그런 해경을 마주보았다.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답은 단호했으나 얼굴에는 약간 지친 듯한 빛이 있었다. 환은 그제야 해경이 잠을 설친 사람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해경을 그리 오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얼굴은 약간 낯설었다. 찌르면 틈이 벌어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환이 뚫어지게 해경을 응시하자 관자놀이 부근을 짚은 채 무슨 생각인가를 하던 해경이 퍼뜩 눈을 돌려 환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왜 그렇게 보느냐는 무언의 물음이 쓰여 있었다. 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웠던 모양이오.”
지나치듯 가볍게 건넨 말이었지만, 그 말에 해경의 서늘한 눈매가 잠깐 크게 뜨였다. 그러나 해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사무실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환 쪽이었다.
“정 선생은 어디 출신입니까?”
호구조사를 하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침묵이 묘하게 불편한 감각이라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해경은 그 말에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부모님과 어릴 적 헤어져 출신지를 알지 못합니다.”
환은 한쪽 눈썹을 가볍게 좁혔다. 환이 보았을 때 해경의 신사적인 말투나 태도는 거의 태생적인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교육을 매우 잘 받은 남자라는 느낌이었기에 해경이 출신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은 환에게 있어 매우 뜻밖의 일이었다. 환이 놀란 것을 눈치챘는지 해경이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님의 성함이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근본이 없다 해야 할까요.”
해경이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었으나 말투가 다소 냉소적으로 느껴져, 환은 실수했다는 기분이 되었다. 아픈 곳을 일부러 찌르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해경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었다. 환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불편한 질문이었겠군요. 미안합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짧게 대답하고는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던 해경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종이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무언가가 잔뜩 적혀 있는 종이들이었다. 탁자 위에 그 종이를 늘어놓은 해경은 환에게 그 중 한 장을 가리켜 보였다. 환은 몸을 숙여 그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경성 지도였다.
“이게 뭐요?”
“실종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을 탐문한 지도입니다.”
해경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지도 위에 빨간 점이 곳곳에 찍혀 있었다. 여러 개의 점이 명치정과 고시정, 욱정(旭町: 회현동), 봉래정(蓬萊町: 봉래동) 등에 위치해 있었다. 이 부근에서 벗어난 곳에 찍힌 점은 한두 개가 고작이었다. 환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들어 해경을 마주보았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인근에서 없어졌단 말이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실종된 이들의 사진을 들고 며칠 동안 탐문 수색을 했고, 그 중 목격자가 있었던 이들을 추려 지도에 표시를 하니 이 근방에 상당한 수가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이 일대에 납치범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환의 말에 해경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일대는 경성에서도 통행량이 많은 지역에 속합니다. 물론 인적이 드문 곳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대부분 대로변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목격자가 있었던 것이고요. 해가 떨어지기 전 이들을 보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백주대낮에 어린 아이나 여자뿐 아니라 장성한 남자까지도 흔적 없이 납치한다? 이것은 제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지도 위를 보았다. 점점이 경성 지도 위를 수놓은 빨간 점이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이렇게 점 하나로 표시된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삶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터였다. 환은 새삼 자신의 처지가 답답해 낮은 한숨을 쉬었다. 조선 황실의 후손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거리에서 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들이 사라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에 잠겨 있던 환이 묻는 말에 해경이 눈을 약간 가늘게 뜨며 환을 마주보았다.
“무엇을 말입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없어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건 답답하군요. 경무국에 압력을 넣어 실종자를 수색할 인력을 구성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의 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직접 그 정도의 인원을 움직일 힘도 없고……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답답함을 토로하는 환의 말에 해경이 잠시 환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두가 손발이 묶인 시대지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해경은 말을 멈췄다. 다소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단정한 입매가 슬몃 비틀리듯 움직였다가 곧 제자리를 찾았다. 짧은 사이를 둔 해경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뭐라고 대답하려던 환은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두석인가 했는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것은 소화였다. 매우 급히 달려온 듯 두 뺨이 잔뜩 상기된 채 문 앞에서 숨을 고르던 소화가 환이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해경이 물었다.
“어디를 그리 다녀오는 겁니까?”
“고시정 근처에요, 선생님. 송란 씨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있는지 찾으러 갔었습니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내내요?”
해경이 놀란 얼굴을 했다. 소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 겨우 숨이 좀 가라앉았는지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고시정 길바닥에서 나물을 파는 아주머니가 그날 송란 씨와 비슷한 여자를 봤다고 합니다. 송란 씨의 옷차림이 화려해서 기억을 하는 것 같았어요. 경성역으로 가는 길을 묻는 할머니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할머니가 잘 알아듣지 못해서 몇 번이나 설명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는요?”
“할머니가 짐이 많고 귀가 어두우시다 보니 결국 송란 씨가 경성역까지 데려다 주는 것을 보았답니다.”
“정확히는 고시정에서 경성역으로 가는 길목이겠지요?”
“네. 그런데 경성역 건물이 보이는 위치라 경성역까지 가는 것은 분명히 보았다고 했어요.”
소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화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경성역 안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을 가능성은 없는 거요?”
“역무원에게 확인해 본다면 알 수 있겠지요. 할머니에게 길을 가르쳐 준 것이 마지막이다…….”
해경은 환에게 대답하며 혼잣말처럼 뒷말을 중얼거렸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화가 탁자 위에 펼쳐진 종이들을 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 종이들을 보다 빨간 점이 찍힌 종이를 가리켰다.
“모두 사는 곳은 다르지만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대부분 이 부근이에요. 송란 씨도 그렇고요. 왜 그럴까요?”
해경은 팔짱을 끼고 그 종이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습니다. 경성역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니까요. 시간차를 두고 이들이 경성역에서 목격된 건 어쩌면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해 본 몇 사람은 대부분 사라질 이유가 없었지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송란도 그렇고, 박경인 군을 비롯해 몇 달 전 사라진 노파 이갑녀 씨와 50대의 남자 조평술 씨 역시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할까요? 무슨 의도로?”
“일전에 머리가 잘린 어린아이가 발견된 사건이 있지 않았소? 그런 의도는 아닐까요?”
환이 묻자 해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첨정(竹添町)에서 벌어진 사건을 말씀하시는군요. 그건 간질병에 아이의 뇌수가 특효약이라는 말을 듣고 간질 환자인 아들을 둔 아버지가 시체에서 목을 잘라 갔던 사건이지요. 이처럼 간혹 아주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민간요법이나 미신을 믿고 납치나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 경우는 몹시 드뭅니다. 이 사건이 이상한 것은, 물론 모든 사건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그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경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화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주저했다. 소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해경은 말해보라는 듯 소화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만에 소화가 머뭇거리다 해경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선생님. 혹시 미끼를 쓰면 어떨까요?”
해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화에게 되물었다.
“미끼라니요?”
해경이 자신의 말에 관심을 두는 것 같자 소화는 용기가 난 듯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제가 직접 이 근방에서 돌아다니며 수상한 자를 찾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소화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 해경이 단호하게 소화의 말을 잘랐다. 환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무리 경성에서 탐정의 여조수로는 유일하다지만 소화 양은 담이 너무 크군요.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리 위험한 일을 자처합니까?”
“그저 이상한 사람을 찾아보는 일일 뿐인걸요. 절대로 위험하지 않게 하면…….”
소화가 당황하며 변명하듯 입술을 달싹이자 해경이 전에 없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요.”
소화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해경이 소화의 양 어깨를 잡아 자신을 보게 하고는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알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요.”
환은 무서울 정도로 엄한 표정을 한 채 소화를 다그치는 해경의 태도를 유심히 보았다. 분명 평소와는 다른 태도였다. 소화의 제안이 확실히 위험한 것이기는 했고, 해경이 소화를 대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소화에게 그런 일을 절대 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했으나 환이 느끼기에 지금 해경의 태도는 약간 과잉방어처럼 느껴지는 일면이 없지 않았다. 해경이 소화의 어깨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자 소화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해경을 올려다보았다.
“네, 네, 선생님. 알겠어요.”
소화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잠시 그대로 서 있던 해경은 소화의 어깨를 놓아 주고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한 듯 조금 기가 죽은 표정을 한 소화가 해경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굳어 있던 해경이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두석이었다. 두석은 들어서자마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문 앞에 멈춰선 채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환이 먼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일찍 왔구나. 사진은 가져왔니?”
“아, 네. 여기요.”
눈치를 보던 두석은 환의 말에 얼른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환은 그 사진을 받아 잠시 눈을 두었다. 두석과 경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경인은 두석보다 키가 컸고, 한눈에도 가무잡잡하고 단단해 보이는 체형이었다. 환은 그 사진을 해경에게 건넸다. 사진을 보던 해경이 얼굴을 들었다.
“누가 납치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겠군요.”
두석이 그 말에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펄쩍 뛰었다.
“경인이는 원체 운동에 만능인데다 힘도 장사입니다. 끌고 가려 했다면 장정 둘은 필요했을 겁니다. 먹기도 잘 먹어 체격도 좋은 편이었고요.”
“그렇군요.”
사진을 주머니에 넣은 해경이 창가로 향했다. 열린 창으로 바깥의 거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서 있던 해경이 몸을 돌려 환과 두석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혹여 궁금한 것이 더 생기면 그때는 제가 직접 찾아가지요.”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두석이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환은 두석을 먼저 내보내고는 따라 나가려다 말고 문 앞에서 해경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해경은 그새 다시 등을 돌리고 창 밖을 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쿡 찌르면 무너져 내릴 듯한 느낌이 있어, 환은 저도 모르게 잠시 그 등에 시선을 붙들렸다. 한참 그 등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한 환은 사무실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