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87
아미의 여승들 (2)
영살 협곡에서 나온 그들은 가장 가까운 마을인 보이 추안현의 객잔에서 늦은 식사를 했다.
“너희들은 술도 먹고 쉬거라, 난 먼저 올라가 보마.”
“예, 주군!”
“편히 쉬십시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온 송삼현은 창가에 앉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봤다.
‘평화롭군.’
영살 협곡에서 혈심경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
그것이 전쟁의 시발점이 되며 운남 전역이 죽음에 휩싸이는 것이 앞으로 벌어질 미래에 정해진 순서였다.
허나.
끔찍한 혈겁이 일어나지 않았다.
혈심경을 이용한 흑사회의 계략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으나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미래에 일어날 전쟁에 개입할 사파 세력들도 대거 토벌했으니 흑사회가 세운 계획이 틀어질 것이 확실해졌다.
‘전쟁의 시발점이 될 계기가 사라졌으니 이제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겠지.’
회귀를 한 뒤에 추혼마공서부터 시작되어 혈심경까지 이어진 길.
전쟁을 완전히 뿌리뽑기 전까진 아직 걸어갈 길이 한참 남았으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이걸로 된 건가.’
원래 흑사회의 손에 들어가는 것들이 사라지고 죽어야 하는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야 했던 자들이 죽으며 알던 미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걷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닌 옳은 길이길.”
*
며칠 후, 천뇌를 잃은 한충건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꿀꺽.
꿀꺽.
충격에 빠져 매일 밤을 술로 지새웠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술병이 나뒹굴었다.
‘천뇌님이 돌아가셨다니···. 천뇌님의 마지막은 내가 지켜야 했거늘.’
임종(臨終)을 곁에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짙었다.
“… 적매.”
천뇌의 수족들은 이제 한충건의 수족이 됐다.
이건 천뇌가 가기 전에 남긴 말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잘못되면 충건이 네가 내 뒤를 이어 회주님을 보필해라.’
이 말로 인해 한충건이 공식적으로 천뇌의 뒤를 이어 흑사회주 철패흉의 오른팔이 됐다.
“예. 부르셨습니까.”
“내가 천뇌님의 뒤를 이어서 흑사회를 잘 이끌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한 군사님은 천뇌께서도 전권을 맡길 정도로 뛰어난 분이니 훌륭히 해내실 겁니다.”
슬펐으나 나아가야 했다.
천뇌가 보고 있다면 이런 자신을 한심하게 볼 터이니.
“내가 길을 나아가기 전에 일을 하나 해야겠다.”
그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이라면? 백의검룡에 관한 일입니까?”
“이미 하늘에 오른 백의검룡을 우리가 어찌할 수 있단 말이냐, 허나 그 주변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지 않으냐.”
송삼현의 무위는 흑사회주도 어쩌지 못할 만큼 강했다. 그러니 송삼현과 직접적인 싸움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송삼현이 아무리 하늘의 경지에 올랐다곤 하나 주변 인물은 아니었다.
옆에서 듣던 적매는 한충건이 어떤 일을 꾸미는지 짐작했다.
“큰일이 벌어질 겁니다. 금호장을 습격한다면 정파 무림 전체가 들고 일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흑사회가 금호장을 습격하는 그림이 되면 무림맹이 개입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아가선 정도 무림 전체가 흑사회를 공격할 명분을 주게 되는 셈이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자객을 써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되지 않느냐.”
한충건도 그런 걸 알기에 공개적인 것을 피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한 달 뒤, 금호장에서 남궁세가로 금호장의 장녀가 혼례를 올리기 위해 이동한다.”
“예.”
“그때 그 여인을 죽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말씀입니까?”
“흑살단을 쓴다.”
흑살단(黑殺團), 흑사회에서도 암살을 전담하는 곳으로 그곳의 대원이 되려면 감정이 없어야 했기에 같이 훈련한 동기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고 훗날 전쟁이 벌어지면서 정체가 밝혀지는 존재들이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앗아갔으니 우리도 그에게 있어 소중한 것을 앗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천뇌의 뒤를 이어 흑사회의 새로운 뇌가 된 한충건.
그는 자신이 걸어갈 새로운 길에 대한 재물로 송삼현의 소중한 것을 취하고자 했다.
*
귀주성 필주 유화현.
송삼현 일행이 말을 타며 거리에 들어왔다.
“거리 분위기가 왜 이리 음습합니까?”
선무정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동안 봐온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아닌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사파들의 터전이라 그렇다. 이곳은 관아들도 사파랑 결탁해서 여러 콩고물을 받아먹고 있으니 괜히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하거라.”
“먼저 시비를 걸어오면요?”
“그러면 상대해줘야지.”
오래전부터 필주는 ‘흑천오방(黑天五房)’이 세를 떨치는 곳이었다.
‘적수방(赤水房).’
‘해운방(海雲房).’
‘귀호방(鬼浩房).’
‘삼악방(三惡房).’
‘용문방(龍門房).’
다섯 개의 방파는 필주를 다섯 구역으로 분리해 지배했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고 고리대금은 기본이고 인신매매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로 악명이 자자했다.
살기 위해 필주를 떠난 이들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도망친 이들의 것까지 부담하며 살아가는 게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한 푼만 주십시오!”
거리에는 버림 받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언제나 아이들이 고생인 세상이구나.’
웃기만 해도 모자랄 나이에 거리에서 구걸이라니.
저번 삶의 자기 모습이 투영되자 송삼현은 걸음을 옮겼다.
“저쪽으로 가자.”
“… 주군?”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는 못해도 먹을 것은 나눠줄 수 있잖아.”
당과를 비롯해 꼬치 요리들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며칠을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 애들의 옆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여동생을 꼭 끌어안고 나를 봤다.
“어디서 이리 맞았느냐.”
아이의 얼굴에는 무수히 많은 멍과 미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덧난 상처가 보였다.
“… 아실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우리가 어떻게 되든 당신 같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니까요.”
“먹거라.”
“독이라도 바르셨어요?”
“뭐?”
“한 해 전에 저희 부모님이 누군가가 준 음식을 먹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거든요.”
“….”
“전 남들이 주는 음식은 안 먹어요.”
경계심이 가득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보며 선무정이 가져온 꼬치 중 하나를 집으며 우걱우걱 씹었다.
“봐봐, 아무렇지 않지?”
“….”
아직도 눈에 의심이 가득한 아이에게 꼬치를 건넸다.
“괜찮으니 먹거라. 네가 아니면 여동생에게라도 먹이거라.”
꼬르륵.
꼬치가 풍기는 맛있는 냄새를 맡은 여동생의 배에서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냉큼 그것을 받아들더니 여동생에게 제일 먼저 먹이고 그다음 남은 걸 자기 입으로 넣었다.
남은 걸 먹는 아이에게 고기꼬치 다섯 개를 더 주며 말을 걸었다.
“어디서 맞았는지는 말을 안 해줄 것이냐?”
“돈을 못 벌어왔다고 맞았어요.”
“돈을?”
“구걸해서 하루 일정량을 채워야 먹을 것을 주거든요. 여기 있는 애들은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개방원이냐?”
간혹가다 성질 더러운 분타주를 만나면 매를 맞는 일과 수당을 빼앗기는 일이 파다했다.
저번 삶에서 내가 그랬듯이.
허나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흑천오방이요. 이 거리는 개방이 아니라 그곳의 무사들이 관리해요.”
*
아이들과 만난 뒤에 송삼현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험상궂게 생긴 남성들과 구석에서 삿갓을 쓰고 음식을 먹는 여인들이 있었다.
‘남자들은 이 근방의 사파들이고 저 여인들은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군.’
허리에 찬 검.
입고 있는 도복.
‘아미파로군.’
단숨에 누구인지 파악이 됐다.
그러고 있자 남자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세 명이오. 식사와 오늘 하루 묵을 방 세 개를 내어주시오.”
“예!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음식은 어떤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키가 작은 점소이가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고 선무정이 주문을 했다.
“고기국수 세 그릇에 동파육과 어향육사 하나씩 주시오!”
“네!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능숙하게 주문한 선무정은 물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
“주군, 어째서 광동쪽으로 안 가고 귀주로 방향을 잡으셨습니까?”
“광동보다는 이쪽 길이 더 잘 정비되어 있으니 시일을 이틀 정도 앞당길 수 있을 거다.”
“그렇군요.”
약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다를 보고 싶은 것이냐?”
“예!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습니다!”
산속에 틀어박혀 천음산보에게 경공만 배웠기에 선무정은 강호의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이제야 송삼현을 따라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누님의 혼례를 본 뒤에 강소성으로 가 구경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곳의 바다는 동이 트는 것이 아주 예쁘다.”
“정말입니까?”
“약조하마.”
약조한다는 말이 나오자 선무정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곧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고 나왔고 식탁에는 윤기가 흐르는 음식들로 가득 채워졌다.
“천천히 먹거라, 넌 항상 밥을 급하게 먹는 게 문제다.”
“이때가 저에게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요!”
옆에서 선무정은 음식들이 마련되자 곧바로 동파육에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육즙이 흐르는 동파육을 집어 든 선무정은 단숨에 입에 넣었다.
“음식에 독이 있으면 어쩌려고?”
“푸훕! 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선무정은 사레가 걸려 기침을 했고 마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제일 조심할 것이 무엇이라고 했느냐?”
송삼현의 물음에 마훈이 대답했다.
“사파의 소굴이니 어떤 것이든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인 객잔에서도 주의해야 했으나 사파의 소굴에서는 더더욱 주의를 요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니까.
송삼현은 이미 음식이 나올 때부터 독이 있다는 것을 향으로 알아차렸다. 독곡에 있을 때, 하도 많은 독향을 맡았기에 서툰 이들이 하독하는 걸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수를 믿고 객잔에서 대놓고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도 있으나 혹시 모르지.”
쿡.
품에서 꺼낸 침 하나를 음식에 꽂았다.
은침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당용호가 만들어준 독침이었다.
어떤 독이라도 닿기만 하면 색이 변하는 신묘한 침이었다.
그리고 침의 색이 변했다.
“저것들이 음식에 하독을 하고 우리를 약탈하려고 했는지도.”
침의 색이 변하자 마훈의 표정은 변했고 선무정은 입에 머금은 음식을 죄다 토해냈다.
“왜 말을 안 해주셨습니까!”
“네가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시험한 것이다. 허나 기억하지 않았구나.”
“….!”
“어차피 독은 겉이 아닌 속에 있으니 씹지만 않으면 아무 탈이 없을 거니 걱정하지 말거라.”
선무정은 음식을 씹지 않고 입에 머금고만 있기에 독에 중독되지는 않았다.
“점소이.”
송삼현은 낮은 목소리로 점소이를 불렀다.
점소이는 종종걸음으로 송삼현이 있는 식탁으로 왔고 눈치를 보는 점소이에게 송삼현이 물었다.
“음식을 어느 손으로 나르느냐.”
“예?”
“두 번은 묻지 않는다. 음식을 나르는 손이 어느 손이더냐.”
“이, 이 손입니다.”
오른손을 내밀자.
촤아아아악!
송삼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발도를 하며 왼손을 손목까지 베어버렸다.
철컥.
검이 검집 안으로 들어가자.
뚝.
점소이의 왼손이 땅에 떨어졌다.
“끄아아악!”
손목이 떨어지고 난 뒤에 점소이는 그제야 밀려오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송삼현은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음식에 하독을 한 걸 걸렸다면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그걸 몰랐느냐?”
그렇게 그의 목덜미를 확인하는데.
‘赤’
목 뒤에 적수방의 표식이 있었다.
“적수방이었군, 그러면 저기 검을 잡고 일어나는 무사들도 적수방의 사람들이고.”
객잔 안에 있던 험상궂은 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손속이 과하십니다!”
구석에서 음식을 먹던 여인들이 어느새 송삼현에게 다가와 있었다.
은은한 분홍빛 면포에 흰색 도복, 그녀들은 아미파의 여승들이었다.
“그대들은 누구시오?”
알고 있으나 예의상 물었다.
“소인은 아미파 사대 제자! 주영약이라고 합니다.”
한 송이의 꽃처럼 아름다운 미모.
아미파 여승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외모였으나 강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강호 초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