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86
아미의 여승들 (1)
달이 구름에 가려진 늦은 밤.
무림맹주 구창룡과 총 군사 제갈귀호는 정원에서 바둑을 두며 담소를 나눴다.
“오늘 오후에 무사 모집이 끝났다고 들었소.”
“예, 백 명만 모집했습니다. 호법당주가 열흘에 걸쳐 직접 뽑은 이들이니 믿을 만한 자들입니다.”
“호법당주가 직접? 뽑힌 이들이 적잖이 고생했겠소.”
“용천회가 사라지고 난 뒤로 의욕이 넘치더군요.”
중원 전체에 파발(擺撥)을 띄우며 무림맹이 공개적으로 무사를 모집한 것은 용천회가 사라지면서 전력이 약해진 것을 메꾸기 위함이었다.
“이것으로 급한 불을 끄긴 했소. 용천회의 구멍이 워낙 컸으니.”
“하지만 아직 용천회가 만들어 놓은 구멍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빠진 구멍까지 메꾸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겁니다.”
용천회가 사라졌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로 하여금 지켜지던 균형이 깨지기도 했으니 다시금 새로운 균형을 맞추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했다.
무림맹 무사 모집은 그 일의 시발점과도 같았다.
구창룡은 바둑을 두며 말했다.
“더 썩기 전에 도려낸 것이 다행이지 않소.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앞으로 한 걸음 제대로 나아가면 되오.”
“맞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더라도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닿는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요.”
제갈귀호는 말을 하면서 바둑돌을 뒀다.
“이걸로 제가 한 집 반은 앞서고 있네요.”
“… 한 수 물러주시오.”
“한 번 돌을 포석하면 끝이지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매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제갈귀호가 연락책으로 쓰는 매였고 다리에는 서신이 하나 있었다.
“태허진인께서 보낸 서신이군요.”
서신에 적힌 문양.
그것은 곤륜파 장문인 태허진인의 문양이었다.
“하하하하하.”
태허진인이 보낸 서신을 본 구창룡은 웃음을 지었고 곧 그 서신을 받아든 제갈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 허, 이놈은 아주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 재주가 있는 녀석입니다.”
“살아있다는 건 서신을 통해 알았지만, 강호에 다시 나타나자마자 이러한 일을 하다니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소.”
“제 손녀의 배필로 딱이지요?”
“그러면 어서 다리를 놓아야 할 거요. 백의검룡을 노리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테니 말이오.”
구창룡은 바둑돌이 수놓아진 바둑판을 보며 말했다.
“이것으로 흑사회가 노리던 혈심경이 사라졌으니 강호의 흐름은 무림맹을 중심으로 흐를 거요.”
“좋은 흐름이긴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이 일로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제갈귀호는 바둑판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으나 곧 구창룡이 하는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정말 수는 안 물러주실 거요?”
*
광천혈마의 비급인 혈심경을 둘러싼 전쟁이 정파의 승리로 끝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흑사회의 본산에도 소식이 전해졌고 그들은 혈심경 회수 실패보다 더 참담한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천뇌의 죽음.’
그것을 들은 흑사회주 철패흉은 용천회주와 같이 술을 마시다가 술병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술병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사실이더냐?”
흑사회를 만들고 모든 것을 결정해온 천뇌가 죽었다니, 그것은 철패흉의 입장에서 쉬이 믿기 힘든 일이었다.
철패흉이 멍하니 깨진 술병 조각을 보는 그때, 흑매는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말했다.
“제가 직접 천뇌님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 천뇌가 죽었다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단 말이다! 분명히 어디선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을 터! 거짓을 고하지 말고 사실을 고하라!”
“회주님···. 이것을.”
흑매는 품에서 천뇌가 죽으면서 건네준 패를 꺼냈다.
피가 묻어있는 패는 천뇌의 것이 분명했다.
패를 받은 철패흉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같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삼십 년 전에 처음 만나 흑사회의 처음을 같이 한 사람이었다.
“꼭 천하를 손에 넣고자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
“누구냐! 누가 감히 천뇌를 죽였다는 거냐!”
“백의검룡이···. 죽였습니다.”
송삼현의 이름을 듣고 철패흉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용천회주도 적잖이 놀란 눈빛이었다.
“떠나기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정말이었다니.”
천뇌가 운남으로 떠나기 전날 밤, 철패흉을 찾아왔었다.
송삼현이 살아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는데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천뇌가 당할 동안 너희들은 무엇을 했느냐! 백의검룡이 천뇌를 죽이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느냐!”
천뇌를 지킬 이들은 많았다. 철패흉은 당장이라도 모두를 죽일 기세를 분출했으나 흑매는 물러서지 않고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백의검룡이 이기어검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 화경을 넘어 현경에 이르렀단 말이냐? 그 녀석이? 이리도 이른 시간에!”
“청매가 목숨을 걸어 천뇌께서 도망가도록 막았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허공에서 자유롭게 변화하는 검을 막을 방도는 없었습니다.”
화경이 아닌 현경에 이른 자들의 경지.
그곳에 도달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 거였다.
최악은 흑사회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장 부 군사를 데려오라!”
“존명!”
어서 대책을 논의해야 했다.
천뇌가 없는 지금, 흑사회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잠시후.
드르르륵.
“부르셨습니까. 회주님.”
천뇌의 뒤를 이어 새롭게 흑사회를 이끌 부 군사, 한충건이 나타났다.
*
며칠 후, 영살 협곡에서 정파와 사파 사이에 전투가 일어난 일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자네 그거 아는가? 며칠 전에 영살 협곡에서 정파와 사파가 격돌했다더군. 아직도 피 비린내가 진동하고 죽은 원귀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
“영살 협곡에서? 그곳에 광천혈마의 무덤이 있다는 소문이 정말이었나?”
“그렇다니까, 혈심경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했다고 숭산파의 도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누가 이겼는가?”
“정파가 사파를 압도해 혈심경을 차지했다더군.”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사파 놈들에게 밀릴 정파가 아니지!”
“그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어.”
“그게 뭔가?”
“반년 전에 죽었다던 백의검룡이 다시 나타났어.”
그들의 입에선 송삼현이 살아있다는 말이 나왔다.
불과 반년 전에 죽었다고 한 고수.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뜨거운 주제였다.
“그게 정말인가?”
백의검룡 송삼현.
그가 죽었을 때, 중원은 충격에 휩싸였었다.
‘장차 무림을 이끌어 갈 협객의 죽음’
장차 무림을 이끌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그의 죽음에 일반 양민들도 슬픔에 빠졌었다.
그런 그가 살아있다니.
남성의 입가에는 깊은 호선이 그려졌다.
“정파 무사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확실해.”
“흑사회의 함정에 당했다고 들었는데 살아있다니.”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백의검룡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했어. 사파의 고수들을 혼자서 다 상대했다고 하더군.”
소문은 무릇 과장되어 퍼지는 것이지만, 송삼현의 소문은 아무리 살을 붙인다고 해도 과장되는 것이 없었다.
“자세히 말해보게! 백의검룡께서 어떻게 사파를 처리했는가?”
“글쎄 백의검룡의 손짓 한 번에 검들이 허공에 새처럼 뜬다고 하던데?”
*
영살 협곡에 있는 암영살귀의 거처.
사람들의 출입이 없는 그곳에서 사흘을 보낸 뒤에 송삼현은 해가 뜨는 걸 보며 운기조식을 하고 허공을 바라봤다.
“누님의 서신인가.”
삐이이익.
매 한 마리가 상공에 원을 그리며 날다가 울면서 하강했고 곧 팔에 앉았다.
금빛으로 된 매, 그 매는 송삼현이 송연화와 서신을 주고받는 금호장의 연락 매였다.
스윽.
매 다리에 있는 서신을 봤다. 그 서신을 보는 송삼현의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졌다.
“슬슬 가봐야겠군.”
서신을 받고 난 뒤에 곧장 떠날 채비를 했다.
선무정은 오두막에서 무언가를 한 아름 품에 안고 나오더니 만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주군! 이것 보십시오. 암영살귀 어르신이 만들어 준 겁니다.”
짧은 시일에 선무정은 암영살귀와 매일 붙어다니며 부쩍 친해졌다.
나이 차이는 30살이 났으나 경공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어 두 사람은 서로의 무학을 논하곤 했다.
선무정이 가져온 것은 평범한 만두였다.
“… 만두?”
“그냥 만두가 아닙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매콤한 향초까지 들어간 영살 협곡의 특제 만두라고요!”
“…. 그래, 많이 먹거라.”
항상 음식에 진심인 선무정의 말을 들어주고 있자 암영살귀가 송삼현에게 다가왔다.
“떠날 채비는 다 하셨소?”
“그렇소.”
짐을 챙기는 것을 보던 암영살귀는 송삼현에게 말했다.
“저에게 바라는 것이 있소?”
“바라는 거요? 딱히 없소만.”
태연하게 짐을 챙기는 송삼현을 암영살귀는 물끄러미 보더니 하고자 하는 말을 꺼냈다.
“…. 누군가를 모시기에는 이미 몸이 많이 늙어서 힘듭니다.”
육십이 넘은 몸.
누군가를 따르기에는 지치고 늙었다.
그래서 암영살귀는 송삼현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혹여 그러한 말에 송삼현이 실망했을까봐 슬쩍 눈치를 보는데 송삼현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소. 이곳에서 편안히 지내시오.”
그 말을 들은 암영살귀는 더욱 확신을 가졌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동안 봐온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도움이 필요하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 서신을 보내주시오. 내가 죽어서 염라대왕을 뵙고 있다 하더라도 염라대왕의 목을 베고 다시 돌아와 귀하를 돕겠소.”
암영살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예가 과하시오.”
“은인에게 하는 예는 과해도 되지 않겠소?”
“하하하하, 황제까지 죽일 수 있다는 암살자인 당신이 나를 그리 봐주니 고맙소.”
“또 보는 날이 있길 바라겠소.”
“그대는 계속 여기서 지낼 거요?”
“그래야 하지 않겠소. 중원에 나가면 나를 노리는 이들이 수두룩하니.”
아직 황궁에서는 암영살귀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마을에 가면 알아보는 이가 있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오지 않는 영살 협곡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스윽.
그런 그에게 송삼현이 품에서 전낭을 꺼내 건네줬다.
“이게···.”
“은원보 두 개가 들어있소, 그 정도면 밥을 굶지 않을 터이니 가지시오.”
혼자서 지내는 거니 이런 돈이면 평생 먹고살고도 남을 돈이었다.
“감사하오.”
“그러면 가보겠소.”
“그 전에 나도 줄 것이 있소.”
“줄 것?”
암영살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줬다.
그것을 받아서 확인하는데 웬 비녀였다.
화려한 비녀가 아닌 낡은 은비녀였다.
“비녀?”
“내가 오래전에 참월신귀의 무덤에서 빼 온 거요.”
참월신귀(斬月迅鬼).
달을 베는 빠른 귀신이라는 자는 백 년 전에 세상을 훔쳤다는 대도였다.
그런 자의 무덤에서 가져온 비녀라니.
“그곳에 적힌 기록으로는 천 년 전, 진시황제의 왕비가 차고 있던 비녀라 하더군.”
“이게 세상에 공개되면 황궁에 쫓기는 거 아니요?”
“그럴 리는 없을 거요. 천 년 전에 존재했던 비녀에 누가 관심을 두겠소?”
“고맙소. 귀한 선물을 받았소.”
암영살귀는 멀어지는 송삼현의 뒷모습을 보며 포권지례를 올렸다.
영살 협곡에서 나오자 펼쳐진 울창한 숲, 경공을 펼치며 가려다가 출발하기 전에 선무정이 물었다.
“주군 어디로 가십니까?”
“남궁세가.”
“예? 남궁세가요? 남궁세가가 있는 합비까지 가려면 적어도 여기서 한 달 이상은 걸립니다.”
“내달 보름에 누님이 혼례를 한다는구나, 동생으로서 안 가는 건 도리가 아니지.”
얼마 전에 매가 가져온 서신에는 송연화의 혼례가 곧 열린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아, 그러면 가야지요. 혼례 선물도 두둑하게 들고요!”
“그래서 말인데 뭐가 좋을까?”
“조금 전에 암영살귀에게 받은 비녀는요?”
“찝찝해서 못 주겠구나, 다른 것을 준비해야지.”
“누님께서는 무엇을 좋아하시는데요?”
“그것을 정확하게 모르겠다. 가면서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호화회에서 만나서 송연화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나는 너의 배필이 될 사람이 보고 싶구나.’
그 말은 그냥 흘려보낸 채, 땅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가자, 남궁세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