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38)
이어지는 길
“좋아.”
아인이 대답하자 마리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리아는 곧이어 손을 하늘로 뻗었다.
파지직- 전격과 함께 그녀의 손에 투명한 재질의 검이 생겨났다.
“보고 계세요.”
마리아는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파칙- 파칙- 번개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간다.
지켜보던 현은 전류량이 증가할수록 검이 무거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투명한 검신이 번개로 완전히 뒤덮이는 순간.
콰아아아-!
마리아의 검이 횡으로 번쩍였다.
그와 함께, 벼락이 공간을 휘저었다.
검에 모여 있던 전류가 일시에 방전되며 바닥에 커다란 탄 자국을 만들어냈다.
[천인의 검술을 목격했습니다!] [검에 대한 이해도가 모자라 보는 것만으로는 해당 스킬을 익힐 수 없습니다!] [칭호, ‘천인’을 보유하고 있어 초기 진행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진행도 : 50%]‘이건….’
마리아의 검을 목격한 현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위력에 놀라서가 아니다.
해당 스킬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보셨나요?”
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재차 물었다.
“얼마나 이해했나요?”
“절반 정도.”
“잘 하셨네요. 그대가 천인이라면 이 검술의 기초를 익히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겠지요. 끝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말을 마친 마리아가 다시 손을 휘젓자 투명한 검은 허공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이 검술을 끝까지 익히지 못했어요. 천인인 제가 끝을 볼 수 없겠죠. 이것은… 초월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가능성이 무한한, 유저라면… 언젠가는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마리아는 아인의 등 뒤로부터 손을 잡았다.
팟- 투명한 검이 아인에게 쥐어졌다.
천인인 그녀가 손수 유저에게 스킬을 전수해 준다는 것이었다.
“번개란, 정적 속에 파괴력을 감추고 있답니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움직이면 더욱 무서운 법이지요.”
[천인의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진행도가 더욱 빠르게 상승합니다!]갑자기 눈앞에 허수아비가 솟아났다.
마리아의 손짓에 따라 아인은 허수아비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연속으로 세 번을 베었지만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번개는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닿는 순간 힘이 빠져나가 버려요. 여러 번 베는 것이 아니라, 딱 한 번만 베도록 합시다.”
[천인의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진행도가 더욱 빠르게 상승합니다!]「현, 이거… 그거 아니야?」
마리아가 개인지도를 해주는 동안 아인이 귓속말로 현에게 말했다.
「이거 현이 쓰던 스킬이지?」
「맞아….」
「잘됐네. 맨날 검을 쓰고 싶어 했잖아.」
「그렇긴 한데… 서포터로 이걸 어디까지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
“번개의 힘을 공기에 가두세요. 모아서 한 번에 폭발시키는 것이 이 검술의 핵심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퀘스트 진행도는 꾸준히 증가했다.
현과 아인이 동화하고 있어서 동시에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비중 없는 NPC인줄 알았는데.’
아스라 온라인을 8년간 해온 현이지만 마리아에 대해선 이름만 알 뿐, 그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진 않았다.
인터루프에 그녀의 정보가 존재할 지도 모르지만 찾아볼 생각도 안했던 탓이었다.
과거에는 이토록 서둘러 일루나에 올 필요도 없었고, 마리아와 관계된 퀘스트의 존재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그녀가 검술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마리아의 지도는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시간이 모두 지나고 진행도가 100%를 채웠을 때, 둘의 스킬 창에는 하나의 목록이 추가되어 있었다.
[천사의 기초 검술 Lv.0]-8초간 아무 공격도 하지 않을 시, 다음 공격은 130%의 피해를 입힙니다.
[※해당 스킬의 레벨은 포인트가 아닌 숙련도를 통해 증가합니다!]아인의 몸에서 빛이 솟아오른 순간 마리아는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알려드릴게요.”
마리아의 지도방식은 다양했다.
가끔은 대련을 하기도 했고, 검을 휘두르는 방식을 지적하기도 했다.
천인의 가르침에 힘입어 현과 아인의 스킬 숙련도는 쭉쭉 차올랐다.
피로도가 한계에 도달한 아인은 중간에 한 번 휴식상태로 변경하기도 했지만, 이런 노가다에 익숙한 현은 쉬지 않고 마리아에게 검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정성어린 가르침에 감명 받은 현은, 이후 마리아가 무엇을 부탁하든 최선을 다해 들어주리라 결심했다.
***
현과 아인이 마리아에게 스킬을 배우던 당시.
아스라에 속한 천공 세력의 국가들에 불온한 긴장이 맴돌고 있었다.
그 모든 원인은 일루나!
성왕국의 왕복선이 추락하기 전부터도, 천공에 속한 모든 국가들은 일루나의 이변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성왕국은 이번 사태를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어찌 이런 일이….”
성왕국의 대주교는 밤하늘에 윤곽을 드러낸 일루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떨었다.
일루나는 지상보다 공감이 쉽게 공명하는 장소.
특히 중앙 마법진은 성왕국의 성지와 같았다.
그곳에서의 기도는 초월자에게 쉽게 닿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으론 천공의 중립 지역이지만, 실제로 일루나는 성왕국의 관리 하에 놓여 있다.
신성 마법이 주력인 성왕국으로써 일루나를 뺏긴다는 것은 나라의 수도를 잃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날이 반복되려는 것인가…!”
수천 년 전, 심연은 하늘을 침공했었다.
과거에도 수많은 희생으로 일루나를 간신히 지켜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 그 날이 반복된다면 천공은 어찌 된다는 말인가?
일루나의 이변은 성왕국 뿐만 아니라 모든 천공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이슈였다.
NPC들이 하루 종일 일루나의 일에 대해 떠들었으니 유저의 귀에도 곧 그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NPC들 사이의 소문은 게임 전문 소식 사이트들을 통해 여러 커뮤니티에 알려졌다.
각종 퀘스트를 선점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정보를 물색하는 유저들이 이 소식을 놓칠 리 없었다.
「일루나가 어딘데? 위성이라고?」
「신관 계열이 성장하기 좋은 장소라네요. 메인 글에 찾아보면 더 자세히 나와요.」
「어차피 저기 못 가는 거 같은데? 우리랑은 상관없는 얘기인 듯.」
행성 바깥의 위성.
게임 속에서 그런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유저도 제법 많았다.
처음엔 호기심이 동하던 유저들도 일루나에 쉽게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심을 접어가던 시점, 아스리안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가 발생했다.
전직을 마친 천공 유저들에게 동일한 퀘스트가 일제히 떠올랐던 것이다.
-성왕이 ‘유저’에게 고한다. 지금 일루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다!
-일루나는 단순히 하나의 위성이 아니라 신력이 모여드는 신성한 땅! 그것을 심연의 무리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다!
-반수 이상. 아니, 대부분은 일루나에 뼈를 묻을 것이다. 허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대들이라면 부탁을 해도 되겠는가?
-오늘 자정 근처, 성왕국은 일루나로 통하는 ‘워프 포탈’을 생성할 것이다. 함께 싸운 자들의 이름은 천공의 대신전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니.
[※100레벨 이상의 전직 유저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개인 공적치에 따른 차등 분배 –
일루나 퀘스트.
성왕국에서 발생한 퀘스트는 순식간에 유저들 사이에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레벨 제한이 상당히 높게 측정되어 있음에도 저레벨 유저들의 원성이 적었던 것은 퀘스트 보상이 생각보다 대단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커뮤니티에 올린 계산에 따르면 상위 25퍼센트 안쪽에는 들어야 퀘스트 참가에 대한 기회비용을 넘어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거 함정 퀘스트 아닌가?」
「보상이 너무 짠데… 뭐, 어차피 난 참가 자격도 없으니까 상관없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전직을 마친 천공 유저는 고작 15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즉, 자격을 갖춘 유저 절반은 랭커였다.
사람들은 랭커들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 퀘스트를 불참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방송 소재 나왔다!’
‘상위 10퍼센트는 충분하지. 마법사 계열 직업은 전쟁에서 특히 활약할 테니까, 내 전장이나 마찬가지잖아!’
‘대신전에 이름이 남는다면 명성을 올릴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일반 유저들은 눈에 보이는 보상에만 눈이 팔렸지만 랭커들은 퀘스트를 여러 방면으로 바라보았고, 퀘스트에 참가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결정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각종 게임 방송 관련자들은 퀘스트에 참가하는 랭커들을 섭외하기 위한 러브콜을 보냈다.
한국 최고 게임 채널인 ‘더 게임즈’도 허겁지겁 중계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몇몇 방송사에선 일루나 특집이 정규 방송을 밀어낼 정도였다.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
시간이 지날수록 일루나에 대한 화제는 커져가기만 했다.
「정보! 라티스도 지금 일루나에 있다고 합니다!」
「뭐? 라티스는 심연 유저라며?」
「확실히 일루나에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요!」
어느 순간부터 전 세계 아스리안 커뮤니티는 일루나에 관련된 글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예전에 잠깐 떠들썩했던 백작 퀘스트나 공작의 대회보다도 더욱 거대한 스케일의 이벤트!
사냥이나 퀘스트에 질린 유저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그렇게 소란이 커지던 순간, 화룡점정을 찍는 사건이 일어났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동영상 하나가 수많은 커뮤니티를 뒤흔든 것이었다.
짧은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한 것은 바로 타르타르!
타르타르는 현이 나중에 편집하라고 건네 준 녹화 본을 서둘러 편집해 올렸다.
또한, TarrTar채널이 아닌 AIN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채널을 이용했다.
업로드 시기를 앞당긴 것도, 채널을 새로 판 것도 전부 타르타르의 감이 더해진 판단이었다.
동영상은 일루나의 창공으로부터 낙하하는 아인의 모습을 서서히 줌 아웃으로 담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심연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 엄청난 연출과 놀라운 컨트롤에 동영상을 클릭한 유저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인의 동영상은 일루나의 화제를 타고 세계 각국의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와, 얘도 유트브 시작했네. 무조건 떼돈 벌 듯 ㅋㅋ」
「아인도, 라티스도 일루나에 있다고? 다들 대체 어떻게 저길 간 거냐?」
아인과 심연 무리들의 전투장면은 일루나라는 화제를 제외해도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했다.
적들의 스킬이나 전략은 여태껏 유저들이 경험하지 못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화려한 근접 전투를 펼치는 아인의 컨트롤 또한 여전했다.
많은 이들은 스킬 이펙트를 통해 아인의 스펙을 추측해 보았다.
「무슨 스킬이지? 저것도 암흑사제의 스킬 중 하나인가요?」
「적들 레벨이 몇인지를 모르겠네.」
타르타르가 교묘하게 인터페이스를 가려둔 탓에 여러 수치가 표기되지 않았다.
유저들은 과거 아인의 데이터를 통해 적들의 레벨 및 데미지를 추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 레벨은 100에서 150사이일 것 같아요. 아인의 화염 데미지는 1만 정도로 추정되고요.」
「100레벨 근처에 1만이 가능한 수치인가? 무슨 궁극기도 아니고요.」
「뭐야, 저거 암흑사제 스킬이 아닌 거 같은데?」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가끔씩 알 수 없는 스킬 이펙트를 의심했다.
그래도 정확히 말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예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아인의 동영상은 보는 것만으로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홀린 듯이 화면만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현장감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동영상으로부터 모두가 느낀 감정은 동일했다.
‘아인이 원래 이 정도였나…?’
그녀가 결투로 이름을 알린 사실은 이미 유명했다.
그래도 라티스에 비하면 한 끗발 떨어진다는 것이 기존의 유저들의 평가였다.
결투와 실전은 다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실전을 목격하고 난 뒤에 많은 이들의 판단이 흔들리고 있었다.
‘맞붙는다면 누가 우세할지 진짜로 몰라!’
커뮤니티의 정보통에 재밌는 사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둘이 현재 일루나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아인은 천공, 라티스는 심연의 세력이었다.
모두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잘하면 둘이 한 판 붙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물론 둘이 만나게 될 때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결투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게 만들었다.
유저들은 한껏 기대를 부풀리며 자정에 근처에 시작될 아스리안 관련 방송들을 기다렸다.
자신들이 상상했던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면서.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하여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오랜 시간 끝에, 현은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끝났다….’
아인이 꼴사납게 드러누운 꼴이 되고 말았지만, 그녀도 힘들었던 탓에 딱히 현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방금 레벨 업은 정말로 오래 걸렸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점점 많은 숙련도가 필요했고, 마지막에는 무려 5시간이나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천인인 마리아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8초간 아무 공격도 하지 않을 시, 다음 공격은 210%의 피해를 입힙니다.
[※해당 스킬 레벨은 포인트가 아닌 숙련도를 통해 증가합니다!]아인은 자주 휴식상태로 돌려두느라 현처럼 끈질기게 배우진 못했다.
그 결과 현과 아인은 각각 스킬 5레벨, 4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아인의 스킬 레벨이 낮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도중에 너무 오래 휴식상태의 갱신을 깜빡해 로그아웃 될 뻔도 했으니.
만약 동화가 풀리고, 심연인 현이 천인 앞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정말로 큰일이었을 것이다.
‘같은 스킬이라 그런지 중복은 안 되는군.’
현은 새로 얻은 스킬을 분석해 보았다.
상태 창에 아인의 스킬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동화 중에는 레벨이 높은 쪽의 스킬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듯했다.
‘하긴, 중복되면 사기겠지.’
8초마다 발동하는 단 한 번의 데미지 증폭.
얼핏 별거 아닌 효과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직 스킬레벨이 낮기 때문이었다.
현은 전작의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훗날 이 스킬이 진화했을 때의 위력이 얼마나 될지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효과도 나쁘지 않으니 현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좋은 소식이다.”
아인과 마리아가 방에서 나왔을 때 라디에트의 얼굴은 조금 밝아져 있었다.
“성왕국이 일루나로 통하는 워프 포탈을 연다는 모양이야.”
‘워프라고?’
“워프 포탈이라고요? 하지만….”
현은 의문을, 마리아는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워프 포탈의 가장 큰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몇 명이나 넘어올까요…?”
워프 포탈의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또한 성왕국도 연속으로 두 번 워프 포탈을 열 능력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천공이 패배한다면 일루나로 넘어온 모든 이들의 운명은 죽음으로 정해지는 것과 같았다.
제국이나 마도국이 자신의 병사들을 사지로 향하게 할까?
설령 그들이 지원을 보낸다 해도 기사단이나 마법병단 등의 핵심 인력의 투입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이에, 라디에트의 설명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성왕이 머리를 쓴 모양이야. 유저를 일루나로 끌어들였다. 그들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지.”
“아….”
「현, 성왕의 퀘스트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걸까?」
갑자기 아인이 자신의 퀘스트 창을 현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지금 커뮤니티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는 일루나 퀘스트였다.
「뭐야, 이런 건 언제 받았어?」
「검술 배우던 때에.」
「공유 안 되냐?」
「후후, 갖고 싶어? 안타깝지만 현은 심연이라서 안 되겠네.」
아인의 퀘스트 창엔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심연인 이유로 자신만 퀘스트를 받지 못한 것에 조금 씁쓸해진 현이 괜히 입맛을 다셨다.
아인은 그런 현의 기분을 눈치 채고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현… 퀘스트 못 받아서 그래?」
「응? 아니…?」
「퀘스트 보상 대부분이 골드랑 아이템이야. 그렇다면 나눠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그… 렇게 해 주겠다고?」
현이 놀라서 되물었다.
아인은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계속 한 몸이었잖아. 그리고… 현도 동영상 수익을 반으로 나눴잖아?」
생각지도 못한 기특한 말을 꺼내는 아인을 보며 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히죽 웃음을 흘렸다.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가?’
자신이 없었다면 아인은 일루나에 올 생각조차 못하고 결투 삼매경에만 빠져있었을 것이다.
공적치의 비율에 따라 보상이 분배되는 만큼 자신에게도 보상을 주장할 권리는 있다고 봐야 했다.
물론 그것은 현의 자기합리화이긴 했지만 말이다.
라디에트의 목소리가 들떠 있던 현을 진정시켰다.
“신탁대로라면 천인과 신녀가 중앙 마법진에서 동시에 기도를 올려야만 한다.”
신탁대로.
라디에트 아인을 빤히 바라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입술을 깨문 것으로 현은 간신히 말을 꺼낸 라디에트의 심정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맡겨도 되겠나.”
“내가?”
“그래. 그대밖에 없었다.”
현은 문득 옆의 마리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마리아가 말했던 부탁도 바로 이것이라고.
솔직히 말해 현이 부탁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도중에 약속을 어기는 것도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에 보상을 준 마리아의 잘못일 것이다.
“할 게.”
현은 거절하지 않았다.
어느새 마리아라는 NPC를 현실의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바칠 듯 애절한 부탁을 거절할 정도 현은 매정할 수가 없었다.
***
중앙 마법진으로 향하는 인원은 총 넷이었다.
우선 아인(현)과 루이즈.
거기에 두 명의 신관이 함께했다.
신관들의 역할은 신녀의 기도 의식을 돕는 일이었다.
“잘… 부탁한다.”
다시 만난 루이즈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인도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아인과 루이즈가 공식적으로는 만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일 것이다.
“죽기 전에 이런 역사적 순간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오.”
“저도, 영광이에요!”
이어서 두 신관이 가볍게 인사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명, 그리고 제자인 여자 신관.
노인은 권위 있는 대신관 중 한 명이고, 제자는 20대 초반임에도 불세출의 재능을 지녔다는 듯하다.
천공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자들로 천인과 신녀를 보좌할 후보가 뽑혔다.
일행이 막 준비를 마치던 순간, 라디에트가 마지막으로 말을 걸었다.
“아인.”
그의 목소리에 현과 아인은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났을 때 이름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라디에트는 그동안 끈질길 정도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었다.
즉, 이름으로 아인을 부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고맙다.”
“….”
“덕분에 조금 정리되었어.”
라디에트는 이어서 아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키가 너무 작아.”
‘…?’
“나이도 그렇고… 조금 닮긴 했지만 그 뿐이다.”
라디에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유저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죽진 마라.”
그렇게 라디에트의 인사도 마무리되자 네 명의 일행은 곧바로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바로 옆에는 일행이 사용할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맨 앞에는 평범한 말 대신 용마라 불리는 신수가 그르렁거렸다.
마차도 제법 좋은 물건을 가져왔는지 네 명이 타도 충분한 공간이 남을 만큼 널찍했다.
두 신관이 맨 앞에, 루이즈가 가운데, 아인이 가장 뒤에 자리 잡았다.
“나는 이곳에 남겠지만, 조금은 도와주지.”
라디에트가 마차를 향해 손을 뻗자 얼굴을 때리던 바람이 멎었다.
그와 함께 고요해지는 마차 안.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마차를 둘러싸며 바깥의 모든 것을 차단했던 것이다.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것이야.”
“그럼, 출발합니다!”
여자 신관이 선두에서 마차를 몰기 시작하자 일행이 탄 마차는 점점 가속되더니.
콰아아아-!
잠깐 만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풍경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한 번도 스포츠카를 타 본적 없는 현이었지만, 그걸 탄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원에 쌓인 눈이 마차의 바퀴로부터 솟구쳐 올랐다.
빠르게 달리는 데도 마차의 흔들거림이 없는 까닭은 마차에 부여된 마법의 힘 때문인 듯 했다.
마차는 중앙 마법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신탁의 내용은 천인과 신녀가 중앙 마법진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
하지만 이동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행은 머지않아 소규모로 뭉쳐있는 심연의 무리를 마주치게 되었다.
“다들 꽉 잡으세요!”
콰앙-!
마차가 적들을 들이받자 충돌한 녀석들은 하늘로 튕겨나갔다.
마차를 둘러싼 라디에트의 방어막이 제법 효과가 있는지 쓰러진 적들 몇몇은 감전된 듯 부들거렸다.
방어막은 적들의 원거리 공격들까지 모조리 튕겨냈다.
그 사이, 용마는 조금도 발을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
도시로부터, 마법진까지 일직선으로. 그야말로 쾌속질주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현… 저길 봐라.”
한참 달리던 도중 루이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루이즈는 손가락은 지나온 뒤쪽의 지평선을 가리켰다.
지평선을 바라보는 루이즈의 얼굴은 어느새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태양이 비춰오고 있다…! 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루이즈의 다급한 목소리에 마차를 모는 신관을 제외하고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그 말대로, 지나온 땅의 색깔이 먼 곳부터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태양빛이 떨어지는 것이다.
일루나의 궤도가 비틀리고, 개기 일식이 부분 일식으로 바뀐 탓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햇살이 일루나의 창공에 몸을 드러내자 대지는 빛과 어둠으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흑백의 경계는 마차를 바짝 추격하듯 다가붙고 있었다.
늙은 대신관이 탄식을 내뱉었다.
“맙소사, 일루나에 태양이 저리 선명히 비추다니…!”
마차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일루나의 자전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이다.
내려쬐는 빛은 질주하는 마차를 점점 추격해왔다.
빛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자 루이즈는 사색이 되었다.
현이 재빨리 아인의 목소리를 빌려 소리쳤다.
“근처에서 햇빛을 피할 곳 없어?”
“햇빛에 닿지만 않으면 되는 거예요?!”
“그래!”
여신관은 재빨리 마차의 방향을 틀었다.
절벽의 틈새로 이동경로를 바꿨고, 몇 초 뒤.
화아악-! 태양빛이 일루나를 내려쬐었다.
수천 년 만에 일루나의 눈 덮인 평원은 햇살을 맞이했다.
일행은 근처 절벽의 그늘에 가려졌다.
마차는 햇빛의 사각에서 속도를 약간 늦췄다.
“언제까지 태양이 떠있는 거지…?”
현의 혼잣말에 마차를 몰던 여신관이 답했다.
신전에서도 총명하기로 유명한 그녀는 신학 외의 몇몇 학문에도 능통했다.
“3분 뒤에 일식 구역으로 진입해요!”
“빠듯하네….”
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멈출게요!”
여신관이 고삐를 당겨 마차를 제자리에 정지시켰다.
절벽의 그림자 구간이 끝나버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긴장한 루이즈는 그림자에 숨은 채 숨을 내쉬었다.
일행은 어느 때보다도 밝아진 일루나의 평원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빛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평소처럼 초저녁의 날씨로 돌아오기까진 여신관의 말대로 3분이 걸렸다.
“이럇!”
마차는 재차 속도를 높였다.
우우웅- 대신관의 마법이 발동되자 용마의 달음박질이 더 빨라졌다.
현은 자신도 생체리듬 가속을 사용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칫 용마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태양이 없어도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일루나 곳곳에서 마주치는 심연의 인간, 혹은 마물들이 마차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파칭-!
결국 라디에트가 걸어준 보호막도 깨졌다.
“조심해라, 현!”
“괜찮아.”
화륵-!
아인이 이프리트의 발톱을 휘저었다.
불꽃은 마차로 쇄도하던 화살 비를 전부 걷어냈다.
동시에, 반대쪽의 발톱도 휘둘렀다.
기습을 노려오던 적 두 명이 그 궤도에 걸렸고,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떨쳐낸 적들과 거리가 멀어지는 와중, 아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현의 영혼을 울렸다.
「현, 나 계속 봐 줘야 돼?!」
「버텨 봐, 타이밍 맞춰서 걸어줄 테니까…!」
곧이어 마물들이 일제히 들이닥친 순간.
우우웅.
아인의 전신에 생체리듬 가속의 이펙트가 번쩍였다.
찰나, 아인의 양손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잔상을 그렸다.
일루나의 눈보라를 휘젓는 불꽃의 발톱!
흉포한 난격이 수십의 마물들을 일거에 찢고 불태웠다.
마물들은 전부 아인의 발톱에 나가떨어진 뒤에야 루이즈의 안색이 조금 괜찮아졌다.
“아직 도착은 멀었어?!”
“다 왔어요!”
일행은 중앙 도시 근처에서 마차를 버렸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여신관이 용마를 채찍질하자 빈 마차는 평원으로 달려갔다.
빈 마차는 적들의 시선을 끌어 줄 것이다.
그 틈에 일행은 도시의 외곽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폐허가 된 중앙도시를 바라보는 대신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부 엉망이 됐어….”
중앙 마법진이 위치한 이곳은 일루나에서 가장 큰 도시로써 수십만의 인구가 살아가던 장소였다.
수많은 사람들로 활기찼던 이곳이 지금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도시 안에도 적들이 남아 있어요!”
제자 신관은 멀리서 어슬렁거리는 적을 발견하는 즉시 전투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현이 곧바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전면전은 안 돼.”
현은 라디에트가 계획했던 작전의 내용을 꼼꼼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정 전까지 중앙 마법진에 도착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여기서부턴 숨어서 이동하자.”
“천인님, 뭔가 방법이 있나요?”
“만들어 봐야지….”
우우웅.
현은 파장 계열 버프를 다시 한 번 초기화시켰다.
콰앙-!
아인은 잠력 폭발 하나를 터뜨렸다.
중앙 마법진으로 향하는 길도 쉽지만은 않았다.
도시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도마뱀 마물 하나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현은 그것의 형태와 색깔을 통해 단번에 레벨을 파악했다.
「내가 움직일게.」
투명화, 가속.
두 스킬을 발동하는 동시에 돌진하듯 나아갔다.
[치명타! 9824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22948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4629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첫 치명타 피해량이 특별이 높았던 이유는 새롭게 익힌 스킬 덕분이었다.
5레벨의 천사의 기초 검술은 첫 공격의 데미지를 약 두 배 가량 강화시킨다.
그렇게 도마뱀 마물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어둠으로 흩어졌다.
“가자.”
아인의 잠력 폭발이 4중첩에 이른 이후부터는 투명화도 필요가 없었다.
핏빛의 오라를 두른 야수의 발톱이 그대로 마물의 목에 작렬했다.
[치명타! 151837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최대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가했습니다!]그것으로 경비 마물의 머리와 몸통이 단번에 분리되었다.
정적과 역동이 조화를 이루는 천사의 검술은 난전보다는 암습이나 기습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혼자 떨어진 마물을 암살하는 것은 아인 혼자서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프리트의 발톱이 마물을 수도 없이 정화시켰다.
아니, 천사의 발톱이라고 해야 할까?
도중에 만나는 적들은 목이 날아가고, 몸이 찢기고, 심장이 녹아내렸다.
“여기에요!”
최소한의 전투를 반복한 뒤, 일행은 중앙 마법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법진의 구조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다.
혼자 왔다면 자칫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중앙 마법진은 거대한 미로가 그 자체로 하나의 마법진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캬아! 캬아아아!”
멀리서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현과 일행들이 이곳에 들어온 흔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대신관의 마법이 마법진의 한 구석에 빛의 장막을 만들어 냈다.
그곳에 몸을 숨긴 채, 일행은 서둘러 천사 강림의 의식을 시작했다.
“루이즈, 준비 됐어?.”
“기도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 현은 루이즈의 상태 창에 ‘기도’란 스킬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스킬 대신 루이즈는 품에서 긴 문구가 적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너무 긴 기도문을 다 외우진 못한 듯했다.
“저희는 언제든 가능해요!”
두 신관은 루이즈의 양쪽에 서서 정체모를 마법을 발동했다.
화아아아- 두 신관의 지팡이가 허공의 한 곳을 가리키자 빛의 구체가 생겨났고.
파바바밧-.
구체로부터 쏘아진 빛줄기들은 신녀, 루이즈의 몸으로 이어졌다.
수천 년 전 천사를 소환하던 때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술식.
과거에도 이곳, 중앙 마법진에서 강림의 의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초월자들의 세계에 더 가깝다는 일루나에서도 더욱 초월자에 공감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신녀의 기도는 자정이 지나가는 순간 시작되었다.
‘나도 옆에서 같이 기도하면 되겠지?’
현은 신탁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한 명의 천인과, 아마도 기억을 잃은 한 천사.
신탁은 둘이 동시에 기도를 하라고 말했으니 그것은 필연 자신과 루이즈를 뜻하는 것이었다.
기도를 위해선 의식을 낮춰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인과 동화한 탓에 눈을 감을 수는 없는 상황.
의식을 희미하게 만들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편이 좋았다.
현이 게임 설정을 조정해 시각을 차단시켰다.
「잠깐 눈 좀 감을 테니 위험하면 알려줘.」
「문제없어.」
현은 아인에게 주위의 경계를 부탁했다.
그리고 서서히 생각을 비워나갔다.
‘7레벨이었나?’
현은 자신의 기도 레벨을 상기했다.
기사의 관에서 6레벨을 찍은 이후에도 1레벨을 더 올렸다.
기도 7레벨이란 현재 유저들 중엔 아마도 최고 수치.
유용한 효과는 캐스팅 성공률을 높여주는 정도뿐이니 몇몇 초심자들만 익히는 스킬이 바로 기도였다.
정작 자신이 이토록 본격적으로 기도의 숙련도를 높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역시.’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이질적인 감정이 자신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감정.
처음 기도하던 당시에는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차분히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섞여 든 것은 아마도 루이즈의 감정일 것이다.
숙련도가 가장 빠르게 올랐던 때는 근처에 루이즈가 있거나 루이즈를 떠올릴 때였다.
기도란 것은 바로 초월자에 공감하는 행위니까.
기억을 잃었다 해도 루이즈는 한때 천사였지 않은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거겠지?’
현은 어스름의 신전에서 기도할 때는 고통과 답답함을 느꼈다.
기사의 관에선 어렴풋한 그리움이 전해져 왔다.
현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지금 루이즈의 기분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두려움보다 설렘에 가까운 떨림이었다.
마치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처럼… 적진 한가운데서 이런 느낌이 전해오는 것은 왜일까?
현은 마음이 흐르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초월자의 기운에 완전히 자신을 물들이는 것은 고위 신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 현상은 지금 현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화아아악-!
거대한 전격의 기둥이 아인과 루이즈를 감쌌다.
기도하는 둘의 전신으로부터 신성한 빛이 솟아났다.
눈이 멀 듯한 광휘의 가운데서 루이즈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 광경은 문헌에 기록된 신화 속 성녀의 모습과도 같았다.
“아아…!”
푸른 빛줄기가 일루나의 결계를 뚫고 우주로 솟았다.
눈앞에서 재현되는 역사에 늙은 대신관의 눈물이 흘렀다.
그의 제자 역시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의식을 치러본 그들도 이토록 강렬한 천공의 빛은 단연코 본 적이 없었다.
입을 벌리고만 있던 여신관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대신관님, 이것은…!”
“그래, 우리는 행운아다. 살아서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사제는 몇 안 될 것이야.”
천공의 역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빛이 세상을 가득 메울 때 하늘의 군단이 일루나의 절반을 뒤덮었다.
찬사의 일검에 심연은 빛으로 흩어졌다.
문헌의 묘사는 진실일까? 혹은 과장이나 비유가 섞인 것인가?
대신관은 곧 그 문장이 사실 그대로를 옮겨 적었을 뿐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의 기둥이 닿은 하늘에서 거대한 문이 열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빛의 인형들이 그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수백… 아니, 수천!
로열 계급 이상의 천사들만 거느릴 수 있다는 천공의 군세들이 천천히 등장하고 있었다.
소환된 인형들 대다수는 곧바로 마지막 마법진의 도시로 날아갔고, 몇몇은 일루나 곳곳으로 흩어졌다.
“잘 지켜보아라. 강림이 시작된다…!”
인형들이 일루나 전역으로 퍼져나간 뒤에도 하늘의 문은 여전히 열린 채였다.
두 신관은 숨을 삼키며 천상의 틈에 시선을 집중했다.
문헌대로라면 인형들의 뒤를 이어 천사가 강림하리라.
수백 년간, 가끔씩 신탁이 내려왔을 뿐 천사를 목격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신관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른 채 숨을 삼켰다.
‘응…?’
그렇게 천사의 강림을 기다리던 대신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강림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천공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고 있지 않은가!
잠시 후 하늘은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찬란한 기도의 광휘가 어느 샌가 꺼졌다.
그때까지도 천사는 강림하지 않았다.
대신관이 정신을 차린 것은 젊은 여신관이 경악스런 외침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대신관님! 두 분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어요!”
“뭣?!”
뒤늦게 깨달았다.
기도하던 둘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사실을!
대신관은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들의 모습은 애초에 존재하긴 했던 것인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두 신관들의 낯빛이 새하얘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도를 통해 의식을 치르던 천인과 신녀였다.
잠깐 새에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그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본 사람은 오직 한 명이었다.
‘여긴 어디야?’
아인은 적색으로 물드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난데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주위의 풍경까지 바뀐 탓에 어디선가 기도 도중 텔레포트라도 사용된 것인지 착각이 들었다.
이곳은 바로 대칭 세계였다.
아인이 당황하며 현을 불렀다.
「혀, 현…?!」
기도하느라 의식이 희미했던 탓에 현은 한참 만에 아인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인의 목소리는 불안한 듯 떨렸다.
「우리, 갑자기 알 수 없는 장소로 와버렸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본 현은 깜짝 놀랐다.
검은 태양이 내리쬐는 붉은 세계.
이전에도 와본 적이 있었던 장소였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 갑작스럽게 대칭 세계로 들어오게 된 것일까?
문득 시스템 메시지 로그를 살펴본 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시각 설정을 차단해둔 동안 메시지의 폭포가 쏟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킬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기도의 레벨이 8이 되었습니다!]‘뭐…?!’
순간 믿을 수 없었다.
기도의 레벨을 7까지 올리기 위해선 몇 주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7레벨을 찍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에 또 8레벨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심지어 8레벨을 넘어선 이후에도 기도의 숙련도는 절반 이상 채워져 있는데…!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오른 기도의 숙련도.
하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건 뭔 상황이야?!’
찰나, 어스름의 신전에서 만난 수상한 여신관의 설명이 현의 머리를 스쳐갔다.
그 때의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자신에게 기도를 가르치던 여신관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평소의 기도는 천사에게 닿지만… 대칭 세계의 기도는 악마에게 닿는다고.
‘잠깐, 악마…?’
그 사실을 깨달은 현은 곧장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에 현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눈을 감은 채 기도하는 루이즈의 전신은 어느새 광휘가 아닌 마기에 휩싸여 있었다.
루이즈의 전신을 뒤덮은 칠흑의 마기는 그녀를 당장이라도 삼킬 듯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기도를 멈춰!”
현은 다급히 소리쳤다.
대체 얼마나 의식이 깊게 가라앉은 것인지 현이 어깨를 흔들어도 루이즈는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루이즈가 정신을 차린 것은 완전히 검은 기운에 잠식되려던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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