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15
열일하는 과금 기사 214화
* * *
수많은 문명을 박살 낸 우주적인 재앙, 종말 프로젝트로 인해 34지구의 인구는 5억 명으로 줄고 말았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검기를 내뿜고 편의점 알바가 고위 마법을 사용하는 인재 풀.
3문명에 들어선 기술력.
그리고 그 어떤 천연자원보다 찬란한 최상급 신의 존재.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지.’
34지구는 제도적으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온갖 조건으로 빡빡한 지금과 달리 큰 하자만 없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을 정도.
그러나 이민이 어디 쉽겠는가?
우주 문명의 이민은 비행기를, 배를, 자동차를, 심지어 걸어서 이민이 가능한 하위 문명의 그것과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성간 이동이나 차원 이동쯤 할 수 있어야 시도라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 그게 가능한 이들이 있더라도 누가 34지구에 찾아오겠는가? 온 우주에 위명이 자자한 지금과 달리 그 시절의 34지구는 그저 변방의 행성에 불과한데.
결국 34지구는 이민자를 직접 구해 왔다.
막 우주 용병 활동을 시작하셨던 어르신들이 멸망하거나, 혹은 위기에 빠진 문명의 사람들을 구출해 오기 시작한 게 바로 현 34지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민자의 시작.
그리고 98지구는 그렇게 ‘구해진’ 문명 중 하나였다.
[다음 역은 98지구입니다. 다음 역에서 내리실 분들께서는 오른쪽 문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58분 51초 후 98지구에 도착합니다.]“후.”
나는 체다의 배를 두들겨 자동 사냥을 끝내고 인벤토리를 정리했다. 아스트랄계를 나가는 순간 리벤지 연결이 끊기니 필요한 아이템들을 아르데니아로 옮겨야 한다.
“로그인.”
아르데니아로 넘어가 아이템들을 꺼내 둔다.
“랜덤 텔레포트 스크롤 100장…… 하이드 스크롤 30장, 프로텍트 스크롤 30장, 세이프티 스크롤도 30장……. 전설급 송편…….”
아이템들을 집무실과 연결된 작업실에 죽 늘어놓는다. 그밖에도 수많은 포션과 영약, 열량이 높은 음식에 최고 수준의 힐러 수십 명까지 대기시켜 놓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템들이 준비했다.
“어디 보자…… 이게 은신 풀셋. 이게 물리 방어셋. 그리고 이게 마법 방어. 이게 종합…… 이건 속성…….”
단독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았다. 이번 임무는 구출이기 때문에 특히나 신경 써야 한다.
나 혼자 산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구출 대상도 살려놔야 한다.
“로그아웃.”
은하철도로 돌아온다.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40분 51초 후 98지구에 도착합니다.]안내 방송에 근처에 앉아 있던 뿔 달린 꼬마가 자신과 비슷한 모양의 뿔을 달고 있는 여성에게 묻는다.
“엄마, 98지구에도 역이 있었나요?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래, 그런 역은 없단다. 아마 자유 하차를 하는 승객이 있는 모양이지.”
부드러운 여성의 말에 꼬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유 하차요?”
“그래 자유 하차. 말 그대로 자유롭게 하차한다는 뜻이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빛의 수만 배 속도로 달리는 은하철도에서 설비의 보조 없이 내린다고요?”
“그렇단다, 얘야.”
“……그게 말이 되나요?”
어이없어하는 소년의 모습에 여인이 웃었다.
“후후, 말이 되지. 캔딜러족이 개발했다는 자유 하차 장치가 있다면.”
나는 용신족(흔히 말하는 동양룡)으로 보이는 모자의 대화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출구 쪽에 서자 빠른 석양이 다가와 물었다.
“아니…… 자유 하차 장치를 안 쓰고 내리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네.”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빠른 석양이 신음한다.
“아니…… 왜요? 무, 물론 초월자시고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 그러는 걸 테지만 자유 하차 장치를 굳이 안 쓸 필요가 있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157주.”
“네?”
“아니, 156주쯤 되겠네요.”
“무슨 말씀을…….”
당황하는 빠른 석양을 두고 온몸에 호신강기를 두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리법칙을 왜곡하고 무시하는 권능!
그러나 그대로 온 세상이 뒤집히는 순간.
쿵!
“큭……!”
호신강기가 온몸을 뒤덮다 못해 세포 단위로 육신을 강화했음에도, 심지어 블랙홀에 들어가도 살아남는다는 극의지체를 완성했음에도 무지막지한 타격이 들어온다. 받아 주는 마법진 없이 아스트랄계에서 내던져진다는 건 그 정도의 의미.
그러나 나는 고통에 신음하는 대신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로그인.”
즉시 아르데니아로 들어온다.
“그레이트 힐!”
“그레이트 힐!”
“그레이트 힐!”
기다렸다는 듯 힐링 샤워가 쏟아진다.
극의지체를 이룬 후 치유 주문의 효과가 극히 떨어졌지만 최고 수준의 힐러 수십 명이 힐링을 쏟아 내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심지어 그걸로 끝이 아니다.
<당신은 플래티넘(Platinum) 랭크입니다!>
명예신의 옥좌가 상처 입은 육신을 치유한다. 나는 몸 상태가 호전되는 걸 느끼며 내 앞에 차려져 있던 음식을 먹었다.
삼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약초를 넣어 통째로 삶은 호박, 꿀에 절여 긴 시간 동안 구워 낸 멧돼지 뒷다리, 대추와 삼 등을 넣고 푹 끓인 백숙, 소고기가 가득한 설렁탕, 다양한 해산물을 넣어 만든 죽 등등.
“후…….”
약 30분간 치료와 식사를 이어 나가자 몸이 만전의 상태로 돌아온다.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인가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차 장치 너무 비싸.’
자유 하차 장치는 일회용인 주제에 무려 15억 7천만 원이나 한다.
네메시스의 주식을 156주나 살 수 있고 클래스 카드 15만 장을, 9강화 전설 장비로 풀 세트를 맞출 수 있고 주간 패키지를 5년 하고도 7개월 동안 살 수 있는 금액!
몸으로 때울 수 있다면…… 당연히 때우는 게 맞다.
“로그아웃.”
현실로 돌아간다. 평소와 같은 34지구가 아닌 우주 공간.
보통의 인간이 내던져진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어둠 속이지만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와라.”
소리 내 말한다.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이었기에 그 소리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말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레플리.”
훅.
새까만 어둠 속에 새까만 어둠을 휘감은 죽음의 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화급 펫, 망령룡 레플리다.
‘이놈을 내가 못 잡아서 이렇게 오래 고생 중이라 이거지.’
당연하지만 이 녀석이 스페셜 보스만큼 강하지는 않다.
일반급 몬스터와 엘리트 몬스터가 다르고 엘리트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가 다르듯, 같은 망령룡이라 해도 [펫]과 [스페셜 보스] 사이의 격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니까.
‘뭐, 그래도.’
망령룡의 등에 내려선다. 레플리가 그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쓸 만하지.’
쿠아아!
비행을 시작한다. 속도는 상상을 초월해서 어지간한 우주선보다도 빠르다. 이는 레플리의 비행 능력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환경 탓이기도 하다.
망령룡으로서 망자들의 왕 역할을 하고 있지만, 녀석의 속성은 죽음(死)이 아닌 어둠(暗).
흔히 말하는 우주전(宇宙戰) 최강 속성이다.
‘……저기군.’
나는 레플리의 등에 서서 급속도로 확대되어 가는 행성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태어나지도, 땅에 한 발자국 내디뎌 본 적이 없음에도 평생 내 뒤를 따라다닌 장소.
500년 전 마법의 신인 염룡(炎龍) 카인이 100개로 복사 후 변수를 추가해 분화시킨 지구 중 98번째.
‘내가 여기에 오게 될 줄이야…….’
34지구가 종말 프로젝트와 만나 종말의 위기를 마주한 것처럼 98지구 역시 종말의 위기를 마주했고, 34지구와 달리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고 멸망했다.
우주 괴수, 그로테스크(Grotesque).
그것은 [연합]의 대적(大敵)이라 불리는 존재로 우주역병이라고도 불리는 영적 기생체다. 그 우두머리는 킹(King)이라고 명명된 흑색혹성으로 태양의 수십 배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크기를 가진 괴물 중의 괴물이다.
‘최상위 신에 준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라지.’
그로테스크는 [킹-퀸-로드-슬레이어-인펙터]라는 계급을 가지고 있으며 등급에 따라 그 힘이 극명하게 나뉘는 존재다.
[인펙터(Infecter)]란 흔히 감염자(感染者)라 불리는 존재로 킹이 뿜어낸 X-벨트, 흑풍(黑風)이라고 불리는 대전입자의 흐름에 휩쓸린 존재들이 거기에 반하는 정신의 방향성이나 저항 DNA를 갖추지 못해 변하게 되는 존재를 말한다.그들은 X-벨트를 뒤집어쓴 횟수에 따라 1∼4기로 분류되며 초기에는 좀비에 가까운 미약한 능력을 갖추지만, 최종적으로 9레벨에 달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인 행성에서 맞닥뜨리는 그로테스크는 이것이 전부로 어지간한 행성은 인펙터만으로 멸망을 맞이하고는 한다.
[슬레이어]는 속칭 전마(戰魔)라 불리는 존재로 4기에 들어선 인펙터가 까다로운 조건에 의해 진화한 존재를 말한다.그들은 중-최상급 마족에 맞먹는 전투 병기들로 살아온 세월에 따라 레벨 10에서 19까지 달하는 폭넓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위 그로테스크라고 하면 바로 이들을 말한다.
[로드], 혹은 [대군주(大君主)]라 불리는 존재는 그로테스크의 지배계층으로 초월경에 들어선 괴물들이다.그들은 퀸이 직접 힘을 써 낳은 자식으로 어지간한 성룡이나 하급 신에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레벨로 치면 20레벨에서 25레벨 정도다.
‘쉽게 말해 좀비 아포칼립스지.’
너무나 전형적이라서 온갖 영화, 게임, 소설 등에 등장하곤 한다. 한때는 유행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몬스터 사태에 밀려서 거의 안 다뤄지는 소재기는 하지만…….’
생각에 잠긴 사이에도 레플리는 우주를 날아 98지구에 접근했다. 애초에 방향을 잡고 은하철도에서 내린 것이었기에 접근은 어렵지 않다.
98지구가 육안으로 지상의 상태를 확인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
98지구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상상한 광경이 있었다.
파괴된 도시를 떠도는 수십억 단위의 감염자와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수십만의 슬레이어.
그리고 그 모두를 통솔하고 있을 초월자. 대군주까지.
인간이 살던 문명은 그로테스크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나는 끝도 없는 시체의 파도를 헤치며 위험 지대에 진입한 연구원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 이게…… 뭐야?”
나는 98지구를 보았다.
[크오오오오—-!]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기어 다니는 빌딩이 고개를 쳐든다. 대지가 마치 파도처럼 출렁이며 바닥을 뛰어다니던 감염자를 모조리 갈아 버린다.
그것은 내게 있어 너무나 익숙한 실루엣.
완전체(신화).
랜드웜.
쿠르르륵-!
물이 쏟아진다. 해일이 들이닥쳐 사방을 잠식한다.
시커멓기까지 한 바닷물에서 거인이 몸을 일으킨다.
[키! 케다! 우라타!]주먹으로 허공을 치자 감염자들이 갈기갈기 찢겨 흩어진다. 완성자를 넘어서는 전투력을 가진 슬레이어들도 미증유의 힘을 품은 거인 앞에서 자신의 기세를 자랑하지 못한다.
[22레벨]심해의 혼돈. 쉠곤
그뿐이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망령룡,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출신 게임을 알 수 없는 해룡, 벼락이 번쩍이는 구름 속에서는 뇌신조 썬더버드가 날아다닌다.
“아니…….”
기가 막혀 웃음도 안 나온다.
“아니, 왜 그로테스크가 털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