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278
열일하는 과금 기사 277화
* * *
“웃어 주세요!”
나는 사랑과 환히 웃으며 악수했다. 가볍게 포옹을 하기도, 엉덩이가 닿을 정도로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수의 카메라가 우리를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촬영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박수 치는 카메라맨들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잘 어울리다니. 누가 보면 웨딩 사진이라도 찍는 줄 알겠군.”
“그러게.”
내가 네메시스의 공동 대표로 추대되었다는 사실은 기사와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당연히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난리가 나야 정상이다.
네메시스는 현재 34지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며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제 네메시스 소프트는 단순한 게임 회사가 아니라 마법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마나코인의 생산지이며 온 우주와 34지구의 위상을 알릴 거대한 플랫폼!
그런데 그런 거대한 회사에 난데없이 들어온 외부인이 공동 대표가 된 것이다. 다른 기업과 합병을 진행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냥 회사도 아니고 주식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주주들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 주주총회에서 해임안을 떠들어 대는 게 오히려 당연한 상황.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직원들이 다들 좋아하더라고. 주주들도 좋아하고.”
“다행이네.”
“다행은. 대가리에 총 맞은 게 아니면 당연히 좋아해야지.”
네메시스 소프트 입장에서 나는 굴러 들어온 돌이지만…… 문제는 그 돌이 너무나 거대하다는 점에 있다.
34지구에서는 예수나 부처보다도 위상이 높은 게임 마스터의 사도.
이제는 98지구의 혈통에 숨겨진 신혈(神血)이 개화했다는 주장이 정설이 될 정도로 불가사의한 성장 속도를 내보인 천재.
황제급 몬스터 두 마리를 해치워 참사를 막아 낸 영웅.
리벤지에 조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을 정도의 게임 폐인.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 이게 말이 돼? 네메시스 주식을 25%나 들고 있다니. 이건 대주주 수준을 넘어선다고 정말.”
기막혀하는 사랑에게 어깨를 으쓱인다.
“다 선물 받은 거야. 15%는 오룡이가. 10%는 게임 마스터께서 주셨지.”
게임 마스터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도 그냥 넘어간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나는 게임 마스터의 사도가 아닌가? 그가 자신이 가진 주식을 넘겼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으리라.
문제는 오룡이다.
“말이 안 되잖아. 아무리 드래곤이어도 그렇지…….”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드래곤은 재벌 그 이상의 존재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메시스 주식 15%는 정도를 넘어서는 선물이다. 드래곤조차 고개를 내젓는 34지구의 물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사실이니까.”
뭐 하나 거리낄 것 없는 답변에 사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지만 이내 깊이 한숨 쉬고는 말한다.
“일 이야기나 하자.”
“그래. 이제 제대로 시작해야지.”
사랑은 사업가고 당연히 나를 공동 대표로 추대한 이유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당연히 월드 크리에이터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적성이지만, 단가가 높다고는 하나 결국 임금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나와 ‘동업’까지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녀가 나를 공동 대표로 만든 것은 황제 클래스의 적을 격살할 정도의 전투력과 몇 번을 죽어도 부활할 정도의 생명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계획’을 감당할 영력을 소유한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잉!
사랑의 집무실이 단숨에 어두워지더니 책상 위로 거대한 천체(天體)의 형상이 떠오른다.
“뉴스에서는 아스트랄 네트워크가 이미 온 우주를 연결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당연히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해.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리벤지 동시 접속자가 수백 조 수천 조는 되었겠지.”
우주는 너무나도 거대해 신들조차도 쉽사리 일주(一周)하겠다 말할 수 없다. 빛의 수천, 수만, 수억 배 빠른 속도로 질주해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헤매어야 하는 무진장(無盡藏)의 공간.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우주의 모든 영역, 즉 관측 가능 우주(observable universe)만 해도 관통해 지나가려면 빛의 속도로 930억 년을 달려야 하는데 그조차 광활한 대우주의 일부에 불과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게임 마스터께서 은하철도로 우주의 상당 부분을 연결해 놓으셨지만…… 그건 말하자면 드넓은 바다에 머리카락 두께로 연결해 놓은 선로(線路)하나를 올린 것에 불과해. 정말 운 좋게 그 선, 그중에서도 역(驛)에 근접해 있는 문명만이 리벤지에 접속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녀의 말과 동시에 집무실 중앙의 천체에 그어진 선 주변에 자그마한 점들이 찍히기 시작한다.
나는 말했다.
“즉, 역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그러면 이상적이겠지만 아무리 네메시스가 잘나가도 그만한 예산을 마련할 수는 없지. 우리가 설치해야 하는 건 중계기야. 칼튼!”
사랑의 부름에 문이 열리고 그녀의 비서인 칼튼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언제나 그랬듯 갈색의 머리칼을 포마드로 깔끔히 빗어 넘긴 칼튼이 집무실로 들어온다.
양복에 안 어울리는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
‘이런. 미움 받고 있는 모양이군.’
쓴웃음이 나왔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흘리고는 물었다.
“칼튼 비서님의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네.”
“칼튼은 뛰어난 공학자인 동시에 고위 마법사거든. 네메시스 소프트를 설립할 때부터 날 도와줬지. 칼튼! 술식을 전개해 줄래?”
“알겠습니다.”
잠시 나를 노려보던 칼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우웅—!
세련된 마나 운용과 함께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전개된다. 집무실의 층고가 10미터도 넘기에 망정이지 보통 건물에서는 전개조차 힘들 정도로 초대형 마법진.
사랑이 말했다.
“동업이라고 했지만 당장 일을 시작할 수는 없을 거야.”
“왜?”
“왜냐하면 작업에 마법적 지식이 필요하거든. 마법사가 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마법 사용자는 될 수 있어야 해.”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마법진의 술식을 살펴보았다.
‘궁극 마법이군.’
마법 자체는 특정한 물건에 내장되어 있지만 거기에 마나를 불어넣는 과정에서 마법적 센스와 역량이 요구되는 종류.
사랑이 말했다.
“한동안 사옥에 머물면서 칼튼에게 주문에 대해 배우면 될 거야. 마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에 이 술식에 대한 지식, 그리고 작업 진행 과정을 완전히 숙지해야 해.”
“대충 어느 정도의 시간을 예상하는데?”
내 물음에 칼튼이 대답한다.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계실 테니 빠르게 습득하겠지만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걸릴 겁니다. 성향이 안 맞으시면 더 걸리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1년 이상은 안 됩니다.”
“3개월에 1년이라.”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마법진을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게 안 걸릴 거 같은데?’
나는 마법사가 아니고 마법에 대한 적성도 부족하다. 폐급 마나적성을 벗어던진 뒤에도 그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지식’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내가 이래봬도 인류제국 마법사들의 아버지란 말이지.’
물론 정말로 내가 그들을 가르쳤다 말하는 건 양심에 털 난 소리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법에 문외한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마법 이론에 대한 정석적인 강의, 에플렘 법칙, 멜버른 체계가 뭔지도 모르는 마법사들에게 꼭 필요했던 비유를 통한 설명. 그들이 끝도 없이 쏟아 내는 질문에 대한 답변…….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들을 가르치는 과정에 배우는 게 없을 수가 없다. 아르데니아에서는 ‘마도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는 존재가 바로 나.
마법진을 차분히 살피는 내게 사랑이 말한다.
“마법을 배우는 동안…….”
“마력 구조물이군.”
“나랑…… 응?”
“뭐?”
의아해하는 둘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한다.
“주문 압축이 대단하네. 은하철도에 많이 싣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겠지? 이렇게 되면 레어메탈 17킬로그램 정도면 중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어.”
“……?”
잠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랑과 달리 칼튼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오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해 주었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공부는 꽤 했습니다. 컨버터(converter) 능력이 있으니 내공을 마력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고. 이 마법진이 기준이라면…….”
결과는 금방 나온다.
“한 3일이면 가능할 듯한데.”
“…….”
“…….”
사랑과 칼튼이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본다.
칼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 공부를 했다고요? 마법을?”
“기본 이론 중심으로 했습니다.”
“주, 주문들은요? 스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레퍼런스 주문이라면 9클래스도 대략적으로는…….”
아르데니아에도 마법을 전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언젠가 나도 대마법사 신하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쓰려고 배운 게 아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적당히 외우고 있는 수준이지만 알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이런…… 아니, 이게 무슨…….”
칼튼이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표정이다.
그가 물었다.
“당신, 정말 사람 맞습니까?”
“정확히 사람입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냐고…….”
기막혀 하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인다.
“열심히 사는 편입니다.”
“열심히…….”
“잠깐 재연아. 흠…… 잠시 칼튼하고 의논 좀 할 테니 식당에 가 있을래? 뭐라도 좀 먹고 있어.”
“크. 같은 생체력 수련자라고 잘 아네. 좋아.”
고개를 끄덕이고 집무실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다.
나를 발견한 직원과 연구원들이 깜짝 놀라 인사한다.
“헛! 재연 님! 안녕하십니까!”
“반가워요! 네메시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적당히 인사하며 식당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
“오? 너 저번에 걔구나? 너도 여기 직원이야?”
식탁에 분식을 늘어놓고 먹고 있는 이는 생산계 초월자인 크루제, 나는 배식대에 들러 음식들을 잔뜩 받아 그녀의 앞에 앉았다.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일하러 왔지! 꽤 머물러야 하는 만큼 여비를 마련해야 하니까.”
“무슨 일을 하는데요?”
“여기 게임이 서버를 급하게 늘려야 한다고 하더라고! 내가 복제를 빠르고 완벽하게 하는 건 정말 자신 있거든!”
하하 웃는 크루제의 모습에 생각한다.
‘좋은 인재를 잘 잡았군.’
생산계 초월자가 대우주에서도 흔치 않은 존재이고 네메시스 소프트가 서버 문제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훌륭한 인선이다.
아무래도 사랑이 녀석 이 모든 걸 예상하고 크루제와 안면을 터놓은 모양이다. 그녀들은 생사를 같이 한 사이이기도 하니, 친해지기 어렵지는 않았으리라.
“뭐, 일터가 같으니 종종 보겠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히히!”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여기 페이가. 하하! 기분이 안 좋아질 수가 없어! 많이 들었지만 34지구 정말 장난 아니더라고! 한 달 바짝 일하면 한동안 돈 걱정은 없겠다.”
“좋다니 다행이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시작할 때였다.
“금방 내려왔군.”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는다. 그녀를 보고 살짝 놀랐다.
“소향 님? 어째서 여기에…… 괜찮으신 겁니까?”
소향의 옷차림은 화려하다. 불과 얼마 전 머리만 남은 그녀를 보았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
소향이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괜찮아. 늦었지만…… 고마워. 네가 아니면 나는 물론이고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었을 텐데.”
“다 보상받았는데요 뭐…… 아니 근데.”
“근데?”
싱긋 웃는 소향의 모습에 당황한다.
‘아니 왜 이렇게 가까이 앉는 거지?’
팔과 팔이 닿는다. 워낙이 풍만한 체형이었던 만큼 그녀가 슬쩍 몸을 당기니 팔을 넘어온 가슴이 내 몸에 닿는다.
“아, 여기 있었구나.”
그리고 내 반대쪽에 다른 여인이 앉는다.
“아, 바빠 죽겠는데 이게 뭔지…….”
“……강보람 선배님?”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깜짝 놀란다. 세계적인 스타이자 대한민국의 국민 MC. 영원의 마법 소녀가 거기에 있었다.
“오랜만. 요새 위명이 쟁쟁하던데?”
“어째서 여기에…….”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쿠궁! 탕!
약간의 진동과 함께 누군가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사랑이었다.
“어디…… 이런.”
사랑은 나를 발견하고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내 양 옆에 앉은 소향과 보람.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크루제를 보는 눈이 서늘하다.
“안녕 사랑아! 오랜만이야!”
“아, 네. 오랜만이에요. 어르신.”
사랑의 인사에 소향이 펄쩍 뛴다.
“어르신이라니!? 항상 언니라고 불렀잖아!”
“그래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예의가 아니죠.”
“와! 그게 뭐야!”
“보람 어르신도 오랜만입니다.”
“어머. 연식을 보면 누가 봐도 내가 동생인데.”
“34지구에서 외모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방긋방긋 웃는 여인들의 모습에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간다.
“아.”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크루제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난 빠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