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48
열일하는 과금 기사 347화
그렇다.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오두룡(五頭龍).
크로매틱 드래곤(Chromatic Dragon).
[용황]. 칸이.“용황……!”
“맙소사. 진짜 거물이 왔군.”
“다른 황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용황이라니…….”
그녀를 마주하자 과거에는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던 [격]이 인지된다.
‘강하다.’
여러 황제급 몬스터들과 또 다른 황제, 응룡을 보았기에 알 수 있다.
눈앞에 있는 용들의 황제는…… 명확히 그 [위]의 존재.
그러나 그녀를 마주친 내 머릿속엔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체르네인이 내게 찾아와 시비를 걸고 오히려 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마침내 오룡이가 칸의 모습을 드러내 딸, 그러니까 오룡이들을 데려가겠다고 주장하기까지 고작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다르다.
당장 몽환의 미궁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10년 이상에 아르데니아와 레드후크 영지에서 보낸 시간이 15년이 넘는다.
[시뮬레이션]에서 다른 플레이어의 플레이 내역을 관람한 시간도 20년이 넘고, 기억이 지워진 채 심검을 얻기까지 다시 2~30년.거기에 현실에서 흐른 시간까지 치면.
‘정확히 가늠이 안 되는군. 60년? 아니 어쩌면 70년이나 80년일 수도 있겠어.’
솔직히 까마득한 시간이다. 오룡이와 내가 깊은 관계긴 해도 이 정도 시간이면 그 존재를 잊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
‘솔직히 혈육도 이 정도 시간 동안 못 보면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겠지.’
내가 크게 필요 없는 마법의 경지를 5클래스까지 올린 것도 이런 문제를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데이터 메모리 주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제 본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딘가 문제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릴 게 뻔하다.
“오랜만입니다. 용황님.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나는 적당히 예를 표했다. 나와 헤어지고 나서 뭘 했는지, 왜 연락 한 번 없는지, 기껏 드래고니아에 가서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는 이야기 따위는 할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룡이가 아닌 용황이었기 때문이다.
“칸이라 불러 주세요. 소식이야 많이 들었지만…… 정말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셨군요.”
오룡이 녀석 역시 용황으로 나를 대했지만 그럼에도 반가움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특이한 말, 특이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 한 마디에서 그냥 알 수 있다.
“운이 좋았지요. 우연과 운명이 닿은 결과이기도 하고요.”
피식 다가서자 오룡이, 아니 칸 역시 나와 마주선다.
여기저기에서 초월자들이 수군거린다.
“황제 클래스가 둘…….”
“뭐냐, 저 여자도 중급이야?”
“말 조심해, 이 촌놈아. 그녀가 바로 모든 색채룡의 원형. 크로매틱 드래곤이다. 수십만 년 동안 용족들을 이끈 용족의 황제야.”
“설마 저 자연경보다 강한가? 솔직히 저 녀석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던데.”
각자의 문명에서 신, 지배자, 절대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던 초월자들이지만 온 우주의 강자들이 모이는 20층에서는 일개 탐험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초월자들의 묵직하고 진중하던 태도가 가벼워지고 또 활기차진 상태였다.
‘절대자로서의 입장과 도전자로서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이런 [상위]의 존재를 본다면 절망감을 느낄 테지만, 몽환의 미궁에서는 싸우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초월자조차 유의미한 성장을 하고 있다.
20층은 초월자조차 허망하게 죽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문득 칸이 말한다.
“신기한 분위기로군요. 그야말로 초월의 전장. 온 우주의 방패라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신기하다는 듯 20층을 둘러본다. 하기야 그녀조차도 이런 공간은 난생처음 봤을 것이다.
물론 초월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드래고니안의 수장이니 초월자 자체야 많이 봤겠지만 이렇게 각기 다른 종족의 초월자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일은 지금껏 없을 테니까.
우웅!
그때 10개의 문이 동시에 빛난다. 그 징조가 뜻하는 바를 아는 것인지 칸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바로 그 초월급 웨이브로군요.”
빛나는 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오룡의 오색 머리칼이 마치 무중력 공간에 들어선 듯 둥둥 떠오르기 시작한다.
“큭……!”
“커억…….”
“무슨, 무슨 마력이……!”
호들갑 떠는 초월자들의 리액션대로 그녀의 마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방을 짓누르는 마력이 어찌나 진한지 권능의 영역에 들어간 웅혼한 내공조차 한순간 움츠릴 정도!
1,050스텟 이상. 어쩌면 1,100스텟에 근접했을지도 모를 미친 수준의 마력을 흩뿌리며 칸이 오른손을 들었다.
“저기에서부터 저기까지.”
그 늘씬한 손가락을 내뻗으며 칸이 웃었다.
“저희가 하죠.”
올라오는 몬스터의 70%를 감당하자는 말이었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예로부터 전사&마법사 조합은 우주적으로도 근본이다.
“얘들아.”
파팟!
특성, [분신 생성]이 발동하고 미니 재연 다섯이 내 뒤로 늘어선다.
“어머?”
칸의 눈이 커진다. 나는 대충 설명해 주었다.
“분신 생성 특성입니다.”
“아, 그…… 만져 봐도 되나요?”
“네?”
“아뇨…….”
어색한 표정의 칸을 뒤로 하고 전투를 시작한다.
-절망하고 절망하라!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세상에…….
딥 아이들이 마치 작전이라도 짜고 온 듯, 하늘에서 동시에 사방으로 광선을 뿜어 낸다.
나는 빛의 호신강기를 펼쳐 뿜어져 나오는 광선을 막았다. 동시에 내 뒤에 있는 분신들이 마음의 검을 뽑아 휘두른다.
쩍! 쩌적!
달려들던, 혹은 날아오르던 몬스터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분분히 떨어진다.
쩍!
또다시 딥 아이가 갈라진다.
그러나 깔끔하게 처리되었던 지금까지와 달리 녀석의 거대한 동공이 갈라지며 수정체가 무너져 내린다. 잔뜩 충혈된 눈동자가 흉물스러운 내부를 드러내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딥 아이로부터 빨주노초파남보 칠색의 빛덩이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빛덩이 사이에서 딥 아이의 몸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박동하기 시작한다.
번쩍!
“아, 제길.”
즉사기!
기믹을 모르던 시절, 정면으로 달려들다가 죽었던 공격.
당연하지만.
지금도 기믹을 실현시켜 줄 생각은 없다.
쩍!
마음의 검이 베고 지나가자 패턴이 끊긴다. 즉사기도 맞아야 즉사기다.
퍽! 쩌정! 쾅!
심검을 쏟아 낸다. 거대한 일격으로 휩쓸어 버리고 대지를 뒤엎어 밀어낸다.
일방적인 전투였지만, 그럼에도 수없이 많은 공격이 쏟아져 내 몸을 휘감고 있는 히페리온의 장갑을 후려친다.
버티려 했음에도 점점 뒤로 밀린다.
‘……많군.’
몬스터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 몬스터의 등장 빈도가 늘었을 수도 있고 20층에서 끝없이 몰살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모여서 올라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중요한 건 아무리 나라도 7개의 문 전부를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그 즈음이었다.
훅.
한순간 열풍(熱風)이 불었다. 부숴도, 태워 버려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복원되는 20층의 특성상 이내 원래의 온도를 되찾았지만, 이미 하늘에는 적색의 태양이 떠 있다.
온몸이 불타는 채로 칸이 말했다.
“빛나라.”
[아폴론의 꺼지지 않는 태양.]“뭐?”
익숙한 이름에 당황하는 순간.
화악!
폭력적인 태양빛이 온 세상을 후려친다.
그것은 수준 떨어지게 대지를 불태우고 온도를 올리는 그런 수준의 공격이 아니다.
쩌엉!
“큭?”
상대방을 압도하던 마검왕의 검강이 깨져나가자 궁지에 몰려 있던 초월급 탐험가가 그의 목을 베어 버린다.
“큭……! 내가 이런 곳에서…… 어?”
즉사 주문, 세 개의 명부(名簿)를 맞았던 탐험가가 빈사 상태로 살아남는다.
선구자의 가면으로 부활한 게 아니라, 애초에 죽지 않았다.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지만, 나는 이미 그 효과를 알고 있다.
‘진짜 저거네.’
권능 주문(權能 呪文).
신들의 힘을 구현하는 텐 클래스의 주문이다.
특히나 저 올림포스 계열의 주문은 황제급 도시에 부속물로 설치해 그 효과를 쏠쏠하게 보고 있기도 하다.
‘적대적인 모든 존재의 스킬 레벨 감소.’
즉, 강제적인 레벨 다운이다. 성계신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절대 권능, 대천세계(大天世界)와 같은 계통.
실제로 시간 정지 능력을 사용하던 시간 포식자 호루클은 아폴론의 꺼지지 않는 태양의 빛 아래서는 시간 정지를 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경지 자체가 깎이는 효과나 다름없으니 하위 능력을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도 주력 스킬은 거의 다 봉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단 한방의 주문만으로 전투는 금세 끝나 버렸다. 아군 측에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
“대단하군…….”
“이것이 권능 주문…….”
용황의 권능에 놀라는 초월자들.
그러나 모두가 그녀만을 보고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때의 그 인간 이렇게…….”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칸의 뒤에 서 있는 노부인이 보인다.
과거 나에게 자신을 ‘시녀장’이라고 소개했던 드래고니안의 장로.
나는 웃으며 인사했다.
“아, 시녀장님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예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수천 년을, 어쩌면 만 년 가까이 살아온 고룡이 고개를 숙인다.
어찌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자신의 100분의 1밖에 못 살고 지능도, 마력도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하위종에게 고개 숙일 수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게 가능한 게 황제 클래스지.’
그래, 가능하다. 하긴 인간도 개나 고양이가 입에서 하전 입자포를 쏘고 핵폭탄을 삼켜서 터트릴 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고개 숙여 모실 수 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기도 하고.”
쿨하게 웃어넘긴다. 돈 봉투 내밀며 헤어지라고 했던 사실이라면 어차피 오룡이에게 바로 이르지 않았던가?
짐작이지만, 그녀 역시 칸에게 매우 혼났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에게 칸이 돌아온다.
“후, 그래도 특성 덕에 주문 반동이 적네요.”
“마법 관련 특성을 얻은 겁니까?”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요.”
우웅!
얼마 지나지도 않아 게이트가 빛난다.
“다시?”
“얼마든지.”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 100분.]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음 입장까지…….]몬스터가 몰려온다. 모조리 쓸어 버린다.
몬스터가 몰려온다. 모조리 쓸어 버린다.
나는 칸과 나란히 서서 웨이브를 안정적으로 방어했다.
사실 속도 자체는 그리 엄청난 차이가 나지 않았다. 히페리온을 타고 앞에서 난장을 부리는 동안 분신들로 심검을 쏟아 내는 것 역시 공격 능력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체감 시간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
‘세 웨이브 동안 로그인을 할 필요가 없다니.’
지금까지는 한 웨이브에 두 번은 로그인을 해야 했다. 아르데니아나 레드후크 영지에서 짧아도 수일, 길면 주 단위로 휴식을 취하고 와야 했는데 뒤에서 칸이 받쳐 주자 그럴 필요가 없던 것이다.
‘역시 텐 클래스인가…… 아군이 되니 장난이 아니군.’
짐작하던 일이지만 칸의 마법적 역량은 어마어마했다.
그녀는 초반에 권능 주문을 사용해 전장을 압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적재적소의 궁극 마법으로 탐험가들을 지키고 몬스터 군세를 헤집었다.
솔직히 5클래스에 불과한 내 마법 역량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고차원적인 마력 운용.
전투 효율이 너무나 좋아지니, 자연히 토큰도 엄청나게 벌린다.
무지막지하게 쌓이는 토큰으로, 바닥을 드러냈던 인류제국의 금화로, 간혹 등장하는 충성도 100의 병사나 기사의 힘으로 무신의 계급장을 끊임없이 늘렸다.
계급장이 늘어날수록 부담이 늘어났지만 20층에서 벌어들이는 토큰량이 장난이 아닌 만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최초 정예 중의 정예만이 착용할 수 있던 무신의 계급장은 어느새 인류제국 군대의 표준 장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로그인.”
그리고 그렇게 또 휴식을 위해 아르데니아에 들어간 순간.
[권능 스텟 개방, 마나 회복력] [대상 : 한재연]“……아, 그래 좀 오래 걸리긴 했지.”
[권능(權能), 영원의 푸른 별을 획득하였습니다!]나는 새로운 권능을 획득했다.
후우우우웅……!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높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푸른 별이 보인다.
환상이 아닌 진짜 별!
놀랍게도 어지간한 위성 크기의 별이 저 하늘에 떠 내 마나 회복을 돕고 있다.
“잠깐. 그런데 이거 미궁에서도 사용 가능한가?”
순간 떠오른 의문에 바로 실험한다.
“로그아웃.”
몽환의 미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뭐?”
“어?”
“지금 이거…….”
순간 주변이 조용해진다. 칸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초월자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권능 스텟을 얻은 사실을 감지한 모양.
“아니, 이런, 미친…… 정말로?”
“말도 안 돼…….”
나를 보며 초월자들이 신음한다.
“아니 이 와중에 성장한다는 게 말이 되냐?”
경악하는 초월자들의 하늘 위에는.
아르데니아에서 신비롭게 빛나던 푸른 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