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5
열일하는 과금 기사 4화
* * *
“충성! 병장 한재연은 2089년 8월 3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그래. 우리 미친개 드디어 전역하는구나? 앞으로는 좀 심심하겠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내 군 생활이 스펙타클 했는데.”
제2군 우주병 훈련대장 신동규 중장(진)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며 웃는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내 말에 신동규 중장이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막판에 좀 사람 같아졌다는 말은 들었다. 뭐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보기에 좋네. 날 그렇게 고생시켰으니 새사람이라도 되어야 나도 이 팍팍한 군 생활에 보람도 생기고 그러지. 아, 그나저나 의무실에서 너 무슨 저주 같은 거 걸렸다고 하던데 그건 뭐냐?”
신동규 중장의 말에 준비된 답을 한다.
“저주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쯧. 괜찮아 보여도 바로 병원 가서 검사해. 그 돌팔이는 치유술 전공이라 못 찾는 모양지만 수도의 종합병원이라면 무조건 감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신동규 중장은 서랍을 열더니 미리 만들어져 있던 전역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휙 하고 그걸 공중으로 던졌다.
“야~ 옹!”
책상 아래 있었다고 예상되는 고양이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전역증을 물고 내 앞에 내려섰다.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갈색 고양이의 눈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대장님?”
“이런 자리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선물들이 오기 마련이지. 난 별로 필요 없으니 짬 처리하는 거다.”
“하지만 이거 최신형인데…… 거의 400만 원은 하지 않습니까?”
2080년. 그러니까 약 10년 전 즈음 혁신적인 핵심 기술 몇 가지가 민간에 해금되었다. 텔레포트 터미널을 가지고 있다면 텔레포트를 이용한 [배달]을 언제 어디에서건 받을 수 있는 [간이 텔레포트], 원거리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보급받을 수 있는 [에너지 네트워크], 인프라 위에 자리하고 있다면 부담 없이 마법을 구매할 수 있는 [매직 스토어]까지.
처음에는 집에 가구 형태로 들어가 활용되는 게 전부였던 기술이지만 시간이 지나 기술이 정착되자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기능을 개인별로 쓸 수는 없을까?’
사람들은 심지어 스마트폰에 저 기능들을 넣고 싶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8킬로그램 이상의 중량과 데스크탑에 가까운 부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초 사람들은 가방의 형태로 그것을 들거나 메고 다녔지만 걸리적거리고 무거워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스마트폰이 들고 다니기에 무겁고 크기가 크다면, 그 스마트폰이 알아서 주인을 따라다니면 되는 것 아닌가?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스마트 펫(Pet)과의 결합.
이 녀석은 영락없는 고양이로 보이지만 사실 생물이 아니다. 레어메탈과 인챈트, 그리고 첨단 기술이 적용된 부품들로 작동하는 인공 생명체인 것이다.
‘요새 유행이라고 듣긴 했지만 설마 선물로 받게 될 줄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신동규 중장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다.
윙!
책장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이 하늘을 날아 신동규 중장의 손에 잡힌다. 신동규 중장이 스마트폰을 조작한다.
그리고.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저, 저기 대장님. 이 녀석이 우는데…….”
“아, 촌놈의 새끼 눈치가 없네. 벨 소리잖아, 벨 소리. 내가 전화 건 거니까 코를 눌러 받아. 나중에 기기명을 등록하면 음성 명령으로도 받을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 고양이의 코를 누른다.
그러자 고양이가 나를 보고 말한다. 방금 야옹거리던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듯 또렷한 여성의 목소리다.
“군필 마도사 신동규 님의 전화입니다. 뚜! 자, 잘 들리지? 내 번호니까 등록해 놔라.”
신동규 중장의 목소리로 말한 고양이는 가볍게 땅을 박차 뛰어오르더니 딱 내 얼굴 높이에서 누가 붙잡은 것처럼 정지한다.
1클래스 기본 마법, 고정(Fixing).
마치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기라도 한 것처럼 둥그렇게 말린 녀석의 배가 디스플레이가 되어 주소록을 띄운다.
‘신기하네.’
여기부터는 기존 스마트폰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화면을 조작해 번호를 저장하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신동규 중장이 말한다.
“네 군 생활 3년 동안도 세상은 많이 변했어. 넌 정말…… 날 많이 피곤하게 했던 또라이지만 그래서 더 걱정이다.”
신동규 중장은 나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항상 날 갈구고 심지어 폭행까지 했던 그의 눈에는 염려가 가득하다.
“사회는 군대처럼 봐주고 기회를 주지 않아. 군 생활 좆같다, 좆같다 하지만 못 가진 사람들한테는 사회야말로 좆같은 곳이다. 그나마 정신 좀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도저히 답이 없는 상황이 되면 나한테 연락해. 일자리라도 잡아 줄 테니까.”
“…….”
나는 담배를 뻐끔거리는 신동규 중장을 바라보았다.
옛날, 그러니까 체감적으로 치면 20년 전, 나는 그를 답 없는 꼰대라고 혐오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본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지구의 시간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니 그가 변했을 리는 만무하다.
‘아, 나야말로 답이 없는 새끼였구나.’
“뭘 봐? 할 말 끝났으니 꺼져.”
담배 연기를 뿜으며 눈살을 찌푸리는 신동규 중장의 모습에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가, 이내 반달처럼 휘어진다.
“새끼. 그래. 전역 축하한다.”
때는 2089년 8월 3일.
마침내 군 생활을 마친 내가 사회로 나가던 날이었다.
* * *
무인 택시에 탄 나는 내 허벅지 위에 앉아 배를 드러내고 있는 갈색 고양이의 배를 툭툭 두들겼다.
당연하지만 애완동물과 노는 게 아니라 스마트 펫을 등록하려는 중이다.
“좋아. 네 이름은 체다라고 하지.”
“기기명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또렷한 여성의 목소리로 대답하는 고양이에게 답한다.
“체다.”
“등록되었습니다.”
DNA와 영자 패턴을 등록하고 앱들을 다운받는다. 나는 가장 먼저 집부터 구하기로 했다. 장소는 서울. 워프 게이트와 텔레포트로 거리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지만 성지(聖地).
광화문 광장이 있는 서울의 집은 원룸이라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서울에서 한번 살아 보는 게 꿈이었단 말이지.’
나는 3년 군 생활 동안 모았던 8천만 원 중 절반 이상을 사용해 원룸 하나를 구매했다.
원룸은 10평도 안 될 정도로 좁았지만 이미 부모와 의절한 것이나 다름없는 홀몸이었던 내게는 상관없는 상황.
나는 체다의 배를 두들겨 검색을 시작했다.
아르데니아 대륙.
킬리언스 산맥.
한 브론즈 소드 남작.
결과는 금방 나왔다.
-스텟 하나로 립생이 바뀐다!-
-진짜 전쟁을 시작한다. 리벤지!-
-리벤지. 그 시작과 끝.-
“하. 시발 진짜.”
그것은 온라인 게임이다.
가상 현실 접속기로도, PC로도 플레이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를 스마트폰으로 하게 되는 모바일 게임.
“심지어 잘나가네.”
리벤지는 전 세계 매출 1위에 빛나는 인기 게임이다.
하루 매출 최대 920억.
일일 평균 매출 110억.
1인당 평균 과금액 280만 원.
리벤지 개발사인 네메시스 소프트를 세계 10대 기업에 올려놓을 정도의 흥겜.
그러나 네티즌의 평가는 썩 좋지 않다.
-망겜. 아니 돈 존나 버니 망겜은 아니지. 쓰레기 게임.
-1인당 평균 과금액 봤음? 280만 원임 시발 ㅋㅋㅋㅋㅋㅋㅋ 미친 거 아님? 내 월급이 300만 원이 안 되는데 ㅋㅋㅋㅋ
-무과금 유저가 그렇게 많은데 평균 과금액이 280만 원이면 ㅋㅋㅋㅋㅋㅋ 아니 대체 핵과금러들은 얼마씩 지르고 있는 거?
-아 이딴 게임이 10년째 부동의 매출 1위니 새로 나오는 게임도 다 벤치마킹해서 주머니 털려고 혈안이 되잖아 –+
-아 ㅋㅋㅋㅋㅋ 하지만 그래도 리벤지가 돈 버는 게임이긴 하지.
-돈을 ㅋㅋㅋㅋ 벌려면 ㅋㅋㅋㅋ 일을 ㅋㅋㅋㅋㅋ 해야지 ㅋㅋㅋㅋ
-학생 ^^ 글 내려 ^^
사실 나도 리벤지의 이름 자체는 귀에 박힐 정도로 들어 왔다. 그 정도로 흥한 게임이었으니까.
다만 해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리벤지는, 전형적인 과금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도 않은 게임이니 게임 지명을 모르지.”
사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바둑판 모양의 대륙이라니?
강과 산이 반듯한 선처럼 그어져 있는 지형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하물며 아르데니아 대륙의 공용어는 한국어이고 문자는 한글이다. 그런 주제에 지명이나 고유어 등은 서양의 그것들이니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상황.
모든 상황이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게임.”
온몸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다.
“내가 20년 동안 살아온 그곳이 게임 속이라…….”
20년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생사의 경계를 넘고 살기 위해 굴욕을 감내하고 때론 비참한 패배를, 때론 극적인 승리를 경험했다.
학교에서는 양아치, 사회에서는 백수, 군대에서는 고문관이었던 애송이는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백전 연마의 기사가, 장군이, 영주가 되었다.
그런데 그 시간과 경험이 게임 속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니?
“다만…… 좀 다르군.”
검색 결과에 아르데니아 대륙도 나오고 킬리언스 산맥도 나오지만 한 브론즈 소드 남작, 그리고 한 브론즈 소드 남작령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남작령이 있던 장소를 찾기까지 했는데 그곳의 지명은 전혀 다르다.
“게임과 똑같은 모습의 세상에 내가 들어갔다는 말인데.”
일단 그렇게 가정하고 체다를 들어 리벤지를 설치한다. PC와 연동되어 있었기에 PC버전의 리벤지 역시 자동으로 설치된다.
아마 집에 접속기가 있었다면 거기에도 게임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치가 진행되는 동안.
“로그인.”
한순간 원룸의 모습이 사라지고 드넓은 하늘이 시야를 채운다. 고개를 숙이니 정사각형의 대륙이 보인다.
가로세로 19줄.
한 칸의 길이가 100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바둑판.
흐르는 강이, 솟구친 산맥이 선의 역할을 하는 세계.
“으아앙!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으아앙!”
“티냐.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대체 저 괴물들은 뭐지?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종말이야…… 모든 게 끝장이야…….”
“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우리는 영지의 북쪽에 위치한 훈련장에 집결해 있었다. 지금 이 영지를 그저 시작이라 생각하고 있던 내 의중에 따라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는 훈련장이었기에 모든 영지민이 자리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리와 장비가 남을 지경이다.
“제길.”
훈련장까지 무사히 온 영지민의 숫자는 고작 10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순간에 영지민의 3분의 2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훈련장에서 하루 넘게 기다렸음에도 오지 못한다는 건 더 기다려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었다.
“돌겠군.”
기가 막힌 현실에 짜증이 치솟았지만 짜증을 내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영지를 잃었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이들의 우두머리. 내가 흔들리면 영지에 단둘밖에 없는 기사와 하나밖에 없는 마법사, 그리고 혼란에 빠져 있는 병사 모두가 흔들릴 것이다.
“스틸스톤.”
“네, 영주님.”
“기껏 영지를 얻었건만 또 사람들을 이끌고 방황하게 생겼군. 20년 전이 생각나지 않나?”
내 말에 돌처럼 굳어 있던 스틸스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스틸스톤은 내가 맨 처음 이 세계로 넘어왔을 때 귀족들의 [인간 사냥]에서 구해 낸 인물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 유일하게 귀족들에게 맞서며 버티고 있던 재능 있는 자경단원.
그는 산적이 되어 산채를 운영했고 용병이 되어 전쟁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내가 남작이 되었을 때, 그는 기사가 되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옆에 함께하는 전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