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4
열일하는 과금 기사 3화
“…….”
“세상에. 대체 얼마나 잔인하게 맞았기에 이 지경이야? 이 정도면 거의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인데 해도 해도 너무하네.”
호들갑 떠는 그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내 몸 상태를 점검한다.
박살 났던 갈비뼈는 멀쩡히 복구되어 있고, 찢어졌던 피부와 내장도 원상태로 돌아가 있다. 새로 재생된 피부가 그을린 주변 피부와 다르다는 게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영양제까지 맞은 덕에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움직일 때마다 미친 듯 고통이 밀려오지만.
‘지금뿐이야.’
군 복무 중이 아니고서야 토마스 중위 정도 되는 고위 치유술사(겸 의사)에게 케어받을 수 있는 호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에서는 VIP병실에서나 가능하겠지.
즉, 내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적극 이용해야만 한다.
“중위님, 제가 피곤해서.”
“아, 그러고 보니 새벽 4시네. 그래, 이왕 온 거 여기서 자고 가. 나도 당직실에서 잘 테니까. 으으. 요새 잠도 부족한데 이게 무슨. 내일은 오침 신청을 해야지…….”
투덜거리며 의무실을 나가는 토마스 중위의 모습을 보며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다.
“로그인.”
아주 작게 속삭이자.
어느새 나는 아르데니아에 있었다.
“오~ 로로로로…… 오? 뭐, 뭐야? 인간 놈이 일어났다!”
“상처가 없다? 거의 절반 정도 찢어져 있었는데?”
“뭐지? 다시 죽여야 하나?”
어리둥절해하는 오크들의 말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킨다. 지구로 돌아가 몸을 회복시켰기 때문인지 몸에 박혀 있던 양날 도끼는 그저 내 몸 위에 얹혀 있을 뿐이다.
쿵!
양날 도끼가 바닥에 떨어진다. 수천의 오크들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당연한 말이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다.
“도망친다!”
“잡아!”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작정 뛰었다. 영지를 얻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성의 구조와 지형은 완전히 꿰고 있는 상황.
나는 삽시간에 영지성을 벗어난 후 대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었다.
“거기 서라!”
“잡아! 죽여!”
“오~ 로로로!”
“자, 잠깐 인간 놈 너무 빨……!”
오크들이 마구 뒤따라오다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얽혀 넘어지고 난리가 난다. 물론 개중 몇은 아무런 문제없이 달려왔지만.
‘좋아, 멀어진다.’
다행히 오크들은 그 무식한 괴력과 질긴 생명력과 다르게 형편없는 주력(走力)을 가지고 있었다.
100미터 달리는 데 족히 20초는 걸릴 정도!
그것도 전력 질주가 그러할 정도니 작정하고 뛰니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그대로 약 1킬로미터 정도 달리자 악쓰는 소리들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단 하나를 빼고는 말이다.
쿵! 쿵! 쿵쿵쿵!
“아, 젠장!”
묵직한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자 2.5미터의 거대한 오크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발칸 오크 투사(희귀)
함롬
도끼를 던져 나를 삼도천 바로 앞까지 배달해 주었던 바로 그놈이다.
“후!”
호흡을 고르고 달린다.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가기도 하고 펄쩍 뛰어 담벼락을 넘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뒤따르는 오크 투사는.
쾅! 쾅! 쾅!
“와.”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돌진해 온다!
“헉…… 헉…… 로그아웃!”
전력으로 질주하다 체력이 떨어질 때쯤 지구로 돌아온다. 가쁜 호흡을 고르고 수분을 섭취한 후 잠시간 쉬며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풀었다.
“로그인.”
그리고 다시 달린다.
“크아아아! 서라! 날다람쥐 같은 놈!”
“너나 포기해라! 지치지도 않냐?”
지구와 아르데니아를 오가며 체력을 회복시키고 있음에도 오크 투사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만 간다.
그나마 녀석이 던졌던 도끼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거리를 벌리고 시작했으니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한참 전에 붙잡혔으리라.
쾅! 콰직! 쿵!
이제는 숲으로 들어왔지만 빽빽한 숲의 나무들마저 모조리 박살 내며 오크 투사가 접근해 온다.
어느새 나와 녀석의 간격은 5미터 안쪽. 나는 더 이상의 도주를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로그아웃.”
그리고 지구로 돌아온다.
“허억…… 허억…… 후우…… 후…….”
호흡을 고른다. 전투에 앞서 최대한 컨디션을 회복해야 했기에 한참을 더 쉬고 의무실 한편에 비치되어 있던 영양제도 먹었다.
딸깍!
그때 의무실 문이 열리며 토마스 중위가 들어온다.
“야. 너 방에서 운동하냐? 심박 그래프가 왜 이래?”
“운동이라뇨.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다만 어째서인지 숨이 계속 차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설마 저주 같은 거 걸렸어?”
우웅!
토마스 중위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치유의 파동이 뿜어져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전력 질주로 3킬로미터 가깝게 뛰어 탈력 상태에 빠져 있던 몸이 회복된다.
“이질적인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도 잘…… 쿨럭!”
기침하는 척하며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리고 속삭인다.
“로그인.”
팟!
“너! 잡았다!”
오크 투사가 괴성을 지르며 나를 노려본다. 녀석 또한 그 큰 덩치로 먼 거리를 달려왔기에 호흡이 거칠고 한껏 지쳐 있는 상황.
나는 검을 들었다.
오크 투사도 도끼를 들었다.
웅!
오크 투사의 도끼에 무형의 기운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인다. 도끼의 내구를 강화시키고 절삭력과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힘.
‘내공. 저깟 놈이 일류 무사란 말인가? 소드 익스퍼트라고?’
기가 차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평생 가도 닿지 못할 영역에 저 미련해 보이는 괴물이 도달해 있다.
“……씨발.”
절로 욕이 나온다.
엿 같은 마나.
엿 같은 기가스.
“[초인적인 운동신경], [초인적인 정신력], [불가해한 전투 예지], [불가해한 신체 제어]…… 와. 무능력자가 능력자를 줘 팼다기에 뭔 개소리인가 했는데 그럴 만하구만. 아~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시청에서 내 재능을 판별했던 선별사의 말을 떠올렸다.
“[폐급 마나 적성].”
쾅!
떨어져 내리는 도끼를 피해 파고든다. 마음 같아서는 빗겨 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내공, 거기에 아름드리나무도 어깨치기 한 번으로 부러트릴 괴력까지 실린 도끼와 충돌했다가는 그대로 끝장이겠지. 무조건 완벽하게 회피해야만 한다.
힘의 흐름을 완벽히 읽어 낸다 해도 이 정도 힘 차이면 공격을 빗겨 내려다 내 모가지가 빗겨 나가기 마련이다.
‘아니 그런데 이놈 방어가?’
순간 환하게 열린 상체에 의문이 들었지만 드러난 빈틈을 안 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대로 검을 휘둘러 오크 투사의 목을 쳤다.
깡!
“깡?”
빈틈을 노려 쳤다가 느닷없는 반발력에 놀란다. 그걸 빈틈으로 여겼는지 오크 투사가 도끼를 질풍처럼 휘둘렀지만.
팟!
나는 녀석의 허벅지를 차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경기공(硬氣功)! 오크 놈이 별걸 다 하네!”
그러나 녀석이 경기공을 익혔다는 걸 안 이상 공략은 어렵지 않다. 경기공은 내공 사용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수련법.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조폭 녀석들도 경기공의 수련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 어떻게 되었던가?
재생 마법으로 이빨을 몽땅 복구해야만 했다,
“너! 이! 미꾸라지 같은 놈!”
괴성과 함께 오크 투사가 달려든다. 나름 비장의 유인책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내가 너무 쉽게 빠져나가자 화가 난 듯 양날 도끼를 횡으로 휘두른다.
괴력을 담은 도끼가 땅에서 45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로 휘둘러진다. 자꾸 내가 공격을 피하자 피할 수 없는 공격을 날린 것!
‘낮다.’
자세를 아무리 낮춰도 맞을 수밖에 없는 높이. 넓고 길게 휘둘러 뒤로 물러나도, 옆으로 굴러도 회피할 수 없는 강공격이다. 오크 투사로서도 전력을 다한, 주변에 광풍이 몰아칠 정도로 매서운 일격!
그러나 녀석이 팔을 당기는 순간부터 공격 방식을 예상하고 있던 난 이미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상태였다.
“합!”
기합을 외치며 온몸의 무게를 담은 검을 휘둘렀다. 머리를 내려치는 내 검을 오크 투사가 똑바로 바라본다.
붉게 충혈된 녀석의 눈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다.
‘경기공이다!’
나는 이대로 검을 내리쳐 머리를 때려 봐야 이마에서 피 좀 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허공에서 공세가 끊기면 오크의 후속 공격에 살해당하고 말겠지.
팍!
때문에 나는 내 아래로 휘둘러지고 있던 팔을 발로 차 속도를 죽였다. 솟구쳐 오르던 몸이 뚝 떨어지며, 내려치던 검이 놈의 머리 대신 가슴팍을 후려쳤다.
콰드득!
전력을 다한 검격에 갈비뼈가 우르르 부러지는 감촉이 느껴진다. 아쉽게도 오크 투사 녀석이 상체를 뒤로 당겨 심장을 베어 내지는 못했다.
“크, 아아아아!”
잘린 가슴팍에서 뿜어지는 피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크 투사가 도끼를 비스듬히 올려 베었다.
이미 전력으로 횡 베기를 하던 자세를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연결 동작이지만 오크 투사는 막대한 괴력과 내공의 힘으로 그것을 해냈다. 그야말로 필사의 한 수!
하지만 예상하고 있었다.
팟!
집중한다. 1초를 열 몇 개로 쪼갠 순간의 세계에서 양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옮긴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베어 오는 도끼를 막았다.
콰득! 푹!
쿠당탕!
그대로 허공을 몇 미터나 날아 바닥을 뒹군다.
“헉헉…… 골병들겠네.”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통에 신음하며 몸 상태를 확인한다. 다른 곳은 괜찮지만 오른팔은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나 있다. 검지와 중지 사이부터 세로로 쪼개지고 힘을 받아 낸 팔꿈치와 어깨도 부서져 버린 상황.
그리고 오크 투사는.
“커억…… 그르륵…….”
심장에 검이 박힌 채로 나를 노려보다 그대로 쓰러져 절명(絶命)한다.
“크, 크흐흐. 내 승리다, 멍청아.”
평소였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빈틈을 노려 도망가야지 왜 싸운단 말인가? 적을 100명 죽여도 칼 한 대 잘못 맞으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게 이 중세 랜드인데.
겨우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고 몇 달을 시름시름하다 죽는 사람들의 모습을 숱하게 봐 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괜히 내가 이 세계에서 방어형의 검식을 사용해 왔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로그아웃!”
팟!
촤아악!
쪼개진 팔에서 피가 뿜어진다.
토마스 중위가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으, 아아아아!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왜 팔이 쪼개져?! 뭐야 대체?!”
“하하. 저도 잘 모…….”
오리발을 내밀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