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9
열일하는 과금 기사 8화
“컬렉션?”
컬렉션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템 등을 컬렉션에 넣고 대신 근력+1이라던가 마력+1 이렇게 소소하게 올리는 콘텐츠.
그냥 곁다리로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알파이자 오메가라니? 장비와 레벨,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기급 콘텐츠인 [클래스]가 있는데?
“뭐, 드랍 템 넣는 정도일 테니 레벨링하면서 채워 가면 되겠지.”
가볍게 생각하기로 하고 방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가 구한 원룸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룸 타워(Room tower)였다. 각각의 사이즈를 가진 방들로 이루어진 80층짜리 빌딩.
나는 끼니를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그런 내 옆으로 체다가 도도도 따라온다. 내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따라다니는 스마트폰이라니 편하긴 하다.
“알알! 알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개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복도 중간쯤의 문이 열리고 갈색의 토이 푸들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써쓰야! 얌전히 있어야지!”
원룸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개를 따라 나온다. 머리를 대충 뒤로 묶고 복장도 헐렁했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미모를 뽐내고 있다.
“킁! 킁킁!”
토이 푸들이 내 쪽으로 호다닥 달려오더니 체다에게 접근해 엉덩이 냄새를 맡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마트 펫인 체다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저 개가 적의를 가지고 공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그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써쓰! 앗, 죄송합니다.”
“아뇨, 별로.”
대충 넘기고 1층을 누른다. 여자도 엘리베이터에 탄다.
‘진짜 개인가 보네.’
스마트 펫이 대세인 요즘 흔치 않은 케이스다. 진짜 개는 똥오줌도 치워 줘야 하고 먹이도 시간마다 먹여야 할 텐데.
띵!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1층에 도착해 식당으로 향했다. 전혀 대화가 없었음에도 도착지는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덮밥 집이었다.
“돈가츠 덮밥.”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오징어 덮밥이요!”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일단 게임을 좀 더 해야겠어. 잠시 돌아가지 말고 지구에서 리벤지를 좀 더 플레이하면 더 좋은 장비를 구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러다 생각한다.
‘다만 클래스는 그런 식으로 구할 수 없는 것 같다는 말이지.’
“체다.”
이름을 부르자 테이블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던 체다가 날렵하게 의자를 밟고 테이블 위로 앉아 배를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뚱냥이(기능을 위해 일정 이하의 크기를 가질 수는 없다.)에 가까운 형태의 체다였기에 화면은 큼직.
“알알! 알!”
“써쓰, 조용히 해야지.”
“낑…….”
잠시 개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덮밥을 받아 든다. 이어 자리로 돌아와 체다의 배를 두들겼다.
“어디 보자…….”
공식 홈페이지와 카페 등을 둘러보았지만 게임 플레이 중 클래스를 얻었다는 말은 거의 없다. 드랍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거의 의미 없는 확률이고 거래도 어려운 품목이라 그냥 과금으로 뽑아야 하는 느낌.
“사는 수밖에 없나.”
게임을 많이 해 왔지만 과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고작 데이터 쪼가리 따위에 적지 않은 돈을 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욱.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 일반인을 초월한 근력이 느껴진다. 그뿐 아니라.
웅!
몸 안을 흐르는 내공이 느껴진다. 죽을 때까지 [1년 내공]도 쌓을 수 없을 거라는 선별사의 말과 다르게 충실감이 드는 내공.
‘대단해.’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우주에서도 쟁쟁한 지구의 기술로도 해결하기 어려웠던(불가능하지는 않다. 수백 수천억이 들어서 그렇지……) 내 [폐급 마나 적성]을 극복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클래스는 일반, 고급, 희귀, 영웅, 전설, 신화의 등급 중 아래서 두 번째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클래스 설명을 확인했다.
“나름 규칙이 있었군. 일반 클래스는 상승 스텟이 총합 100포인트. 주 스텟 하나에 40포인트가 주어지고 서브 스텟 두 개에 20포인트씩,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스텟에 10포인트씩.”
예를 들어 내가 이미 얻은 일반 클래스 아처의 상승 폭은 근력+20, 민첩+40, 체력+20, 생명력+10, 마나+10이다. 주 스텟인 민첩에 40포인트가 오르고 서브 스텟인 근력과 체력에 20, 생명력과 마나가 10포인트 오르는 것.
그렇다면 고급은 어떨까?
‘스텟 총합 200포인트. 똑같은 비율에 2배의 스텟 증가가 이루어진다.’
내가 지금 장착하고 있는 고급 클래스 직업, 하이 소드맨이 근력+80, 민첩+40, 체력+20, 생명력+40, 마나+20이 오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이 소드맨은 주 스텟이 근력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인 희귀.
“스텟 총합 300포인트. 더해서 직업 버프가 생기네.”
예를 들어 소드맨 계열 희귀 클래스 검귀(劍鬼)는 모든 버프와 중첩되는 공격 속도 50% 증가가 상시 유지된다.
위저드 계열 희귀 클래스 파이로맨서는 화염 데미지 50%가 붙고, 궁수 계열은 원거리 데미지 50% 증가나 사거리 50% 증가 버프가 붙는다.
버프의 차이는 막대하다.
아무 조건 없이 공격 속도 50%가 증가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최고의 만족도를 가지고 있던 고급 클래스가 단박에 별것 아닌 잡것으로 보일 정도다.
“그리고 영웅 클래스는…….”
나는 영웅 클래스 중 하나를 확인했다.
[베리언트 레인저(영웅)]근력+80 민첩+160 체력+80 생명력+40 마나+40
[사거리 50% 증가] [어둠의 관측자]“어디 보자…… 스텟 총합 400포인트에 직업 버프. 그리고 직업 특성이 생기네.”
그리고 그 직업 특성은…….
[어둠의 관측자]1분 이상 관측되지 않을 시 코스트 없는 중급 은신.
설명을 봤지만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별다른 코스트 없이 그저 1분 동안 관측되지 않는 것만으로 발동한다는 건 꽤 괜찮아 보이지만, 이 중급 은신이라는 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을 봐야겠다.”
나는 소드맨 계열 영웅 직업, 검왕(劍王)을 살폈다.
근력+80 민첩+160 체력+80 생명력+40 마나+40
“검사 계열인데 주 스텟이 근력이 아니고 민첩이네?”
다시 보니 검귀 역시 주 스텟이 민첩이다. 소드맨 계열도 종류가 여러 가지고 하이랜더(양손 검사) 같은 직업들의 주 스텟이 근력. 아무래도 이 무협 느낌 나는 직업들은 민첩함을 강점으로 삼는 모양이다.
“대체 직업이 몇 개지?”
문득 드는 생각에 체다의 배를 도도도 두들긴다. 체다의 배가 비추고 있는 스크롤이 주르륵 내려간다.
내려가고.
내려간다.
“아니 미친.”
어이가 없어 손을 멈춘다. 아직도 직업이 영웅이다. 전설 신화 클래스는 한참 더 내려야 나올 듯하다.
재빨리 검색창을 돌린다.
“아니 무슨…… 직업 숫자가 300개가 넘는다고? 심지어 계속 늘어나고 있다니…….”
특히나 희귀와 영웅 직업이 미친 듯이 많다. 예를 들어 바바리안이라는 직업만 해도 파이어 바바리안, 어스 바바리안, 윈드 바바리안 이런 식으로 갈라지고, 레인저도 실버 레인저, 팬텀 레인저, 그랜드 레인저, 그랜드 어비스 레인저 등등 무수하게 많다.
내가 봤던 검사 계열도 매화검수, 청성무사, 무당검사 등등 무수하게 많다.
문제는 그 직업들끼리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거다.
“직업 버프하고 특성 조금씩 바꾸면서 막 찍어 낸 거잖아…… 심지어 다 똑같고 주 스텟이나 보조 스텟만 다른 직업도 있네…….”
결국 다시 검왕으로 돌아온다.
“어디 보자, 직업 버프는 검귀랑 똑같이 공격 속도 50% 상승. 그리고 특성은…… [고수의 간합]이로군.”
[고수의 간합(間合)]치명타 시 [고수의 기세] 스택이 생성. 최대 20개까지 저장 가능. 유지 시간 30초.
[고수의 기세]자가 버프, 근력, 민첩, 체력, 생명력 5포인트 상승.
“이런 미친…….”
할 말을 잃는다. 근력, 민첩, 체력, 생명력 전부가 5포인트씩 오르고 20개까지 쌓인다니?
그럼 각각 스텟이 100포인트. 총합 400포인트 상승한다는 말이 아닌가?
지금 내가 고급 클래스를 장착해 스텟 총합 200포인트 상승하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는데, 버프만으로 400포인트라니……
‘최대 스텟이 999고 스텟 중 하나만 900이 넘어도 신화급 존재인데 이렇게 준다고?’
이건 개사기 정도가 아니다. 영웅이 이 정도라면 대체 전설급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나는 홀린 듯 소드맨 계열 전설 직업을 살폈다.
그리고 발견했다.
[검성(劍星)(전설)]근력+100 민첩+180 체력+100 생명력+60 마나+60
공격 속도 50% 증가.
[고수의 간합(間合)] [천검(天劍)]“전설 클래스로 들어가면 스텟 총합 500포인트 상승에…… 고유 스킬이 붙는군.”
나는 고유 스킬 설명을 읽었다.
[천검(天劍)]고수의 기세 스택을 최대치(20스택)까지 쌓을 경우 사용 가능. 두 가지 폼 중 하나를 선택하여 발동 가능하다.
[천검-백인참(百人斬)]스킬 발동 후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데 성공하면 동일한 데미지를 주변에 있는 적(최대 100개체)에게 적용.
[천검-관월아(貫月牙)]스킬 발동 시 1개체의 적에게 데미지 증폭 1000%(최종 데미지로 계산) 추가 적용. 방어, 회피, 반격 불가.
“…….”
나는 체다의 배에서 시선을 떼고 덮밥을 퍼먹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후 양념을 덮어쓴 돈가츠와 계란을 뒤집어쓴 밥알들이 중세 랜드에서는 꿈도 못 꿀 천상의 맛을 자랑하며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나는 미리 떠 놓은 물 한 컵을 마신 뒤 신음했다.
“개사기…… 미친 개사기 아냐?”
심지어 이 고수의 간합이라는 것은 아르데니아에서 더 심한 사기성을 보일 수 있다.
왜냐?
‘내가 치명타를 무한으로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지.’
아르데니아 대륙은 리벤지의 설정과 동일한 형태의 세상이고 실제로 게임 시스템까지 적용되었지만…….
그럼에도 그곳은 현실이다.
내가 스텟을 적용받은 것처럼 게임 시스템이 힘을 발휘하는 곳도 있지만 아닌 곳 역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치명타, 명중, 회피 등이 그렇다.
리벤지에서 이 요소들은 들고 있는 무기, 캐릭터의 능력치 등에 따른 [확률]이지만 아르데니아에서 내가 공격에 성공하면 명중된 것이고 피하면 회피 판정이다. 그리고 치명상을 가하면 그것이 바로 치명타.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 목을 베거나 머리를 때리거나 심장을 찌르면 무조건 치명타가 떴다. 그리고 공격을 쳐 냈을 때에는 패링 판정이었지.
즉, 스택을 다 쌓은 다음 백인참으로 오크 목을 따게 된다면…….
일검에 주변에 있는 오크 전사 100마리의 목이 날아간다.
“체다. G-뱅크 1173-5511.”
“야옹!”
테이블에 앉아 있던 체다가 작게 울고는 고개를 나와 눈을 맞춘다. 홍채 확인.
할짝!
손을 내밀자 손가락을 핥는다. DNA 확인.
“야옹!”
다시 한번 울고 은행 계좌가 뜬다. 이사 후 이런저런 이유로 사용했기에 잔고는 3600만 원 정도.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캐쉬 아이템 몇 개 사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돈이다.
“산다.”
결심했다.
나는 사고야 말 것이다.
전설 클래스. 검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