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지옥의 조별평가(2)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연습실.
“저희 무슨 곡할지 정해봅시다.”
짝-
손뼉을 치며 주의를 모은 것은 보컬 A조 이도경이었다.
특유의 장난스러운 눈빛과 티 없이 맑은 목소리.
미성에 가까운 보이스를 놓고 보면 고음도 수월하게 올라갈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쪽도 보컬 주력은 아니었다.
‘입 터는 거 전문이었지.’
도서한은 솔직한 감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가, 이내 지웠다.
‘아냐, 대단한 사람이야.’
어찌 되었건 스타더스트 최종 데뷔 멤버.
이도경은 대중들을 사로잡을 만한 끼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입 터는….
아니, 말을 잘하는 것이었을 뿐.
비주얼도 스타더스트 멤버들 중에서 상위권.
줄줄이 사고 친 다른 멤버들에 비해 구설수야 조금 있었지만, 그 인간들과 다르게 사회면 1면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기도 했고….
-빼곤 잘 모르겠다.
이전 생에서도 도서한과는 별로 엮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준혁과 달리 협조적인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능력치에 비해 자기만 돋보이려는 느낌도 덜한 편이고.
“다들 생각해둔 곡 있으신가요?”
‘조별과제 절망편까지는 안 가겠구나.’
서한은 속으로 안도하며 입을 떼었다.
“저 생각해둔 컨셉은 있습니다.”
“오, 뭔가요?”
딱 이 미션이 뜨자마자, 머릿속에서 생각해 둔 방향이 있었다.
“어느 정도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가수의 색이 너무 짙지 않은 곡이었으면 합니다. 무대적으로 뭔가 보는 재미를 줄 수 있으려면, 조금 밝은 느낌의 사랑 노래도 괜찮을 것 같고요.”
순전히 노래의 감정선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발라드는 제외.
보컬의 스킬적인 부분과 성량을 많이 요하는 락도 제외.
가창력을 보여주기 애매한 아이돌 곡도 빼면….
‘듀엣곡.’
“아. 좋네요.”
이도경이 두 눈을 끔뻑이며 수긍했다.
사실 서한의 제안은 돌리고 돌려 말했을 뿐….
‘저희 너무 까다로운 노래는 하지 맙시다.’ 였다.
어설프게 고음도 안되면서 지르다가 삑사리 나면?
다른 것도 아니고 보컬 경연에서 그만한 치명타도 없었다.
우리 팀에 그 정도의 메보 감도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보컬 주력인 멤버들을 모아둔 보컬 B팀을 이기려면 전략적일 필요가 있었다.
원래 끼와 퍼포먼스가 주력인 두 사람이니만큼, 무대에서 ‘보여주는 재미’에 초점을 맞추자는 제안도 이해가 되었을 터.
이도경은 턱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웃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조금 다르긴 한데, 듣고 보니 괜찮은 생각 같네요. 저는 찬성입니다.”
(너 머리 좀 잘 돌아가는구나.)
이도경의 빤한 눈빛이 닿자, 서한은 두 눈을 끔뻑이며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일단 산 하나는 넘었고.
‘이쪽이 문젠데….’
서한은 고개를 돌려 강시우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현재 순위 21위.
도서한의 기억 속 데이터베이스에 별달리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인물.
이준혁의 탈락이 아니었다면 높은 확률로 엮이지 않았을 사람이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다.
어떤 성격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뭘 잘하는지조차 알고 있는 바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무섭다.’
아까부터 말 한 마디도 없이 자신과 이도경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으음….”
이따금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문질거리는데….
그때마다 왠지 ‘형님, 괜찮으십니까?’ 같은 3류 영화 대사를 읊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느 정도 체격이 있는 것도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한몫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눈빛이었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닮은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
그냥 쳐다보는 것 같긴 한데….
조금 노려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여러모로 상대방이 봤을 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서한은 용기를 내어 운을 떼었다.
“저기요.”
“…….”
대답 대신 싸늘한 눈빛이 돌아왔다.
두 손이 자꾸만 공손해지잖아!
서한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본론을 꺼내었다.
“방금 전 아이디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주섬주섬.
몰랐는데 아까부터 필기하고 있었는지, 강시우는 손에 들린 수첩을 한 장 넘기고선 입을 떼었다.
그리고.
곧바로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
서한은 흠칫 놀란 햄스터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이 별로였….”
“…진짜 너무 좋아요.”
“예?”
“이대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영혼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남자, 진심이다.
“…….”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강시우는 뭐가 문제냐는 듯 당황한 얼굴로 두 눈을 굴렸다.
그 모습마저 눈앞의 햄스터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고민하는 시베리안 허스키 같아 보였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말이다.
“최고의…아이디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네. 아, 한 가지.”
고민을 마친 강시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곡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컨셉은 하이틴이 좋을 것 같네요.”
왜 줄곧 대답이 없나 했더니 나름대로의 컨셉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한은 그제야 강시우의 스타일을 캐치하곤 그의 말을 들었다.
‘원래 저런 성격이군.’
그다음으론 강시우의 분석이 이어졌다.
“서한 씨는 바로 전 경연에서 교복컨셉을 하셨으니까, 같은 하이틴이어도 컨셉이 겹치는 건 조금 그럴 것 같으셔서 교복은 뺐습니다.”
“아, 네.”
“제가 생각한 방향은 하이틴 느낌을 확실히 살려서 파티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컨셉으로…. 그래서 아까 말씀하실 때 선곡 리스트를 뽑아봤습니다. 이 곡도 컨셉에 맞는 것 같고…. 이건 어떨까요? 가사도 저희가 생각한 분위기랑 가장 흡사하네요.”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냉철하면서도 예리한 분석에, 서한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체적인 무대는 유명한 영화를 오마주해서 들어가면 좋을 것 같거든요. 조금 옛날 영화긴 한데, 이 장면은 서한 씨도 보셨을….”
“…좋네요.”
와.
이 인간 뭐야?
1차 평가에서 그냥 탈락했을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리더상.
대체 어디 숨어있던 거지?
* * *
1차 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서한은 너덜너덜해진 느낌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강시우가 생각한 뼈대에 살을 붙이는 것은 서한의 몫이었다.
괜히 오디션 2회차가 아니라고, 어떤 부분에 강약조절을 해야 보는 입장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서한은 그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무래도 경험적인 부분에선 서한이 한 수 위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조율을 해가면서 쉬지 않고 회의를 하다 보니, 목이 거의 쉴 지경에야 회의가 마무리된 것이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 팀은 아주 무난했다.
“왜 이렇게 순조롭지?”
평화로운 거 최고야.
늘 짜릿해.
그럼에도 육체적인 피로감은 어쩔 수 없는 법.
서한은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선 다시 후드티에 손을 꽂아넣었다.
목도 마른데 자판기에서 콜라 한 캔이라도 뽑아먹을까.
“으으… 힘들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판기가 있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던 그때,
“…!”
복도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는 팀원, 강시우였다.
“안녕하세요.”
서한은 싱긋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네었고, 강시우는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쪽이 두 살이나 어린데.’
물론 속껍데기는 스물다섯이니 형 대접이 어색하진 않지만, 고개를 숙일 정도의 인사는 이쪽도 부담스럽다.
‘무서운 사람은 아닌가.’
아까 회의할 때의 이미지도 그렇고.
여전히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에는 왠지 겁나는 감이 있지만….
이건 본능이라 치고,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서한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성격을 떠올리며 자판기에 카드를 꽂았다.
그런데.
“서한 씨.”
이렇게 살벌하게 부르면 깜짝 놀란다고.
“네?”
서한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아까 진작에 간 줄 알았는데, 바로 뒤에서 강시우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몹시 사연 있어 보이는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말이다.
“제가 아까부터 진지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 네.”
사연 있네.
“무슨 일이신가요?”
수정 방향이 마음에 안 들었나?
그것도 아니면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문제라도….
서한이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순간.
“그….”
강시우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신발끈 풀렸어요.”
아.
* * *
‘신발끈 풀렸어요.’
그런 얘기를 세상 딱딱한 목소리로 하는 것부터가 정상인의 범주는 조금 벗어난 특이한 인간이었지만….
아무렴 어때.
강시우는 조별과제에 있어서는 최고의 팀원이었고, 이도경 또한 머리 하나는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던한 조원들을 모아놔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
잠시 눈치를 살피던 이도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저희 파트 배분을 해야 하거든요.”
파트 배분이라 읽고 메인 보컬 싸움이었다.
보컬 B팀의 경우, 이하진이 사실상 메인 보컬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만한 가창력의 멤버들이 없었을뿐더러, 스타더스트 프로젝트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보컬 멤버 중 하나였으니.
진세현이 보컬 팀으로 갔다면 또 모를까, 세현 형이 퍼포먼스 팀으로 빠지면서 그닥 대적할 상대가 없어졌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우리 팀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어떻게 세 명이나 되는 팀원 중에서 보컬 주력이 단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속으로 탄식을 뱉는 순간, 이도경이 선수를 쳤다.
“전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데요.”
이 라인업이면 할만하다 싶었는지 자신 있게 나선 이도경과,
“음….”
영 자신이 없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문 강시우.
솔직히 내 기억 속의 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이 중 이도경이 우세할 것 같았지만….
인생 2회차잖아.
지금의 내가 이도경보다 능력치가 부족할 거라고 지레 겁먹어서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는 법.
처음으로 욕심 좀 내봤다.
“이 파트는 제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각자 한 번씩 불러볼까요?”
이도경은 나를 돌아보며 의견을 내었고, 결국 둘이 한 번씩 메인 파트와 도입부를 불러보기로 했다. 이렇게 되니 최종 결정은 강시우의 몫이 되었다.
잠시 둘 사이에 미묘한 눈빛이 오고 간 듯했지만, 이도경은 별말 없이 노래를 틀었다.
듣기 좋은 음색이 관건인 도입부와 깔끔한 발성이 핵심인 하이라이트.
그렇게 난이도 있는 노래는 아니지만, 노래에 임팩트를 싣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이도경은 미성으로 천천히 메인 파트를 불러나갔다.
I want to know
Everything about you
무채색인 내 세상이 너로 인해 물들었어
“들어봐 이게 내 모든 거야-“
훗날 스타더스트의 서브 보컬을 맡게 되는 이도경은 엥간히 듣기 좋은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발성은 연습생 티가 여실히 났다.
이도경은 빨개진 귀를 손으로 문질거리며 적당한 선에서 가창을 마쳤다.
“음음, 저는 여기까지.”
“그러면 서한 씨 한번 해보실까요.”
“넵,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큰 무대에서 메인 보컬을 맡는다는 게, 사실 리턴만큼 리스크도 큰 편이었다.
가뜩이나 우리 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위권 애들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일 텐데, 그 기대에 부합할 만한 무대를 보여줘야 했다.
실력이 부족한 거 나도 알고.
부담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다.’
기회가 왔을 때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오디션 2회차.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