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지옥의 조별평가(3)
‘저는 개인적으로 이쪽이… 조금 더 잘하신 거 같습니다.’
강시우는 정말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내 쪽을 골랐다.
이도경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빛이 잠시 스쳐간 것 같았으나, 다행히도 별말 없이 스스로의 패배를 깔끔히 인정했다.
‘저도 그런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다.
패기 있게 나섰을 뿐인데, 정말 내가 되어버렸더라.
평생 내 인생과는 연이 없을 줄 알았던 메인 보컬을.
아, 인생 정말 알 수 없다.
“후… 메인보컬.”
나는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마른세수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좋은 건 좋은 거고, 걱정이 많이 되는 것도 사실인데….
올라운더를 목표로 한다면 한 번쯤 넘어봐도 좋은 산이었다.
뭐, 내가 데뷔조 메보감에 도전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자신감이 떨어질 땐 한 번 더 해보면 된다. 내 지론이었다.
나는 빼곡히 분석해 둔 가사지를 꺼내어 찬찬히 눈으로 훑었다.
우리 팀의 최종 선곡은 유영&진의 듀엣곡으로 유명한 ‘첫 번째 고백’이었다.
이 곡의 특징이라면, 하이라이트의 화음 파트를 빼놓고는 크게 지르는 파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고음은 올릴 만하지. 문제는 여긴데….”
마지막 화음 파트의 고음.
바로 이 파트를 얼마나 깔끔히, 시원시원하게 올리느냐가 관건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 발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동안 적잖이 노력했다.
‘서한아, 너는 목소리는 좋으니까 해볼만 해.’
‘고음 잘 안 올라가지? 원래도 피치가 낮은 편이긴 한데, 지금 이 선곡은 충분히 올릴 만하거든?’
그때 유민서 선생이 언급했던 노래의 최대 고음이 2옥 C였나.
‘첫 번째 고백’의 하이라이트 파트와 정확히 같은 음역대였다. 아직 내 역량으로 시원시원하게 올라가기 어려운 음역대.
일반적인 남자 음역대 기준으로도 높은 편이라, 당연히 목소리가 낮은 나는 버거운 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유민서 선생의 말을 믿었다.
올릴 수 있으니까 내게 그렇게 말한 거겠지.
지난 생의 나는… 결국 포기하고 그 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지만.
“해볼 때까진 당연히 해봐야지.”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녹음 어플을 켰다.
곧바로 피드백해 줄 대상이 없으니 한 번 불러본 뒤 내 목소리를 체크해 보기 위함이었다.
내 귀로 듣는 거랑 녹음해서 듣는 것은 생각보다 차이가 큰 편이다. 그냥 육성으로 들었을 때는 들리지 않는 실수도 종종 있는 편이라, 연습생 때부터 이런 식의 연습이 습관이 되었다.
딸깍-
노래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자,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가 오는 순간 이 세상이 멈췄어
믿게 됐어 이런 게 사랑이란 걸
흉성을 쓴다 생각하고 최대한 성량을 키워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최종 경연까지 유민서 선생의 조언을 받았으니까….
I want to know
Everything about you
“화음 쌓을 때 한 번에 터트리는 거 좋아하시던데.”
그럼 이건가?
“아-“
“I-want to-“
가장 까다로운 파트.
당연히 한 번 만에 수월하게 고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2옥 C의 피치까지 올라가는 고음을 최대한 깔끔히, 편안하게 부르기 위해서는 유민서 선생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시 한번.”
앞으로 툭 던지듯 고음을 뱉어내라 하셨지.
고음을 낼 때 최대한 깔끔한 발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을 앞으로 던져야 했다. 고음을 쥐어짜 내겠다고 다시 삼켜버리면 정말 답답한 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까.
I want to know
Everything about you
괜히 국내 탑 보컬 트레이너가 아니라는 듯, 유민서 선생의 멘트 하나하나는 떠올려내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아까보다 훨씬 나은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녹음해둔 파트를 다시 틀어보자, 발성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졌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맞춰봤을 때보다 많이 발전했다.
“내일 몇 시간 더 하고, 다 같이 맞춰보면 되겠네.”
마침 거의 목이 다 쉬어갈 참이었다.
춤 연습이면 모를까, 보컬 연습은 내일의 목 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나갈 채비를 했다.
“어우, 목소리도 잘 안 나온다….”
음음-
그렇게 ‘첫 번째 고백’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가는 길에 콜라나 한 캔 더 사갈까, 그런 소박한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헌데,
“왜 그렇게 봐. 존나 쫄리게.”
음?
분명 익숙한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멈췄다.
* * *
“하….”
곧이어 들려온 건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탄식.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나 곱씹어 보던 중, 뒤늦게 떠올랐다.
아까 그 목소리, 이도경 맞지?
지금 한숨 쉰 건 강시우였고….
아무래도 영 좋지 못한 상황을 직관하게 된 느낌이라 일단 문 뒤에 숨었다.
회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살벌한 목소리의 강시우가 입을 떼었다.
“하나만 확실히 하자는 거야. 나는 이번 무대에 진심이고 너랑 다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무대니까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까 이번 경연은 제발 조용히 넘어가자고….”
“야.”
뭔 소리야 저게.
험악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저쪽에서는 내가 안 보일 테니 다행인데, 이렇게 되면 조용히 복도를 지나갈 수가 없잖아.
사람 입장이 난처해지든 말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미 회의실에서 충분히 참았다는 얼굴.
비릿한 미소를 흘린 이도경이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웃기는 새끼네, 이거.”
“…….”
“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 너 되게 싫어도 카메라 앞에서 방긋방긋 웃어주잖아. 표정 관리는 너나 잘해, 완전 썩어계시던데?”
이도경의 조소 섞인 목소리가 조용한 복도 위로 울려퍼졌다.
저런 말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나?
내 앞에서 생글거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같이 회의하는 와중에 어색한 기류가 흘렸던 건 맞는데.
그거야 강시우는 모두와 어색한 편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헌데, 내가 대단히 착각했던 거지.
말하는 것만 보면 거의 원수지간이 따로 없었다.
멱살 잡고 안 싸운 게 다행이야.
두 사람이 같이 한 1차 평가 때 무슨 원한이라도 생겼나.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너 메인 보컬로 도서한 뽑은 거, 나한테 악감정 있었던 거 아니냐?”
갑자기 왜 이쪽으로 튀는 건데.
이도경은 메인 보컬의 최종 결정권이 강시우에게 있었다는 데에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나라도 척을 지고 있는 상대가, 내 메인 보컬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면 불편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냥 네가 더 못한 거잖아.”
강시우의 저 말도 틀린 거 아니다.
이도경이 선보인 보컬이 그렇게 썩 안정적이지 않았으니까.
강시우의 돌직구에 이도경의 표정은 한층 더 썩어들어갔다.
“뭐?”
“네가 더 못했어, 누가 봐도. 민서 쌤이 왔었어도 절대 메인 보컬 자리에 너 안 줬어.”
“야, 강시우.”
“경연이잖아. 거듭 말하지만 나는 사적인 감정 담을 생각 없고, 오히려 너한테 협조하길 바라는 거야.”
강시우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흐릿하게 이편까지 들려왔다.
“협조?”
“지난번처럼 뒤통수치지 말라고.”
뒤통수. 이준혁의 전매특허인 그 단어에 나도 잠시 멈칫했다.
어째 두 사람의 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리는 대신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뒤통수? 아~ 그 일?”
이도경은 깔깔 웃으며 그 말을 받아쳤다.
“왜? 내가 피디 앞에서 그 일 언급한 게 아직도 열이 받아?”
“분량 좀 뽑겠다고 남의 집 가정사 팔아먹는 게 정상인 놈은 아니잖아. 네가 하려던 짓거리가 그거였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차피 다 털릴 거. 이 기회에 써먹는 거 나쁘지 않았잖아? 네가 개지랄을 떠는 바람에 결국 방송에 못 나간 거면, 원하는 대로 된 거 아니냐?”
그러니까….
대충 짐작해 보자면 자기 팀 분량 챙기겠답시고, 이도경이 강시우의 가정사를 피디한테 뿌렸고,
그게 방송에 탈 뻔했는데 강시우가 난리를 쳐서 무마된 건가?
사실이라면, 완전 찍혔을 것 같은데?
“…….”
자세한 내막을 더 알고 싶었지만, 강시우의 굳게 다문 저 입에서 뒷말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앞으로 나가면 내가 보일 것 같은 관계로, 엿듣는 건 여기까지.
남의 집 가정사.
나는 정말 안 궁금한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봐야겠네.
“하.”
우선 무사히 경연을 치르는 게 먼저였다.
* * *
파트 배정에 불만을 가진 이도경과 비밀스런 가정사를 숨기고 있는 강시우.
순탄할 줄 알았던 조별평가의 분란에 내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사이,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꺄아! 눈이 온다!”
서하임은 눈 처음 보는 강아지마냥 방방 뛰고 있었다. 이 추운 겨울날에 창문까지 활짝 열어놓고 완전 신이 나셨다.
“도서한! 나랑 밖에 나가서 눈사람 만드실?”
“…추운데요.”
“뭘 모르넹. 그게 바로 낭만이잖아!”
하준서는 서하임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낭만이지…. 나는 눈 오는 날 가로등만 보면 사람이 감성적이 돼.”
“형은 원래도 감성적이에요. 365일, 한여름에도 그럴 텐데.”
진세현은 혀를 끌끌 차면서 돌직구를 던졌다. 잔뜩 신이 난 서하임과 하준서.
두 사람과는 다르게 진세현의 두 눈에는 피곤이 잔뜩 느껴졌다. 2차 평가 연습을 위해 밤을 거의 샜으니까 밖에 나가서 눈 굴릴 여유도 없는 것이다.
진세현은 내 쪽을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
“너도 눈 좋아하냐?”
“글쎄요. 아름다운 쓰레기 같은데.”
“…!”
서하임은 내 폭탄 발언에 눈 큰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상당히 충격받은 그 표정 뭔데.
뭔가 동심을 파괴해 버린 느낌이라 미안해졌다.
하지만 사실인걸.
“눈 오면… 치워야 하고…. 치우면 춥고… 안 치우면 얼어버리고… 얼어버리면 내가 힘들어지고?”
“너어는 메인보컬이 감성이 넘쳐야지, 애가 현실적이면 어쩌냐.”
“형도 입대하면 알게 될 거예요.”
서하임은 내 한마디에 기겁하며 하준서를 돌아보았다.
“형, 막내의 저런 발언 어떻게 생각하세요?”
“째깐한 게 못하는 말이 없어.”
억울하다. 나는 이미 한 번 갔다 왔다고!
쯧.
하준서는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혀를 찼다.
“그런 말은 형처럼 다 늙어서 하는 거다.”
“인정. 준서 형은 눈앞에서 삽이 아른거릴 거야.”
“하임아, 형을 그렇게 멕이는 게 아니야.”
스무 살이 그런 발언을…?
“진짜 늙었으면 카페인을 그렇게 못 때려박아요.”
그래 봤자 다 또이또이인 인간들끼리 누가 더 늙었나 대결을 하는 사이,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 잠깐만.
“근데 나 또 가야 해…?”
“응?”
이걸 잊고 있었네.
곧 열여덟이라 꽤 남긴 했는데…아니 그래도….
“죄송해요. 갑자기 다른 생각 하다가 심란해졌어요.”
“그래. 내일 중간 평가잖아. 심란할 만하지.”
“쟤가 보컬은 처음이라 긴장될 수밖에 없다니까.”
그런 거 아니라고.
나는 형들의 말을 정정하는 대신 한숨을 쉬며 인정했다.
“중간평가 너무 긴장되네요. 하하….”
어쩐지 눈이 아름답게 내리더니만.
빌어먹을.
“아름다운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