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예쁘다
예리하면서도 아직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는 기자의 눈빛이 나를 향한다.
저쪽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훗날에 만난 적이 있었다.
기자와 연습생의 관계가 아니라, 조금 다른… 일반인 대 일반인의 관계로 엮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도연 기자의 이름은 안 좋은 쪽으로 유명했었지.
말투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자신감과 오만한 태도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10년 차 기자의 분위기는 따라올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고작 2, 3년 차 풋내기 기자에 불과할 테니.
이때라면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내건 패였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저 눈동자를 봐서는 확실히 먹힌 것 같다.
“본인도 너무 화끈하게 인정해 버린 것 같네요.”
“…하.”
나이 차가 많이 나서 그런가.
내가 아는 이도연 기자는 제 동생이라면 끔뻑 죽는 사람이었다.
가장 중요한 시점.
데뷔 순위 안에 든 이 시점에 연애설이 터진다?
그것도 하나도, 둘도 아닌 세 명이나?
사실상 데뷔는 물 건너간 셈이지. 상식적으로 아이돌 팬들이 한 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인 연습생을 데뷔시키겠냐고.
이도연 기자의 심경도 상당히 복잡해진 것 같았다. 아까와 다르게 조심스러워진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딜 해볼만 했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터질 특종이고….”
“무덤까지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잠시, 묻어두자는 거죠.”
현실적으로 이도연 기자의 말이 맞다.
기껏해야 서바이벌 직후, 데뷔하게 된다면 데뷔 저년차에나 막을 수 있는 소식이지. 이 바닥에 비밀이 어디 있나.
언젠간 이도연 기자가 아니더라도 터질 만한 대형 특종이다.
그러니 내가 내걸고 싶은 제안 역시 ‘보류’다.
최소한 스타더스트 프로젝트만은 무난히 마무리하게 달라는 부탁이랄까.
그 이후의 삶이야 강시우 스스로가 알아서 할 테고.
자기 인생이니까.
“그 정도면… 고민해 볼게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터트릴지 모르겠지만.”
이도연 기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강시우 역시 쭈뼛거리며 이도연 기자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아는 한, 이도연 기자가 한번 말한 걸 번복하는 성격은 아니라.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잘 해결된 것 같긴 한데….
사실 내가 이도연 기자를 찾아온 본론은 이게 아니었다.
방금까지는 협박이었고, 진짜 거래는 아직 하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기자님. 그러면 이쪽 얘기는 마무리된 것 같고,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네?”
“특종 좋아하시잖아요.”
애초에 이도경의 일을 입에 올린 건, 강시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함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건넬 제안을 비밀에 부칠 것.
그렇다는 가정하에, 이도연 기자가 아주 좋아할 선물을 들고 왔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드릴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또 무섭게 뭔…어어?”
나는 싱긋 웃으며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었다.
“이 정도 특종이면 될까요?”
그 사진을 확인한 이도연 기자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 * *
2차 순위 선발식의 결과가 좌우될 두 번째 평가.
운명공동체 포지션 평가의 당일이 되었다.
보컬 2팀, 랩 2팀, 퍼포먼스 3팀.
여기서 포지션별 경연에서 패하는 팀은 곧바로 탈락위기에 처하게 되니, 평가 당일의 대기실 분위기는 냉동고 그 자체였다.
1등이든, 2등이든.
여기서 팀이 탈락하면 같이 탈락행이다.
물론 그런 경우를 대비한 구제 투표가 있지만, 이건 아직 제작진이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상위권 연습생들은 긴장된 얼굴로 마지막 합을 맞추고 있었다.
모두가 피곤에 쩔어 있는 그 시점, 카메라의 빨간 불이 켜졌다.
그와 동시에, 아까까지만 해도 우중충했던 표정들이 다들 밝아졌다.
“오늘 엄청 많은 분들이 와주신대요.”
“와, 벌써 떨리는데요?”
“몸 좀 미리 풀고 있어야겠다.”
그렇게 대기실의 연습생들이 텐션을 올려 오디오를 채우는 사이,
대기실을 잡던 카메라 앵글은 반 바퀴 돌아 다시 심사위원을 잡았다.
유민서 선생과 MC 한다원, 특별 심사위원으로 프로그램을 찾은 가수 유빈까지.
세 사람이 가장 먼저 꺼낸 화두는 경연의 첫 순서인 보컬 팀 포지션 평가였다.
“어느 팀이 더 승산이 있을 거라 보시나요?”
“저랑 선생님은 지난번 중간 평가 무대를 봤었죠.”
한다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을 떼었다.
중간 평가 당시 보컬 B팀이 기대 이하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유민서 선생의 지적을 받고 얼마나 갈아엎었을지는 모르겠으나, 포텐션이 충분히 있는 친구들이다.
솔직히 이쪽은 잘 모르지만, 한다원은 조심스레 의견을 내었다.
“저는 그래도 오늘은 B팀이 더 잘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음, 확실히 A팀 친구들이 다 재능 있는 아이들인데 포지션을 잘못 배정받았죠.”
“원래부터 보컬 강점인 애들이 이번에도 잘할 거다?”
“근데 또 인지도는 이쪽이 압살이거든요.”
“그래도 이건 무조건 B팀이에요. 하진이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데.”
다른 포지션의 트레이너들도 끼어들어 각자의 생각을 내놓았다.
팽팽한 토론 속 보컬 B팀이 우세할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
연습생들의 인터뷰 컷도 비슷했다.
[서한이가… 춤은 진짜 잘 추거든요. 근데 아직까지 보컬로 이렇다 할 무대를 못 본 느낌?] [포지션을 잘못 갔죠. 그 셋 다 잘못 간 거 같아요. 왜 보컬 포지션을 도전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이영채 PD가 도서한을 보컬 A조에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도서한을 데뷔조에서 견제하기 위함이다, 라든가.
센터의 역경을 담아 어그로를 끌어서 방송용 그림을 뽑기 위함이라든가.
그러나, 한 가지는 이미 확실했다.
당사자에겐 선택권이 없었다는 걸.
다들 알면서 방송용 멘트들을 가감 없이 내뱉었다.
한다원은 마이크를 들고선 아까부터 침묵으로 일관했던 유민서 선생을 돌아보았다. 진지하게 이번 판의 승률을 계산해보는 듯한 눈빛.
“우리 트레이너님 의견은?”
“글쎄요.”
유민서 선생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뱉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 * *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유민서 선생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서한은 허공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무대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와아아아아악!”
1차 평가 때보다 체감상 배가 된 관객.
찢어질 듯한 함성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앞선 B팀의 무대.
중간평가 때와 달리, 실수 없이 완벽히 해낸 모양이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타인이 무너지길 바라는 것보다 내가 올라서는 게 빠르다.’
이번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메인보컬의 중압감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했다. 개판난 팀 분위기를 수습해 어떻게든 이 정도의 팀워크까지 만들어 내느라 고생했다.
그러니까,
‘잘하면 돼.’
서한은 속으로 되뇌며 센터에 앉았다.
이윽고, 옅은 조명이 머리 위로 드리운다.
관객들의 함성 소리도 천천히 사그라들고, 어느새 무대 위에는 적막만이 남는다.
마치 오직 세 사람만이 남은 것처럼.
서한의 길을 따라 걸었던 이도경이 씨익 웃으며 무대 위로 올라오고,
홀로 앉아있는 서한에게 조용히 다가가 하얀 헤드셋을 씌워주는 이도경.
동시에, 적막으로 가득 찼던 무대에 꽤나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퍼진다.
“어?”
관객 몇 명이 알아챈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Dreams are my reality
1980년도 작, 영화 라붐의 OST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관객들 중 그맘때쯤 영화를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적었다.
혼자 음식을 먹고 있는 빅에게 다가가 헤드폰을 씌워주는 마튜.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이 파티에서 춤을 추게 되는 장면.
그 장면을 오마주한 도입부에, 라붐의 OST를 삽입하였다.
“…….”
서한은 천천히 헤드셋을 내리며 관객석을 돌아본다. 잔잔히 깔리던 OST도 그쯤에서 흐릿해진다.
아름다운 물결처럼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는 무수한 관객들.
마이크를 든 서한의 입이 천천히 떨어졌다.
네가 오는 순간 이 세상이 멈췄어
믿게 됐어 이런 게 사랑이란 걸
부드러우면서 울림을 주는 음성.
유민서 선생은 그 음성에 테크닉이 부족하다고 말했지만, 도리어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어떤 목소리와 합을 맞춰도 잘 어울릴 듯한 백지 같은 서한의 노래.
그 위에 이도경이 화음을 덧씌운다. 미성의 음성이 백지 위로 저만의 색깔을 그려낸다.
I want to know
Everything about you
흰 벽을 세워
네가 들어올 수 없는 그 자리에
어느덧 네가 비집고 들어와
너만의 붓을 휘저어
곧이어 이어지는 강시우의 나직한 랩.
스타더스트 프로젝트에서는 단 한 번도 선보이지 못한 랩 실력이었지만, 랩 포지션에 갔다면 날고 기었을 만큼 강시우는 리듬을 가지고 노는 능력이 천부적이었다.
설렁설렁 부르고 있는 것 같지만, 짙은 매력의 음색 속에 묻어있는 특유의 바이브.
강시우의 보컬 파트는 그렇게 흘러가듯 부드럽게 넘어간다.
Do you know that
물감으로 얼룩진 티셔츠
내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네가 그냥 좋더라
I want to know
Everything about you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리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치고 박고 싸우진 않았어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그랬던 팀이, 무대 위에서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다.
서한은 강시우의 눈을 마주한 채 씨익 웃었다.
다른 연습생들이 했던 말들이, 잔상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아쉬운 조합이다?] [서한이가… 음역대가 낮지 않아요? 근데 걔가 메인보컬이라고?] [그 팀에서 고음을 지를 사람이 없어요.]서한이 메인보컬을 맡게 되었을 때, 가볍게 무시하곤 했던 보컬 B팀의 연습생들.
아마 저렇게 세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방송에는 그런 말만 편집되어 나가곤 하니.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메인 보컬, 솔직히 부담스럽지.’
하지만, 서한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안될 것 같다고 지레 포기해버릴 만큼, 서한은 나약했던 열일곱이 아니었다.
안될 것 같아서 포기했으니까.
이번 생에는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되도 않는 고음을 질러보겠다고 목이 쉴 때까지 연습했다.
도서한의 그 정도의 음역대까지밖에 못 올라가니까, 결국 평이한 선곡을 골랐겠지.
영리한 판단이었지만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무채색인 내 세상이 너로 인해 물들었어
들어봐 이게 내 모든 거야
서한이 깔끔한 고음을 내질렀다.
보컬 B팀을 이기기 위한 히든카드이자, 서한이 가장 공을 쏟아부은 파트.
넌 내게 음악이야
멈출 수 없게 만들어
아-아-아
단 한 번도 실전에서 선보인 적 없는 2옥 C의 고음.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탄탄한 발성 위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덧칠된다.
흠잡을 데 없는 탄탄한 발성에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오는 와중에도, 오직 인이어의 MR만 귓가에 울려퍼질 뿐이다.
I want to know
Everything about you
무채색인 내 세상이 너로 인해 물들었어
들어봐 이게 내 모든 거야
그렇게 다다른 마지막 소절.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너의 세상은 온통 나니까
처음 장면 그대로 서한은 의자에 앉고, 두 사람이 멀어지며 옅은 조명이 머리 위를 비춘다.
“…….”
실수 없이, 완벽히, 그리던 모습 그대로 마무리한 무대.
‘잘한…거겠지?’
그제야 서한은 후련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얘들아, 잘했어!”
“명창 햄찌 찢었다아아악!”
결과를 증명하듯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팬들의 함성 소리.
그들을 두 눈에 담으며, 서한은 중얼거렸다.
“예쁘다….”
플래카드가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