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이미 녹은 빙하는 어쩔 수 없으니 남은 얼음이라도 지키자 (1)
새로운 스킬 ‘몰포나비’는 산탄총처럼 마음대로 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마력의 충전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소요되는 마력이 많았고…….
“하지만 위력이 만만치 않아.”
입가가 떨렸다. 웃고 싶었는데 영 피곤해서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고맙다, 귀신 들린 인형.
덕분에 저 괴물을 한결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
“나으리?”
나는 피핀에게 고갯짓했다.
“고기 다져본 적 있어?”
“당연하죠. 자주 하는 일이에요. 가끔 마을에서 개가 새끼를 낳을 때면 고기를 다져서 먹였거든요.”
“그런 건 됐고. 저 슬라임 비슷한 걸 말이야…….”
나는 낄낄대는 라기아로 슬라임처럼 변한 모르포팔을 겨냥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잘게 다져봐.”
“네.”
피핀은 망설이거나 내 말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허무맹랑한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달렸다. 제 몸의 절반을 넘는 응원가를 가볍게 휘두르며 박차 오르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피핀은 슬라임을 반으로 가른 뒤, 가차 없이 난도질했다. 말도 안 되는 공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슬라임은 쉽게 죽지 않았다. 검은 몸통은 금세 서로 들러붙고 부풀어 올랐다.
응원가는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합쳐지는 검은 괴물을 베고 또 벴다.
이쯤 되면 내 명령에 의구심을 가질 법도 한데, 피핀은 펄쩍펄쩍 뛰면서 명령에 충성을 다했다.
‘어차피 피핀의 공격으로 저걸 끝내려는 생각은 안 했어.’
내가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흩어지는 검은 조각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고기를 다질 때, 누가 체크무늬 셔츠 짜듯이 규칙적으로 칼질을 하던가. 피핀은 즐기듯이 응원가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주 멋대로.
다시 붙을지언정 피핀이 곧장 찢어놓는다. 그 사이로 비치는 푸른색 덩어리.
그게 바로 모르포팔의 핵이다.
[네가 얻은 새로운 스킬은 아무래도 쿨타임이 좀 있는 것 같으니 말이야.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물론 이 라기아 님께서 힘을 보태면 좀 더 수월하게 이길 수 있겠지만!]“라기아 님, 부탁할게.”
[오오오오! 웬일로 아부를 다 하고! 좋아! 내 실력을 보여주지.]라기아가 울룩불룩 구운 찹쌀떡처럼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좀 더 험악한 인상으로 변했다. 손잡이와 낫에 나무뿌리처럼 불거진 부분으로 독특한 마력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시에라, 이건 특별 대우야.]라기아는 의기양양하게, 조금 오만한 기색을 담아 말했다.
[감히 그분에게 거스르는 너희가 재밌어서 참을 수가 없어! 아하하하!]의미를 알 수 없는 라기아의 말은 뒤로 하고, 검은 괴물을 겨눴다.
눈에 불을 켜고 피핀이 갈라놓은 사이사이를 살폈다.
“있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마력의 덩어리가 보였다. 역시 핵이 따로 있을 줄 알았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몰포나비의 공격 범위가 좁지 않으니 적당히 조준해도 괜찮을 것이다.
문제는 저 핵이 자꾸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건데…….
파란색 핵은 강물을 타고 이동하듯, 유연하게 움직였다. 한 번에 터뜨릴 수는 없을 모양이다.
“몰포나비.”
[아하하하! 가보자고!]강한 반동과 함께 마력 덩어리가 발사됐다. 괴물에 직격한 나비 포탄은 괴물의 육신을 일부 날려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핵은 금방 도망쳤다. 마치 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쓸데없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바로 마력을 충전했다. 진짜 포탄처럼 생각하면 조금 편한 듯했다. 장전 시간이 있는 묵직한 포탄에 가까우려나.
“3, 2, 1, 몰포나비.”
펑.
“다시 한번.”
퍼억!
질척거리는 몸뚱이는 나비 이펙트에 닿을 때면 증발하듯 사라졌다. 피핀도 나의 공격을 이해하고는 속도와 위치를 적절히 조절하는 중이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몰포나비!”
콰아앙!
이번에야말로 직격이었다. 마법진이 사그라들며 라기아가 쾌활하게 웃었다.
[이 기술 장난 아닌데?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막상 속이 뚫린 건 저쪽이겠지만! 아하하핫!]나비 포탄은 파란색 핵을 부서뜨렸다. 완전한 승리였다.
내 계획이 성공했다는 걸 알아챈 피핀이 다가왔다. 녀석은 손끝으로 코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웃었다.
“이제는 진짜 해치운 거죠? 해치웠다고 해도 되죠?”
“그래…….”
아까 내가 구박한 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연한 거 아냐? 비밀은 밝혀지는 법이고, 약속은 깨지는 법이며, 해치웠나 하고 질문하면 적이 되살아나는 게 콘텐츠의 법칙이었다.
나도 한숨 돌리며 라기아를 내려놨을 때였다.
“우우……. 웅…….”
검은 괴물은 무너져 내렸는데, 파란색 핵은 부서진 상태로 둥둥 떠 있었다. 떨어질 줄 모르는 핵을 보니 싸하게 불길함이 밀려왔다.
“나으리. 제가 그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나 봐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던 핵이 슬금슬금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아, 이건 아니지!”
피핀도 지쳤는지 질렸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서로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는 순간.
휘익-.
돌연 하얗게 빛나는 화살이 괴물의 핵을 꿰뚫었다.
파스스스 부서진 핵은 조약돌이 되어 툭 떨어졌다.
“저게 뭐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화살만큼이나 하얗게 빛나는 활을 든 여자가 있었다.
“누구지?”
마력으로 만든 활이었는지, 공격을 마친 무기는 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여자는 젖은 손을 탈탈 털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의복을 보아하니 귀족가의 영애인 듯했다.
‘잘 관리된 옷이지만 유행이 지나 있다……. 부유한 집은 아니겠군.’
그녀는 나를 보고 슬쩍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하더니, 곧장 자신이 쏘아 떨어뜨린 조약돌(이게 진짜 핵인 듯했다)로 다가갔다.
“잠깐만요!”
허둥지둥 피핀이 달려 나갔다. 의아해하는 영애를 두고 피핀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심호흡을 하며 말을 골랐다. 누가 보면 전쟁 났다고 알리는 하인으로 알았을 것이다.
“저거, 제 거. 제가 가질 건데요.”
물론 피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별거 없었다.
보통의 영애라면 마수의 핵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피핀을 꺼렸겠으나, 저 사람은 달랐다.
“왜요?”
“네?”
“왜 저게 당신 거냐고요.”
“그거야 제가…….”
이제 와서 생각하는데, 피핀은 낯선 여성 앞에서 유난히 더 바보가 되는 듯하다. 쑥스러워하는 건지 아니면 바보인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건지.
피핀은 자신이 가진 어휘력을 최대한 발휘하려 했으나, 너무 많은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고 했는지 오히려 조용해졌다.
“나으리…….”
피핀은 결국 나를 돌아보며 울상을 지었다. 길 잃은 새끼 오리처럼 처량했으나, 물론 귀엽지는 않았다. 조금 한심해 보였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나는 시에라 글러토니. 이 공작가의 주인입니다.”
“…….”
여자는 나를 뚱하게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인사했다.
“소이 블렛. 블렛 백작가의 양녀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덕분에 고생을 덜었습니다.”
“그래 보였어요.”
엄청 당당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맞장구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
“…….”
나와 피핀은 웬일로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진짜 황당하다.
우리를 도와준 건 맞는데, 남의 집 뒷마당에 갑자기 나타나 놓고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뭐라고 따지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백작가의 양녀가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애당초 자신을 굳이 양녀라고 밝힌 이유는 무엇인지, 아까 그 기술은 뭐였는지.
아까 바보 같았던 피핀과 내가 다를 게 뭐람. 입가가 경련했다. 일단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는데 웃음이 나오지를 않는다. 힘내라, 내 얼굴 근육.
“제가 아니었다면 두 분은 다시 한번 싸웠어야 했을 거예요. 여신의 원념을 여기까지 몰아넣었다니 감탄스럽기는 합니다. 저는 그런 건 못 하거든요. 하지만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린 건 분명 저였죠.”
“그…….”
뭐라도 반박해야겠다고 입을 연 순간, 피핀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게요.”
“야.”
네가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럼 이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소이는 냉큼 조약돌 같은 마수의 핵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녀를 일단 만류했다.
피핀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방금 여신의 원념이라고 했어. 뭔가 알고 있는 거야.’
미스터리한 사람과 엮이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이 못 되지만, 지금은 거리낄 게 없었다.
미미 모르포팔은 달리아에게 질척거리다가 돌연 진짜 물리적으로 질척거리는 슬라임 괴물로 변해 우리를 공격했다. 다음번에는 어떤 놈이 찾아올지 모른다. 달리아가 인기 많은 귀족 영애로 자라기를 바란 건 맞는데, 괴물들한테 인기가 많기를 원했던 적은 없다.
“그 돌은 왜 가져가는 겁니까? 설마 그 괴물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나요? 당신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음…….”
소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굳이 말을 꾸며낼 필요는 없겠죠. 이런 괴물과 싸웠다는 건, 글러토니 공작님께도 어떤 사정이 있다는 거니까.”
“맞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어요. 괴물이 뒷마당에 나오는 집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동생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맞아요. 우리 달리아 아가씨는 다섯 살이에요. 하지만 얼마 후면 여섯 살이 되실 거예요. 곧 앞니도 새로 날 거고요.”
“피핀.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저기서 마수 잔해 줍고 있어. 너 저런 거 좋아하지? 저기서 놀다가 부르면 와.”
“네!”
피핀을 쫓아내고 나자 나와 소이 둘만 남았다. 소이는 마력이 흐르는 조약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작거리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마수의 핵과 헷갈릴 수 있지만 이건 원념의 중심입니다. 전혀 달라요. 평범한 마수는 대지의 신에게서 힘을 부여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원념의 마수는 여신께서 직접 만든 괴물.”
여신이라면 분명 그 존재다. 심연의 악마.
페어기스의 숲에서 본 환상 속에서, 그자는 소녀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어쩌면 진짜 모습은 그런 괴물이 아닐지도 몰라.
마침 여신에 관한 소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교회가 섬기는 대지와 심연의 악마라고 불리는 여신께서는 한 핏줄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다지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손재주가 없으시죠.”
“무슨 말인지 잘…….”
“되는 대로 마력을 응축해 피조물을 만든다는 뜻이에요. 여신의 마수는 여신의 강한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영혼과 육체 모두 붕괴합니다. 초월자는 어쩌면 우연히 완성된 성공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들에게선 이런 마력 조각이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뜻이죠……?”
소이는 진지하게 내 눈앞에 핵을 들이밀었다.
“이건 마수의 편도결석 같은 겁니다.”
“……예? 좀 다른 비유는 없나요?”
“그리고 엄청 비싸게 팔리죠.”
소이의 목적은 간단명료했다.
“저는 이걸 비싸게 팔 겁니다. 아주 비싸게.”